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의 ‘기본소득 반대’ 협공... ‘사면초가’ 이재명

김종인 이재명 [뉴시스]
김종인 이재명 [뉴시스]

 

[일요서울ㅣ정재호 기자]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차기 대권 지지율 선두를 달리는 것과 별개로 소속 정당인 더불어민주당 내에선 사면초가에 빠져있다. 그동안 이 지사가 주장해왔던 ‘기본소득’에 대해 여권의 잠룡들이 비판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반면 야권의 김종인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기본소득을 환영하는 입장이다. 김 위원장이 비대위 취임 이후부터 줄곧 주장해온 정책이기 때문이다. 아이러니 하게 김 위원장도 이 지사와 마찬가지로 보수야권 진영에서 기본소득 주장으로 비판받아왔다. 일요서울은 내년 대선을 앞두고 여야의 대척점에 있는 김 위원장과 이 지사가 기본소득이라는 주제로 손잡을 가능성에 대해 알아봤다. 

-“기본소득으로 金-李 접점 찾을 수도”

이재명 경기도 지사는 2016년 성남시장 재직시절부터 ‘청년배당’을 도입하며 ‘기본소득’을 시작했다. 당시 이 시장은 3년 이상 거주한 만 24세 청년들에게 연 50만원을 분기별로 나눠 지역화폐 형태로 지급했다. 지난해 코로나19가 대유행하며 기본소득 논의는 한층 뜨거워졌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도 지난해 6월3일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 초선 모임에 참석해 “말로만 하는 형식적인 자유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실질적인 자유가 무엇이냐를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배고픈 사람이 빵집을 지나다 김이 나는 빵을 먹고 싶은데 돈이 없으면 먹을 수가 없다면 그 사람에게 무슨 자유가 있겠느냐”며 “그런 가능성을 높여줘야 물질적 자유라는 게 늘어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본소득 논쟁에 불을 지핀 것이다. 

이 지사는 김 위원장 강연 다음날인 4일 자신의 SNS에 ‘기본소득은 복지 아닌 경제정책... K방역 이어 K경제 선도할 때’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이 지사는 이 글에서 “기본소득은 복지정책이 아닌 경제정책”이라며 “김종인 위원장이나 안철수 대표의 기본소득 도입논의를 환영한다”고 밝혔다. 이 지사는 “필요한 것들을 인간노동으로 생산하는 시대가 가고, 기술혁신과 디지털 경제로 기계와 인공지능이 인간노동을 대체하는 4차산업혁명 시대가 오고 있다”며 “코로나19 전과 후는 수렵 채집에서 농경사회로 전환만큼 큰 질적 변화”라고 말했다. 

이어 “코로나19 이후 시대는 한계생산비가 제로에 수렴하며 공급역량은 거의 무한대로 커지고 글로벌 초거대기업의 초과이윤이 급증하는 대신, 구조적 노동수요(일자리)축소와 이에 따른 소비절벽으로 수요 공급 균형이 무너져 경기침체가 일상이 될 것”이라며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시장영역인 공급과 수요, 정부 영역인 재정조정으로 구성된다. 기본소득은 정부의 재정기능을 통한 안정적 소비 수요 창출로 투자와 생산 공급을 늘려 경제 선순환을 유지한다”고 주장했다.

이 지사는 “국민에게 지급되므로 복지적이지만 수요공급 균형회복으로 경제 선순환을 유지하는데 더 큰 방점이 있는 경제정책”이라며 “노동이 주된 생산수단이고 원하면 일자리를 얻을 수 있을 때의 노동은 생계수단이지만, 인공지능 기계가 생산을 맡아 필요한 것을 얼마든지 생산하면서도 일자리가 없을 때의 노동은 삶의 수단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복지 아닌 경제정책이므로 재원부담자인 고액납세자 제외나 특정계층 선별로 일부에게만 지급하거나 차등을 두면 안된다”며 “소액이라도 모두 지급해야 재원부담자인 고액납세자의 조세저항과 정책저항을 최소화하며 기본소득을 확장해 갈 수 있다”고 말했다.

김 비대위원장과 이 지사는 경쟁적으로 기본소득을 주제로 이슈를 만들어 나갔다. 

