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이유 없는 자살

정필대의 부검 결과는 자살로 나왔다.
정계에 화려한 데뷔를 꿈꾸던 인물이 자살이라고?
부검 결과를 보면서 추 경감은 납득할 수 없다는 투로 말했다.
“그렇습니다.”

강 형사도 맞장구를 쳤다.
“여관에서 빠져나간 여인이 범인임에 틀림없습니다.”
“그건 여자가 아닐지도 몰라.”
추 경감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예?

그곳에서 발견된 머리카락을 수거하여 조사해 보았어.  20대 중반의 남자. 혈액형은 A형으로 판별이 되었단 말야.
“그, 그럴 리가......”

“자네의 그 단정을 먼저 짓고 추리하는 버릇이 여기서  또 실수를 한 거야.
그 방에서 지문은 검출되지 않았습니까?“

“여러 지문이 검출되었지.  종업원들의 것을 제외하고도 다섯 개의 다른 인물들 지문이 발견되었어. 그중 둘은 여자, 셋은 남자였는데 우리가 확인할 수 있었던 인물은 구형주라는 인물이야. 폭력전과 2범으로 현재 나이는 27세이고 혈액형은 A형. 활동지역은 자하문장을 포함하여  동삼동, 미상동, 운정동 등인 친구지.”

“그렇다면 도망친 인물은 바로 그 구형주라는......”
“그럴 가능성이 높지.”
“면목 없습니다.”
강형사가 고개를 떨구었다.

“아니야. 이건 내 잘못도 커. 사건을 너무 단순하게 생각했단 말야. 미행을 해 달라는 그 남자가 죽을 줄 누가 알았어! 그의 아내 부탁을 너무 가볍게 봤던 것 같아.  자네한테 누군가 한 사람을 더 붙여 주었어야 했던 거였어.”
추경감은 답답한 듯이 일어나면서 담배를 꺼냈다.

“문제는 그 종업원이야. 박철호라는⋯ 의도적으로 그 사실을 은폐하려고 했단 말야. 왜 그랬을까?”
“지금 종로서에 연행되어 있는 것으로 알고는 있습니다만.....”
“풀려나오면 자네가 한 번 더 만나 줘야겠어.”
“그러지요.”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최상이라고 했는데 벌어질 것이라는 암시를 받은 일을 막아 내지를 못했으니 부인을 무슨 낯으로 대하겠나?
그 말은 강 형사에게가 아니라 추 경감 자신에게 하는 말과 같았다.
“부검 소견서에는 무어라고 되어 있습니까?”

“직접적인 사인은 좌측 두개골 파열로 되어 있고 그 원인은 총상, 사용된 흉기는 현장에서 발견된 것과 같은 콜트 32구경. 약물 복용을 하였거나 반항한 흔적이 없고  두피 부위의 화상과 왼손에서 나온 화약 흔적으로 보아 스스로 발사한 것이 틀림없다고 되어 있네. 권총에선 다른 사람의 지문을 찾지 못했어.”
“그건 말도 되지 않아요. 여관방에 혼자 들어가서 홀랑 벗고 권총 자살이라니?
내 말이 바로 그거야.“

“그리고 좌측 머리가 깨졌다면 그것도 이상한 일이 아닙니까?”
“그건 그렇지 않아. 정필대는 왼손잡이였어. 그러니까 그게 정상이지. 타살된 것이라면 정필대를 잘 아는 이가 죽였다는 증거가 되기도 하는 거야.”
“그 총은 어디서 난 것입니까?”

“총의 넘버 부위를 줄칼로 밀어버렸더군. 현재 과학수사연구소에서 흔적을 찾고 있기는 한 모양인데  아무래도 무리인 모양이야.”
“일단 그 점에서도 자살일 리는 없습니다. 생각할 수 있는 최선의 경우는 정필대가 죽음으로 몰릴 만큼  긴박한 상황에 있었던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
추 경감은 힘없이 말하며 시계를 내려다보았다.
“이런!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군. 퇴근길에 미안하네만 나와 함께 정필대의 집으로 가 보지 않겠나?”
“무슨 말씀이십니까? 당연히 가 보아야지요.”

