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김재경 정치평론가] 5년 단임 대통령제 하에서 4년차를 넘어서는 시점에 항상 '레임덕(임기말 권력누수)'이 화두에 오른다. 1987년 개헌 이후 5년 단임의 대통령제 하에서 역대 어느 정부도 레임덕의 함정을 피하지 못했다. 측근과 친인척 비리에서부터, 회전문 인사, 경제난 등 다양한 요인이 원인이 된 레임덕은 정권 재창출 또는 정권 교체냐와 상관없이 국정 운영의 동력을 상실케 한 것은 분명하다. 특히 4년 임기의 국회의원 즉 의회 권력과 5년의 대통령 권력의 엇박자가 나는 것도 레임덕 원인으로 볼 수 있다. 대통령 중심제이긴 하지만 국정 과제의 성과를 도출하기 위해서는 각종 입법이 뒷받침돼야 한다. 하지만 여소야대 또는 여대야소 등으로 수시로 상황이 달라지는 의회권력의 속성으로 말미암아 정권의 임기말 성과 도출은 항상 난관에 봉착했던 것이 사실이다. 여기에 청와대와 여당의 당청 관계도 집권 말에 이르러서는 삐걱대는 통에 역대 대통령의 레임덕 흑역사는 권력구조 개편이 있기 전까지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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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정권, “레임덕의 시작점을 찾아서...”
측근과 친인척 비리부터, 회전문 인사, 경제난 등 다양

기나긴 군사정권의 터널을 지나 출범한 문민정부는 임기 초 상당히 높은 지지율로 승승가도를 달렸다. 금융실명제 전격 실시와 하나회 해체 등 굵직한 성과를 냈음에도 불구하고 김영삼(YS) 대통령의 레임덕은 총체적 난국 속에서 거대한 파도처럼 밀려왔다. 정가에서는 YS의 레임덕을 1996년 노동법 단독 처리에서 시작돼 한보사태 그리고 IMF 외환위기의 단계를 거쳤다고 평가하고 있다.

물론 YS 아들 현철씨가 레임덕의 중심에 서 있었던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무엇보다 외환위기는 건국 이래 가장 참담한 경제성적표에 의한 것으로 지금까지도 그 여파가 미치고 있다. 수많은 기업들이 무너지고, 그로 인해 일자리가 하루 아침에 사라지고 결국 서민 경제는 나락으로 떨어졌다.

YS.DJ. 아들 비리. IMF 등 경제난 겹쳐

국가부도의 위기에서 전 국민이 그야말로 고통의 나날을 보낸 것이다. 이에 따라 김영삼 대통령은 정국운영과 당청관계 등 여러 정치적 사안을 판단할 여력도 없이 치명적 경제난 속 레임덕 수렁에서 임기를 마쳤다.

김대중(DJ) 대통령도 레임덕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2000년 이른바 진승현 게이트에서 시작해 이용호, 최규선, 정현준 등의 4대 게이트가 정국을 휩쓸면서 국정 운영의 동력이 확 떨어진 것이다. 여기에 YS와 마찬가지로 DJ도 아들 문제가 불거졌다. 그로 인해 20014월 재보궐선거에서 단 한명의 당선자도 내지 못한데 이어 10월 보선에서도 야당에 참패했다.

그해 11DJ는 민주당 총재직을 내려놓으면서 당청 관계도 전과는 다른 상황을 맞이했다. 2002년에는 3남 홍걸씨가 구속되고, 42남 홍업씨도 구속돼 결국 그해 5DJ는 민주당을 탈당하는 수모 아닌 수모를 겪었다. 비리와 권력 주변 부패 의혹이 당으로 하여금 DJ와 거리두기를 하게 만든 셈이다. 다만 호남의 절대적 지지는 그나마 지켜내 전임 YS와는 조금 다른 양상으로 레임덕의 터널을 지나갔다는 점이 다르다면 다른 상황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경우 경제 문제 특히 부동산 정책 실패가 가장 뼈아픈 대목이다. 사상 초유의 집값 폭등이 경제 전반에 악영향을 미쳤고, 민심이반이 가속화 됐다. 게다가 형 건평씨의 땅 투기 의혹은 레임덕에 기름을 끼얹었다. 물론 노무현 대통령도 집권 초반 대북 송금 특검 등으로 지지층 이탈이 있었지만 이후 탄핵안 가결 역풍으로 지지율 반등 효과를 누렸다. 탄핵 역풍을 등에 업고 당시 열린우리당은 거대 여당으로 발돋움하기도 했다.

