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한명숙, 운동권 대모 상징 때문 ‘수사지휘’ 무리수”

한명숙 [뉴시스]
한명숙 [뉴시스]

 

[일요서울ㅣ정재호 기자] 지난 20일 대검찰청 부장·고검장들은 11시간 동안의 격론 끝에 한명숙 전 국무총리의 불법 정치자금 사건 수사팀의 모해위증교사 의혹에 대해 혐의를 인정할 수 없다는 기존 대검찰청의 판단을 유지했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취임 후 처음으로 야당 등의 반발을 무릅쓰고 수사지휘권을 발동했지만 별 효력이 없었다. 이처럼 여권은 왜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한명숙 구하기’에 나설까. 일요서울이 알아봤다.  

-‘한명숙 모해위증 사건’, 대검 부장회의에서도 ‘불기소’ 결론

한명숙 전 총리 사건은 200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검찰은 한 전 총리가 5만 달러의 뇌물 수수를 한 의혹을 수사 중이었다. 한 전 총리는 혐의를 부인했지만 검찰은 한 전 총리가 총리 재직 시절인 2006년 12월 서울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으로부터 대한석탄공사 사장에 임명되게 해달라는 청탁과 함께 5만 달러를 받았다는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곽 전 사장은 검찰 조사에서 “총리실 공관에서 한 전 총리, 정세균 당시 산업자원부 장관 등 5, 6명과 함께 식사한 뒤 나가면서 5만 달러 정도를 한 전 총리에게 건넸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곽 전 사장은 기존 진술을 뒤집어 1심 법정에서 “총리 공관 식당 의자에 5만 달러 돈 봉투를 두고 나왔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한 전 총리 1심 선고를 하루 앞두고 검찰은 한신건영을 압수수색했다. 이에 대해 일각에선 검찰이 한 전 총리 뇌물 사건이 무죄가 날 경우를 대비해 당시 야당 서울시장 후보로 떠오르던 한 전 총리를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엮으려고 하는 ‘표적 수사’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됐다.

검찰은 당시 사기죄로 구속된 한만호 전 대표를 소환조사해 2010년 4월 “한명숙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국회의원에게 9억 원을 전달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검찰은 이 진술을 바탕으로 2010년 7월20일 한 전 총리를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앞서 기소된 뇌물 수수 사건은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 기소 이전인 2010년 4월 1심에서 무죄를, 기소 이후인 2011년 1월 2심에서도 무죄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은 2013년 3월 이 사건에 대해 무죄 판결을 확정했다.

이제 남은 것은 검찰이 한 전 총리를 추가로 기소한 불법 정치자금 사건이었다. 이 사건도 앞선 뇌물 수수 사건과 마찬가지로 핵심 증인인 한 전 대표가 진술을 번복했다. 한 전 대표는 2010년 12월 1심 2차 공판에서 기존 검찰 수사 때 한 진술을 번복해 9억 원 전달 사실을 부인했다.

이에 검찰은 위증 혐의로 한 전 대표가 수감돼있던 구치소 감방을 압수수색 해 비망록과 일기장 등을 압수했다. 이후 검찰은 한 전 대표를 위증죄로 재판에 넘기고, 이때 압수한 비망록을 증거로 제출하며 “진술 조작을 위한 시나리오”라고 주장했다. 한 전 대표는 위증 혐의로 기소돼 대법원에서 징역 2년의 형이 확정됐다.

2011년 10월 불법정치자금 수수 사건 1심 재판에서 한 전 총리는 무죄를 선고받았다. 그러나 2013년 9월 2심 재판부는 1심 판결을 뒤집고 유죄로 판단, 한 전 총리에게 징역 2년과 추징금 8억8000만원을 선고했다. 치열한 공방 끝에 결국 2015년 8월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대법관 8대 5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대법관 전원은 한 전 총리가 1차로 3억 원을 받은 혐의는 유죄로 인정한 것이다. 대법원 판결로 징역 2년형이 확정된 한 전 총리는 수감됐고 2년이 지난 2017년 8월 의정부시 송산동 의정부교도소에서 만기 출소했다.

