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립편집위원
이경립편집위원

시험을 앞둔 수험생에게 가장 두려운 것은 해놓은 것은 없는데 어김없이 지나가는 시간, 해야 할 것은 많은데 부족한 시간일 것이다. 그래서 “평상시에 열심히 하지 그랬냐!” “남들 공부할 때 뭐했냐!”는 등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에게는 아무리 그 말이 옳은 말이라고 하더라도 분노가 먼저 치솟게 마련이다. 몰라서 그런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작년 총선 직후 대선후보 선호도 조사에서 40%가 넘는 지지율을 보이면서 180석 거대여당의 대표로 등극할 때만 하더라도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에게는 거칠 것이 없었다. 많은 전문가들은 너무 빨리 형성된 대세에 고개를 갸웃하기도 하였지만, 마땅한 대항마가 보이지 않았기에 형성된 대세가 대세론을 형성하고 대세론은 더 큰 대세를 형성할 것이라고 그는 믿고 있었을 것이다.

7개월짜리 당대표도 마다하지 아니한 이유는 거기에 있었다. 그런데 대표에 취임하고 난 후, 평상시에 열심히 하지 않고, 남들 공부할 때 여유를 부린 응보(應報)가 곤두박질 친 대선후보 선호도 조사 지지율로 나타났다. 같은 당의 이재명 경기지사에게 1위 자리를 내준지 오래고, 윤석열 검찰총장에게도 뒤지는데다가 최근에는 정세균 국무총리가 제3후보론을 앞세워 자신의 자리를 위협하고 있다.

신년 이러한 상황을 일거에 만회하고자 쏘아 올린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 사면론은 부메랑이 되어 자신의 철옹성(鐵瓮城)에 균열을 가했다. 문재인 대통령에게 은근슬쩍 사면론 이슈를 떠넘겼지만, 믿었던 문재인 대통령은 시기상조(時機尙早)론으로 응수했다.

전직 대통령 사면론 같은 것은 현직 대통령이 힘이 있을 때 넓은 아량을 베풀 듯 폼 나게 해야 하는 것인데, 이미 레임덕에 들어선 문재인 대통령에게는 해결하기 어려운 이슈였던 것이다. 시기상조라기보다는 해결불가였던 것이다. 득달같이 달려드는 그들의 열렬한 지지자들 덕분이기도 했다.

2년 당대표를 기대했지만 이낙연 대표는 그럴 생각은 없는 것 같다. 오영훈 비서실장은 이낙연 대표가 오는 3월 9일 당대표를 사퇴할 것이라고 했다. 내년 3월 9일 실시 예정인 20대 대선에 출마하기 위해서 더불어민주당의 당헌·당규대로 선거일 1년 전에는 당대표를 사퇴해야하기 때문이다.

김대중이라는 절대 권력자가 정당을 떠난 뒤, 더불어민주당은 그들의 전신(前身)정당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20여 년 동안 임기를 채운 당대표는 3명에 불과하다. 야당일 때의 정세균 대표와 문재인 정권을 창출한 추미애 대표, 직전의 이해찬 대표가 그들이다. 그 이외의 당대표들은 그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선거 패배의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이낙연 대표의 사퇴는 선거 패배의 책임과는 결을 달리하는 새로운 유형의 사퇴이다.

그렇게 되면 오는 4월 7일 서울시장, 부산시장 보궐선거는 당대표 없이 치르게 된다. 자신들이 당헌·당규까지 바꿔가면서 후보를 내는 선거에서 당대표 없이 선거를 치르겠다는 그들의 생각이 갸륵하다.

보통 정당이라면 중요한 선거를 앞두고 당대표가 자신의 정치적 이해 때문에 당대표를 사퇴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 하는 논의가 불붙을 것 같기도 한데 더불어민주당 내에서는 그런 움직임이 없다. 헌신짝처럼 내던지던 당헌·당규가 갑자기 금과옥조(金科玉條)가 된 것이다.

어쩌면 이낙연 대표가 사전정지 작업을 그렇게 했기 때문 일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보궐선거에서 지면 당대표를 불명예 퇴진해야 하는데, 당헌·당규가 그의 정치생명을 조금은 더 연장시켜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봐야 ‘한식에 죽느냐 청명에 죽느냐’의 차이인데.....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