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클‧해리 “인종차별도 있었다···우린 서로 구원”

지난 7일(현지시간) 방송된 인터뷰에서 영국 해리 왕자·부인 메건 마클 왕자비가 미국 방송인 오프라 윈프리(오른쪽)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뉴시스]
지난 7일(현지시간) 방송된 인터뷰에서 영국 해리 왕자·부인 메건 마클 왕자비가 미국 방송인 오프라 윈프리(오른쪽)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뉴시스]

[일요서울] 영국 해리 왕자의 부인인 메건 마클 왕자비가 왕실에서의 생활에 대해 “살아남을 수가 없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왕족 내 인종차별 실태를 폭로하기도 했다. 해리 왕자 부부는 지난해 1월 영국 왕실에서 독립해 현재 미국에서 살고 있다.

타블로이드지, 마클 향한 인종적 비방심각

왕실에 도움 요청했으나 원래 그런 것답변 나와

마클 왕자비는 지난 7일(현지시간) 미 CBS에서 방송된 오프라 윈프리와의 인터뷰에서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았다”며 어머니인 다이애나 비를 잃은 해리 왕자에게 이런 말을 하는 건 “정말 부끄러운 일이었다”고 말했다.

마클 왕자비는 “그건 정말 무섭고 끝나지 않는 생각이었다”며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기관’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고 말했다.

그는 ‘자살을 생각한 건가?’라는 윈프리의 질문에 “그렇다. 모든 일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고 답했다.

해리 왕자는 마클 왕자비를 향한 비방을 보며 “역사가 반복되고 있었다”고 말했다. 영국 타블로이드지의 과도한 관심과 사생활 침해로 어머니를 잃었던 사건을 시사하면서다.

해리 왕자는 마클 왕자비의 경우 인종 문제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까지 더해져 다이애나 비의 상황보다 “훨씬 더 위험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그는 왕실에 타블로이드지의 보도를 막아 달라고 요구했으나 “원래 이런 것”이라는 대답을 들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의지할 곳 없어”

해리 왕자는 ‘자살 충동을 느끼는 마클 왕자비를 어떻게 대했는가’라는 질문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우리는 아무런 준비도 하지 못했다”며 “가족 중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이걸 가족들에 말하기 부끄러웠던 감정도 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는 의지할 곳이 없었다”며 “하지만 이건 왕실 구성원들이 모두 그렇다. 바꿀 수 없다. 우리 모두 겪어 본 일이다”라고 덧붙였다.

해리 왕자는 특히 타블로이드지의 공격에 자신 부부가 무방비하게 공격당했다고 말했다.

그는 “나는 왕실 가족이 타블로이드지의 공격을 얼마나 두려워하는지 잘 알고 있다”고 했다. 그는 왕실과 영국 타블로이드지 사이에서는 “모종의 계약”이 있다고 말했다. 왕실을 취재할 수 있는 접근권을 주는 대신 긍정적인 보도를 약속하는 것이다.

그러나 마클 왕자비의 인종 문제를 공격하는 타블로이드지는 이미 선을 넘은 수준이었다고 해리 왕자는 말했다.

‘마클 왕자비가 왕실에서 독립하기 위해 모든 걸 꾸몄다는 보도도 있었다’는 윈프리의 말에 마클 왕자비는 “이게 얼마나 말이 안 되는 이야기인가?”라며 “나는 모든 걸 해리 왕자에 맡겼다”고 했다.

해리 왕자는 ‘마클 왕자비가 아니더라도 왕실에서 독립할 수 있었을까?’라는 질문에 “아니다.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나는 덫에 걸려 있었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아버지(찰스 왕세자)와 형(윌리엄 왕세손)은 여전히 시스템에 갇혀 있다. 그들은 떠날 수 없다. 그 부분에 대해 상당히 안타깝다”고 부연했다.

해리 왕자는 또 찰스 왕세자와 연락이 끊긴 상태라고 말했다.

해리 왕자 부부는 넷플릭스, 스포티파이 등 미국 콘텐츠 업체들과 상당한 금액의 계약을 마쳤다. 이와 관련해 일각에서는 ‘돈을 쫓는 귀족’이라는 비판도 나왔다.

해리 왕자는 “결코 의도한 게 아니다”며 왕실의 지원이 모두 끊겨 경호 비용이 필요했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마클 왕자비는 왕실에서의 자신을 ‘인어 공주’에 비유하며 “왕자와 사랑에 빠진 뒤 목소리를 잃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해리 왕자의 독립 결정으로 “목소리를 되찾았다”고 했다.

