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제대로 못해서 실망… 대안 없는 폐지만 외칠 게 아냐”

[사진=청와대 국민청원 캡처]
[사진=청와대 국민청원 캡처]

[일요서울ㅣ김혜진 기자] 여성가족부(장관 정영애)는 올해 출범 20년을 맞는 동안 끊임없이 무용론, 폐지론 등 많은 논란에 시달려 왔다. 최근 들어 ‘여가부 폐지론’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지난해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오거돈 전 부산시장 등 권력형 성범죄에 침묵하며 정권 눈치 보기 급급해 제 역할을 못했다는 비판을 받게 되면서다. 계속해서 여가부 폐지를 외쳐 온 건 역차별을 주장하는 일부 남성들이 중심이었지만 이제는 일부 여성들도 이 같은 생각에 동조하고 있다. 

- ‘권력형 성범죄’ 등 필요할 땐 침묵… ‘폐지론’ 들끓어
- 소규모 조직·예산 부족 등 해결 필요…제구실 할 수 있어야

여성가족부는 2001년 1월29일 김대중 전 대통령이 102명 규모의 ‘여성부’를 만들며 출범한 게 시작이었다. 이후 여가부, 여성부 등으로 이름이 바뀌기도 했지만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제대로 자리 잡혀 있다는 평가는 요원하다. 국회 내에서도 여성가족위원회는 유일하게 겸임 상임위원회라는 이유로 의원들조차도 뒷전으로 생각해 부처 예산 배분도 부족한 상황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역할론은 계속 논란이 되며 또 다시 존폐 위기를 겪고 있다.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과 2018년 ‘미투(#METOO) 운동’ 등을 거치며 한국사회에서 여성들이 점차 목소리를 냈고 한때는 ‘페미니즘 리부트’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여성 인권, 젠더 이슈 등에 민감했다. 하지만 여성가족부가 이 문제들을 제대로 보고 이끌고 있다고 보는 사람은 드물다. 이 때문에 오히려 젊은 여성들 중심으로 여가부에 더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는 경우도 적지 않다. 

지난해 7월 여가부 폐지 요구를 담은 국회 국민동의청원이 10만 명을 달성해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 회부됐을 때도 청원인은 “여가부가 남성혐오적이고 역차별적인 제도를 만들 뿐 아니라 최근 정의기억연대 사건과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사건에서 수준 이하의 대처와 일처리 능력을 보여주면서 여성 인권 보호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주장했다.

여가부에 실망한 여성계

여성계에서도 여가부에 등을 돌리게 된 일련의 사건들 중에는 대표적으로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잇단 성추행 문제가 있다. 해당 문제가 발생한 직후 여가부는 주무 부처임에도 입장 표명을 회피하고 2차 피해까지 외면해 국민적 공분을 산 바 있다. 

이에 국민의힘 여성 의원들은 성명을 통해 “여가부는 ‘제발 2차 가해를 막아 달라’는 피해자 측 요구에 ‘검토해 보겠다’는 말로 묵살했다”며 “피해자의 절규와 호소에 귀를 막는 것이 바로 권력형 성범죄를 대하는 대한민국의 현주소”라고 질타했다.

신민주 기본소득당 젠더정치특별위원회 위원장은 일요서울과의 통화에서 “당시 여가부에서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문 사건에 대해 유보적 입장을 보이면서 많은 여성들이 실망을 했던 것 같다”며 “페미니스트들조차도 여가부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고, 당시 이정옥 장관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이어 “여가부에 실망을 느낄 만한 이유는 여럿 있었을 것”이라며 “낙태죄 폐지 문제가 논란이 됐을 때도 (여가부가) 강경하고 분명한 입장을 취하기보다는 당시 대안 입법이 나왔을 때 여가부 장관이 거기에 승인을 해 줬다는 것도 배신감을 느끼는 대목이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신 위원장은 “여가부의 목소리가 힘을 잃게 된 건 여러 가지 이유로 보인다. 우선 국회에서 유일하게 겸임 상임위가 가능하기 때문에 위원들이 바빠서 회의도 제대로 참석하지 못하고 뒷전으로 밀리는 경우가 많다”며 “또 여가부 장관조차도 정권의 눈치를 많이 보게 되는 구조다. 문재인 정부의 첫 여가부 장관이었던 정현백 전 장관은 성추문 논란이 있던 탁현민 전 청와대 의전비서관 경질을 요구한 뒤 오히려 경질 압박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국회 해당 사무처 관계자는 “(여가부) 장관도 그동안의 사건들을 보며 욕을 먹어도 속 시원하게 이야기를 못하는 이유가 있었을 것”이라며 “부처 예산과 규모는 부족한데 하는 업무는 생각보다 방대하고 과중되다 보니까 모두 책임만 지게 되는 구조가 부담된다”고 말했다. 

‘애증의 시선’
전문가들 “해체가 답이 돼선 안 돼”

지난해 12월 김정재 국민의힘 의원실이 여론조사기관 더 리서치에 의뢰해 전국 성인남녀 998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여론조사를 보면 ‘여가부가 매우 잘못 운영되고 있다’는 의견에 응답자 45.6%가 동의했다. ‘잘못 운영되고 있다’는 의견에는 26.7%가 동의했다. 부정적 응답이 무려 72.3%에 이렀다. 성별 비율을 따져 보면 남성(71.4%)보다 여성(74.3%)들이 여가부 운영에 대해 조금 더 부정적으로 응답한 결과가 나왔다. 여성 응답자의 40.4%는 ‘여가부가 매우 잘못 운영되고 있다’고 했고 33.9%가 ‘잘못 운영되고 있다’고 답했다.

여가부의 향후 운영 방향 관련해서는 ‘폐지 후 타 부처로 편입해야 한다’는 응답이 남성 48.7%, 여성 33.3%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여성의 경우 응답자 5명 중 1명(21.1%)은 ‘여가부의 권한·예산·조직을 확대해야 한다’고 답했다. 이는 폐지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응답이다. 

한 여성계 전문가는 “여가부의 문제점을 따끔하게 지적할 필요는 있지만 특별한 대안 없이 무조건적인 폐지나 해체만 주장하는 경우도 많다”며 “여가부의 역할은 과중하고 무거운데 여가부가 실제로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권리는 부족함에도 비판은 온전히 여가부로만 쏠리고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여성부는 이전의 사건들을 돌아볼 때 안일한 대처보다는 앞으로 여성 등의 문제에 기민하게 반응하는 역할을 해야 할 것”이라며 “정치인들 역시 여가부를 기피 부처, 위원회로 보는 게 아니라 좀 더 관심 갖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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