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고 이상 형’ 의료법 개정안, 복지위 ‘통과’→법사위 ‘재논의’

최대집 대한의사협회 회장. [뉴시스]
최대집 대한의사협회 회장. [뉴시스]

[일요서울 | 조택영 기자] 최근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는 더불어민주당이 나서서 중대 범죄를 저지른 의사들에 대해 의사면허를 취소하거나 일정 기간 정지할 수 있도록 하는 의료법 개정안을 국회 상임위에서 통과시키자, 해당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할 경우 총파업을 벌여 국민에게 백신 접종을 하지 않을 수 있다고 엄포를 놨다. 정부는 의료법 개정안과 백신 접종 협력을 연계하려는 시도가 국민의 안전을 볼모로 삼는 무모한 행동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의협은 비난 여론이 확산하자 입법 취지에 공감한다며 한 발 물러서는 모습을 보였다. 26일 의료법 개정안 법사위 통과에 이목이 집중됐는데, 처리가 불발됐다. 의협은 “법사위의 심도 있는 논의 결과를 존중한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의료법 개정안이 3월 임시국회에서는 통과할 것이라는 전망이 속속 나오고 있어 갈등의 불씨는 여전하다. 의협과 정부 사이에 전운이 감도는 모양새다.

3월 임시국회에서 처리될 듯···의협, ‘강경 투쟁가능성 여전

이번 갈등에 앞서 의협과 정부 사이에는 1차대전이 있었다. 지난해 8월 코로나19 2차 대유행이 본격화할 당시, 의협은 의대 정원 확대 등을 골자로 하는 법안에 반발해 총파업에 들어갔고, 의대생들은 국가고시(이하 국시) 실기시험을 거부한 것. 이후 의료계는 국시 재응시 기회를 줄곧 요청했으며 정부는 코로나19 상황을 감안해 결국 의료계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정부가 사실상 ‘백기투항’한 셈이다.

백신 접종 거부,

총파업 예고한 의협

이번 2차대전은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 받은 의사의 면허를 취소할 수 있도록 해 면허 관리를 강화하는 내용이 담긴 ‘의료법 개정안’ 관련 갈등에서 시작됐다. 실형을 받은 경우 형 집행 종료 후 5년, 집행유예는 기간 만료 후 2년까지 면허 재교부가 금지된다.

지난 19일 의료법 개정안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이하 복지위)를 통과하자 의협은 강하게 반발했다.

최대집 의협 회장은 지난 21일 열린 의정공동위원회에서 “(보건복지부) 장관이 의료계의 심각성을 적극 말씀하셔서 이것(의료법 개정안)이 불행한 파업적 사태로 가지 않도록 사전에 막았으면 좋겠다”면서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코로나19 백신 접종 협력이 모두 무너지는 것”이라고 밝혔다. 의협은 의료법 개정안에 반발해 코로나19 백신 접종 거부 및 총파업을 하겠다고 밝힌 셈. 당시 16개 시도의사회 회장들도 성명을 내고 총파업 등 강경 대응을 예고했다.

여당은 변호사, 회계사 등 다른 전문직들도 같은 면허 취소 기준을 두고 있으며, 의사의 경우 살인이나 성범죄 같은 중범죄를 저지른 경우에도 면허가 보호되고 있어 개선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반면 의협은 면허 취소 사유를 모든 범죄로 확대할 경우 교통사고 등 과실범죄에도 제재가 가능해질 수 있어, 무고한 피해가 우려된다고 반박했다. 또 변호사 등과 의사는 각각의 임무가 다르고, 같은 규정을 적용할 수 없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후 코로나19 위기 상황에서 의사들이 집단 이기주의 행태를 보이고 있다는 비난 여론이 잇따르자 의협은 한 발 물러서는 모습을 보였다. 백신 접종 거부와 총파업 등 강경 투쟁에 대한 언급을 자제하고 적극적으로 국회를 설득하는 방향으로 선회한 것.

그러나 의협이 강경 투쟁으로 선회할 가능성은 여전히 배제할 수 없다. 현재 의협 지도부의 임기는 4월 말까지이고, 5월부터는 새 지도부가 출범하기 때문에 향후 의협의 대응에도 불확실성이 큰 형국이다. 또 강력한 투쟁에 나서야 한다는 후보도 속속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의협 지도부가 백신 접종 거부나 총파업 카드까지 꺼내 든 것은 잘못된 대응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정치적 색채가 강한 현 지도부가 임기 동안 강경 투쟁 노선을 고집하다가 여론의 지지를 잃었다는 지적인 셈. 의료계 내부에서도 현 지도부의 입장에 대해 의사들 전체 의견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

갈등 재점화 전망

26일 이목이 집중됐던 의료법 개정안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통과가 불발됐다.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는 의견에 따라 전체회의에 계류됐다.

법사위는 이날 전체회의를 열고 의료법 개정안을 전체회의에 계류시키기로 의결했다. 쟁점 사안이 많은 만큼 향후 추가 심사가 필요하다는 의견에서다.

법사위 간사인 김도읍 국민의힘 의원실 측은 26일 일요서울에 “다시 조율을 해야 한다. 오늘 안에는 안 될 것 같다. 아마 다음 주나 더 늦으면 다다음주까지 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날 법사위원들은 의결 직전까지 의사면허 취소법을 두고 갑론을박을 벌였다. 야당 측은 과잉금지의 원칙에 따라 의사의 기본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점을 들어 제2소위원회에서 다시 논의하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코로나19 시국에서 하필 지금 의사들에게 심리적인 압박이 심한 법안을 통과시킬 필요가 있냐는 의견도 나왔다.

의료법 개정안을 통과시키되, 선고유예 부분은 법안 내용에서 제외시키자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치열한 논의에도 결과가 도출되지 않자 간사는 합의하에 의료법 개정안을 전체회의에 계류시키기로 합의했다.

윤호중 법사위원장은 이날 “여야 간 의견을 모아 쟁점 조항을 정리한 뒤 다음 전체회의에서 다시 의결하겠다”고 전했다.

의협 측은 “법사위의 심도 있는 논의 결과를 존중한다”며 “위원 간 이견 발생으로 수정 내용을 정리해 다음 회의에서 재논의할 것으로 알고 있다. 협회는 국회에 의료계의 의견과 우려를 충분하게 전달하는 데 주력하겠다”고 밝혔다.

여야가 논의 끝에 의료법 개정안을 추가 심사하기로 하면서 3월 임시국회에서 다시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의료법 개정안이 3월 임시국회의 문턱을 넘을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법사위 여당 고위 인사 측은 26일 일요서울에 “지금 상황은 법사위 전체회의에 계류된 것이다. 의료법 개정안은 시기상의 문제지 거의 통과되는 분위기다. 3월 임시국회에 통과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의료법 개정안이 3월 임시국회에 통과될 것으로 관측되면서 의협과 정부의 2차대전은 잠잠해졌을 뿐 갈등이 재점화될 전망이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