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편의 드라마가 쏘아 올린 ‘역사 왜곡’...“국민은 분노하고, 기업은 타격입고”

이번 논란에 대해 언급한 청원글이 추천순위 1위와 3위‧4위에 올랐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이번 논란에 대해 언급한 청원글이 추천순위 1위와 3위‧4위에 올랐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일요서울 | 양호연 기자]첫방영부터 논란의 중심에 오른 SBS 드라마 ‘조선구마사’가 결국 폐지됐다. 방영 직후 역사 왜곡 논란 등으로 인한 폐지는 초유의 사례다. 대중들은 방송사를 비롯해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나아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을 통해 강도 높은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이 같은 움직임은 곧 방영 폐지로 이어졌지만 어쩐지 폐지 발표 이후에도 후폭풍은 여전한 듯하다. 불타오른 대중의 반중감정으로 인한 타격이 사회‧문화산업의 범위를 넘어 재계‧산업계까지 확대된 것이다. 과연 무엇이 이토록 국민들을 분노로 이끈 것일까.



숱한 논란 끝에 드라마 방영 폐지 결정...‘中자본 리스크’ 확산
광고주 불매운동까지?...기업 넘어 소상공인 피해 직결될까 우려



지난달 22일 ‘조선구마사’의 1회 방영분에 중국 전통음식인 피단(皮蛋)과 월병, 중국식 만두가 등장했다. 극중 충녕대군이 서양 구마 사제에게 대접하는 잔칫상 음식이었다. 나아가 훗날 세종이 될 충녕대군에게 6대조인 목조(이성계 고조부)를 ‘기생과 놀아난 핏줄’이라는 대사가 이어졌고, 고려의 충신이자 명장인 최영을 충신이 아니라며 비하하는 대목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이와 함께 극중 태종은 죽은 아버지 이성계의 환영을 보고 광기 어린 눈빛으로 백성들을 학살했다. 이를 접한 시청자들의 분노는 극에 치달았고 강도 높은 비판과 함께 프로그램 방영 중단 및 폐지에 대한 요구가 빗발쳤다.

-“경제적 손실‧편성 공백”
-폐지해도 방심위行


숱한 논란 끝에 지난달 26일 SBS는 공식 입장을 내고 “이번 사태의 심각성을 깊이 인식해 ‘조선구마사’ 방영권 구매 계약을 해지하고 방송을 취소하기로 했다”며 “방송사와 제작사의 경제적 손실과 편성 공백 등이 우려되는 상황이지만, 지상파 방송사로서의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며 방송 취소를 결정하였음을 알려드린다”고 밝혔다. SBS에 따르면 이들은 해당 드라마의 방영권료 대부분을 이미 선지급한 상황이고, 제작사는 80% 촬영을 마친 상황이다.
 

이번 논란에 대해 언급한 청원글이 추천순위 1위와 3위‧4위에 올랐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드라마 장면 일부 갈무리 [SBS 드라마 '조선구마사']

이 같은 흐름이 계속되자 드라마 제작에 참여한 일원의 배우들과 연출자, 나아가 박계옥 작가도 각각 입장문을 통해 사죄의 뜻을 밝혔다. 특히 드라마를 집필한 박 작가는 전작인 ‘철인왕후’에서도 역사를 왜곡했다는 점이 불씨가 돼 재차 회자됐다. 철인왕후는 방영 전부터 중국 드라마 ’태자비승직기’를 원작으로 해 논란이 됐던 바 있다.

조선구마사는 폐지가 확정됐음에도 불구하고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심위)의 심의를 앞두고 있다. 방심위에 따르면 조선구마사 관련 민원은 5149건이 접수된 상황이다(3월29일 기준). 민경중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사무총장은 지난달 31일 방심위 온라인 기자간담회에서 “최근 문제가 불거진 역사왜곡과 폭력, 잔혹 장면 등을 여과 없이 내보낸 일부 방송 프로그램에 대해서는 여전히 국민들의 민원이 쇄도하는 중”이라며 “방송심의국에서 그동안 심의·의결된 유사사례 등을 종합적으로 참고해서 검토하고 있기 때문에, 해당 건들은 위원회가 정상 운영되는 즉시 안건 상정을 통해서 심의·의결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성호선 방송심의국장도 “제5기 심의위원회 구성과는 별도로 방송 특별 위원회는 지속되고 있다”며 “법률 자문 등 심의를 준비하고 즉시 이 안건을 처리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조선구마사 방송 폐지 여부와는 상관없이 2회분에 대한 심의가 이뤄진다”며 “심의 결과에 따라 방송사에 통보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광고주 불매 조짐, ‘손절’
-한중문화타운 건설 ‘불똥’


빗발치는 비판의 목소리와 대중들의 반중감정이 고조되는 분위기가 지속되면서 기업들도 곤혹스런 상황에 처했다. 드라마 광고주에 대한 불매운동으로 연결되는 움직임이 포착됐기 때문이다. 급기야 이에 부담을 느낀 기업들은 광고를 철회하는 등 광고 또는 제작지원 등에 대한 ‘손절’을 공표했다.

고를 철회한 기업에는 삼성전자, CJ제일제당, LG생활건강, KT, 하이트진로, 광동제약, 동국제약, 다우니, 다이슨, 금성침대, 혼다코리아, 한국간편결제진흥원, 블랙야크, 쿠쿠, 시몬스, 웰빙푸드, 아이엘사이언스, 씨스팡, 반올림피자샵, 에이스침대, 바디프렌드, 에이블루, 코지마, 뉴온 등이 포함됐다. 이들 기업 중에서는 가맹점을 보유한 기업들도 상당수 포함된 만큼,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로 인한 불매운동이 소상공인들의 피해로 직결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오기도 했다. 광고 중단을 결정한 기업들 중 반올림피자샵 측은 공식 SNS 계정에 드라마와 관련해 불편을 끼쳐 죄송하다는 내용과 함께 “저희는 해당 드라마에 제작 지원을 하지 않으며, 단순 광고 편성이 해당 시간대에 된 것으로 확인됐다”며 “앞으로 광고 편성에 있어서도 더욱 세심히 살피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한편 드라마 조선구마사로 촉발된 반중감정은 강원도 춘천에서 추진 중인 ‘한중문화타운(차이나타운)’ 건설 사업으로 불똥이 튄 모양새다. 지난달 29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강원도 차이나타운 건설을 철회해주세요’라는 제목의 청원글이 올랐다. 해당 게시글은 지난 2일 기준 35만2700건 이상의 청원 동의를 얻으며 진행 중인 청원의 상위 1위에 오른 상태다. 청원인은 “국민들은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 중국의 동북공정에 자국의 문화를 잃게 될까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며 “얼마 전에는 중국소속사의 작가가 잘못된 이야기로 한국의 역사를 왜곡하여 많은 박탈감과 큰 분노를 샀다”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이번 ‘조선구마사 사태’에 대해 드라마를 집필한 박계옥 작가는 “사려 깊지 못한 글쓰기, 안일하고 미숙한 판단”이라며 사과에 나섰다. 하지만 이번 사태로 인해 상당한 불쾌감과 피로감을 겪은 대중들이 그의 사과를 받아들일 수 있을지는 미지수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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