하지만 임기말에 이르러서는 여권 내부 분열이 가속화 됐고, 탈당 사태로 발전되면서 당청 관계 역시 비정상적 궤도에 올랐다. 실제 여권 분열과 부동산 정책 실패, 측근 비리 의혹으로 인해 노무현 대통령의 집권 4년차 지지율은 역대 최저 수준인 12%까지 곤두박질쳤다. 이후 노무현 대통령은 임기를 마친 뒤 검찰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극단의 선택을 해 한국 정치사에 또 하나의 전직 대통령 불행 사례를 만들었다.

故 김대중 대통령의 아들인 김홍걸, 김홍업, 김홍일이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김대중 대통령 서거 2주기 추도식에 참석하고 있다. park7691@newsis.com
故 김대중 대통령의 아들인 김홍걸, 김홍업, 김홍일이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김대중 대통령 서거 2주기 추도식에 참석하고 있다. park7691@newsis.com

 

, 임기말 탈당 사태’ MB, ‘고소영’, ‘영포라인추락

경제 대통령을 내걸며 정동영 당시 후보를 압도적 표 차이로 이긴 이명박 대통령에게는 정권 초 글로벌 금융위기로 결정타를 맞은 뒤 경제 분야에서 지표가 확 꼬꾸라졌다. 집권 기간 2010년을 빼고는 경제 성장률이 3%대에 미치지 못했고, 1000조원 규모의 가계부채는 성장의 걸림돌로 작용했다. 자원외교를 표방하고 나선 이명박 대통령은 서울 G20 정상회의와 핵안보정상회의 그리고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등으로 발품을 팔았지만, 경제로부터 시작된 레임덕을 넘어서지 못했다.

특히 4대강 사업은 무려 22조원의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는 결과를 초래했고, 그마저도 각 강의 수계에 오염이 심해지고 설치된 보로 인해 농업용수 공급 차질은 물론이고 장마 조절 기능마저 제대로 하지 못해 지금까지도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나아가 4대강 사업은 총체적 부실 공사의 대표적 사례로 평가받는 실정이다. 대북 정책의 경우 박왕자씨 피격 사건과 천안함 사태, 연평도 포격으로 극한의 상황으로 치달았고, 측근 비리 역시 임기말 발생하면서 레임덕의 속도를 높였다.

상왕으로 불리던 친형 이상득 전 의원과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 천신일 세중나모여행회장, 왕차관 박영준 전 국무총리실 차장 등이 줄줄이 구속되면서 정권에 치명적 오점을 남겼다. 고대, 소망교회, 영남이라는 '고소영'의 부정부패와 영포(영일, 포함)라인의 회전문 인사 그리고 그들 중심의 자원외교 비리가 불거진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경남 창원지검에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형 노건평(69)씨가 이권에 개입한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기 위해 출두하고 있다. 2012.05.15 뉴시스
경남 창원지검에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형 노건평(69)씨가 이권에 개입한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기 위해 출두하고 있다. 2012.05.15 뉴시스

박근혜 대통령은 최순실의 비선 실세 등장으로 사상 초유의 탄핵사태로 정권을 비정상적으로 끝냈다. 레임덕이라고 따로 칭할 만한 사건을 넘어 비선실세 폭풍은 대한민국 전체를 뒤흔들었다. 비선실세 파장은 전 국민적 분노를 자아냈고, 이어진 촛불집회는 결국 문재인 대통령 당선이라는 결과로 이어졌다.

광장의 대통령으로 불릴만한 문재인 대통령도 집권 4년차를 넘어서면서 극단의 레임덕을 맞을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LH사태로 촉발된 공직자의 부동산 투기가 전 국민적 분노를 사고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K방역의 성과를 거두고 있음에도, 부동산 정책 실패는 청년의 희망을 빼앗고 서민의 꿈을 앗아갔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 파장은 현재 진행형이어서 국회의원 전수조사와 함께 특검이 도입될 예정이며, 그로 인해 더 드러날 것이 분명한 부동산 부정부패는 임기 말 문 대통령에게 엄청난 장애물로 작용할 것이다.

