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손길 기다리는 犬…작은 철창 집에 옹기종기 모여

[일요서울ㅣ김혜진 기자] 반려동물 인구 1500만 시대다. 네 집 중 한 집꼴로 반려동물을 키우고 있는 셈이다. 그만큼 버려지는 반려견도 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최근 경기도 김포의 한 민간 유기견 보호소가 인근 주민들의 민원 때문에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자원봉사자들과 동물보호단체가 애태우고 있다는 소식이 들렸다. 대부분의 민간 유기 동물 보호소들이 비슷한 처지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일요서울은 지난 9일 경기도 파주에 위치한 한 유기 동물 보호소를 방문해 일일자원봉사 활동을 하며 운영 상황을 살펴봤다.

경기도 파주에 위치한 유기 동물 보호소 [사진=신수정 기자]
경기도 파주에 위치한 유기 동물 보호소 [사진=신수정 기자]

- 경제적 어려움, 인근 주민 민원 등 ‘큰 고충’

이곳 유기 동물 보호소는 찾아가는 길부터 험난했다. 내비게이션은 민가라곤 찾아볼 수 없는 산 속 깊숙한 곳을 가리키고 있었다. 비닐로 둘러싸인 보호소 문 앞에 들어서자마자 개들은 ‘컹컹’ 짖기 시작했다. 20여 년째 보호소를 운영하고 있는 김모 소장은 “이곳은 주택가가 아니라 그나마 민원이 적은 편”이라며 “도심이나 주택가에서는 땅값이 떨어진다는 아우성 때문에 보호소를 운영할 수 없다. 전에도 두 번이나 쫓겨난 적이 있다”고 했다. 

김 소장이 보호소를 운영하게 된 건 우연히 길에 있던 강아지 한 마리 때문이었다. 그는 “처음 한두 마리를 구조하다 보니 점점 늘어났다. 특히 IMF 때 경기가 안 좋아 유기견이 늘었는데, 이때 인터넷 카페를 만들고 회원들이 생기면서 계속 구조되다 보니 유기견이 더 많아졌다. 7년 전까지만 해도 280여 마리가 함께 지냈었다. 현재 이곳에는 120마리 정도가 있다”고 말했다. 

보호소의 하루는 새벽 6시부터 시작된다. 김 소장은 “많이 아픈 아이들은 나와 함께 자는데 새벽에 ‘낑낑’ 소리를 내면 일찍 일어나게 된다”며 “아픈 아이들을 돌봐주고 오전 10시쯤 밖으로 나와 A, B구간의 철창 집과 아픈 아이들이 있는 또 다른 공간, 고양이들이 모여 지내는 곳의 변을 치우고 밥그릇을 전부 꺼내 씻는 것부터 시작한다”고 설명했다. 점심을 먹으며 20분 정도 숨을 돌린 후에는 개와 고양이들의 끼니를 챙겨준다는 그는 “이것만 다 해도 금세 어두워진다”고 부연했다. 

경기도 파주에 위치한 유기 동물 보호소 [사진=신수정 기자]
개가 철창 밖으로 손을 내밀고 있다. [사진=신수정 기자]

이날 기자는 오전 10시부터 A구간을 맡아 일을 도왔다. 회색 작업복을 입고 신발 덮개를 끼운 후 변을 쓸어 담을 쓰레받기를 챙겨들었다. 커다란 비닐 문이 열리자 37개의 철창 집에 옹기종기 모여 있던 개들이 또 다시 우렁차게 짖기 시작했다. ‘아롱이’ ‘장군이’ ‘겨울이’ 등은 철창 밖으로 손을 내밀며 반가운 듯 손짓하기도 했다. 하룻밤 새 얼음이 끼어 있던 밥그릇을 꺼내고 변을 치워주기 위해 수레를 끌고 맨 안쪽부터 들어갔다. 

