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여 주고 돈 많이 준다?’ 꾐에 빠진 사람들

위 사진은 본문 내용과 연관 없음 [사진=뉴시스]
위 사진은 본문 내용과 연관 없음 [사진=뉴시스]

[일요서울ㅣ김혜진 기자] 외딴섬 인근 고기잡이 어선에서 일하는 선원들의 부당한 대우 문제는 꾸준히 제기돼 왔다. 최근 일요서울 취재 결과, 선원 고용 과정에서 숙식비 등의 비용을 터무니없이 책정해 빚을 지게 만드는 취업 사기 사례가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지적 능력이 부족해 계약 관계를 이해하기 어려운 노숙인·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행하는 이 같은 수법은 여전히 성행하고 있다. 현재 노동시장에서 배제된 이들을 대상으로 제대로 된 일자리와 주거 제공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 “5만 원짜리 물건이 몇십만 원으로… 갑판장 욕설‧폭행도”
- “노동시장에서 배제된 노동력… 정부, 양질 일자리 제공해야”

지난 1월 중순 서울역에서 생활하던 노숙인 남모(42)씨는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아는 사람의 소개로 전남 목포에 있는 한 직업소개소를 찾았다. 직업소개소는 남 씨에게 새우잡이 뱃일을 할 수 있도록 선주와 연결해줬다. 선주와 직업소개소 소장, 남 씨는 연봉 3800여 만 원으로 책정된 계약서를 한자리에서 작성했다. 

본격적으로 새우잡이 뱃일을 하기 위해 전남 신안의 한 섬으로 보내진 남 씨는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기 전 섬에서 며칠간 숙식을 해야 했다. 또 일할 때 입을 옷가지와 신발 등도 함께 구매해야 했다. 남 씨는 “가진 돈이 없으니 일할 때 쓸 작업복, 신발을 사거나 밥을 먹거나 잠을 자기 위해선 직업소개소에서 돈을 빌려 써야 했다. 당시에는 이해하지 못 했지만 필요했기에 사야 했다”며 “직업소개소 소장한테 전화해서 필요한 물건이 있다고 사 달라고 하면 원가에 몇 배를 덧붙인 가격의 물건을 보내 줬다. 예를 들어 5만 원어치를 사서 보내달라고 하면 그 뒤에 몇십만 원이 더 붙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섬에서 숙식 생활을 하며 바다로 나가기 전 준비 작업 일을 하던 남 씨는 중노동에 시달려야 했다. 그는 “하루 12시간 정도 일을 하다 보니 몸이 너무 아팠다”며 “물때 작업을 할 때는 고정적인 시간을 정해놓고 하는 게 아니어서 오전 오후가 따로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일할 때 갑판장이 욕설을 하거나 발로 차기도 하고, 휴대폰을 빼앗길 뻔한 적도 있었다”고 토로했다. 남 씨는 일을 그만두고 싶었지만 선주에게 이를 요구하는 것조차 어려워 지인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한 달 만에 가까스로 나올 수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선주가 남 씨를 목포 시내로 보내자 처음 일자리와 숙식을 제공해 준 직업소개소 소장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남 씨는 “직업소개소 소장이 그동안 진 빚 1000만 원을 갚아야 서울로 돌아갈 수 있다고 했다”며 “그제서야 옷을 살 때 몇 십 만 원이 붙은 가격과 숙식비가 다 전부 빚으로 불어난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그 돈을 바로 갚지 못했기 때문에 다음 배를 타기 위해 하루 동안 모텔에 감금돼 있기도 했다”고 전했다. 

이후 신안의 또 다른 섬으로 보내진 남 씨는 머물던 섬 파출소에 신고를 했고 숙소를 몰래 빠져나와 파출소장을 만나 자초지종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해당 섬의 파출소장 유모 경위는 “(남 씨 말에 따르면) 직업소개소에서 1000만 원가량의 빚이 있어 그걸 갚아야 서울로 갈 수 있다고 들었다. 만약 갚지 못하면 보증을 설 사람이라도 대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파출소에서) 새우잡이 배 선주와 해당 내용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서울로 돌려보내게 됐다”고 설명했다. 

