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촌오거리’ ‘이춘재 8차’ ‘낙동강변’ 사건의 공통점···‘고문으로 허위 자백’

김창룡 경찰청장. [뉴시스]
김창룡 경찰청장. [뉴시스]

[일요서울 | 조택영 기자] 화제의 사건으로 거론되는 ‘약촌오거리 살인’, ‘이춘재 연쇄살인 8차’, ‘낙동강변 살인’ 사건. 이 사건들은 공통점이 있다. 바로 ‘억울한 옥살이’의 진실이 밝혀지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수사기관의 주먹구구식 강압 수사(고문 등)에 못 이겨 범인으로 몰린 이들이 허위로 자백한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경찰 등의 뒤늦은 사과가 이어지고 있지만 이들의 ‘잃어버린 인생’은 어떻게 보상할 것이냐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고개 숙인 경찰···진정성 있나” “잃어버린 인생 어떻게 책임지나비난 속출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은 1986~1991년 경기 화성에서 발생한 사건이다. 영구미제 사건으로 분류됐지만 진범으로 이춘재가 특정되면서 조사가 이뤄졌고 다수의 살인, 강간 범행 등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

이 과정에서 억울한 옥살이를 한 인물도 특정됐다. 바로 8차 사건 범인으로 몰려 약 20년 동안 억울하게 옥살이를 한 윤성여 씨다.

지난해 윤 씨는 32년 만에 ‘이춘재 연쇄살인 8차 사건’ 진범이라는 낙인을 뗐다. 윤 씨는 1988년 9월16일 당시 경기 화성군 태안읍 진안리 자택에서 박모(당시 13세)양이 잠을 자다가 성폭행당한 후 숨진 이춘재 8차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됐다.

사건 발생 이듬해 범인으로 검거됐던 윤 씨는 1심 재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다. 그는 사건 당시 1심까지 범행을 인정했다. 윤 씨는 2‧3심에서 고문을 당해 허위 자백했다고 밝혔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최초 목격자’에서

‘살인범’으로

수사기관의 거짓 자백강요가 있었던 사건들의 실체가 점점 드러나는 모양새다. 살인범으로 몰려 10년 동안 억울한 옥살이를 한 인물이 또 있다. 바로 ‘약촌오거리 살인 사건’의 범인으로 수감됐던 최모씨다.

최 씨는 사실 평범한 10대였다. 갑작스럽게 살인 사건에 휘말려 옥살이를 한 사연은 2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2000년 8월10일 전북 익산시 약촌오거리 인근을 지나가다 택시 운전사가 흉기에 찔려 피를 흘린 채 쓰러져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최 씨는 사건의 최초 목격자였던 셈. 범인의 도주 모습을 봤던 그는 경찰 조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했으나, 경찰은 오히려 폭행과 고문을 이어갔고 최 씨를 범인으로 몰았다.

그는 견디다 못해 ‘시비 끝에 택시기사를 살해했다’는 식의 거짓 자백을 해버렸다. 이후 재판은 정황증거와 진술만으로 일사천리 진행됐다. 최 씨는 결국 법원에서 징역 10년을 선고 받고 2010년 만기 출소할 때까지 교도소에서 청춘을 보냈다. 사실 진범은 따로 있었다.

최 씨는 2013년에 재심을 청구, 대법원에서 최종 인용됐다. 재심을 심리한 광주고법은 지난 2016년 11월 최 씨의 살인 혐의를 무죄로 판단했다. 다만 도로교통법 위반 무면허 협의에 벌금 50만 원을 선고했다.

검찰이 상고하지 않으면서 최 씨의 재심 무죄 판결을 확정, 최 씨는 총 8억6000여만 원의 형사 보상급을 지급받았다. 이와 별개로 그는 이 사건의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정부는 최근 약촌오거리 살인 사건으로 지목됐던 최 씨와 가족에 관해 국가의 배상 책임을 인정한 법원 판결에 불복하지 않기로 했다. 법무부는 지난 5일 약촌오거리 살인 사건 관련 피해자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사건의 항소를 포기한다고 밝혔다.

