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60화랑 제공]
[사진=60화랑 제공]

[일요서울ㅣ김혜진 기자] 서울에는 다양하고 독특한 명소, 그리고 장인(匠人)들이 있다. 일요서울은 드넓은 도심 이면에 숨겨진 곳곳의 공간들과 오랜 세월 역사를 간직하며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이번에 다녀온 곳은 성북동 북정마을 주민들의 발길이 자주 닿는 갤러리 카페 ‘60화랑’이다. 

갤러리 카페 ‘60화랑’은 북정마을로 올라가는 길 초입에 위치해 있다. 온통 깔끔한 흰색 외관 오른 편 위쪽에 ‘60’이라는 파란색 글씨가 눈에 띈다. 60화랑의 내부는 투명한 유리벽으로 둘러싸여 있고 안에서는 은은한 빛이 풍겨 나왔다. 누구든지 오가며 화랑 안에서 진행되는 전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도록 운영되고 있다.

바로 옆에는 60화랑과 연결된 카페 ‘오블리크’가 있다. 화랑과 다르게 푸른색 외관을 갖춘 이 카페는 테이크아웃 전문이다. 작품을 관람하러 온 관람객부터 커피를 마시러 온 손님까지 누구에게나 열려있다. 2년여 전부터 성북동에서 60화랑과 카페 오블리크를 함께 운영 중인 고(故) 김종휘 화백(1928~2001)의 딸 김정민 실장은 “성북동 주민들한테 ‘사랑방’이 될 수 있는 공간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며 “북정마을로 들어가는 입구이기도 하고 많은 예술가들이 계셨던 곳이기도 해서 전시를 관람하고 커피도 마실 수 있는 가벼운 공간을 마련하게 됐다”고 말했다. 

서양화를 전공한 김 실장은 아버지 김종휘 화백의 작품을 소개하고 싶어 2008년부터 서울 종로구 가회동에서 다양한 작품을 전시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젠트리피케이션 문제로 인해 2018년 성북동 북정마을 초입으로 화랑을 이전했다. 그는 “아버지가 근·현대 작가로 많이 회자됐던 작가인데 돌아가시면서 잊히는 게 아쉬웠다. 그래서 처음 시작할 때 아버지의 작품을 소개하고 전시했었다”며 “시간이 지나면서 화랑이라는 공간적 한계로 인해 큰 전시를 하기도 어렵고, 시대적 흐름에 맞는 전시를 같이 하면 좋을 것 같아 아버지 작품뿐 아니라 다른 훌륭한 작가들의 작품도 함께 소개하고 알리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고 강조했다. 

김 실장은 “커피를 매일 드시러 오는 동네 분들도 화랑에는 잘 안 들어오셨다. 그림은 잘 모르겠다고 하시면서 그냥 가는 분들이 많이 계셔서 아쉬웠다. 일반 전시는 일부러 찾아오는 분보다 커피 드시러 왔다가 구경하고 가는 분들이 더 많았다”며 “그런데 작년에 길고양이 관련 전시를 진행하니 대중들의 반응이 아주 좋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김 실장은  “동네 주민 분들이 화랑에 관심을 갖고 많이들 보시는 것 같다”며 “(주민 분들이) 너무 고마워하신다. 화랑이 밤12시까지 자동타이머로 불을 환하게 밝혀놓으니 골목을 오가며 작품을 관람할 수 있어 좋다는 칭찬을 많이 들었다”고 뿌듯해했다. 