강형사는 앞장서서 문을 열었다.
표면적으로 이 사건은 종로서의 최 경감 관할 하에 놓여 있었다. 때문에 추 경감은 강 형사를 정필대의 집으로 데려가는 것을 주저했던 것이다.
정치 지망생의 의문의 죽음답게 상가 집은 시끌벅적했다. 대문 앞에 도착하자 벌써 국화 향내가 코를 찔러왔다. 그렇게 큰 집은 아니었다. 지은 지 오래된 낡은 건물에 비해 정원이 꽤 넓고 잘 가꾸어져 있었다. 이미 집안은 문상객으로 꽉 들어찼는지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뜰에서도 여기저기 자리가 펴져 있고 사람들이 듬성듬성 앉아 있었다.

추 경감과 강 형사가 어린 상주와 맞절을 했다. 열 살도 채 안 돼 보이는 사내아이가 공손히 무릎을 꿇고 앉았다. 천진스런 얼굴이 그렇게 슬프게 보일 수가 없었다. 추 경감은 콧잔등이 시큰함을 느끼며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옆에는 친적인 듯한 중년 사내와 소복 차림의 젊은 여인이 있었다.

“부인은 어디 계신가요?”
의례적인 인사가 끝나자 추 경감이 그들에게 물었다. 분명 있어야 할 송희가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예? 무슨 말씀인지요?”
“고인의 사모님 말씀입니다. 송희 여사⋯”

“바로 이 분이 제수씨, 그러니까 동생 필대의  안사람이오.”
중년 사내가 갑자기 눈을 흡뜨며 말했다. 어떤 어중이떠중이들이 초상집에 뭔가 뜯어먹으러 온 줄 안 모양이었다.
추 경감은 깜작 놀라 다시 부인을  바라보았다. 자신을 찾아온 송희와는 어느 한 구석도 닮은 곳이 없었다.

그때는 정장을 하고 화장을 했었다고 하지만 그 얼굴을 못  알아볼 리가 없었다. 천하의 추 경감이라도 이번에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저, 부인,  혹시 일전에 제 집으로 방문을 오신 적이 있습니까?”
추 경감은 질문을 해 놓고도 얼간이 같은 말을 했다고 생각했다.
“예? 제가요? 선생님이 뉘신지도 모르는데......”

여인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겁에 질린 표정으로 말했다.
“놀라지 마십시오. 저는 시경 강력반의 추 경감이라고 합니다.”
“조사는 벌써 다 해 갔는데 또 무슨 일이오?”
정필대의 형 용대가 송희를 감싸듯이 나서며 말했다.
“이건 조사가 아닙니다.”
추 경감이 나직이 말했다.

“두 분은 저와 잠깐 다른 곳에서 이야기를 나눌까요?”
그들은 추 경감을 조용한 방으로 안내했다.
일을 하는 친척들이 잠깐씩 눈을 붙이는 골방 같은 곳이었다.
나머지 방은 대소를 가릴 것 없이 손님들로 가득 차 있었다.
저는 필대의 형 용대라고 합니다.

정용대는 인사를 하며 명함을 내밀었다. 상복인 검은 싱글 속에서 명함을 꺼내는 것을 보니 어지간히 극성스런 장사꾼인 모양이군 하고 강 형사가 생각했다. 공화상사 대표이사라고 되어 있었다.
“제수씨에게 무슨 일이?”

정용대는 성급히 물어왔다.
“저한테 사모님을 자처하는 사람이 일전에 찾아온 적이 있습니다.”
“예?”
송희가 놀라서 반문했다.
“저는 선생님을 처음 뵙는데요?”
친척이나 친지, 친구의 남편,  누구라도 좋습니다만 아는 경찰관이 있습니까?
송희는 머리를 가로저었다. 작고 귀엽게 생긴 여자였다. 어딘가 서구적인 미모를 지니고 있던 가짜 송희와는 너무나 대조적으로 생겼다.

추 경감은 자신이 도깨비에게 홀린 것 같은 황당한 생각이 들었다.
추 경감은 찾아왔던 여인의 모습을 자세히 설명했다.
“짐작이 가는 사람이 있습니까?”
둘 다 전혀 아는 바가 없다고 했다. 오히려 놀란 것은 강 형사였다.
“경감님, 저는 본 적이 있습니다. 바로 그 여관으로 정필대 씨와 함께 들어간 그 여자 같습니다.”

