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11주기 특집인터뷰] 천안함 생존 장병, “왜 너희만 살아 돌아왔느냐” 10여년 지나도 아물지 않은 상처
[천안함11주기 특집인터뷰] 천안함 생존 장병, “왜 너희만 살아 돌아왔느냐” 10여년 지나도 아물지 않은 상처
  • 김혜진 기자
  • 입력 2021-03-26 18:35
  • 승인 2021.03.26 19:17
  • 호수 1404
  • 23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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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전방서 싸웠지만 국가로부터 방치된 채 고통 받는 '천안함 생존 하사‘
26일 오후 경기도 평택시 해군 2함대사령부 천자봉함·노적봉함에서 열린 제6회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에서 해상 함대 전력이 기동하고 있다. 2021.03.26. [사진=뉴시스]
26일 오후 경기도 평택시 해군 2함대사령부 천자봉함·노적봉함에서 열린 제6회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에서 해상 함대 전력이 기동하고 있다. 2021.03.26. [사진=뉴시스]

[일요서울ㅣ김혜진 기자] 올해 3월26일은 제6회 ‘서해수호의 날’이자 ‘천안함 11주기’다. 2010년 3월26일 북한 잠수정의 어뢰 공격으로 침몰한 해군 초계함 ‘천안함’에서 46명의 장병이 전사하고 생존 장병 58명만이 가까스로 살아 돌아올 수 있었다. 안종민 천안함 생존자 예비역 전우회 사무총장은 “생존 장병들 중 전부가 아직까지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겪고 있다. 국가를 위해 헌신하며 병까지 얻었지만 그들에게 돌아온 건 손가락질뿐이었다”며 “전상(戰傷)판정을 받았음에도 국가유공자로 인정받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일요서울은 지난 3월 24일 천안함 피격 사건 생존 장병인 허향기(32) 예비역 하사와 인터뷰를 진행하며 사건 이후 지난 10여 년간의 소회를 들어봤다. 

- 군대內 상담 때 부대 눈치 보기 급급해… ‘괜찮다’고 하다가 ‘괜찮은 사람’ 돼
- “국가유공자에 해당하는지도 몰랐다”… 인정받는 것 조차도 지난한 과정

-최근에는 어떻게 지내고 있나. 
▲편의점을 3년째 운영하고 있다. 요즘 코로나19 때문에 직원을 많이 뽑기도 어려워 거의 쉬지도 못하고 일하고 있다. 

-직업 군인(하사·총 6년 복무)이었는데 어떻게 편의점 사장이 됐나.
▲2007년 입대 후 병사로 의무 복무를 하는 동안 군 생활이 성격에 맞는 것 같아서 병장 때 하사로 신분 전환을 했고 직업 군인을 하게 됐다. 총 6년간 군 생활을 하면서 진급은 못했지만 자격증도 5개 취득했고 진급 욕심도 있었다. 2010년 3월26일 천안함 피격 사건이 발생하고 나서도 군대에 남아 계속 복무하려고 했다. 하지만 해군은 승함 경력이 제일 중요하기 때문에 배를 계속 타야하는데 그때 사건 이후로 더 이상 배는 탈 수 없을 것 같아서 전역하게 됐다.

전역하고 나니까 군 경력밖에 없어서 해양경찰 공부도 해 보고 군무원 준비도 2년 정도 했다. 그런데 기회는 좀처럼 안 왔다. 할머니랑 단둘이 살고 있어서 공부하는 중에도 틈틈이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는데 하루 동안 오전에는 편의점, 오후에는 김밥집, 새벽에는 호프집에서 일을 했다. 취업 준비가 잘 안 돼 일하면서 모았던 돈으로 편의점 운영을 시작하게 됐다. 

-천안함 피격 사건을 겪고 나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가 생겼다고 들었다.
▲지금도 10여 년 전이랑 상태가 비슷하다. 처음에는 내가 PTSD라는 걸 겪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저 소심한 성격 탓인 줄로만 알았다. 감정 기복이 심하니까 화가 나는 일이 아닌데도 화가 나고 싸울 일이 아닌데도 싸운다. 특히 사람을 상대하는 직업이다 보니 손님들이랑 트러블도 자주 생긴다. 이 외에도 자다가 울고 잠잘 때도 늘 악몽에 시달린다. 사건 당시 꿈을 자주 꾸는데 배에서 함장님이랑 대원들이랑 좋았던 기억이 더 많은데도 그날 하루의 기억이 계속 꿈에 나와 힘들어서 잠을 제대로 못 잔다. 꿈을 너무 많이 꾸다 보니까 나름의 노하우가 생기긴 했다. 차 안에서 자면 이상하게 꿈을 안 꾼다. 

대원들이랑 가끔 만나 이야기를 할 때 이런 증상들을 설명하니 그들도 비슷한 경험을 이야기하며 PTSD를 겪고 있는 것 같다고 알려줬다. 정신과 치료를 받아 보라는 권유도 받게 됐다. 그렇지만 취업 준비를 하던 당시에는 선뜻 갈수가 없었다. 정신과 치료를 받는다는 걸 회사에서 알면 결격 사유가 될 거라고 생각돼서다. 결국 치료를 계속 미루다가 한 대원이 치료를 받고 나아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 2019년부터 정신과 상담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병원 치료를 하면서 증상이 나아지는 것 같다고 느끼나. 
▲한 달에 두 번 정도 병원에 가서 상담을 하고 약을 먹는데 안 다닐 때보다는 훨씬 낫다. 병원에서는 한 달에 세 번씩 오면 좋다고 하는데 편의점을 운영하면서 병원을 다니는 게 쉽진 않다. 그래서 한 달에 두 번씩 가고 한 번 갈 때도 있다. 마음 같아서는 쉬면서 제대로 치료를 받고 싶지만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것도 아니어서 이렇게라도 병행하고 있다. 

