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를 모르는데 넌들 나를 알겠느냐....”

진숙은 고개를 끄덕이며 노랫말을 따라 불렀다. 심장이 약한 진숙은 조용한 노래, 그중에도 트로트를 좋아했다. 이제는 나이가 너무 든 탓인지 귀도 잘 들리지 않아 꼭 이어폰을 끼어야 음악을 즐길 수 있었다. “나는 젊을 때부터 가슴이 콩콩 잘 뛰었어. 목소리가 큰 아버지가 나를 꾸지람할 때는 심정이 멎을까 봐 걱정을 할 정도 였으니까.”

평소에 할머니 진숙이 늘 하던 말이었다.
“산다는 건 좋은 거지. 수지맞는 장사잖소. 알몸으로 태어나서 옷 한 벌은 건졌소.”

진숙 할머니가 귀여워하는 이웃집 여중생 하늬가 녹음을 해다 준 테이프이다. 진숙은 이제 라디오를 듣는 것도 귀찮아 늘 장착되어 있는 타타타만 즐겨 들었다. 

어쩌다 한번 씩 나가는 경로당에서 자원봉사 나온 하늬가 마음에 들어 두 사람은 친손녀보다 더 가깝게 지냈다.

이웃에 살기 때문에 학교에서 돌아올 때 붕어빵 같은 것도 자주 사다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할머니가 노래를 즐겨 듣는다는 것을 알고 타타타를 녹음해다가 낡은 플레이어에 넣어주었다.

할머니는 외로울 때나 하늬 생각이 날 때는 그 노래를 자주 틀었다. 잠이 오지 않을 때도 틀어 놓고 자다가 잠들 때도 있었다.

이제 그만한 나이면 세상과 하직할 날도 가까워졌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진숙은 일생을 외롭게 살았다. 가까운 친척이라고는 눈을 씻고 봐도 없었다. 남편과 일찍 사별하고 하나밖에 없던 아들도 교통사고로 먼저 갔다. 수십 년 동안 노점 장사를 해서 조그만 재산은 모아 두었다. 아파트 한 채와 전세 받는 가게가 하나 있었다.

모은 재산을 지키고 있는 것은 죽을 때 남의 신세 지지 않고 장례비에 넉넉히 쓰라는 의미밖에는 없었다.

그런 외로운 어느 날 먼 친척 되는 청년을 만나 가깝게 지냈다. 8촌 시동생이라는 청년은 자주 본 적은 없지만 할머니를 위해 성의껏 해주는 것 같았다. 할머니도 그런 손자뻘 청년이 드나드는 것을 밉게 보지 않았다. 정성껏 챙겨 주었다.

진숙은 젊은 청년이 무슨 생각으로 가까이 드나드는지는 생각해 보지 않았다. 잘해 주기 때문에 남은 재산을 좀 갈라 줄 생각도 해 보았다.
하늬나 팔촌 동생이 싫증 내기 전에 죽어야 한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었다.
“사인은 심장마비입니다.”

검시의가 서울 시경의 추 경감에게 보고했다.
“오 진숙, 나이 91세. 직계 존비속 무.”
강 형사가 보고했다.
“91세에 무슨 존속이 있겠어? 비속이 없다는 건 몰라도...”추 경감이 핀잔을 주었다.

“심장마비가 틀림없죠?”
팔촌 동생인 해석이 추 경감을 붙들고 물었다. 추 경감이 고개를 끄덕이자 굳었던 그의 얼굴이 조금 풀렸다.

“공연히 소란을 떨어 이웃을 귀찮게 해 드렸군요. 비명소리가 들렸다느니 해서 강도가 든 게 아닌가 해서 그렇게 됐습니다.”
모여든 이웃 사람들을 보고 강 형사가 설명했다.

“며칠 전에도 이 아파트에 강도가 든 일이 있었지요. 그때도 이웃사람들이 비명소리를 듣고 신고를 해서 해결한 일이 있지요.”
“그런데 이번에는 할머니의 비명 소리가 아니고 무슨 마귀의 비명 같은 게 들렸어요.”

“맞아요. 비명이 얼마나 큰지 자다가 벌떡 일어났다니까요. 젖먹이 같으면 경기 날 정도로 소름 끼치는 비명이었어요.”
이웃 사람들이 한마디씩 했다.
“할머니가 테이프를 듣고 있었다고 했지? 무슨 테이프야?”추 경감이 묻자 강 형사가 대답했다. 

“타타타라는 노래였습니다.”
그때 할머니와 가까이 지내던 이웃집 여중생이 들고 있던 테이프 한 개를 내밀었다.
“이 테이프예요. 제가 드렸거든요. 그런데 이게 쓰레기통에 버려져 있었어요.”
“뭐야? 타타타 테이프는 여기 플레이어에 들어 있는데.”
“가만, 그 테이프 다시 틀어봐”

추 경감이 영감이 떠 오른 듯 황급히 말했다.
“내가 나를 모르는데,,,”
노래가 나오다가 갑자기 비명이 들렸다. 엄청나게 크고 괴기스런 비명이었다. 정말 심장 약한 사람 기절할 만한 소리였다.
“음, 범인을 잡은 것 같군.”

추 경감이 야릇한 미소를 지었다. <끝>

 

[작가소개]

이상우는 추리소설과 역사 소설을 40여 년간 써 온 작가다. 40여 년간 일간신문 기자, 편집국장, 회장 등 언론인 생활을 하면서 기자의 눈으로 본 세상사를 날카롭고 비판적인 필치로 묘사해 주목을 받았다. 역사와 추리를 접목한 그의 소설은 4백여 편에 이른다. 한국추리문학 대상, 한글발전 공로 문화 포장 등 수상.

주요 작품으로, <악녀 두 번 살다>, <여섯 번째 사고(史庫)> <역사에 없는 나라>, <세종대왕 이도 전3권> <정조대왕 이산>, <해동 육룡이 나르샤>, <지구 남쪽에서 시작된 호기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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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0호부터는 새로운 연재 - '당신의 추리력은 몇 단?' 으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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