“뭐라고?”
추 경감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다면 이건 철저히 계획된 사건이잖아!”
“잠깐, 두 분이 나누는 말씀이 무슨 뜻인지요?”
정용대가 물었다. 추 경감은 그간의 경위를 자세히 설명하였다. 어떻게 가짜 송희의 농락에 말려들었는가를 설명한다는 것은 추 경감으로서는 참으로 쑥스러운 일이었다. 그 점은 강 형사도  마찬가지였다.

“그렇다면 필대는 경찰이 지켜주는 가운데 살해당했다는 거군요. 당신들은 자살이라고 주장하지만...... 걔는 자살할 이유가 없어요.”
정용대가 비웃는 투로 말했다.
“그 점에 대해서는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강형사가 공손하게 사과의 뜻을 표했다.

“그보다 이미 사태가 이렇게 된 이상  그 여자가  누구인지를 밝혀야만 하겠습니다.”
“그렇지요. 밝혀야지요.”
송희가 부르르 떨며 말했다.
 “저 이런 말씀 드리긴 뭣합니다만...... 저 혹시 부군과 가까이 지낸 여자분이...... 오해는 마십시오. 가령 사무실의......”
강 형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댁은 내 남편이 어떤 년 앞에서 벌거벗고 있다가  총에 맞았다고 생각하는 모양이군요.”
송희가 발칵 화를 내면서 강 형사를 돌아보았다. 그녀의 작고 핏기 없는 입술이 바르르 떨렸다.
“아니, 아니, 그런 것은 아닙니다. 다만⋯”

다만이라고는 했으나 사실 할 말은 없었다. 강 형사는 얼굴이 벌게져서 송희의 시선을 피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닙니다. 사실 아직 그 여자가 우리의 적인지 친구인지 판단하기는 이르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건 또 무슨 소립니까?”
정용대가 물었다.

“어쩌면 그 여자는 우리에게 도움을 주려고,  즉 정필대의 죽음을 막고자 찾아왔던 것인지도 모르고요. ”
아니면 경찰에 뻔뻔하게 도전하여  이겨 보겠다는  생각으로 찾아왔던 것인지도 모르고요.
정용대는 여전히 비꼬는 말투였다. 사실 강 형사의 뇌를 스치는 생각도 그것이었다.
“엄마, 손님이 찾으셔요.”

조금 문이 열리며 상주인 꼬마가 말했다.
“그럼, 오늘은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앞으로라도 새로운 사실이 생각나시거나 하면 연락 주십시오.”
추 경감과 강 형사는 냉랭한 눈초리 속에서 몸을 일으켰다.
“찾는 사람이 누구던?”
“몰라요. 어떤 아줌마예요.”
꼬마는 도리질을 했다.

어머, 희아야.
송희는  희아야  소리에 고개를 퍼뜩 들었다. 고등학교 때의 단짝 오명자가 거기 있었다.
“아니, 어떻게 알고 왔니?”
송희는 반갑게 손을 마주 잡으며 말했다. 눈에는 금방 물기가 서렸다.
“바보야, 내가 왜 몰라. 이게 무슨 일이니⋯”

오명자도 그렇게 말하며 울먹였다.
“그래, 그래. 네가 모르는 게 있을 리가 없지.”
그렇게 말하며 송희도 눈물을 쏟았다. 고등학교 시절 오명자는 뭐든지 다 아는 잡학박사로 유명했었던 것이다.

“이게 웬 날벼락이니?”
송희는 어깨를 들먹이며 오명자와의 손을 꼭 쥐었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그이를 죽인 거야.”
“아니, 누가 그런 끔찍한 일을 ......”

“그건 나도 몰라.  하지만 누가 그런 일을 한 것만은  틀림없어.”
송희는 한참 동안 설음을 이기지 못하고 소리를 죽이며 울었다. 얼마 동안 울고 있던 송희가 문득 고개를 들었다. 물기 젖은 그녀의 눈이 이상하게 번득였다.