-천안함 피격 사건이 발생하고 3년 후 제대했는데, 군대 안에서 힘들진 않았나. 
▲사건을 겪은 이후로는 좋았던 기억이 거의 없다. 사건 이후에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왜 너희들만 살아 돌아왔느냐’ ‘보상금 얼마 받았느냐’ 등이었다. 외부에서 또는 언론에서 하는 이야기를 접하면서 상처도 많이 받았다. 또 억울하기도 했다. 우리가 국가로부터 받은 것은 전혀 없었고, 당시 최선을 다해 동료 대원들을 구하려고 노력했기 때문이다. 

-사건 이후 3년간 복무하면서 정신과 치료를 받은 적은 있나. 
▲군대 안에 있는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으라고 공문이 내려와서 1년에 한두 번 정도 갔었다. 가끔 가는 것이었는데도 부대 눈치 보기에 급급했다. 당시 나는 하사고 막내였기 때문에 오전이나 오후에 4~5시간씩 일과시간을 빼고 가는 게 상당히 부담스러웠다. 복귀를 빨리 해야 한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병원에 가서 아픈 데를 이야기하고 제대로 치료를 받고 싶어도 빨리 복귀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연신 ‘괜찮다’고만 반복했던 기억이 난다. 

최근 국가유공자 신청을 위해 서류를 준비하며 보니 군대 내 병원에서 진료 받은 기록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데 서류에는 ‘괜찮은 상태’라고 적혀 있었다. 부대 복귀 때문에 종이 설문도 대충 적고 다 괜찮다고 말했더니 서류상 나는 ‘괜찮은 사람’이 돼 있었다. 국가유공자로 인정받기 위한 심사 때 활용될 것을 생각하니 걱정이 된다. 

-군대 내 의료진은 상담을 잘 해줬나. 
▲의료진의 태도가 불편했던 기억이 있다. 이야기를 할 때 귀 기울여 들어주면 좋겠는데 의무적으로 듣는 듯한 느낌만 들었다. 종이 하나 주면서 글로 작성하라고 하고 이야기는 잘 안 듣고 그런 모습을 보면서 솔직한 심정을 잘 안 드러냈던 것 같다. 그때 함께 천안함에 있었던 다른 대원들이랑 이야기하는데 나만 느낀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우리끼리 이야기를 나누며 치유하는 시간이 됐다. 

-현재 국가유공자로 인정이 안 된 상황인가.
▲나는 아직 국가유공자가 아니다. 10여 년이 지났음에도 아직 신청조차 하지 않았다. 국가유공자에 해당되는 걸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공지나 안내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주변에서도 인정받은 사람이 별로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답답하고 막막했다. 누가 시원하게 가르쳐줬으면 했는데, 천안함 예비역 전우회 측과 먼저 준비를 하고 있던 대원들에게 도움을 많이 받아서 다음 달에 신청하려 한다. 현재는 필요한 서류를 준비 중이다.

-국가유공자 신청 과정은 어렵나.
▲준비할 서류도 많고 해서 어려운 부분이 꽤 있다. 하지만 국가유공자로 인정받는 과정은 더 어렵다고 들었다. 최근까지 천안함 생존 장병 중 국가유공자가 된 사람은 12명뿐이다. 제대한 천안함 생존 장병들은 국가유공자로 인정받기 위해 '보훈처심사위원회'에서 3단계 심사를 받는데 위원회에서는 공무상병인증서가 있는 몇몇 천안함 생존자를 1단계 자격요건 단계에서부터 인정하지 않아 2단계 신체검사 단계까지 가지도 못하는 경우가 있다고 들었다.

-다른 생존 장병들은 어떻게 지내는 지 알고 있나. 
▲대부분의 대원들이 PTSD를 겪고 있으니까 취업에 어려움을 느낀다. 취업을 못한 대원도 있고 취업했다가도 적응을 못하고 금방 나오는 대원도 있었다. 조직 생활에 적응해야 하는데 스스로 감정을 컨트롤하는 게 어렵다고 이야기한다. 동기 중 한 명은 회사 분위기가 자기 때문에 안 좋은 것 같다며 자책하고 그만뒀다. 상사와 트러블이 생기는 것도 전부 자신의 탓으로 돌리는 모습을 보면서 안타까웠다. 

-올해는 천안함 피격 사건 11주기인데 어떤 생각이 드나.
▲매년 비슷하다. 대원들이 보고 싶은 것도 그렇고 늘 마음의 상처로 남아있는 부분이다. 당시에 최선을 다했음에도 먼저 간 전우들한테 여전히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고 죄책감도 있다. ‘왜 너희들만 왔느냐’는 말을 들을 때 정말 나만 돌아오게 돼서 미안하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국가에 헌신해도 국가유공자 인정을 받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나중에 자녀가 군대에 간다면 흔쾌히 보낼 수 있을 것 같나. 
▲마음 편히 보낼 순 없겠지만 어쩌겠나. 대한민국에서 살기 위해선 의무적으로 복무를 해야 하니 보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해군은 절대 못 보낼 것 같다. 모든 군이 위험하고 힘들지만 해군은 특히 더 그렇다.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다각적인 노력이 필요할 것이고 나는 변화를 기대할 뿐이다. 

김혜진 기자 trust@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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