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 경감은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부하들을 척척 지휘했다. 그것도 추 경감과는 대조적인 스타일이었다.

여관 주인과 종업원을 제외하자 남은 사람들은 모두 6명이었다.
최 경감과 강 형사는 여관의 101호실을 임시 사무실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들어온 사람은 앞서부터 큰소리를 치고 있던 차주호라는 인물로 자주민주당의 정책연구실 차장이었다. 그 점이 강 형사의 주목을 끌었다.

나이는 56. 갖고 있는 직함은 그 외에도 수없이 많았다. 그러나 강 형사의 눈을 번쩍 뜨이게 한 것은 그가 관계하고 있는 지역이 모두 서울 제 13 지역구에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것 봐라. 이 친구도 출마하려는 것 아냐?”

강형사의 가슴 속에서 강력한 의문이 떠올랐다.
그와 함께 여관에 들었던 여인은 명목상으로는 개인 비서로 되어 있었으나 무슨 일로 이곳에 들었는지는 불문가지였다.
여인은 진유선이라고 했다. 나이는 27세. 큰 눈동자의 인상적인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런! 세상에 이렇게 여자가 널려 있는데 왜 나는 이 나이에 이르도록 장가 한 번 못 들었을까?”
강 형사는 미리 이름까지 지어 놓은 미래의 아들 세종이를 생각하며 괜한 울분에 사로잡히는 것이었다.

“사무실을 놔두고 왜 벌건 대낮에 여관에 와야 합니까?”
“정치인이란 보안이 생명이니까요.”
진유선은 뻔뻔한 얼굴로 대답했다.
“그래, 그렇게 생각하자.”

강 형사는 애써 속을 삭였다.
“총소리를 들으셨습니까?”
강 형사가 둘에게 물었다. 둘이 묵었던 방은 201호로 203호와는 하나 건너 있는 방이었다.
“총소린지는 몰라도 쾅하는 소리는 들었소.”

차주호가 대답했다.
“그때 어디 계셨습니까?”
“물론 방에 있었소.”
“다른 소리는 들으신 것이 없습니까?”
“없소.”
그의 대답은 간결하였다.

“이제 가도 되겠소?”
“안 됩니다. 신분을 확인해 보고 지문을 찍으신 후에 가실 수 있습니다.”
“뭐야! 날 범인으로 생각하는 거요?”
차주호는 벌컥 화를 내며 반말로 호통을 쳤다가 슬그머니 말끝을 경어로 고쳤다.
“그것은 의례적인 절차입니다.”

최 경감이 쌀쌀맞게 대꾸했다.
“좋아, 좋아. 마음대로들 해 보라고.”
차주호의 말을 귓등으로 흘리며 강 형사는 진유선에게 물었다.
“당신도 같이 있었습니까?”
“당연하잖아요?"

진유선은 쏘아붙이듯이 말했다. 강 형사는 은근히 심술이 돋았다.
“뭘 하고 계셨습니까?”
“그건 정치적인 사안이오. 여기서 밝힐 수는 없소.”
“좋습니다. 나가시면 부하들이 다음 절차를 안내할 것입니다.”
다음으로 들어온 사람들은 강 형사와 싸운 사람이었다. 강 형사는 따라 들어오는 여인을 세밀히 살폈다. 그러나 정필대를 따라 들어온 여인같이 보이지는 않았다.

“두 분은 함께 들어왔습니까?”
“물론이지요. 종업원에게 물어보시오.”
그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강 형사를 괴롭히는 것은 두 여인이 입고 있는 옷이 같다는 사실이었다. 강 형사는 정필대가 들어오던 순간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았다. 자신이 자리를 비운 것은 단 한 번이었다.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던 그 순간.

쑥색 바바리는 흔한 것이고 올가을에는 이상할 정도로 유행하고 있었다. 같은 옷을 입고 있다는 것이 유별난 일일 수는 없었다.
“나는 택시운전사요. 이 사람은 내 마누라고.”

사내는 무뚝뚝하게 말했다. 아직도 감정이 삭지 않은 모양이었다.
“부인과 왜… 집을 두고?”
“집에는 애가 있어서…우리는 날을 걸러 쉬니까 편하게…”
말을 하다 보니 사내도 기가 차는지 말을 끊고 강 형사를 빤히 바라보기만 하였다.

