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30일 오전 국회 귀빈식당에서 열린 3당 원내대표회담에 앞서 한나라당 홍준표 원내대표가 민주당 원혜영 원내대표와 설전을 벌이다 화가난듯 고개를 숙이자 원 원내 대표가 날카롭게 쏘아 보고있다. ·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와 민주당 정세균 대표가 최근 계속되고 있는 여야 대립 해소를 위해 지난 12월 31일 국회 귀빈식당에서 만나 악수한 뒤 자리로 향하고 있다. · 본회의장을 5일째 점거 중인 민주당 의원들이 지난 12월 31일 새벽 국회 본회의장에서 잠자리를 준비하고 있다. · 임시국회 쟁점법안 처리를 위한 여야의 협상이 결렬되며 질서유지권이 발동된 지난 12월 30일 밤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본회의장에서 점거 농성을 벌이고 있는 민주당과 민주 노동당 의원들이 질서유지권 발동 규탄 및 날치기 처리 저지를 위한 결의대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왼쪽상단부터 시계방향)

여야간 입법 충돌이 극으로 치닫고 있다. 국회가 실력 대결의 장으로 변질됐다. 흡사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민주당 의원들은 본회의장과 주요 상임위장 등을 점거했고, 한나라당 의원들은 본회의장 맞은 편 회의실에 진을 치며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다.

쟁점법안을 둔 여야간 입장차가 평행선을 그으며, 제2, 제3의 ‘물리적 충돌’이 예고되고 있다. 그러나 쟁점법안 처리가 새해를 넘기자 임시국회 만료일을 기점으로 충돌 분위기가 다시 고조되고 있고, 또 여론 이해득실을 따지는 등 장기전 양상도 엿보이고 있다. 이 대통령의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왜 쟁점법안 대결로 끝을 보려할까. 여야 대결 현장과 향후 전망, 그들의 정치적 속내를 조명했다.

민주당이 지난해 12월26일 국회 본회의장 점거와 무기한 농성 돌입이란 초강수를 꺼내들었다. 한나라당이 크리스마스 휴전기간이 끝났음에도 여전히 강행처리를 경고하자, 민주당이 극약 처방을 내린 것이다.

쟁점 법안을 무조건 사수해야 한다는 절박감과 의석수가 부족해 정상적 방법으로는 저지할 수 없다는 현실인식이 반영된 결과다.

한나라당은 28일 원래 처리하려던 114개 법안 중 29개를 제외한 85개를 선정, 김형오 국회의장에게 직권 상정을 요청했다.

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경제 살리기 법안 등 72개를 연내에 처리해 주면, 국정원법 등 13개 ‘사회개혁 법안’은 내년에 처리할 수 있다”고 한발짝 물러섰으나, 원혜영 민주당 원내대표는 “악법 철회가 모든 것의 전제조건”이라며 “여야 합의가 가능한 민생법안만 처리해야 한다”고 맞섰다.

김형오 국회의장은 85개 법안 중 여야대치가 민감하지 않은 민생법안을 31일 처리하겠다고 밝히면서, 여야간 충돌 분위기는 고조됐다. 민생법안으로는 신용보증기금법, 중소기업은행법, 채권의 공정한 추심에 관한 법, 대부업법, 지방세법, 식품위생법 등이 거론됐다.


한나라당의 ‘우선 처리법안’ 논란

여당이 선정한 우선 처리법안에 대해서도 논란이 불거졌다. 쟁점 법안이 포함돼 있고, 더 ‘강경한’ 법들이 추가됐으며, 실질적인 민생법안이 빠졌다는 것이다.

미디어 관련 법, 금산분리 완화, 출자총액 제한 폐지 등 금융관련법, 복면 착용을 금지하는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 국정원 법 등은 여야가 접점을 찾지 못하는 법안들이다.

추경 편성요건을 완화하는 ‘국가재정법’, 외환정책 운용에 탄력성을 주는 ‘외국환 거래법’, 불법집단행위에 관한 집단 소송법, 불법집회 참가 민간단체에 지원금 제공을 중단하는 ‘비영리 민간단체 지원법’ 등은 야당의 더 큰 반발을 불러 올 수 있는 새로 추가된 법안들이다.

국민임대주택건설특별조치법, 장기공공 임대주택 입주자 삶의 질 향상 지원법, 고령자 주거안전법 등은 저소득층을 지원하기 위한 실질적 민생법안들로, 우선처리 목록에서 제외됐다.

