‘올해도 설 대목일까’ 서울 전통시장 세 곳 둘러보니

한산했던 공릉 도깨비시장 [사진=김혜진 기자]
한산했던 공릉 도깨비시장 [사진=김혜진 기자]

[일요서울ㅣ김혜진 기자] 설 명절을 앞두고 ‘대목’을 누려야 할 전통시장 상권이 침체된 분위기다. 예년과 달리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장기화되고, 설 연휴마저 ‘5인 이상 집합 금지’ 지침이 내려지면서 차례상 차림을 포기한 가구가 늘었기 때문이다. 설 명절을 일주일 앞둔 지난 3일, 일요서울은 서울 유명 전통시장인 청량리 종합시장, 공릉 도깨비시장, 남대문시장 세 곳을 방문했다. ‘설 대목’이라는 말이 무색한 분위기였다.

- 전통시장 주 고객층은 50대 이상 코로나19 취약 연령층
- 사람은 와도 ‘명절 장’은 잘 안 봐…올해는 선물박스도 안 나가

이날 낮 12시에 찾아간 공릉 도깨비시장의 입구에는 2만 원짜리 조끼를 5000원에 판다는 상인의 목소리가 우렁차게 퍼졌다. 파격적인 할인 가격에도 불구하고 물건을 집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입구를 지나자 문을 연 가게들이 곳곳에서 불을 밝히고 고기, 야채, 과일, 반찬 등 갖가지 음식을 내놓고 있었지만 손님이 없는 탓에 휴대폰만 쳐다보고 있는 상인도 눈에 띄었다. 

도깨비시장에서 5년째 옷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김모씨는 “코로나19로 사람들이 많이 안 와 작년 설 명절을 앞뒀을 때와 차이가 크다”며 “매출에도 타격이 크다. 장사는 거의 안 된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김 씨는 “금·토·일요일에나 사람이 오는데 그것도 젊은 사람들이 간단하게 먹으러 오는 것뿐”이라며 “시장에서 ‘설레는 날’이라고 해서 설날 이벤트도 진행하고 있지만 그만큼 물건을 사는 사람이 많지 않다”고 토로했다. 이벤트는 3만 원 이상 영수증 지참 고객에게 5000원짜리 온누리 상품권을 증정한다는 내용이다. 

도깨비시장에서 8년째 방앗간을 운영하고 있는 이흥수 씨는 “전통시장 주 고객들은 50대 이상 대부분 70~80대 연령층인데 코로나19가 노인층에 더 위험하다는 이야기 때문인지 (시장에) 주 고객들이 많이 줄었다”며 “물건을 사려고 해도 자녀들이 사다준다고 하고 마트에 가서 사니까 시장은 더 크게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일부 상인은 정부가 홍보하는 지원금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고 하소연했다. 이곳에서 과일 가게를 운영한 지 10년이 넘었다는 한 상인은 “지난해에 먹고 살기가 너무 힘들어 다른 일을 하느라 사업자 등록을 잠깐 취소했다가 다시 살렸는데 구청에서는 지원금을 받을 수 없다고 이야기를 한다”며 “나이 많은 사람들은 정책이 뭐가 뭔지 잘 몰라 지원금을 신청해서 돈을 받는 것도 쉽지 않다”고 털어놨다. 

청량리 종합시장 [사진=김혜진 기자]
청량리 종합시장 [사진=김혜진 기자]

한산했던 도깨비시장과 달리 청량리 종합시장은 좁은 길목에선 줄을 지어서 지나가야 할 정도로 인파가 넘쳐났다. 바퀴 달린 가방을 끌고 나온 사람도 눈에 띄었다. 부모님이 이곳에서 50여 년째 과일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는 주모씨는 “평소에도 사람이 많지만 명절을 앞둬서 더 늘어난 것 같다. 코로나가 심할 때는 사람이 없었는데 요즘 잠잠해지면서 많아졌다”며 “시장에 사람이 많아 보여도 다 물건을 사진 않는다. 평소 먹거리를 사려고 오는 사람들이 더 많다”고 말했다. 

