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 사건을 알게 된 것은  한 달쯤 전이었다. 명색 사설 탐정 사무실이란 것을 열어 놓고 몇 달째 파리만 날리고 있을 때 처음 사건 의뢰가 들어와서 맡은 것이 그 사건이었다.

한국 최초의 탐정이 되어 보겠다고 긴 세월을 기다리고 있던 나는 ‘사설 탐정법’이란 것이 공포되어 효력이 발생하는 첫날 등록을 했다. 말하자면 한국의 사립 탐정 1호인 셈이다.

광화문 세종 문화회관 뒤의 금성 오피스텔 4층 스물댓 평 되는 사무실 하나를 빌려 문을 열었다. 현관 안내판에는 ‘404호실 탐정 사무실 상담 무료’라는 안내 문구를 써 넣었다. 상담 무료라고 한 것은 셜록 홈즈가 시간당 상담료를 현관에 게시했던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렇게 비싼 상담를를 내라고 하면 일거리가 들어오지 않을 것을 염려해서였다.

공짜라는 데도 사건 상담 오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어 실망의 나날을 보내고 있을 때였다. 점심 먹고 들어와 인터넷 서핑이나 할까 하고 내가 좋아하는 사이트 도메인의 마지막 부분인 co.kr을 막 치고 클릭을 하려는 순간이었다. 나는 이 순간이 좋았다. 이제 인지로 클릭만 한 번 하면 신비의 세계가 열린다는 기대감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그 순간 딩동 하고 초인종이 울렸다.

나는 ‘손님이구나’ 하는 예감에 발딱 일어나 문을 열었다.
“실례합니다. 여기가 탐정...”
“예 맞아요. 들어오세요”
내 예감이 틀림없이 맞는 것 같았다. 남자였다. 요즘 젊은이치고는 머리를 좀 길게 길렀다. 하늘색 언더셔츠에 흰색 점퍼를 걸쳤다. 얼굴이 희고 턱이 뾰족했다. 그러나 얼굴 윤곽과는 어울리지 않게 눈이 잠자는 사람처럼 조용해 보였다.

“우선 여기 앉으시죠”
나는 그와 마주 앉아 내가 먹다 둔 크래커를 권했다.
“아, 이거 내가 좋아하는 건데. 나희도 좋아했지”
그는 서글픈 듯한 웃음을 흘리며 크래커 조각을 집어 들었다. 나이는 스물 아홉 아니면 많아야 서른하나⋯ 내가 속으로 어림짐작을 해 보았다.
“그래 나희는 왜 죽었나요?”

내가 탐정답게 보이려고 선수를 쳐보았다. 그는 놀란 듯 나를 보며 말했다.
“죽은 걸 어떻게 아세요. 정말 탐정은 탐정이네!”
“뭐 그만 일에 감탄할 거 없구요. 탐정 사무실에 낯선 사람이 찾아올적에야 사건 때문에 온 것이 틀림 없구요. 어떤 물건을 보고 다른 사람을 떠올릴 때는 그것이 대개 추억이죠. 추억을 하게 만든 사람이 있다면 이별했거나 죽었거나인데 탐정 사무실에 온 걸 보면⋯ ”

“정말 날카로우십니다. 나희, 설나희는 죽었습니다. 그것도 틀림없이...”
“피살되었다고 생각하시는군요. 근데 경찰이 자살로 처리하는 바람에...”
“정말 놀라워요. 경찰이 꼭 자살이라고 단정을 하지는 않았지만 영 못 밝혀내거든요.”

그 사나이 이름은 박상구, 나이는 29세, 결혼 4개월 만에 신혼 보금자리였던 일산시 봉숭아 아파트 404호실에서 변사체로 발견되었다.
“404호라구요?”

어쩌면 내 첫 사건이 내 사무실 호수와 같단 말인가. 그리고 신혼 4개월 만에, 나이도 24세. 정말 좋은 인연 이였으면 좋겠는데.
사인은 약물 중독. 유서는 없고 죽은 시간은 늦은 오후 즉 4시 전후. 또 4자라니. 경찰은 일단 타살로 보고 수사를 시작했으나 단서를 찾지 못해 영구 미제 사건으로 묻힐 가능성이 많다고 했다.