여기에 코로나19로 인한 내수부진과 경기침체는 마이너스 성장을 넘어 서민들의 목을 옥죄고 있다. 확장적 재정정책으로 수 차례의 추가경정예산 편성과 집행에도 경기를 급반등시킬 동력을 구현해 내지는 못했다. 백신 접종에 따른 집단면역 형성 시점을 정부가 오는 11월로 목표로 삼고 있지만, 변이 바이러스와 함께 백신의 부작용 사례가 확산되면서 그마저도 목표 달성이 불투명해 보인다. 결국 임기 후반기 코로나가 덮친 어두운 경기 침체의 그늘을 문재인 정부가 임기 내에 극복해 내기는 어려워 보이는 것이 현실이다.

국정농단' 최순실이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국정농단 사건' 항소심 5차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2018. 05.04. 뉴시스
국정농단' 최순실이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국정농단 사건' 항소심 5차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2018. 05.04. 뉴시스

문 정부 임기말 징후진행형’, 위기 극복하기 힘든 현실

역대 정부의 임기말 상황은 그야말로 권력 붕괴와 국정 운영 동력 상실로 점철됐다. 측근 비리와 부정부패 그리고 경제 정책 실패와 남북관계 악화 등은 비교적 얌전한 사건으로 평가될 정도다. 각종 게이트와 함께 권력 핵심부 인사들의 일탈 행위가 민심이반을 불러오고, 그로 인해 정권의 존립 기반마저 흔들리는 일들이 반복된 탓이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각 정권별로 공과가 있지만 임기말 측근 비리와 부정부패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것은 정치권 전체가 반성하고 돌아봐야 할 일"이라며 "기본적으로 5년 단임의 권력구조를 개편하고 견제와 균형을 이루는 방식으로 대통령제가 나아가야 그나마 이런 상황의 반복을 조금이나마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최근 잠룡들을 중심으로 정치권 물밑에서는 87년 헌법의 개헌과 함께 4년 중임이나 연임의 분권형 대통령제를 논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4년 주기의 국회의원 선거와 5년의 대통령 선거 그리고 4년의 지자체장 선거 등 거의 매년 이뤄지는 선거가 레임덕의 단초를 제공한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는 게 정치권의 시각이다. 막대한 선거비용이 국가적 부담인데다 선거 때마다 정권 중간평가라는 타이틀이 붙고, 선거 결과에 의해 여당이든 야당이든 당의 지도부가 교체되는 악순환이 한국 정치의 발전을 막고 있다는 게 이유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는 "여당이든 야당이든 의회권력이 비교적 안정적으로 운영이 돼야 각종 개혁법안들이 순탄하게 처리될 수 있는데, 선거에 의한 부침이 심해 입법 뒷받침 자체가 유연하게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효과적 국정 운영을 위해서는 당정 간에 호흡이 맞아야 하고 야당의 견제가 있되 건전한 정책적 비판이 중심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른 정치 평론가는 "적절한 견제와 비판이 정부 내부에서도 유효하게 작용해야 부정부패와 비리를 막고 임기 말까지 성과 도출이 자연스럽게 이뤄질 수 있다"면서 "이제는 권력의 분산을 중심으로 구조 개편에 정치권이 팔을 걷어붙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그는 "대신 국민적 공감대 형성이 먼저 이뤄져야 하며, 사회 시스템 자체도 이를 받아들일 수 있게끔 포스트 코로나 체제에서의 패러다임 변화도 병행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당청 관계도 임기 말 반복되는 대통령 손절 행태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5년 단임의 불리한 여건 속에서도 당과 정부가 끝까지 힘을 모아 개혁 입법과 민생 입법을 바탕으로 정책의 효율성을 기해야 한다는 말이다.

중앙권력, 의회권력 갈등에 대통령 중심제 한계

행정권력과 의회권력 자체가 톱니바퀴 돌아가듯 맞물리지 못하는 게 현재 한국 정치의 현실이라는 분석이 지배적다. 여기에 대통령 중심으로 권력이 집중된다는 점도 이제는 돌아봐야 한다는 시각도 많다. 소수의 인사들이 대통령 측근에서 각종 정책을 좌지우지하는데 이는 부패의 시작이 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레임덕 자체를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더라도 체제 변화로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한국 정치가 발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갈수록 커지는 모양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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