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봤어.아무래도 그들 사이에 뭔가가 있어. ㅎㅎㅎ”
“얌전한 뭐가 뭐한다더니... 정말 그럴 수가 있을 까?”
관리팀의 두 여사원이 커피 자판기 앞에서 아까부터 남의 험담을 늘어놓고 있는 모습을 못 본 척하고 있던 팀장은 그들의 이야기가 점점 인신 공격적으로 나가자 한마디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너희들 확실하지도 않은 일을 가지고 남을 그렇게 뒷담화의 부뚜막에 올려놓을 수 있어?”
그러자 그들은 오히려 팀장의 말을 반박하고 나섰다.
“아니예요. 그건 팀장님이 잘 모르시고 하시는 말씀이세요.”

팀장은 그들의 반박이 내심 괘씸했다.
-라떼는...
입속에 맴돌았으나 참았다. 자신이 평사원 일 때는 감히 상사의 말을 그렇게 반박을 하고 나선다는 것은 생각도 못했던 것이 생각났다.

“팀장님 우리 과의 임채연 씨와 조춘 대리가 요즘 들어 수상한 관계라는 것은 벌써 소문이 쫙 퍼져있어요. 회사 뒤의 호텔에서 두 사람이 담뿍 웃음을 담고 즐겁게 함께 걸어 나오는 것을 본 사람도 있어요. 나도 아침 일찍 출근하다가 본 일이 있거든요.”

“꼭두새벽에? 미쳤다 미쳤어.”
다른 여사원이 거들었다.
“그뿐 아니예요. 요즘은 퇴근 할 때도 서로 시간을 맞춰서 나란히 나가는 걸요. 우리는 모두 회사에서 권장하는 무역영어 과외반에 함께 가는데 임채연이는 꼭 빠져요.”

회사에서는 글로벌화 하는 세상에 뒤처지지 않게 모든 사원이 과외 공부에 참여하라고 권장하고 있었다.

임채숙과 조춘 대리는 입사동기이기는 하지만, 임채숙이 서너 살 아래다. 일류대학 영문학과 출신인 임채연은 마음씨가 착하고 인물이 뛰어나 사내 모든 남성들의 관심을 끌고 있는 여사원이다. 그런데 요즘 유부남인 조춘 대리와 은밀히 어울려 다닌다는 소문이 쫙 퍼져 사원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렸다.

“팀장님, 저거 봐요. 또 시작되었어요.”
자판기 앞에서 입방아를 찧던 여사원이 팀장 앞으로 와서 조춘 대리의 테이블을 눈으로 가리켰다.
“임채연씨하고 핸드폰 사랑이 시작되었어요.”

팀장이 못이긴 듯 조춘 대리와 임채연의 자리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정말 두 사람이 동시에 핸드폰을 귀에 대고 있었다. 한쪽의 말이 끝나자 다른 쪽에서 입술을 놀리는 모습이 대화를 하는 것이 틀림없어 보였다.
미소를 짓기도 하고 괴로운 표정을 짓기도 했다. 말은 들리지 않지만 그들의 얼굴 표정은 낱낱이 읽을 수 있었다.

두 사람은 30분 가까이 밀담을 나누다가 핸드폰을 내렸다. 그리고는 멀리서 서로 바라보며 애틋한 눈인사를 나누었다.
“음~”

팀장은 회사에 떠도는 소문이 전혀 근거 없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이회사의 회장님 방침은 어떤가? 사내 커플이라는 것은 한사코 말리는 사람 아닌가. 만약에 두 사람이 사내 연애라도 한다면 업무에 지장이 있다고 사표 받으라고 난리를 칠 것이다. 회장의 이 라떼 고집은 아무도 말리지 못한다.

팀장은 그들의 영어 과외 출석 율을 보았다. 회사에서 외부 강사를 초청해서 영어 과외를 시작한지 석 달이나 되었지만 두 사람은 처음 이틀만 출석하고 그 뒤에는 한 번도 나온 일이 없었다.

“유부남인 주제에 그럴 수는 없지. 이건 개인 사생활 문제가 아니야. 오너인 우리 회장님의 철학을 위반한 거야.”
팀장은 몇 번 망설이다가 마침내 두 사람을 불렀다.
“저어... 자네들 두 사람 말이야...”그러나 좀체 말이 나오지 않았다.팀장님 말씀 하세요.“

임채연이 거꾸로 재촉을 했다.
“조 대리는 아내가 있잖아. 아무리 사랑에는 국경도 조건도 없다고 하지만, 그리고 임채연씨는 아직 미혼인데...”두 사람은 눈이 둥그레져서 팀장을 쳐다보았다.
“팀장님, 무슨 오해를 하고 계신 모양인데요.”

“아니야. 그렇지 않아요. 호텔에서 새벽이 두 사람이 함께 나오는 것을 본 사원도 있어요. 근무 중에도 핸드폰 붙들고 30분씩 폰팅 하는 것을 여러 사람이 목격했어요. 이래도...”“하하하. 팀장님, 그게 아니에요. 우리는 영어 과외 수준이 다른 사원과 맞지 않아요. 그래서 더 고급 강의를 찾아 호텔 앞에 있는 학원에서 새벽 강의를 듣고 가끔 호텔 커피숍에서 출근 시간을 기다리기도 해요. 낮에 한가할 때는 핸드폰으로 무역 영어 실무 대화 연습도 하고요...”임채숙이 생글생글 웃으며 말했다.
“뭐야? 아이고 라떼 망신.”

팀장이 머리를 감싸 쥐었다.
         

<당신이 미리 결발을 알았다면 추리력 7단입니다>    

[작가소개]

이상우는 추리소설과 역사 소설을 40여 년간 써 온 작가다. 40여 년간 일간신문 기자, 편집국장, 회장 등 언론인 생활을 하면서 기자의 눈으로 본 세상사를 날카롭고 비판적인 필치로 묘사해 주목을 받았다. 역사와 추리를 접목한 그의 소설은 4백여 편에 이른다. 한국추리문학 대상, 한글발전 공로 문화 포장 등 수상.

주요 작품으로, <악녀 두 번 살다>, <여섯 번째 사고(史庫)> <역사에 없는 나라>, <세종대왕 이도 전3권> <정조대왕 이산>, <해동 육룡이 나르샤>, <지구 남쪽에서 시작된 호기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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