나는 이 사건을 맡기로 하고 계약서를 썼다. 내가 계약서를 쓰려고 컴퓨터 앞에 앉았을 때, 내가 조금 전에 친 ‘....co.kr’이 클릭을 기다리고 있었었다.
“그래 이 사건 제목을 씨오쩜케이알이라고 하자”
나는 이렇게 중얼거리며 자판을 두들기기 시작했다.
나는 우선 내가 잘 아는 수사 경찰관이 그 사건의 관할 경찰서에 있다는 것을 알아내고 그 사람을 찾아갔다.
“추 경감 오랜만이요”

추 경감은 서울 시경에 있을 때 강력 사건을 잘 해결하기로 유명한 수사관이었다. 내가 신문사 사회부에서 사건 기자로 뛸 때 많이 괴롭혀 준 형사였다.
“아하, 추 기자 아니요. 그래 요즘은 그렇게 바라던 사회부장이라도 되어 사무실에 들어앉았어요? 영 안 보이더니⋯”

언제나 동안에다 마음씨 좋은 이웃 아저씨 같은 그는 나를 반겨 주었다.
“부장은커녕 거 신문사 때려치웠어요. 요즘은 내가 사립 탐정 사무실을 하나 내었는데⋯”
“후후후⋯농담은 여전하군. 우리나라엔 사립탐정 제도가 없다는 걸 내가 모를 줄 알고?”

세상 돌아가는 일에 무관심하고 자기 일에만 충실한 추 경감이 최근에 바뀐 법을 알 턱이 없었다.
나는 차근차근 설명을 해 주고 그가 고개를 끄덕이게 한 뒤 ‘씨오쩜케이알’ 사건의 개요를 물어보았다.

“음 그 설나희 변사 사건 말이죠. 글쎄 그게 영 깜깜이야”
그러나 추 경감은 그때까지 조사 해 놓은 많은 자료를 나에게 넘겨주었다. 그리고 내가 꼭 범인을 잡아 보라고 격려까지 했다.

설나희는 영점 1그램만 마셔도 죽는 독극물에 의해 목숨이 끊겼다. 사건의 현장에는 두 사람이 마시다 둔 커피 잔 두 개가 있었는데 그중 한 곳의 잔에서 독 극물이 발견되었다. 그러나 두 잔 모두 설나희 지문만 채취되었을 뿐 다른 사람의 지문은 발견하지 못했다고 한다.

“다른 곳에서도 다른 사람의 지문이 없었나요?”
“아니 도어 손잡이나 화장실 변기 손잡이 등에서 여러 사람 지문이 나왔지. 남편 박상구, 조조길 사장, 김 수 실장 등,,,”

“아니 그 사람들 지문이 왜 신혼집 화장실에서 발견됩니까?”
“사건 전날 그 두 사람이 방문해서 밤늦게까지 한잔하고 갔다네. 설나희가 결혼한 뒤 직장에 나오지 않자 조조길과 김수가 설나희가 보고 싶다고 졸라 방문하게 된 거라나⋯”

“남의 아내가 된 사람이 뭘 보고 싶단 말야”
“그건 그 사람들한테 물어 봐요”
추 경감이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하며 웃었다. 그러나 나는 그 대목에서 다시 한번 희열을 느꼈다. 분명히 무슨 냄새가 난다.

“사건을 첨 발견한 사람은 누구지요?”
“남편이 퇴근해서 돌아왔는데 문을 열어 주지 않아 따고 들어갔더니 욕실 바닥에 엎어진 채 죽어 있었다는 거야.”
추 경감이 감식용 사진을 보여 주었다. 꽃무늬가 있는 홈웨어 스타일로 허벅지를 드러 낸 채 욕실 바닥에 옆으로 쓰러져 있는 여자 사진이었다.

[작가 소개]

이상우; 추리소설과 역사 소설을 50여 년간 써 온 작가다. 60여 년간 일간신문 기자, 편집국장, 회장 등 언론인 생활을 하면서 기자의 눈으로 본 세상사를 날카롭고 비판적인 필치로 묘사해 주목을 받았다. 1983년 한국추리작가협회를 창설하고 현재 이사장을 맡고 있다. 역사와 추리를 접목한 그의 소설은 4백여 편에 이른다. 한국추리문학 대상, 한글발전 공로로 대한민국 문화 포장 등 수상.

50판 까지 출판한 초베스트셀러 <악녀 두 번 살다>를 비롯, <신의 불꽃>, <여섯 번째 사고(史庫)> <역사에 없는 나라>, <세종대왕 이도 전3권> <정조대왕 이산>, <해동 육룡이 나르샤>, <추리소설 잘 쓰는 공식>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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