“너 방태산의 선거 사무실에 나간다지?”
송희가 오명자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말했다.
“으응.”
오명자는 그 섬찟한 눈빛에 질려서 겨우 대답을 했다. 차라리 부인을 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지금 든 생각이긴 하지만 그 사람이 제일 수상해.”

송희는 아주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오명자가 알아듣지 못했다.
“뭐라고?”
“오늘은 안 되겠어. 너, 장례식 끝난 뒤에 한번 더 와 줘.”
“그, 그래. 그럴께.”
“꼭 와야 한다. 아니, 내가 먼저 연락할게.”
송희는  다시 오명자의 손을 꼭 쥐었다. 무엇인가를 말할 것같은 눈빛이었으나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7. 새벽의 도망자

박정자는 조용히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깜짝 놀라 일어났다.
“이 밤중에 누구람?”

그러나 사실 밤중은 아니었다. 새벽 5시였던 것이다. 밤일을 하는 그들에게는 밤중이나 마찬가지일 뿐이다.
정자는 늘어진 슬립을 채 끌어올리지도 않은 채 문을 열었다. 구형주가 사라진 이후로 불안하여 깊은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어머나!”

놀라는 정자의 입을 거친 사내의 손이 막았다.
“쉬!”
그 소리만으로도 정자는 그것이 누군지 알 수 있었다.
“형주 씨.”
그러나 그 목소리는 형주의 손에 막혀서 나오지는 않았다. 형주는 민첩하게 정자의 방으로 들어왔다.

“읍, 읍.”
정자는 형주에게 입을 풀어 달라고 손으로 말했다.
“어떻게 된 거예요?”
정자는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내게도 기회가 온 거지.”

형주도 낮은 소리로 대답했다. 옆방과는 얇은 베니아 합판으로 칸막이가 되어 있으므로 작은 소리도 쉽게 새어 나가기 때문에 조심해야 했다. 때로 옆방에서 남녀가 일을 치르는 걸찍한 숨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여기서는 말할 수가 없어.”

형주는 조심스럽게 정자의 팔을 끌어당겼다.
“어딜 가려고?”
정자가 걱정되는 말투로 물었다.
“걱정 말고 따라와.”
그러나 걱정을 안 할 수가 없었다. 그곳은 빠져나갈 곳이 없는 밀폐된 지역이었기 때문이다. 빠져나가려면 살롱의 중앙을 통과해야만 했다. 그러나 문은 굳게 잠겨 있다. 그 열쇠는 주 마담만이 가지고 있었다. 사실 정자는 형주가 어떻게 이곳으로 들어왔는지조차 알지를 못하였다.

그러나 일단은 형주가 이끄는 대로 따라 나섰다. 형주는 그만큼의 신뢰감을 그녀에게 주고 있었다.
형주는 살롱의 문을 열고 화장실로 그녀를 데리고 갔다.
“응?”

그제서야 정자는 형주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었다. 황금 살롱은 지하에 위치해 있으나 화장실은 계단으로 올라간 위치에 있었다. 그곳의 들창을 떼어낸다면 밖으로 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과연 정자의 생각대로 화장실의 들창은 이미 떼어져 있었다.
형주는 정자를 먼저 밀어올려 그녀를 밖으로 밀어냈다. 정자는 커다란 히프에 닿는 그의 손이 따뜻하다는 생각을 했다. 히프가 유난히 커서 작은 창을 빠져 나가는 데는 꽤 힘이 들었다.
 

[작가소개]

이상우;  60여 년간 편집기자와 경영인으로 일한 언론인 겸 추리 소설가다. 한국일보, 서울신문, 국민일보, 파이낸셜뉴스 등 13개 언론사에서 편집국장, 대표이사 등으로 일했고, 스포츠서울, 스포츠투데이, 굿데이를 창간했다.

오랜 경험과 기록을 바탕으로  역대 정권의 언론 탄압과 견제, 정계의 비화를 다룬 저서와 소설이 4백여 편에 이른다. 특히 추리와 정치를 깊이다룬  소설가로 유명하다. 대한민국 문화포장, 한국추리문학 대상 등을 받았다. <신의불꽃>, <역사에 없는 나라>, <악녀두번 살다> <세종대왕 이도> 등 베스트 셀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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