- 임종석 “기본소득, 우리 현실에 공정하고 정의롭지 않아”

한편 이재명 지사의 ‘기본소득’ 주장은 여권의 잠룡들과 핵심인사로부터 많은 비판과 견제를 받기 시작했다. 이낙연 민주당 대표는 지난달 2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마치고 기자들과 만나 “알래스카 빼고는 (기본소득을) 하는 곳이 없다. 그것을 복지제도의 대체재로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또 지난 18일 수원을 찾은 이 대표는 “돈은 많이 들어가는데, 어려운 분들에게 부족하게 드릴 수밖에 없는 고민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라며 이 지사의 기본소득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내비쳤다. 정세균 국무총리 역시 지난 4일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지구상에서 기본소득제도를 성공리에 운영한 나라가 없고 한국의 규모를 감안할 때 적절치 않다”고 비판했다. 이 지사는 “다른 나라가 안 하는데 우리가 감히 할 수 있겠냐는 ‘사대적 열패의식’을 버려야 한다”며 반박했다. 

이에 대해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이 지사를 겨냥해 지난 8일 자신의 SNS에 “비판이 아닌 비난으로 들린다”며 “‘알래스카 외에는 하는 곳이 없고 기존 복지제도의 대체재가 될 수 없다’는 표현이 뭐 그렇게 틀린 말도 아니다. 지도자에게 철학과 비전만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때론 말과 태도가 훨씬 중요하다”고 이 지사를 비판했다. 이어 임 전 실장은 “나는 여전히 기본소득이라는 아이디어가 지금 우리 현실에서 공정하고 정의롭냐는 문제의식을 떨칠 수가 없다”면서 “한정된 재원을 어떻게 쓰는 것이 미래 세대에게 고통을 떠넘기지 않으면서 더 공정한 것일까”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지사님 표현 그대로 정치적 억지나 폄훼가 아닌 상식과 합리성에 기초한 건설적인 논쟁을 기대해본다”고 말했다. 이 지사는 여권에서 사면초가에 몰렸다.  

- “李, 민주당내 기반 약해 대선후보 어려울 것”

기본소득을 놓고 이재명 지사와 여권의 잠룡 및 핵심인사들 간에 설전이 이어지자 여건 최대 지지기반인 친문성향의 당원들을 중심으로 탈당설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이 지사가 당내 견제가 심해 여권의 대선후보로 선택받기 어려워지면 이 지사가 탈당 후 신당을 창당해 활로를 찾을 것이란 시나리오다. 하지만 이 지사는 “탈당은 없다”며 의혹 차단에 나섰다. 

일요서울과 지난 15일 여의도 모처에서 만난 정치권 관계자는 “이재명 지사는 민주당내 기반이 약하기 때문에 여론조사와는 별개로 여권의 대선 후보가 되긴 어려울 것”이라며 “이 지사가 지지율이 1위를 유지하는 가운데 더 이상 여권에서 대선 후보가 될 여지가 없다는 판단이서면 탈당해 독자노선을 걷거나, 기본소득으로 접점을 찾을 수 있는 야권의 김 위원장과 손잡는 것을 모색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반면 황태순 정치평론가는 지난 19일 일요서울과의 통화에서 “이 지사가 탈당해 야권으로 온다면 그의 지지율이 약화될 것”이라며 “이 지사는 굳이 내년 대선이 아니더라도 그 다음 대선을 노려도 되는 상황이기 때문에 급하게 움직이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 비대위원장은 최근 출간한 저서인 ‘김종인 대화’에서도 기본소득 도입 필요성을 역설했다. 저서의 소제목도 ‘노동: 미래를 향한 선제적 개혁, 기본소득’으로 지었다. 그는 저서에서 기본소득이 4차 산업혁명으로 일자리가 줄면서 발생하는 노동소득 감소와 소비 위축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경제정책이라고 주장했다. 김 비대위원장 취임이후 국민의힘은 지난해 9월 당명을 바꾸며 새 정강·정책에 ‘기본소득’을 당의 기본정책으로 내걸었다. 

김 위원장은 오는 4월 재보선의 승패에 따라 내년 대선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모양새다. 그러나 야권의 대선후보가 마땅치 않은 상황에서 김 위원장으로선 이 지사와 기본소득을 놓고 접점을 찾을 수도 있는 상황이다. 김 위원장과 이 지사가 내년 대선을 앞두고 어떤 행보를 보일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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