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서 불지피는 ‘토지공개념’... 어공 vs 늘공 갈등 요소로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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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서울ㅣ정재호 기자] 4·7재보선을 앞두고 터진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부동산투기 사건으로 인해 정부·여당은 진퇴양난에 빠진 형국이다. 등 돌린 민심이 돌아올 기미를 보이지 않자 여당 내에선 부동산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대책으로 ‘토지공개념’을 주장하고 나섰다. 미국의 헨지 조지가 19세기 말 주장한 토지공개념은 개인이 토지를 소유하되 사용과 처분에 따른 이익은 국가가 환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신중한 입장이다. 취지는 동의하지만 기존 법을 개정하고 보완해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이다. 토지공개념을 두고 어공(어쩌다 공무원)과 늘공(늘 공무원)이 갈등하는 모양새다. 일요서울이 토지공개념을 둘러싼 논란을 알아봤다. 

-전문가 “LH 부동산투기 사태, 정부 토지권한 독점이 문제 근원”

지난 2일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은 제보를 바탕으로 확인한 결과를 기초로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 부동산투기 의혹을 제기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참여연대와 민변이 합동으로 토지대장을 분석한 결과 2018년 4월부터 지난해 6월까지 수도권 LH 직원 10여명과 이들의 배우자·가족이 총 10개의 필지 2만 3028㎡(약 7000평)를 100억 원가량에 매입한 것으로 파악했다. 단체들은 또 매입 자금 중 약 58억 원은 금융기관을 통한 대출금으로 추정되며 특정 금융기관에 대출이 몰려있다고 설명했다. 참여연대와 민변은 시흥시 소재 토지의 등기부등본, 토지대장, LH 직원 명단 등을 조사한 결과 상당수가 LH 공사에서 보상업무를 담당하던 직원들이라고 밝혔다. 단체들은 이들이 서로 다른 시기에 2개 필지를 매입하거나, 배우자 명의로 함께 취득한 경우 퇴직 직원으로 추정되는 사람들과 공동으로 취득하는 경우도 포착됐다고도 했다. 

참여연대와 민변의 기자회견 다음날 문재인 대통령은 총리실이 총괄 지휘해 조사를 하도록 지시했다. 조사는 3기 신도시 전체를 대상으로 국토교통부, LH 등 관계 공공기관의 신규 택지개발 관련 부서 근무자 및 가족 등에 대한 토지거래 전수조사였다. 조사 과정에서 LH 직원들과 LH 본사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이 지난 5일 신청됐고 8일 발부됐다. 일각에선 일주일이 지난 압수수색 영장에 증거인멸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그동안 광명 시흥지구를 둘러싼 LH 직원들의 부동산 투기 의혹들이 추가로 확산되며 국민들의 공분과 허탈감은 갈수록 커져나갔다. 결국 지난 7일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정부서울청사에서 LH 직원들의 신도시 투기의혹과 관련해 공식 사과하며 토지·주택업무 관련 부처 직원들의 토지거래를 제한하겠다는 부동산 투기 재발방치 대책을 밝혔다.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도 지난 9일 국토교통부 전체회의에서 LH 직원들의 부동산투기 의혹에 대해 사과하며 부동산 관련 기관의 해당 직원들이 원칙적으로 일정 범주 내 토지거래를 제한하고, 불가피한 토지거래의 경우 신고하고 투기사실이 확인될 경우 무관용 원칙을 적용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추가 의혹만 확산되는 등 여론의 시선은 싸늘했다.  

4월 재보선을 앞두고 LH 사태가 수습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여당 내에선 부동산 문제의 근본 해결을 위해 토지공개념을 하자는 주장이 나왔다. 

