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추천한 금융 상품”… 믿고 투자했다 ‘낭패’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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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서울 | 신유진 기자] 정부가 추천한 금융 상품과 정책으로 인한 피해 사례가 속출하면서 정부 책임론이 불거지고 있다. 특히 P2P(금융기관을 거치지 않고 투자자를 직접 연결해주는 온라인 대출 중개업) 상품에 투자했다 돈을 잃은 사람들과 우후죽순 폐업하는 P2P 업체들이 늘어나면서 피해 규모 확대 우려는 더욱 커지고 있다.

P2P 업체 줄줄이 폐업… 부작용 속출에 금융위, 부랴부랴 규제 강화

“정부에서 방관, 안전장치 마련하지 않아”… P2P 업체 사기에 피해자 눈물

경기도에 거주하는 A씨는 부산의 아파트를 전세 놓고 받은 보증금 3억 원을 2019년 1월 P2P 금융업체인 ‘팝펀딩’이라는 업체 상품에 투자했다가 돈을 날렸다. 해당 상품은 동산(動産) 담보대출 상품으로 A씨는 “금융위원장이 좋다고 칭찬한 금융 상품”이라는 증권사 직원의 말을 믿었다. 그러나 해당 업체는 담보 가치 부풀리기 등이 드러나 지난해 1월 투자금 1050억 원 상환이 중단됐다.

노령 가입자인 B씨 역시 팝펀딩에 투자했다 노후 자금을 날릴 처지에 놓이게 됐다. 그는 “정부도 못 믿으면 누굴 믿어야 하느냐”고 하소연했다.

동산담보대출은 부동산을 제외한 기계설비, 농·수축산물 등 형체가 있는 ‘유체동산’과 매출채권·지식재산권 등 형체가 없는 ‘무체동산’을 등을 담보로 대출하는 제도다. 동산담보대출은 2018년 3월 문재인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비(非)부동산 담보 활성화 방안도 속도감 있게 추진하라”고 지시했고 2개월 뒤 최종구 당시 금융위원장이 “2022년까지 6조 원 규모로 키우겠다”고 추진 의사를 밝혔다.

P2P 금융업체들은 온라인을 통해 개인 간 금융거래를 연결해 이익을 얻는 구조다. 온라인을 통한 모든 대출 과정은 자동화하기 때문에 인건비 등 불필요한 경비 지출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또 P2P 금융은 투자자들에게 새로운 재테크 수단으로도 각광 받았다. 현재 제1금융권 예금 금리가 1~2%대에 불과한 것에 비해 P2P 금융은 통상 6~8% 이상의 수익률을 제시한다.

그러나 정부가 혁신금융이라 칭찬을 아끼지 않았던 P2P 업체들은 줄줄이 폐업하게 됐다. 게다가 최근 3년동안 사기 대출 등 각종 혐의로 적발된 업체가 총 18곳에 달하면서 P2P 금융에 대한 인식은 점차 나빠졌다.

은성수 “동산금융의 혁신”
팝펀딩 대표, 돌려막기 혐의

특히 P2P 업체 중 ‘팝펀딩’은 유망 있는 중소기업과 투자자들을 연결해주고 특색 있는 영업을 하는 등 업계에서 호평과 주목을 받으며 성장했다. 팝펀딩은 의류나 가방 등 업체의 동산을 담보로 투자자들을 대출로 끌어 모았고, 차입자가 이를 상환하면 투자금에 수익금을 얹어 투자자에게 돌려주는 방식으로 수익을 얻었다. 또한 ‘깨끗한 후원금’ ‘투명한 선거자금’을 조달한다는 이유를 들며 문재인 대통령과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 등 유명 정치인들의 이름을 딴 펀드도 만들어 유명세를 얻었다.

2019년 말에는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팝펀딩의 물류 창고를 방문해 ‘동산금융의 혁신 사례’라고 언급하며 추켜세우기도 했다. 당시 은 위원장은 “동산금융이 ‘혁신’을 만나 새로운 형태의 동산금융상품이 출시되고 있다”며 “팝펀딩을 시작으로 또 다른 동산금융 혁신사례가 은행권에서 탄생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정부가 추천한 금융 상품’이라는 인식이 더해지면서 여기저기서 투자가 시작됐지만, 이내 팝펀딩 대표가 돌연 자금 돌려막기 사기 혐의로 검찰에 구속기소되면서 투자자들은 혼란에 빠졌다. 팝펀딩 대표는 투자 수익이 나지 않음에도 계속해서 투자금을 끌어모았고, 이렇게 모은 투자금 원금으로 돌려막기를 하다 해결할 수 없는 실정까지 다다른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 수사로 확인된 피해자는 150명이 넘고 피해액은 약 550억 원에 달했다.

피해자들
“정부가 방관했다” 비판

피해자들은 P2P 업체도 문제지만 정부와 금융당국을 향해서도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한 피해자는 “정부에게 서운하다. 이런 업체가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고 있는데 정부에서 방관했다”며 “정부에서 안전장치도 마련하지 않아 소비자가 피해를 입었다”고 말했다.

P2P 업체들의 폐업과 대표의 구속까지 이어지면서 정부는 P2P 금융 부작용 속출을 막기 위해 부랴부랴 규제 강화에 나섰다. 지난해 12월 은 위원장은 “자금세탁 수법이 갈수록 지능화·고도화되고, 특히 디지털 혁신에 따라 자금세탁 위험 역시 크게 증가하고 있다”며 “자금세탁방지 제도와 관행을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내년에는 가상자산사업자, 온라인투자연계금융(P2P) 업자가 대상으로 편입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소영 예금보험공사 리스크총괄부 조사역은 “경영진의 사기와 횡령, 부실대출 심사로 영업을 중단하는 P2P 업체가 발생하고 있다”며 “당국이 부적격업체의 경우 대부업 전환이나 폐업을 유도할 예정이어서 퇴출되는 P2P 업체는 더욱 증가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영업 중인 P2P 업체가 폐업하면 대출 회수 절차가 중단될 가능성이 있고 투자자에게 그에 따른 피해가 전가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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