사내의 이름은 김형진이었다. 아내의 이름은 이혜원으로 되어 있었다.
“운전면허증은 안 가지고 나오셨습니까?”
김형진이 주민등록증을 내어놓자 강 형사가 물었다.
“개인택시 운전사도 아닌데 면허증은 뭐 하러 달고 다니우?”

김형진은 여전히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2층이 다 차지 않았는데 3층에 방을 얻은 것은 특별한 까닭이 있는 일인가요?”

“그건 종업원에게 물어보구려. 난 조용한 방을 달라고 했을 뿐이니.”
둘은 아예 총소리도 듣지 못했다고 대답했다. 있을 수 없는 일도 아닌 것 같았다.
마지막 쌍은 젊은 남자와 약간 나이가 든 여자였다.

여자가 먼저 앞서서 말했다. 강 형사에게 총소리가 난 방을 가리켜 준 여자였다.
“나는 여기 앞에 있는 황금 살롱에서 일하는 미스 권이라고 해요. 여기는 불려왔을 뿐이에요.”

권영미라는 여자가 당당하게 말하는 동안 뒤에 서 있던 남자는 오히려 주눅이 들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권영미는 진한 화장을 하였지만 나이가 이미 30대 초반으로 보여 야화의 세계에서는 한물간 여자로 보였다.
“이 여자도 정필대와 만난 여자가 아니다. 그럼 그 여자는 어디로 사라진 것이지?”

강 형사는 일단 그 의문을 접어 두고 마지막 남자를 보았다.
이름은 오승정. 강북대학교의 학생이었다. 강 형사는 한심한 눈길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더욱 움츠러들었다.
“한마디만 합시다. 학생 신분으로 여기 올 곳입니까?”
“죄, 죄송합니다.”

오승정은 고개를 푹 숙이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총소리는 들었다고 했지요? 바로 내다보았습니까?”
“아니오. 그게 총소리인 줄은 몰랐어요. 그런데 아래층에서 경찰 아저씨 소리가 시끄럽게 들리기에 총소린 줄 알고 내다보던 중이었지요.”
권영미가 떠벌이며 대답했다.

“다른 소리를 들은 것은 없습니까?”
역시 없다는 대답이었다.
사람들의 신원에는 모두 이상이 없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그때 한 경찰관이 최 경감에게 보고하기 위해 왔다.

“경감님, 106호실에 누군가 머물렀던 흔적이 있습니다.”
“뭐야!”
그 소리에 더 놀란 것은 강 형사였다.
곧 여관 종사자들이 불려왔다.
“에구, 난 모르오. 난 내실에서 자고 있었어요.”
뚱뚱보 여주인은 손을 내저으며 부인했다. 교환 겸 경리인 미스 조도 아는 바 없다고 딱 잡아뗐다. 그러나 박철호는 틀렸다.

그는 강 형사가 물어보기도 전에 벌써 몸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이마에서는 식은땀마저 주르르 배어 나왔다.
“그건 누구였지?”
강 형사는 이미 확신을 가졌다. 박철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툭 튀어나온 광대뼈가 더욱 솟아오른 것처럼 보였다.
“저, 저……”

“엉뚱한 변명일랑은 늘어놓을 생각을 마!”
강 형사의 호통에 그는 더욱 얼이 빠져버렸다.
“저, 그, 그렇습니다. 바로 그 여자였습니다.”
“그 여자?”
강 형사가 씩 미소를 지었다.

“그 여자는 어디 있나?”
“가, 가 버렸나 봅니다.”
박철호의 이마에서는 땀이 주르르 흘러나왔다.
“가 버리다니? 언제?”
“제가 형사님과 올라갔을 때…”

“뭐라고? 너는 나하고 같이 올라오지 않았잖아!”
“저, 저, 사실은 급한 일이 있다고 해서…”
그는 더욱 당황해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그러나 속으로 더 당황한 것은 강 형사였다. 눈앞에서 범인이 사라져 버린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그는 울화가 치밀어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처음부터 들어오지 않았다고 했다 이거야?”

