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기억 다시 떠올라”… 학폭, 장난으로 여기는 분위기 바뀌어야

여자프로배구 이재영, 이다영 선수 [사진=뉴시스]
여자프로배구 이재영, 이다영 선수 [사진=뉴시스]

[일요서울ㅣ김혜진 기자] 최근 유명 배구선수 이재영·이다영 자매의 ‘학교 폭력(학폭)’ 문제가 불거지면서 사회적 이슈로 번지고 있다.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는 연예인, 교수, 변호사, 경찰, 소방관 등에 종사하는 일부 가해자들로부터 ‘학폭 피해’를 당했다는 폭로 글도 연일 쏟아지고 있다. 피해자들은 학교를 졸업하고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평생 잊을 수 없다”며 극심한 트라우마를 호소했다. 일요서울은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병폐인 학교 폭력 문제의 원인과 해법 등을 알아보고, 날로 교묘해지는 새로운 학폭 유형도 짚어봤다. 

- 원인은 개인·가정·교육환경 등 복합적 작용… 수법은 교묘하게 발전 중
- 정부 차원 대안 마련 노력..,학교 차원에서도 경각심 갖는 계기 돼야

최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유명 배구선수 이재영·이다영 자매의 학폭 문제를 폭로한 글이 올라왔다. 이를 시작으로 봇물 터지듯 SNS와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학폭 폭로가 줄을 잇고 있다. 유명인을 넘어 일반인으로까지 확대되고 본격화됐다. 과거 학폭 피해자들은 여전히 트라우마를 호소했다. 오랜 복수심으로 성인이 된 이후 가해자를 찾아가 범죄를 저지르는 사례도 있었다. 

학폭 피해 경험이 있는 A씨는 최근 가해자가 서울 유명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수여 받고 학생들을 가르치려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직업 윤리상 문제가 있다고 판단해 고심 끝에 민사소송을 결심했다. A씨는 소송 전 SNS에 당시 학폭 피해 상황을 생생하게 써내려가며 가해자에게 사과를 요구했다. 

그는 “가해자가 학교에서 혹은 방과 후에도 따라다니며 폭력을 일삼고 문구용 칼이나 유리로 협박하기도 했다”며 “학교에 가는 게 무서웠고 집을 알고 찾아올 때면 늘 구석에 숨어있었다”고 했다. 이어 “학교에 신고해봤지만 화해 선에서 끝나 다시 보복당할 수밖에 없었다. 언젠가 반드시 복수하겠다고 다짐해 왔다”며 “(가해자가) 괴롭혔던 것에 대한 잘못을 깨닫고 직접 사과를 하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시간을 주려 한다”고 덧붙였다. 

지난 15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도 A씨와 비슷한 사례가 올라왔다. 또 다른 학폭 피해자인 B씨는 “20여 년 전 학교 폭력 가해의 중심에 있던 학생이 서울의 한 경찰서에서 경찰로 근무 중이라는 사실에 내가 살고 있는 세상에 대한 회의감이 든다”고 했다. B씨는 “(가해자는) 태권도장에서 배운 기술을 나를 상대로 연습하는 등 3년 동안 지속적이고 의도적으로 금품 강탈과 협박 및 폭력을 가해 왔다”며 “정의가 살아 있다면 이건 아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이어 그는 “성인이 된 지금도 과거의 트라우마가 남아 교직에 몸담으면서 학교 폭력 담당 일을 맡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 1월 방송된 SBS ‘궁금한이야기Y’에서는 2년간 매일 시키지도 않은 음식이 집으로 배달되는 피해를 겪은 한 부부의 사례가 나왔다. 제작진이 추적해 보니 가해자는 15년 전 배달 전화 피해자 남편으로부터 학교 폭력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남성이었다. 이 남성은 “SNS를 통해 자신을 괴롭혔던 학폭 남편의 연락처를 알게 됐다”며 “나에게 피해를 주고 잘 사는 모습이 보기 싫었다”고 배달 테러를 인정했다.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원인과 해법은?

한국교원교육연구의 ‘학교 폭력의 실태와 대처방안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학교 폭력의 원인은 개인의 문제가 아닌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상호작용해 나타난 것이다. 가해 학생이 지닌 분노·충동성·폭력성 등의 ‘개인적 요인’과 함께 학부모의 자녀 교육에 대한 관여 부족 등으로 인한 ‘가정 환경적 요인’, 공격성 수치인성 및 사회성 함양을 위한 교육적 실천 미흡, 교사가 적절한 생활지도를 하기 어려운 ‘교육적 요인’ 등이 원인으로 지목됐다. 