자유선진당은 ▲민생경제 및 지방살리기 법안의 연내 우선처리 ▲출자총액제한제도 폐지, 금산분리 완화 등은 내년 빠른 시일내 처리 ▲미디어 관계법은 내년 1월 국회내 특위를 통해 처리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 국가정보원법, 통신비밀보호법 등은 상임위 논의 후 처리 등 중재안을 내놓았으나, 민주당이 거부했다.

‘선진과 창조의 모임’ 원내대표는 지난 1일부터 권선택 선진당 원내대표에서 문국현 창조한국당 대표로 바뀌었다. 선진창조모임은 한나라당과 정책 공조를 기반으로 여야간 이견을 조율해 왔다. 그러나 문 대표의 정치성향상 민주당에 치우친 이견조율을 할 가능성이 높다. 여야 격돌 구도에 어떤 영향을 줄지 눈여겨 볼 대목이다.

여야 대결이 팽팽해지자, 김형오 국회의장이 질서유지권을 발동하기에 이르렀다. 국회법상 법안 처리를 위해 본회의장 입장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물론 민주당이 본회의장을 점거하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개정된 국회법에 따르면 법안 처리 때 국회의장은 안건 제목을 의장석에서 밝히고 표결 종료후 그 결과를 의장석에서 선포해야 한다.

또 일괄 상정과 일괄 통과가 금지돼 있다. 전자투표 시스템 도입이후 안건마다 표결처리하도록 규정돼 있기 때문이다.

여야 격돌은 12월31일 1차 위기를 넘어 임시국회 마지막 날인 8일을 기점으로 한, 2차 위기로 치닫고 있다. 민주당은 직권상정시 의원직 총사퇴를 언급하며 마지막 배수진을 쳤다.


결전 앞둔 여야 분주한 여론 눈치보기

민주당이 이처럼 초강수를 거듭 꺼내드는 이유는 뭘까.

우선, 여론이 민주당 편에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언론노조의 연이은 장외시위, 일부 방송사의 파업 등이 민주당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는 것이다.

민주당 당직자는 “시민사회세력, 전통적 지지층, 당 등이 하나로 똘똘 뭉치며 대여 투쟁의 3박자가 맞아 떨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당 관계자는 “본회의장 점거후 당 지지도가 올랐으나 없던 지지자가 생긴 게 아니라 전통 지지층이 결집된 것”이라며 “당내에서도 당 지도부를 중심으로 뭉치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민주당 지지율은 최근 23-24% 선을 기록하며, 상승세를 타고 있다.

민주당은 또 소속 의원들이 본회의장에서 끌려나갈 경우 그런 모습자체도 여론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특히 한나라당의 입법 방침을 꺾을 경우 정국 주도권을 확보하고, 4월 재보궐 선거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할 수 있다는 예상도 계산에 넣었다.

한나라당은 강행처리시 ‘후폭풍’을 두려워하고 있지만, 법안 처리가 절박한 상황이다.

이번 임시국회에서 법안 처리가 실패할 경우 당내 혼란은 물론 당청관계 악화, 지도부 책임론에 이어 MB 정부에 큰 타격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은 85개 법안 단독처리와 쟁점법안 처리에 따른 여론 추이를 각각 지켜보고 있다. 어느 경우라도 ‘역풍’이 예고된다. 어떤 선택을 하든 비난을 감수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당장의 비난이 후에 현 정부의 안정적 국정운영, 국정주도권 회복, 정권 교체에 따른 정책 전환 등의 긍정적 결과물을 양산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강행 처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한나라당이 “야당과 협의한다”며 명분 쌓기 및 홍보전에 적극 나서는 것은 ‘강행 처리’를 염두에 둔 사전 포석일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현 대결정국과 관련, 민주당의 불리를 예측하는 시각이 높은 편이다.

경제위기 속에서 관련 법안 처리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과는 차원이 다르기 때문이다.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민들 입장에선 민주당이 국민의 반대편에서 서서, 국정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으로 비치는 것이다.

야당 관계자는 “민주당이 비판받는 이유는 집권시절에 국가정보원법 등 핵심법안을 처리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한나라당이 법안을 강행 처리하면 오히려 지지자 결집과 함께 지지율이 올라갈 것”이라고 말했다.

한 정치학과 교수는 “현 상황을 볼 때, 국민들은 정치권이 경제위기 극복에 나서는 것이 아니라 발목을 잡는다고 느낄 수 밖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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