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할아버지의 보물을 찾아라

며칠 뒤 추 경감이 다시 서연이네 집으로 찾아왔다. 잔뜩 긴장한 모습이었다. 마침 서연이가 형준, 영희와 함께 라면으로 점심을 때우고 있을 때였다.
“대개 윤곽이 잡힌 것 같아.”

추 경감이 먼저 말을 꺼냈다.
“범인을 알아냈어요?”
모두 추 경감의 입을 쳐다보았다.
“범인은 아직 모르지만 왜 그런 짓을 했는가는 알 것 같아.”
“어떤 놈이 우리 할머니를....”

서연의 눈가에 갑자기 물기가 돌았다.
“이 집을 사려고 한 사람은 이 집에 묻혀 있을지 모르는 어마어마한 보물을 찾기 위해서야.”
“우리 집에 보물이 있다고요?”
서연이 놀라서 입을 딱 벌렸다.

“서연이 할아버지는 6.25전쟁 때 돌아가셨다고 했지.”
추 경감이 물었다.
“예. 피난을 갔다가 국군이 서울을 탈환했을 때 돌아왔다고 해요,”
“그런데 어떻게 돌아가셨어?”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서울까지 왔으나 이곳은 아직 인민군의 손에 있었기 때문에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고 해요. 고향이 수복되기를 기다리던 할아버지는 고향에 가서 죽어야 한다면서 할머니를 혼자 서울에 두고 이곳으로 오다가 고향에 도착하지도 못하고 포탄에 쓰러져 돌아가셨대요.“

“아마도 할아버지는 이 집에 남겨두고 피난 갈 때 못 가져간 보물이나 금붙이를 다시 찾으러 왔을 거야.”
“그러면 이 집에 그런 보물이 있다는 것을 알고 집을 사들이려고 했군요. 그렇다면 그놈이 범인 아닙니까?”

형준이 마치 자기가 범인을 찾은 듯이 큰소리로 말했다.
사실 서연이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기는 하지만 집에 대해서나 여기 살던 윗대 할아버지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조선조 숙종 때에 서울 사옹원 당상관으로 있던 선조 할아버지가 장희빈 사건에 연루되어 이곳으로 유배 온 뒤 여기 정착해서 도자기 굽는 일에 열중했다는 것만 알고 있었다.

며칠 뒤  서연은 형준이와 함께 광주군 문화원을 찾아가서 혹시 사옹원 할아버지의 기록이 있는지 알아보았다.
“숙종 연간에 이곳으로 온 장도산 공은 도공은 아니었으나 조선 도자기를 비롯한 서화등 문물에 특별한 지식과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는 기록이 군지(郡誌)에 남아 있어요. 장대감이의 후손들도 민속 문물, 특히 고서화 등에 관심이 많아 수집을 했으나 일제시대 거의 뺏기거나 헐값에 팔았다고 하더군,”

문화원장은 기록에 있지 않은 이야기를 들은 대로 알려 주었다.
“우리 광주에 있는 사옹원 분원에서 만든 백자가 세계적인 명품이라는 것은 이미 다 알려진 일이죠.”

원장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서연이 호기심이 갑자기 생겨 질문을 쏟았다.
“조선 백자가 고려자기보다 비싼가요?”
“하하하, 그런 문제에 간단한 정답은 없지요. 황진이와 장희빈은 누가 더 미인이냐 하는 질문과 같아요.”

“황진이가 더 미인 아닐까요? 지성적이고...”
형준의 말에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조선 백자 중에 제일 값이 비싼 것은 얼마나 가나요?”
서연이 다시 물었다.

“올해 샌프란시스코 옥션에서 조선 청화 백자 한 점이 4백18만 달러, 우리 돈으로 60억 원이 넘는 돈으로 낙찰되었다고 하더군요.”
“뭐요? 60억 원? 크기가 얼마나 되는데요? 누가 샀대요?”

서연이 여러 가지 질문을 한꺼번에 쏟아 냈다.
“영국의 워렌 부부가 가지고 있었는데 그 손자가 내놓았대요. 높이 40센티 정도이고, 아시아인이 샀다고만 신문에 났어요.”
“그게 조선 백자의 최고 가격이었나요?”
이번에는 형준이 물었다.

“아니죠. 1996년 뉴욕 크리스티 옥션에서는 조선 백자 한 점이 무려 8백42만 달러에 팔린 일이 있지요. 우리 돈으로 백억 원이 훨씬 넘나요?”
“예? 백억 원? 어떤 도자기이기에...”
서연이 놀라 입을 딱 벌렸다.