특히 최근에는 온라인 게임과 영상 매체 발달로 심화된 ‘온라인상 학교 폭력’ 유형도 등장했다. ‘사이버 불링(Cyber bullying)’은 청소년들이 온라인 공간에서 채팅이나 SNS, 게시판, 댓글, 쪽지 등에서 욕설이나 비방의 메시지 또는 인격 모독성 글을 접하는 사이버 폭력이다. 지난해 코로나19의 여파로 학교 수업이 원격 수업으로 대체된 사이 물리적 폭력 대신 온라인으로 이뤄지는 이 같은 새로운 형태의 폭력은 늘어났다. 

교육부가 발표한 ‘2020년 학교 폭력 실태 전수조사’ 결과에 따르면 학교 폭력 중 사이버 폭력 비중은 2018년 8.7%, 2019년 8.9%, 2020년 12.3%로 매년 증가하고 있다. 경기도의 한 고등학교 교사 차모(28)씨는 일요서울과의 통화에서 “최근 비대면으로 수업을 하게 되면서 학생들을 만나 교류하기가 쉽지 않다 보니 학교 폭력 문제를 파악하는 게 더 어려워졌다”며 “학교 폭력 수법은 교묘해지는데 오프라인에 익숙한 교사들이 온라인상에서 발생하는 폭력을 조사하는 건 너무 어려운 일”이라고 설명했다. 

가해 학생들이 자신의 폭력을 장난으로 인식하는 것도 학교 폭력 근절 어려움에 한몫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학교 폭력 실태 전수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 295만 명 가운데 가해 경험이 있다는 9300명은 가해 이유로 ‘장난이나 특별한 이유 없이(28.1%)’를 가장 많이 꼽았다. ‘화풀이 또는 스트레스 때문에(8,3%)’ ‘강해 보이려고(5%)’와 같은 이유로도 폭력을 저질렀다. 학교 폭력 피해를 경험한 학생 2만6900명 가운데 17.6%는 외부에 피해 사실을 알리지도 못했다.

해법은 없는 걸까. 최우성 경기도교육청 장학사는 지난 4일 한국교육신문 칼럼에서 “직접적·물리적 폭력 행위보다 지속적 괴롭힘과 따돌림, 익명 앱에서 뒷담화, 혐오 표현을 포함한 언어폭력 및 따돌림, 조롱, 욕설, 그룹으로 때리고 욕함 등으로 다변화되고 있다”며 “이는 은밀히 진행되는 경우가 많고, 증거가 부족하므로 정황만을 가지고 판단하기 애매한 경우가 많다. 일선 학교나 교육청 등의 교육과정 속에 어울림 프로그램, 사이버 어울림 프로그램 등을 녹여 내 개발·보급하고 있지만, 온·오프라인상에서 만연해 있는 집단따돌림에 대해서는 선제적이고 적극적인 예방교육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사이버폭력 증가에 따른 관련 교육도 절실하다. 코로나19로 인한 비대면 시대에 따라 온라인은 급속도로 청소년들의 생활을 파고들었다”며 “온라인상에서의 익명성과 장난 등을 가장한 각종 사이버폭력과 채팅방 등에서의 따돌림(일명, 블링) 등은 문제점으로 부각된다”고 강조했다. 

학교 폭력 문제가 대두되면서 정부 차원에서도 대안 마련을 위한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은 지난 18일 ‘학교운동부 폭력 예방 및 근절 대책’을 내놨다. 서울 지역에서 학교 폭력 가해 학생은 훈련·대회 참가를 제한하고 체육 특기자 자격도 박탈하기로 한 것. 정치권에서도 학교 폭력 관련 입법 마련을 위한 대책이 논의됐다.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배준영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18일 ‘피해자 중심 학교 폭력 예방 대책 입법 간담회’를 개최하고 학교폭력의 예방과 실효성 있는 조치를 위한 입법 대책을 논의했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지난 18일 SNS를 통해 “학교 폭력 폭로 사건을 보면서 (학교 폭력이) 평생 동안 책임져야 하는 중대한 범죄 행위라는 인식을 갖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며 “관련 부서 과장들과 협의 모임에서 학교 폭력 가해의 경각심을 학생들 스스로 갖도록 하는 방안을 강구하면 좋겠다고 이야기했다”고 전했다. 이어 “그동안 학교 폭력 근절을 위해 교육부·교육청 차원에서 다양한 노력이 이어져 왔지만 이는 학교 폭력 관리의 부담 문제고 폭력 자체가 감소하는 데는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며 “학교 차원에서 선생님들과 학부모, 학생들의 노력도 필요하다. 경각심을 갖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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