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 년 전 의료법 개정안 원래대로 되돌리려는 취지

윤호중 법사위원장이 2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사봉을 두드리며 의사면허 취소범위를 확대하는 의료법 일부개정법률안을 계류시키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2021.02.26.
윤호중 법사위원장이 2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사봉을 두드리며 의사면허 취소범위를 확대하는 의료법 일부개정법률안을 계류시키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2021.02.26.

[일요서울ㅣ김혜진 기자] 강도·살인·성폭력·음주운전 등 중범죄를 저질러 ‘금고’ 이상의 형을 받은 의료인(치과의사·한의사·조산사·간호사 등)의 면허를 일정 기간 취소하는 ‘의료법 개정안’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변호사나 회계사 등 다른 전문직은 금고형을 받을 경우 자격 정지나 등록 취소 등 엄격한 조항을 적용 받고 있어 의료인만 예외로 둘 이유가 없다는 지적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그동안 이들이 강력 범죄를 저질러도 면허 정지 및 취소되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인지 살펴봤다.

현행 의료법은 ’허위진단서 작성·낙태·업무상 비밀누설 등 직무 관련 범죄와 보건의료 관련 범죄’를 저지른 의사만을 면허 취소 대상으로 삼고 있다. 의사가 강도나 살인, 성폭행 등 강력 범죄를 저질러 ‘금고’ 이상의 형을 처벌 받더라도 면허를 취소할 근거는 없는 셈이다. 또한 업무상 과실치사도 면허 취소 사유는 아니다.

금고(禁錮)는 구류, 징역 등과 함께 교도소에 구치돼 신체적인 자유를 박탈당하는 형벌이다. 경중에 따라 ▲과료(5만 원 미만) ▲벌금(5만 원 이상) ▲자격정지 ▲구류(구치 30일 미만) ▲금고 ▲징역 ▲사형 순으로 구분되는데, 이 중 수형자의 신체적인 자유를 박탈하는 형벌인 자유형에는 징역, 금고, 구류가 있다. 징역형은 교도소에 복무하면서 노역을 하는데, 금고형은 노역을 하지 않는 점이 다르다.

의사와 달리 변호사·공인회계사·변리사·세무사·노무사·관세사 등 국가가 면허와 자격을 관리하는 대부분의 전문 직종은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거나 집행유예, 선고유예를 받은 경우’ 자격을 박탈한다. 업무상 과실치사 등의 죄를 저지른 경우도 마찬가지다.

변호사의 경우 1949년 11월 ‘변호사법’이 제정되면서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은 자는 변호사 자격등록을 반드시 취소하도록 규정(변호사법 제18조제1항제2호)했고, 한 번 취소되면 최소 2년에서 최대 5년이 지나야 재등록이 가능하다. 이미 변호사로 등록된 경우도 면허가 박탈된다. 구체적인 취소 사유나 등록 금지 기간에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공인회계사법, 세무사법, 공인노무사법, 변리사법 등에서도 같은 취지의 제재 규정을 두고 있다.

변호사는 직무의 공공성이 다른 전문 직종에 비해 높기 때문에 특별히 엄격한 결격사유가 적용되는 것이라는 의료계 측 반론도 있다. 의사에게 변호사와 동일한 잣대를 들이대서는 안 된다는 것. 하지만 조순열 전 대한변협 부협회장은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사안에 따라서는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의사가 변호사보다 더 높은 공공성을 지녔다고 볼 수도 있다”며 “직무 공공성을 이유로 개정안을 반대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번 의료법 개정안은 2000년 의료법 개정으로 줄어들었던 면허 취소 사유를 원래대로 넓히자는 취지다. 입법 역사를 살펴보면 1999년까지의 의료법에서는 일반 형사범죄로 금고 이상의 형을 받았거나 의료행위 중 업무상 과실로 환자를 사망하게 한 경우 면허를 취소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그런데 2000년에 개정된 의료법(법률 제6157호)에서는 기존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고 그 형의 집행이 종료되지 않거나 집행을 받지 않기로 확정되지 않은 자’는 의료인이 될 수 없다는 규정을 삭제하고, 현행법과 동일하게 일부 범죄로 처벌 받는 경우만 의료인이 될 수 없도록 변경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변호사는 일요서울과의 통화에서 “의료인이든 변호사든 직업윤리가 요구되는 전문직은 투철한 도덕성과 사회적 책임이 요구돼야한다”며 “(의료인은) 국민의 건강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큰 직업인만큼 의료계와 정부가 적절한 합의를 이뤄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리얼미터가 지난 24일 발표한 의료법 개정안 찬반 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민 10명 중 7명은 의료법 개정안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 복지위 간사인 김성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유독 의료인들은 살인죄나 강력범죄, 성범죄 등을 저질러도 아무 제약 없이 다시 진료를 볼 수 있었다. 다른 전문 직종에 비해 특권으로 보일 수 있는 부분은 바로잡고 과도한 제약은 가하지 않기로 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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