 

- 추미애·조국 “부동산 적폐청산위해 토지공개념 입법화해야”

여권 내에서 토지공개념 주장이 나온 것은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5일 남은 임기의 핵심 국정과제로 LH 사건에 관한 부동산 적폐청산을 밝히면서다. 이에 여권 진영의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조국·추미애 전 장관 등이 동조하며 토지공개념 재입법화를 촉구하고 나섰다. 추 전 장관은 SNS를 통해 “토지공개념 3법을 부활시키는 것이 부동산 적폐청산의 궁극적 지향이자 목표가 돼야 할 것”이라며 “나아가 추후 개헌을 통해서라도 토지 불로소득에 대한 환수 조항을 명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 전 장관도 SNS에 “당장의 개헌은 기대할 수 없다. 그러나 부동산 적폐청산은 토지공개념 강화 입법을 통해 가능하다”며 “180석(여당)은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여권 내에서 이처럼 토지공개념을 꺼내든 것은 4월 재보선과 내년 대선을 앞두고 집값 상승, 최악 전세난, LH 직원 투기 등 부동산 악재가 잇따르며 지지율에 미칠 악영향을 반전시키려는 카드로 풀이된다. 

반면 정부는 토지공개념 주장과 관련해 다소 신중한 모습이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지난 18일 국회에 출석해 토지공개념의 개념을 묻는 황운하 더불어민주당 의원 질의에 “토지 소유자가 (토지 소유로) 막대한 이익을 얻었을 때 과도한 이득은 환수하는 개발이익환수를 하고 있다”며 “(이익) 일부를 환수하는 정책이 온당하다고 본다”며 정책 취지에는 공감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정 총리는 “기존 법을 잘 개정하고 보완하면 공개념이라고 하는 큰 과제를 채택하지 않더라도 공개념에 근접하는 접근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선 정 총리의 발언이 미봉책이라는 비판과 함께 어공(어쩌다 공무원)들의 토지공개념에 주장에 늘공(늘 공무원)의 반발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그렇다면 어공들의 주장처럼 토지공개념이 부동산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 될 수 있을까?

 

- 노태우도 시도한 ‘토지공개념’... 헌법에 걸려

노태우 정부는 1989년 12월 헌법 122조 ‘국토의 효율적이고 균형있는 이용·개발’을 근거로 택지소유상한제, 토지초과이득세, 개발이익환수제 등 ‘토지공개념 3법’ 제정을 밀어 붙였다. 1988년 올림픽과 3저 호황으로 전국 6대 도시 토지 가격 상승률이 27%에 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1994년 7월 헌법재판소는 토지초과이득세법에 대해 “이중과세로 재산권 침해가 과도하다”는 이유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헌재는 또 99년 4월엔 택지소유상한법이 200평이란 일률적 소유상한 적용 등이 과도한 재산권 침해라고 위헌 결정을 내렸다. 개발이익환수법 역시 부담률을 25%로 내렸고 2005년까지 부과를 중단했다. 노무현 정부 들어 다시 부동산 값이 급등하자 2006년부터 개발부담금을 다시 부과하고 종합부동산세와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를 도입하기도 했다. 하지만 여론 반발 등에 밀려 무력화되거나 시행이 연기됐다. 문재인 대통령도 집값이 폭등하자 개헌을 통해 토지공개념을 다시 추진하려 했다. 하지만 이 개헌안은 국회 본회의에 상정됐지만 야당의 불참으로 인해 정족수 미달에 따른 투표 불성립으로 부결됐다.

정부 부처를 출입하고 있는 한 기자는 지난 24일 일요서울과의 만남에서 “늘공도 문제가 있지만 국가의 미래를 좌우할 수 있는 부동산 정책을 4월 재보선과 대선을 앞두고 정치적으로 주장하는 어공인 정치인이 더 큰 문제”라고 비판했다. 지난 25일 최승노 자유기업원 원장은 일요서울과의 통화에서 토지공개념에 대해 “정부가 LH를 통해 토지의 권한을 독점했기 때문에 발생한 문제가 이번 LH 투기 사태의 본질”이라며 “토지공개념은 부동산에 대한 정부의 권한을 더 확대한다는 정책이기 때문에 아이러니한 방향이 아닐 수 없다”고 지적했다. 

LH 부동산 투기 사건으로 인해 촉발된 토지 공개념 논란이 향후 어떻게 진행될지 주목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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