법무부는 “국가는 피해자의 약 10년간의 억울한 옥고 생활과 가족들의 피해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통감하고 피해자 및 가족들의 신속한 피해 회복을 위해 항소 포기를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고문과 협박 이어졌다”

최근 또 21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한 인물들이 약 31년 만에 무죄를 선고받아 수사기관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가 거세다. 경찰의 고문 등 강압 수사 때문에 ‘낙동강변 살인 사건’의 범인으로 몰렸다가 무죄를 선고받은 최인철, 장동익 씨다.

낙동강변 살인 사건은 1990년 1월4일 부산 사상구 엄궁동 낙동강변에서 데이트 중이던 커플이 괴한에 납치, 여성은 성폭행 당한 뒤 잔혹하게 살해되고, 남성은 다친 사건이다.

경찰은 사건 발생 1년10개월만에 최 씨와 장 씨를 용의자로 붙잡았다. 결백을 호소했으나, 경찰은 이들의 목소리를 듣지 않았다. 이후 법원에서 무기징역이 선고됐다. 최 씨와 장 씨는 모범수로 21년 만에 석방되면서 ‘고문과 협박으로 가해자로 몰렸다’는 취지로 재심을 청구했다.

지난 4일 부산고법 형사1부(부장판사 곽병수)는 최 씨와 장 씨의 강도살인 등 혐의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다만 최 씨의 공무원 사칭 혐의에 대해서는 일부 유죄 취지로 6개월 선고유예를 판결했다.

재판부는 “경찰의 체포과정이 영장 없이 불법으로 이뤄졌고, 수사 과정에서 고문 행위도 피해자들의 일관된 진술, 당시 수감된 주변 사람들의 진술 등을 종합해 보면 인정된다”고 밝혔다.

또 “고문과 가혹행위로 이뤄진 자백은 증거능력이 없어 강도 혐의 등에 대해서는 무죄 선고 판결을 내린다”고 설명했다.

고문에 의한 조작 수사 실체가 드러나면서 경찰은 고개를 숙였다. 경찰청은 “낙동강변 살인 사건 재심 무죄 선고와 관련해 재심 청구인을 비롯한 피해자, 가족 등 모든 분들에게 깊은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공식 입장을 전했다.

재판을 맡은 곽병수 부장판사도 선고를 마치며 “법원이 인권의 마지막 보루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점에 사법부 구성원의 일원으로 피고인과 가족들에게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재심 청구인들은 마침내 환한 미소를 찾았으나, 가해 경찰에 대해서는 분노를 식히지 못하고 있다. 장 씨는 “사과하면 용서하겠다고 말했지만, 어느 경찰관 하나 손 내미는 사람이 없었다”고 밝혔다.

경찰은 윤 씨가 무죄 판결을 받을 때에도 공식 사과한 바 있다. 사건 발생 32년 만이다. 당시 경찰청은 “뒤늦게나마 재수사로 연쇄 살인 사건의 진범을 검거하고 청구인의 결백을 입증했으나, 무고한 청년에게 살인범이라는 낙인을 찍어 20년간의 옥살이를 겪게 해 큰 상처를 드린 점을 깊이 반성한다”고 밝혔다.

경찰 조직의 공식 사과가 이어졌지만 “과연 진정성이 있는가”, “잃어버린 인생은 어떻게 책임지는가” 등의 비판은 끊이지 않고 있다.

한편 경찰은 이번 사례를 반면교사 삼아 수사 단계별 인권보호 장치를 강화하겠다고 강조했다. 윤 씨에 대한 재심 무죄 선고 이후 밝힌 내용과 대동소이한 내용이다.

경찰청은 “이 사건을 인권보호 가치를 재인식하는 반면교사로 삼아 억울한 피해자가 다시는 없도록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겠다”면서 “수사 단계별 인권보호 장치를 더욱 촘촘히 마련해 수사 완결성을 높이고 공정한 책임수사가 이뤄질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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