현재 60화랑에서는 이윤정 작가의 <채석강> 전시가 진행 중이다. 60화랑 측은 “이윤정 작가는 작품을 준비하며 부안에 있는 채석강을 직접 찾았다. 채석강은 수만 년에 걸쳐 퇴적층이 형성된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 있는 곳으로, 부드러운 흙과 물고기, 해초들이 깊은 심연에서 받은 압력이 층을 이뤘고, 세월의 흔적은 층층이 쌓인 결을 이루며 땅과 바위가 됐고 그 속살이 드러나 단단한 표피가 된 모습을 형상화했다”며 “이러한 모습에서 이윤정 작가가 10년 넘게 작품의 소재와 주제로 사용한 ‘레이스 끈’과의 접점을 발견했다. 각 층마다 새겨진 환희와 슬픔, 절망과 희망, 기쁨과 두려움 등을 발견하며 인간의 모습을 발견하고 본인이 이어온 레이스 끈과의 연결성을 작업으로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현재 화랑60에서 열리고 있는 이윤정 작가의 전시는 4월16일까지 진행된다. 

[사진=60화랑 제공]
[사진=60화랑 제공]

 

김종휘 화백 [사진=60화랑 제공]
김종휘 화백 [사진=60화랑 제공]

# ‘풍경 화가’ 김종휘 화백

김종휘 화백은 우리나라 최초의 예술전문학교인 경주예술학교에 다녔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폐교로 인해 1953년 홍익대학교 회화과로 편입, 1957년 졸업했다. 

1950~70년대 초반까지 추상화된 개념의 자연을 그렸다. 대상을 해체한 후 색과 면으로 재구성하는 방식의 평면성을 추구했다. 당시 김환기, 김창억 등의 스승이 추구하던 면 분할 경향을 적극적으로 수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실험적 작업으로 인식한 추상을 보면 원근감이 사라진 2차원의 평면성을 추구하는 기하학적 도형을 기반으로 한 이미지가 화면에 표현된다.

이후 1970년대 중반에 들어서며 면 분할의 대상이 해체된다. 1978년부터는 전통산수화의 요소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광활한 자연의 모습을 다룬다. 전체를 조감하는 듯 한 이색적 구도 가운데 부분적으로 초점이 파괴된 특징은 여전히 드러난다. 화면 전체를 가득 채운 자연은 특정 장소나 현실적 대상이 아닌 기억 속 혹은 관념적 자연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그에게 있어 자연은 과거와 상상이 만나는 접점으로서 유년의 기억 속 고향의 풍경과 야외 사생을 통해 인지하는 현재의 자연으로, 실험적인 창작의지를 통해 특이하고 관념적인 추상으로 표현되고 있다. 

그는 사실주의적 경향을 거부했으나 비정형 추상 역시도 반대하며 자신의 기본적 감수성의 바탕인 ‘자연과 풍경’이라는 주제에 천착해 있다. 고향인 경주와 어린 시절을 보냈던 북한의 광산지역에서 받은 인상이 오랫동안 김 화백의 기억에 남아 과거와 현재의 인식을 형성하고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80년대에 들어서며 김종휘 화백의 면적인 요소는 선적인 요소로 변화됐고 절경을 다루는 기운생동한 산수화의 현대적 변용을 도모하여 전통과 현대, 서양과 동양, 구상과 추상, 수채와 유채 등의 조화를 꾀했다. 이러한 그의 노력은 당시 다른 작가들이 한국성을 추구하던 경향과는 전혀 다른 차원이었다. 이러한 실험은 90년대까지 보다 빠른 필치로 변화하고 반복되며 작품의 색감과 질감을 통해 색다르게 표현되고 있다.

1989년 생전 10회 개인전 이후 2001년 작고한 김 화백은 한동안 세간에 잊혀 지내다 2017년 경주예술학교 연구를 계기로 2017년 경주솔거미술관 개인전, 2019년 국립현대미술관 작품소장 등을 통해 다시금 조명되고 있다. 1980년대 미술대전 심사위원 등으로 활동했고 1993년 홍익대학교 조형대학장으로 정년퇴임 후 2001년 작고했다. 1957년 제1회 현대미술가 협회전을 비롯, 현대작가초대전에 참여하였고 1970년대까지 신상전 및 구상전 회원으로 활동했다.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홍익대학교 박물관, 김환기 미술관, 김달진미술연구소 등에 작품이 소장돼 있다. 

[사진=60화랑 제공]
김종휘 _ 奧閑(오한)-II_ [사진=60화랑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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