직업소개소-노동자… 이상한 계약 관계

일요서울 취재를 정리하면, 새우잡이 배 선주는 직업소개소에 수수료를 내고 직업소개소로부터 선원을 소개 받는 구조다. 선주는 선원에게 계약서에 명시된 금액을 따로 지급하는 방식이다. 다만 선주는 비용을 선원 당사자가 아닌 직업소개소에게 보내주고 직업소개소가 직접 선원에게 임금을 지불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해당 새우잡이 배 선주는 일요서울과의 통화에서 “선주가 직업소개소에 선원 모집을 위한 수수료를 내고, 또 선원에게도 따로 임금을 지급하는 방식”이라며 “선원의 임금을 직업소개소에 주면 소개소가 알아서 선원에게 입금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이번 남 씨 같은 경우도 한 달 동안 일한 비용을 직업소개소로 보냈으나 본인이 (직업소개소를 통해) 받았는지는 파악하기 어렵다”며 “직업소개소는 선주에게 수수료를 받았으니 기간을 다 못 채운 선원이 도망가 버리면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남 씨를) 목포 시내에서 기다린 게 아닌가 싶다. 직업소개소와 선원 간의 계약 관계는 잘 모른다”고 잘라 말했다. 

한편 해당 직업소개소 소장은 남 씨에 대해 “내 돈 1000만 원을 빌려 쓰고 도망간 사람”이라며 “빌려준 비용은 섬으로 갈 때 차비와 여관 생활 등을 하며 가져간 것이다. 배에서 일을 해서 갚기로 했는데 오히려 억울하다”고 말했다.

‘숙식비, 차비 등으로 1000만 원을 빌려준 것은 터무니없는 금액 책정이 아닌가’라는 질문에 그는 “직업소개소에서는 선원이 일을 해서 돈을 받기 전까지 먹고 자는 비용 등을 빌려준다. 연봉을 받으면 그걸 차감하고 지급하는 방식”이라며 “3000만 원을 쓰는 사람도 있다. 본인들이 지장 찍고 비용을 빌린다는 계약을 한 장부도 있다”고 반박했다. 

황성철 홈리스행동 활동가는 “2014년 ‘염전 노예’ 사건이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당시 피해자의 이야기와 2021년 현재 남 씨의 이야기는 별반 다르지 않다”며 “현재도 영등포역이나 서울역 등 역전에서 노숙인을 대상으로 ‘돈 벌러 가자’ ‘일자리가 있으니 가자’라며 접근해 목포역 인근 직업소개소로 데려가는 일도 비일비재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들을 여관에 묵게 하면서 술집도 데려가고 유흥을 제공하는 경우도 있었다. 하룻밤에 50만 원, 100만 원의 비용이 선불금으로 남으면 이는 고스란히 피해 당사자의 빚이 된다”며 “선불금을 다 갚기 전엔 도망도 못 가게 한다. 그렇게 1년을 일해도 수중에 들어오는 돈은 푼돈 뿐이니 갈 곳 없는 겨울에는 또 다시 직업소개소를 찾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황성철 활동가는 “법적 자문에 따르면 (남 씨가 사용한) 1000여만 원에 대한 비용 처리 영수증을 직업소개소에 요청해 받아봐야 할 필요가 있다”며 “근로계약서가 직업소개소나 선주 측에 유리하게 작성됐거나 (남 씨가) 이용당하는 형태로 적혀있다면 문제가 될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노숙인·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행해지는 이 같은 문제는 과거에도 있었고, 앞으로도 계속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며 “그 이유는 공적 지원 체계가 노숙인들에게 필수적인 주거·노동의 권리를 충족시켜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이 부재하다보니 결국 이를 악용하는 ‘노예 계약’ 형태가 생겨나고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