17년째 시장에서 과일 등 포장 선물을 배달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안모(57)씨는 “옛날에 비해 사람이 많이 줄었다”며 “올해는 선물도 줄어들었다. 예전에 3분의 1 정도밖에 안 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물건 값도 많이 오른 상황이라 다들 힘들어서 그런 것 같다”며 “정부가 재래시장을 살린다고 이야기해도 크게 체감되진 않고 오히려 어려워졌다”고 덧붙였다. 

이날 자녀들과 함께 재래시장을 방문한 서모씨는 “재래시장을 자주 이용하진 않는데 가격이 저렴해서 명절 때만 가끔 온다”며 “이번 명절 때는 가까운 친정집에만 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평소에도 이곳 시장을 자주 이용한다는 주부 박모씨는 “야채나 과일 등의 가격이 저렴해 자주 찾는다”며 “올해 명절을 준비하는 장도 여기서 봤는데 요즘은 시장도 물가가 올라서 막상 산 건 적은데 비용은 작년이랑 비슷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번 설 명절은 어떻게 보낼 계획이냐는 질문에 “맏며느리라 우리 집에서 다 모이는데 이번 ‘5인 이상 집합 금지’ 때문에 식구끼리만 있으려 한다. 그래서 물건도 적게 사게 됐다”고 설명했다. 

35년째 떡집을 운영하고 있는 최모씨는 “설 명절에는 떡국 때문에 떡이 많이 나갔는데 작년에 비해 많이 안 나가고 있어 매출이 많이 줄었다”며 “사람들이 시장에 오더라도 물건을 안 산다. 손에 비닐봉지를 들고 다니지도 않는다. 사람은 많은데 물건을 적게 사거나 안 사니까 장사가 안 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남대문시장 [사진=김혜진 기자]
남대문시장 [사진=김혜진 기자]

남대문시장도 도깨비시장처럼 한산하긴 마찬가지였다. 대목 시장과는 거리가 멀게 아주 조용했다. 옷 가게가 밀집한 곳은 작은 말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상인들이 나와 이웃 상인과 한가롭게 이야기 나누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신발 가게를 운영하는 최모씨는 “설을 앞두고는 걸어다니다 부딪힐 정도로 사람이 많았는데 손님이 줄면서 매출이 반에 반도 안 되게 확 떨어져서 너무 힘들다”며 “예전에는 하루에 50만 원을 팔았다면 지금은 10만 원만 팔아도 많이 파는 거다. 종업원 4, 5명을 두고 일했는데 지금은 나 혼자 일해도 4시간에 하나 팔고 물건을 하나도 못 파는 날도 많다”고 했다. 

20년간 한복 가게를 운영해온 박모씨는 “명동, 남대문은 외국인 손님이 없으면 아예 장사를 할 수가 없다”며 “한복은 외국인들이 선물로도 많이 사가고 우리나라 사람들은 행사가 있을 때 주로 많이 사는데 코로나19 때문에 행사도 없고 이번처럼 명절에 어디 가기도 어려운 상황에서는 한복을 살 일이 없다. 오늘도 매출은 ‘0’이다”라고 토로했다. 

남대문시장에는 곳곳에 ‘임대’라고 붙은 점포들이 눈에 띄게 많이 보였다. 이곳에서 액세서리를 판매하는 김모씨는 “옆집과 앞집 가게들이 전부 (가게를) 뺐다. 권리금을 몇 억씩 주고 왔을 텐데 그것도 포기하면서 뺀 것”이라며 “매출이 90% 이상 줄어 전기세를 낼 돈도 없다. 세를 낼 돈만 나와도 견딜 텐데 그것조차 어려워 자릿세를 내지 못한 사람들은 계약 기간이 끝나면서 빼고 있다. 며칠에 한 번씩 문을 여는 점포도 늘었다. 주변 상인들은 다 비슷한 심정”이라고 설명했다. 

남대문시장에는 임대 점포가 곳곳에 보였다. [사진=김혜진 기자]
남대문시장에는 임대 점포가 곳곳에 보였다. [사진=김혜진 기자]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