 

- ‘한명숙 재조사’ 논란 키운 비망록, 재판선 이미 “근거없다”

그렇게 잊히나 싶던 한명숙 전 총리 사건은 약 11년 후인 지난해 5월14일 한 매체가 한만호 전 대표의 비망록 내용을 보도하며 다시 이슈로 떠올랐다. 보도에 따르면 한 전 대표는 비망록에서 자신이 추가 기소될 수 있다는 두려움과 사업 재기를 도와주겠다는 검찰의 약속 때문에 거짓 진술을 했다며 자신을 ‘검찰의 강아지’가 됐다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또 검찰 조사 때 진술조서를 암기시키고 테스트를 하는 등 한 전 총리에게 돈을 건넸을 상황을 검찰과 합의하고 진술을 연습했다는 내용도 담겨있었다.

한 전 대표의 비망록이 공개되자 여권은 한 전 총리 사건을 재조사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모든 정황이 한명숙 전 총리가 사법농단의 피해자임을 가리킨다”며 “이미 지나간 사건이라 이대로 넘어가야 하나. 그래서는 안 되고 그럴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한 전 총리 사건을 수사한 검찰 수사팀은 입장문을 통해 “비망록의 내용은 새로울 것도 없고 관련해 아무런 의혹도 없다”며 “비망록은 엄격한 사법적 판단을 받은 문건으로 허위사실을 기재했다”고 반발했다.

이어 수사팀은 “(당시 재판부가) 한 전 사장의 노트에 기재된 의혹을 모두 근거 없다고 판단해 검사가 작성한 한 전 사장의 진술조서의 증거능력을 인정하고 한 전 총리에 대해 유죄판결을 선고하고 확정했다”며 검찰의 회유·협박 등 의혹은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대검은 한 전 대표의 비망록을 근거로 해당 의혹을 다시 또 조사했지만 지난 5일 모해위증 및 모해위증교사 혐의를 받는 재소자와 수사팀 관계자들을 무혐의 처분했다. 이에 임은정 대검 감찰정책연구관 등 일각에서는 대검 판단에 문제가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박범계 법무부장관은 지난 17일 “무혐의 처분된 과정의 공정성에 의문이 든다”며 대검 부장회의를 열고 이 사건을 다시 심의하라고 수사지휘권을 발동했다. 

대검은 지난 19일 부장 및 검사장회의를 열고 한 전 총리 재판 증인이었던 재소자 김 씨의 모해위증 혐의가 인정되는지 여부를 심의했다. 이후 대검은 이 같은 혐의를 인정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고 지난 21일 법무부에 보고했다. 이에 따라 한 전 총리 사건을 둘러싼 모해위증교사 의혹 사건은 최종 종결됐다. 그렇다면 왜 여권은 이토록 ‘한명숙 구하기’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걸까? 

 

- 부메랑 된 ‘한명숙 구하기’... 박범계 리더십 타격

지난 17일 여의도 모처에서 일요서울과 만난 정치권 관계자는 “한명숙 전 총리는 정치권에선 진보진영과 친노의 대모로 통한다”며 “지금 여당 핵심 관계자들 모두 한 전 총리와 인연이 깊다”고 했다. 그는 이어 “한 전 총리에게 부채의식을 가진 현 여당 핵심 관계자들은 검찰이 무리하게 한 전 총리를 수사했다고 본다”며 “검찰개혁을 강하게 추진하고 있는 정부·여당이 잘못된 수사의 사례로 한 전 총리 사건을 뒤집어 하나의 상징으로 만들려 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황태순 정치평론가도 지난 25일 일요서울과의 통화에서 “한 전 총리 자신은 오히려 사건 재심에 대해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며 “여권 진영은 한 전 총리와 남편인 박성준 교수가 운동권의 어른 중의 어른으로 통하는 만큼 그런 상징성 때문에 무리수를 두며 ‘한명숙 구하기’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정부·여당이 그동안 검찰을 비판할 때 외쳤던 ‘제 식구 감싸기’가 ‘한명숙 구하기’ 논란으로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는 것은 아닌지 짚어봐야 할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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