“예.”
그러나 그건 더욱 이상했다.
“다른 이유가 있는 거야.”
강 형사는 박철호를 더욱 의심스런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5. 야수들의 잔치

“장배 형님, 큰일 났습니다. 형주가 달아났습니다.”
얼굴이 심하게 얽은 친구가 황금 살롱의 내실로 뛰어들며 외쳤다.
“임마, 그게 뭔 소리야?”

눈꼬리가 길게 찢어진 사내가 곰보의 앞을 가로막고 물었다.
“큰형님은요?”
“큰형님이고 뭐고 간에 나한테부터 말해 봐.”
“자하문에서 일하는 철호가 전화를 줬는데 갑자기 경찰이 와서 형주에게 돈을 맡겨 도망치게 했다는데 그 녀석이 바로 여기로 안 온 걸 보면 내뺀 게 아니고 뭐겠습니까?”

“이런 제기랄! 뭐하다 그렇게 됐대?”
“모르겠어요. 총소리가 났다고도 하던데...”
“총소리?”

최장배는 그 소리에 얼굴이 흙빛이 되었다.
“혹시 다른 곳에서 낌새를 챈 기습은 아니고?”
“그건 아니에요. 지금 자하문 앞은 경찰로 북적북적합니다.”

“형님은 지금 여기 안 계시고 미장동 용궁 살롱에 계시다. 내가 여기서 전화를 드릴 테니까 너는 빨리 그리고 달려가서 자세히 보고 드려라.”
곰보는 더욱 사색이 되어 살롱에서 빠져나갔다.

“형주라니? 그 미남이 무슨 일을 당했어요?”
황금 살롱의 주혜선 마담이 장배의 팔을 감으며 물었다. 눈가에 약간의 주름으로 보아 30대 후반이 다 되었다는 것을 알 수는 있었으나 아직도 미색이 고운 여인이었다.

“놔! 지금 형주 따위가 문제가 아니야.”
“왜애?  무슨 일인데 그래?”
주마담은 장배의 가슴을 쓰다듬으며 물었다.

“시끄러!”
장배는 거칠게 주 마담을 밀어내더니 전화기를 잡았다.
“나 장배요. 우리 형님이 거기 계시지요? 긴급 상황이 발생했다고 알려 주십시오.”

장배는  잠시를 참지 못하고 수화기를 든 채 왔다 갔다 하며 정신이 하나도 없어 보였다.
“형님! 형주가 달아난 모양입니다.  자세한 보고는 그리로 간 곰보가 해 드릴 것입니다만  빨리 무슨 조치가 필요할 듯합니다.”
장배는 이마에서 땀을 닦으며  형님의 지시를 기다렸다.

예, 예.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장배는 전화를 내려놓더니 그 길로 밖으로 뛰어나갔다.
“대체 무슨 일이냐니까?”

주 마담이 등 뒤로 외쳤지만 장배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아이, 궁금해라. 형주란 친구가 도대체 뭘 했기에 장배가 저렇게 쩔쩔맬까?”
주 마담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옳아! 미스 박에게 물어봐야겠다.”

주 마담은 형주와 가장 친하게 지내는 살롱의 호스티스인 박정자를 불렀다.
“미스 박, 너 형주라고 알지?”
“형주 씨요?”
“그래, 형준지 행준지 하는 그치 말야.”

“그런데 왜요? 도망이라도 쳤어요? 나 외상 준 거 없어요.”
“누가 너보고 돈 물어내라고 하더냐? 그게 아니고  그치 뭐하는 친군지 너 좀 아냐?”

“알긴 뭘 알아요? 언니 기둥서방이나 마찬가지지.”
박정자는 별 걸 다 물어본다는 듯이 입을 삐죽이 내밀고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그래도 하룻밤에 만리장성이라는데 나보다야  더 아는 게 있겠지?  말 좀 해봐.”

“왜 그래요? 경찰이 찾기라도 한답디까?”
“찾는 게 다 뭐냐? 아예 잡아갔다더라.”
주마담은 행여 무슨 소리가 나올까 하여 부풀려서 말을 했다.
 “예에?”

