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살다 보면 가끔 ‘선의의 거짓말’을 할 수 있다. 그러나 뻔히 드러날 만큼 터무니없는 거짓말을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국어사전은 정의한다. 미국 리처드 닉슨 대통령도, 빌 클린턴 대통령도 ‘새빨간 거짓말’ 때문에 탄핵소추가 이뤄졌다. 왜냐하면 그들이 장삼이사(張三李四)가 아니라 국가지도자였기 때문이다.

판사의 책무는 진실과 거짓을 가려내어 법치를 실현하는 것인데, 판사의 우두머리이자 사법부 독립의 최후 보루인 대법원장이 시정잡배처럼 새빨간 거짓말을 했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탄핵감이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임성근 부장판사에게 탄핵 문제로 사표를 수리할 수 없다는 취지로 말한 사실이 없다”고 전면 부인한 바 있다. 그러나 김 대법원장은 “사표 수리, 제출 그런 법률적인 것은 차치하고 나로서는 여러 영향, 정치적인 상황도 살펴야 한다” “(여당에서) 탄핵하자고 하는데 내가 사표를 수리하면 국회에서 무슨 얘기를 듣겠느냐 말이야”라며 임 부장판사의 사표를 반려한 것이 녹취록을 통해 사실임이 확인됐다.

대한민국은 대통령을 탄핵한 나라다. 법관도 탄핵할 수 있지만, 헌법과 법률을 위반한 사실이 명확한 것으로 밝혀진 경우 극히 제한적으로 해야 삼권분립 원칙에 부합한다. 인민재판이나 다름없는 ‘정치 탄핵’은 안 된다.

2021년 2월 4일은 ‘사법부 치욕의 날’로 기록될 것이다. 범여권은 임 부장판사가 1심에서 무죄를 받았고, 2심과 3심이 남았는데도 유죄로 단정해 임 부장판사 탄핵 소추를 찬성 179표, 반대 102표로 가결했다.

헌정 사상 초유의 법관 탄핵소추 의결이다. 김 대법원장은 법관 탄핵의 길을 열어줬고, 입법부의 시녀를 자임해서 법치를 파괴했다. 차베스 독재정권에 아부한 베네수엘라 대법원과 다를 바 없다. 대법원장이 대법원을 죽인 것이다.

김 대법원장은 “탄핵 문제로 사표를 수리할 수 없다는 취지의 말을 한 사실은 없다”며 대법원 명의 답변서에 담아 야당 의원에게 보냈다. 국회에 사실상의 위증까지 한 것이다.

점입가경인 것은 지난 3일 단행된 법관 인사다. 서울중앙지법의 법원장과 수석부장판사 자리에는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등에 대한 진상조사에 참여하거나 검찰 수사를 주장한 법관을 배치했다. 두 사람 모두 김 대법원장이 회장을 지낸 국제인권법연구회 출신이다.

이는 과거 권위주의정권 시절 군부 내의 사조직이었던 ‘하나회’와 다를 바 없으며, 지난해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이 친 정권 검사들을 대거 검찰청 요직에 배치한 인사와 닮았다. ‘사법의 정치화’가 공공연히 자행되고 있다는 방증이다.

‘과하지욕(袴下之辱)’이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중국 한나라 개국공신인 한신이 젊은 시절 ‘건달의 가랑이 밑을 기어가며 치욕을 참고 훗날을 기약했다’는 이야기다. 이처럼 정치의 세계에서는 굴욕을 극복하고 성공한 역사의 주인공이 많다. 월왕 구천(勾踐)은 오왕 부차(夫差)의 대변을 먹으며 위장 충성으로 살아남아 마침내 춘추패자가 되었고, 흥선군은 상갓집 개 노릇을 하며 은인자중(隱忍自重)하여 자신의 둘째 아들을 왕위(고종)에 올려 대원군이 되었다.

그러나 사법부의 수장이 정의의 여신 ‘디케’의 정신을 짓밟고 스스로 ‘권력의 시녀’가 되기 위해 입법부의 가랑이 밑을 긴 사건은 우리나라 사법부 역사에 치욕으로 남을 일이다. 판사 탄핵을 거들고 거짓말까지 자행하는 무자격 대법원장이 6년 임기를 다 채운다면 대한민국의 국격(國格)은 나락에 떨어지고 사법부 신뢰는 파괴되고 말 것이다.

사법부가 바로 서지 못하면 자유민주주의가 무너진다. 김 대법원장이 사법부 수장으로 있는 한 법원의 정치적 중립과 재판의 공정성은 유지될 수 없다. 사법연수원 17기 140여 명이 “대법원장 탄핵이 먼저”라며 서명했으며, “무너진 신뢰와 양심을 복구하려면 100년은 걸릴 것 같다”는 등 판사 전용 인터넷 게시판에는 김 대법원장을 겨냥한 날선 비판의 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미 시민단체에서 김 대법원장을 직무유기 등 혐의로 검찰에 고발한 바 있다. 이제 ‘법의 정신’을 제대로 실현할 수 없는 김 대법원장은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나야 한다.

이제 임 부장판사의 탄핵 여부는 헌법재판소에서 가려지게 됐다. 세상에는 졌지만 이기고, 이겼지만 지는 그런 승부도 있다. 임 부장판사는 국회의 탄핵소추를 당했지만 이겼고, 김명수 대법원장은 임 판사가 탄핵소추를 당하도록 멍석을 깔아줬지만 진 승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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