“철화 용춤 항아리 백자라고 하는데 구름 속에서 용이 춤추는 모양을 하고 있는 문양이 있대요. 이 작품은 17세기 때 이곳 광주 분원리 도자기요(窯)에서 구웠대요.”
“조선 백자가 그렇게 예술성이 높은 작품이라니 우리 조상의 솜씨가 정말 놀랍군요.”

형준이 감탄했다.
“그러나 세계 최고가의 도자기는 2005년 런던 소더비에서 경매된 청화자기로 무려 1천5백 68파운드, 2백88억 원에 팔린 작품이지요.”
“우와!”

두 사람이 동시에 비명을 질렀다.
서연과 형준은 문화원장으로부터 많은 옛이야기를 듣고 돌아왔다.
“그러니까 고서화 같은 값 나가는 문화재가 혹시 이 집에 남아 있지 않나 하고 골동품 도둑들이 한 짓이 아닐까?”
형준이 추리를 해 보였다.

“민속 문화재나 골동품에 관해서는 명섭이가 우리보다 훨씬 많이 알잖아.”
서연의 말대로 명섭은 문화재에 관한 공부나 아르바이트를 오랫동안 해 왔으니 그런 문제는 자기들보다 훨씬 앞서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물어 보자. 전화 해봐.”

서연이 형준이를 쳐다보았다. 형준이 곧 핸드폰을 연결했다.
“뭐야? 회사가 어디인데?”
형준이 난처한 표정으로 핸드폰에 답하고 있었다.
“나 지금 서연이 집 근처에 있거든. 그럼 내일 만나서 얘기해.”
형준이 핸드폰을 끊었다.

“왜? 먼 곳에 있대?”
서연이 궁금해 하자 형준이 대답했다.
“큰아버지가 하는 에스앤 뭐라는 회사의 현지 공장에 놀러갔대.”
“응. 알았어. 에어컨 설치해 주는 설비회사야. ‘에스앤케이’라고 큰할머니와 큰아버지 성의 이니셜을 따서 세운 회사래. 집에 에어컨 같은 것 설치해 주는 서비스 회사 있잖아...”

범인의 소식은 감감한 채 2주가 흘렀다. 서연이 광주 남종 경찰서 지훈 형사에게 전화를 해서 그 동안의 진정 상황을 물어 보았다. 그러나 아직 이렇다 할 단서를 잡지 못했다고 했다.

“도대체 수사를 하기는 하시는 거예요?”
“학생. 무슨 그런 섭섭한 말씀을...”
“그렇지 않아요? 범인은 남자 2명. 전에 집을 팔라고 왔던 사람 신원도 파악했을 테고... 장독대를 뚫은 연장이 콘크리트 뚫는 포터블 천공기. 목장갑 한 켤레를 버리고 갔는데 거기DNA가 남아 있었고, 또 석현이 입 막았던 테이프에서 범인 지문 채취... 이만하면 단서가 충분 한 것 아니에요?”

서연이 항의하자 지훈 형사는 별로 대꾸를 않다가 느닷없는 질문을 했다.
“학생, 혹시 설비 기술자 중에 왼손잡이가 집에 다녀 간 일 없어요?”
“우리 집에 무슨 설비공사를 할 일이 있겠어요? 근데 그건 왜 묻나요?”
“예. 혹시나 해서요. 거기서 발견된 장갑이 왼쪽 것이 많이 닳았기 때문에 왼손잡이가 쓴 것 같았거든요.”

 

[작가소개]

이상우; 추리소설과 역사 소설을 50여 년간 써 온 작가다. 60여 년간 일간신문 기자, 편집국장, 회장 등 언론인 생활을 하면서 기자의 눈으로 본 세상사를 날카롭고 비판적인 필치로 묘사해 주목을 받았다. 1983년 한국추리작가협회를 창설하고 현재 이사장을 맡고 있다. 역사와 추리를 접목한 그의 소설은 4백여 편에 이른다. 한국추리문학 대상, 한글발전 공로로 대한민국 문화 포장 등 수상.


50판 까지 출판한 초베스트셀러 <악녀 두 번 살다>를 비롯, <신의 불꽃>, <여섯 번째 사고(史庫)> <역사에 없는 나라>, <세종대왕 이도 전3권> <정조대왕 이산>, <해동 육룡이 나르샤>, <추리소설 잘 쓰는 공식>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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