‘당신과 왕자와의 이야기는 덕분에 행복한 결말인가?’라는 질문에 마클 왕자비는 “그렇다”고 했다.

해리 왕자는 ‘당신은 마클 왕자비가 당신을 구했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의문의 여지가 없다”고 했다.

이에 마클 왕자비는 “해리 왕자는 우리 모두를 구한 사람”이라며 “하지만 그 역시 구원 받길 바랐다”고 덧붙였다.

유명인사들

‘응원 메시지’

이 같은 폭로는 전 세계적인 이슈로 떠올랐다. 유명인사들은 앞다퉈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다.

테니스 여제 세리나 윌리엄스는 트위터를 통해 이번 인터뷰가 “메건이 겪은 고통과 잔인함을 보여준다”고 밝혔다. 윌리엄스는 마클 왕자비와 절친한 사이로 알려졌다.

윌리엄스는 언론이 여성과 유색인을 악마처럼 몰아가고 무너트리기 위해 비난 보도를 일삼는다는 걸 알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악의적이고 근거 없는 가십과 타블로이드 저널리즘을 타도해야 하는 우리의 의무를 인식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취임식에서 역대 최연소로 축시를 낭독해 스타가 된 어맨다 고먼도 힘을 보탰다.

고먼은 “메건은 새로운 시대에 왕가의 변화와 재건, 화합을 위한 가장 큰 기회였다. 그들은 단지 메건을 학대했을 뿐 아니라 기회를 놓쳤다”고 트윗했다.

미국이 배출한 테니스 슈퍼스타 빌리 진 킹은 “메건과 해리가 밝힌 내용 중에는 정신건강 문제와 관련한 메건의 투쟁도 포함돼 있다. 메건의 정직함이 그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더 많은 도움을 줄 수 있기를 바란다”고 트윗했다.

영미 언론들은 마클 왕자비의 이번 발언을 “폭탄선언(Bombshell)”이라고 평가했다.

영국 조간들은 영국 시간으로 지난 8일 오전 1시 방영된 해당 인터뷰를 일제히 일면에 실었다.

영국 공영방송 BBC의 왕실 담당 기자 조니 다이몬드는 “첫아기 피부색이 얼마나 어두울지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는 주장은 매우 충격적이다. 왕실에 있어서 ‘최악의 시나리오’ 영역으로 향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영국 총리는 물론 미국 백악관 대변인도 인터뷰와 관련해 입장을 밝혔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지난 8일 브리핑에서 ‘왕실의 인종차별 문제’와 관련한 질문을 받은 뒤 “왕실 가족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들과 관련해 그동안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았다. 오늘도 이 같은 원칙을 고수하겠다”며 답변을 피했다.

다만 “나는 늘 여왕이 영국과 영연방 국가에서 수행하고 있는 통합적인 역할에 경외를 표하고 있다”고 말했다.

백악관에서는 젠 사키 대변인이 나섰다. 그는 “이제 메건 마클은 그저 한 명의 시민이며, 해리도 마찬가지다”며 “이 같은 점에서 누구든 나서서 정신건강과 관련한 자신의 투쟁을 공개하고 용기를 내서 자신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는 건 미국의 대통령이 추구하는 방향과 일치한다”고 언급했다.

그는 “우리는 영국 국민과 강력하고 지속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영국 정부와 다양한 문제를 놓고 특별한 파트너십을 맺고 있으며 앞으로도 변함이 없을 것임을 다시 강조한다”고 부연했다.

지난 2018년 5월 결혼한 두 사람은 할리우드 배우와 영국 왕자의 만남으로 언론의 열띤 관심을 받았다.

결혼 이후 이들은 줄곧 타블로이드 언론의 악성 보도로 인한 정신적인 고충을 호소해 왔다.

결국 지난해 1월 “왕실 고위 구성원에서 한 걸음 물러나 재정적으로 독립하겠다”고 선언했다. 영국 언론은 이 사태를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를 뜻하는 ‘브렉시트’에 빗대 ‘메그시트(Megxit)’라고 불렀다.

지난달 영국 버킹엄궁은 성명을 통해 해리 왕자 부부가 “여왕에게 임무를 수행하는 왕실 일원으로 복귀하지 않겠다고 확인했다”고 못 박았다.

이들은 현재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거주하고 있으며 둘째 딸 탄생을 앞두고 있다.

한편 영국 버킹엄궁은 해리 왕자·메건 마클 왕자비 부부의 왕실 내 인종차별 폭로 인터뷰와 관련해 ‘가족 문제’라는 취지로 선을 그었다. 아버지 찰스 왕세자는 아들 부부의 폭탄선언 이후 처음으로 소화한 공개 일정에서 여유로운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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