김 소장은 개들이 철창 밖으로 나오지 못하도록 문을 열고 잽싸게 들어가라고 조언했다. 문을 열기 전까지는 일어서서 꺼내달라는 듯 손짓을 하던 개들이 기자가 얼른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갑자기 얌전해지면서 요리조리 피하기 바빴다. 먼저 다가가서 손을 내밀어도 멀리서 쳐다만 볼 뿐 근처에도 잘 오지 않는 개들이 유독 많았다. 사람의 손길을 기다리면서도 동시에 두려워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그런가하면 변을 쓸어 담고 있는 기자의 등 뒤로 다가와 발자국을 ‘콕’ 하고 찍는 개들도 있었다. 마치 반가움의 표시인 듯 느껴지기도 했다. 

A구간 철창 집에는 진돗개끼리 2~3마리가 함께 있는 경우도 있었고 소형견 3~4마리가 함께 모여 있기도 했다. 또 혼자서만 지내는 개들도 있었다. 이 구간에 있는 대부분의 개들은 털에 윤기가 나 건강상태가 좋아 보였지만 이 중 일부는 눈이 빨갛거나 피부병이 있는 듯 털이 엉켜있기도 했다. 

김 소장은 “이곳에 있는 아이들은 평균 14, 15년 된 노령견들이라 아픈 아이들도 꽤 있다. 그래도 대부분이 건강한 편”이라며 “예방 접종도 철저하게 하고 있고 병원도 자주 데려간다. 시기가 되면 심장 사상충 약을 챙겨 먹이니 19, 20년까지도 산다. 이 때문에 병원비와 약값이 많이 드는데 감당해 내기 힘들다”고 토로했다. 이어 그는 “노령견이지만 아이들이 건강하니 입양을 하는 분들도 있다. 몇 달이든 몇 년이든 아프지 않고 행복하게 보낼 수 있도록 해줘서 고마움을 느낀다”고 했다. 

반면 책임을 지지 않는 사람들도 많다고 했다. 김 소장은 “길에서 유기견을 발견하고 보호소에 보내놓고 나서 처음에는 후원하고 봉사를 오기도 하지만 한두 번 하고는 발걸음 하지 않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라며 “나이가 많은 노인이 주인인 경우에도 아프다는 이유로 못 키운다는 연락이 많이 오는데 입양가기 전까지 사료 값을 보내달라고 하면 싫다고 잘라 거절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경기도 파주에 위치한 유기 동물 보호소 [사진=신수정 기자]
대부분 건강상태가 좋아 보였지만 일부는 눈이 빨갛거나 피부병이 있는 듯 털이 엉켜있기도 했다.  [사진=신수정 기자]

대부분의 민간 보호소 운영은 100% 후원과 기부 등으로 이뤄지고 있다. 이 때문에 경제적인 부분을 감당하는 게 가장 힘들다고 했다. 김 소장은 “사료는 동물자유연대나 동물보호단체 등에서 기부를 받기도 하고, 외상으로 산 다음 후원금으로 조금씩 갚고 있다. 몇 년 전부터는 경기가 안 좋아지면서 후원금도 많이 줄었다. 작년에는 코로나19 때문에 후원금이 더 줄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줄진 않아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라며 “가끔씩 기업에서 병원비나 약값으로 쓰라고 후원을 해주기도 하는데 고양이는 개보다 훨씬 치료비가 비싸서 비용을 충당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또 인근 마을 주민들이 제기하는 크고 작은 민원도 고충을 더한다고 했다. 김 소장은 “민간 유기 동물 보호소는 대부분 경제적으로 어렵기 때문에 1년마다 임대료를 내고 어쩔 수 없이 불법으로 운영할 수밖에 없다. 후원금을 모아도 부지를 살 수 있는 돈을 마련하긴 쉽지 않다”며 “또 마을에서도 보호소가 들어오는 걸 반대하는 주민들이 많아 부지를 찾는 일도 힘든데 이런 상황에서 주민들을 설득하기 위해 마을 경조사에도 참여해 어렵사리 허락을 받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김 소장은 “작년에 파주시청에서 민원이 들어와 공무원들이 찾아 왔는데 당시에 아이들을 시에서 위탁으로 운영하는 보호소(시가 운영하는 곳은 일정 기간이 지나면 안락사를 시킨다)로 데려가라고 화를 냈더니 자리가 없다고 말했다”며 “우리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민간 보호소가 이런 환경에 처해있다. 선진국에서는 유기 동물 보호를 위한 제도가 잘 마련돼 있는데 우리도 제도의 개선이 많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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