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지원펀드, 10조 원 조성했으나 투자율 35%에 그쳐

전국 사모펀드 사기피해 공동대책위원회를 비롯한 시민사회 단체 회원들이 지난달 21일 오전 서울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사모펀드 판매사 강력 제재 및 피해구제 촉구 청와대 진정서 제출' 기자회견을 열고 사모펀드 계약 취소 결정을 촉구하고 있다.  [뉴시스]
전국 사모펀드 사기피해 공동대책위원회를 비롯한 시민사회 단체 회원들이 지난달 21일 오전 서울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사모펀드 판매사 강력 제재 및 피해구제 촉구 청와대 진정서 제출' 기자회견을 열고 사모펀드 계약 취소 결정을 촉구하고 있다. [뉴시스]

[일요서울 ㅣ이범희 기자] 현 정부 출범 이후 금융이 관치(官治)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여론이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사모 대체투자 펀드의 무더기 부실은 현실적인 상황과 부작용은 감안하지 않고 사모펀드 활성화 정책을 급하게 밀어붙인 금융위원회의 정책 실패라는 지적이다.

대표적인 예로 6조원대 상환 중단이 빚어진 사모펀드 사태의 빌미는 금융위원회가 투자자 자격 조건 등 문턱을 낮춘 것이 발단이라는 주장이다.

- 2018년 이후 사모펀드사태 정부가 손을 대면서 시작 지적
- 10조 원 규모 증권시장안정펀드 조성...주가 올라 유명무실

금융위원회는 2015년 ‘사모펀드 활성화 대책’을 발표하면서 각종 규제를 완화했다. 그 결과 2014년 10곳에 불과했던 사모펀드 운용사가 2019년엔 217곳으로 20배 이상 늘었다. 사모펀드에 투자된 자금 역시 2014년 173조원에서 2019년 412조원으로 급증했다.

눈덩이 처럼 거품이 커지고 있었지만 금융위는 2018년 2차 사모펀드 규제 완화 방안을 내놓았다.
이 시기 은행과 증권사 등 판매사들은 헤지펀드의 잠재력에 눈을 돌렸다. 펀드 판매 수수료를 벌면서 비이자이익을 올릴 기회라고 판단했다.

사모펀드가 너무 커져서 공모펀드가 오히려 고사 위기에 처했다는 지적이 나왔지만 금융당국은 사모펀드 투자자 수를 100명까지 확대하고 전문투자자 요건을 낮추는 등 추가 완화책을 계속 내놨다. 이례적으로 세제 혜택을 주는 코스닥 벤처펀드를 허용하면서 판을 키워주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거품이 터졌다. 2011년부터 2017년 한 건도 없었던 사모펀드 환매 연기 건수는 2018년 10건, 2019년엔 187건, 지난해에도 164건(8월 말 기준)으로 급증했다. 규모는 라임펀드(1조4651억원)를 포함해 6조원이 넘었다.

10조원 규모 조성 증안펀드…대형 헛발질

지난해 3월 코로나 사태로 증시가 휘청일 때 “증시를 안정시키겠다”며 정부가 10조원 규모로 조성하려던 증권시장안정펀드도 증시가 살아나면서 헛발질이 됐다.

문 정부의 첫 관제 펀드였던 성장지원펀드 역시 3년간 9조8173억원을 조성했지만 실제 투자는 작년 4분기까지 3조3922억원(35%)에 그쳤다. 정부가 손을 댄 것마다 시장 상황을 제대로 읽지 못하거나, 탁상공론에 불과해 시장의 외면을 받는 모습이 꼬리를 물고 있다.

지난해 7월 정부가 ‘K뉴딜’ 경기 부양책을 발표하면서 출시된 뉴딜펀드들도 성적이 저조함. 펀드평가사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뉴딜펀드 9개의 최근 한 달 평균 수익률은 13%로 코스피(15%)를 밑돌음 했다.
이 뿐만이 아니다. 정부의 금융 관치는 곳곳에서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해 5월 국가 기간산업을 지원하겠다며 40조원 규모로 조성된 기간산업안정기금은 단 2차례, 총 2700억원(0.7%)만 집행됐다. 1호는 산업은행 관리하에 있었던 아시아나항공. 산은이 기금의 조달·관리를 맡고 있어서 셀프 지원인 셈이다. 두 번째 사례도 국책은행인 수출입은행 관리하에 있던 제주항공이다.

자금난이 심각한 기업이 많았지만, 실제로 돈을 받아간 곳이 드물었던 이유는 까다로운 지원 조건을 달아놨기 때문. 실제로 해운업의 경우 150여 해운사 중 ‘총차입금 5000억원과 근로자 수 300명 이상’ 지원 조건을 동시에 만족시킨 경우는 10여 곳에 불과. 그마저도 코로나로 실적이 악화됐다는 점을 입증하지 못해 헛물만 들이킨 셈이 됐다.

주름 깊어지는 금융권

피해 규모가 확산되자 결국 정부는 지난해 11월부터 은행에서 파생상품 등 고난도 사모펀드 판매를 금지했다. 올 들어선 사모펀드에 공모 수준의 강화된 규제를 적용하는 사후약방문 대책을 잇달아 내놨다.

금융권의 주름이 깊어지고 있다. 금융권에선 정책의 명분엔 일정부분 공감하지만, 지나친 경영간섭의 측면이 있어 부담이 점점 커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관치 등으로 여겨지는 각종 정부, 여당 정책들에 매번 '동원'되면서 금융권에 적지 않은 리스크가 전가되는 것도 사실"이라며 "그렇다고 정책을 거부할 수도 없고. 금융권 입장에선 진퇴양난의 상황이라 상당히 곤혹스럽다"고 말했다.

직격탄을 맞은 사모운용업계는 순식간에 생존을 걱정해야 할 처지에 내몰렸다
금융 전문가들은 “부실 사모펀드가 도미노처럼 터지고 있는 건 ‘모험자본 육성’을 기치로 내건 당국이 섣부른 규제 완화로 판을 깔아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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