박정자의 눈이 왕방울만 해졌다.
“그럼 경찰이 여기도 찾아올 게 아니에요? 재수 옴 붙었네!”
“그러길래 내가 묻는 것 아니냐? 뭐 들은 것 없어?”
“정말 없어요. 얼마나 얼음 같은 사낸데요? 잠꼬대도 안 해요.”
“얼음 같기는? 아침에 네가 배웅하는 표정 보니까 밤새 열두 번두 더 죽었다 살아난 것 같더라.”

“그거하고 무슨 관계유?”
미스 박이 곱게 눈을 흘겼다.
“그건 그렇다마는 큰일이다. 최근에 이상한 일 없었니?”
“혹시......”

“혹시 뭐?”
“아니에요.”
“뭔데?”
“아니라니까요!”
박정자는 되려 큰 소리로 화를 내고는 안채 쪽으로 들어가 버렸다.
어쩌다 잡혀갔을까? 혹시 사람이라도 죽인 건 아닐까? 그 자의 싸늘한 얼굴로 미루어 보아 능히 그러고도 남을 만한데......

정자는 사흘 전 밤의 일을 떠올리고 있었다. 새벽 2시경 자신의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나와 보니 구형주였다.
“좀 자고 가겠어.”

이미 그런 부탁을 거부할 단계는 넘어 있었기에 정자도 스스럼없이 받아들였다.
“어디서 바람피우다가 생각이 나서 오는 길이야?”
정자는 싫지 않은 투정을 부리며 형주에게 매달렸다.
“바람?”

형주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내가 오입을 하지 않았다는 증거를 보여주지.”
그러면서 형주는 웃통을 벗어젖혔다. 근육질의 단단한 상체가 드러났다.
그는 그날 밤 여느 때보다 정열적으로 정자를 사랑해 주었다. 그를 안 것이 그리 짧은 시간의 일은 아니었지만 그때서야 그 의 멋진 진면목을 보는 것 같았다.

그전까지야 정자가 그에게 갖고 있는 기억이라는 것은 그저 길거리 깡패 정도의 인식에 불과했으나 그 이후로는 자신이 의지할 수 있는 하나의 사내로 인정되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더구나 그날 밤 그가 한 말은 정자의 귀에서 떠나지 않고 있었다.
“너는 정말 멋진 여자야. 조금만 기다려 보라고. 내가 이 생활을 청산하게 해 주지.”
“흥, 그건 또 무슨 농담이야?”

“농담이라니! 내 말만 잘 들으면 돼. 너 얼마면 여기서 풀려나니?”
“7000만 원.”
정자는 일부러 액수를 불려서 말해 보았다. 형주는 그 말에 놀라지도 않고 무뚝뚝하게 말했다.

“1주일이면 된다. 1주일 후면 나하고 살림을 차리자.”
정자가 그 말을 꼭 믿은 것은 아니다. 그렇게 시작된 관계들이 어떻게 끝나는가를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잠시만이라도 웃음과 몸을 파는 이런 곳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그의 말은 너무나 매력적이었다.

“그래, 무슨 일을 시키려는 거지? 시키는 대로 해 줄 테니까.”
형주는 그 말에 씩 웃으며 말했다.
“그거야. 시키는 대로만 하면 돼.”
그러나 오늘이 바로 그 1주일째 되는 날이 아닌가?

[작가소개]
이상우;  60여 년간 편집기자와 경영인으로 일한 언론인 겸 추리 소설가다. 한국일보, 서울신문, 국민일보, 파이낸셜뉴스 등 13개 언론사에서 편집국장, 대표이사 등으로 일했고, 스포츠서울, 스포츠투데이, 굿데이를 창간했다.

오랜 경험과 기록을 바탕으로  역대 정권의 언론 탄압과 견제, 정계의 비화를 다룬 저서와 소설이 4백여 편에 이른다. 특히 추리와 정치를 깊이다룬  소설가로 유명하다. 대한민국 문화포장, 한국추리문학 대상 등을 받았다. <신의불꽃>, <역사에 없는 나라>, <악녀두번 살다> <세종대왕 이도> 등 베스트 셀러가 있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