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립편집위원
이경립편집위원

서울시장, 부산시장 보궐선거가 다음 주 수요일로 다가왔다. 이번 주말에는 사전투표도 실시된다. 결과는 그 때까지 기다려보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두 선거 모두 패배하지 않을 수 있었던 더불어민주당은 문재인 대통령이 당대표 시절 심혈을 기울여 만들었던 당헌당규까지 고쳐가면서 후보를 옹립했다. 무슨 오만(傲慢)이었는지 무슨 오판(誤判)이었는지 모르겠으나 자승자박(自繩自縛)이니 누굴 원망할 수도 없다.

누구나가 예측 가능한 선거결과이지만, 그러한 처참한 성적표를 받아보기 두려운 사람이 있다. 더불어민주당의 상임선대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낙연 전 당대표다. 당헌당규를 고쳐서 서울시장과 부산시장을 빼앗기지 않겠다고 결기(決起)했지만, 자신의 대선후보 지지율만큼이나 단번에 푹 꺾여 버렸다.

다음 주 수요일이 지나면 그는 자신의 잘못된 판단으로 인한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한다. 그가 일류(一流) 정치인이라면 차기대선 불출마 정도의 입장을 내놓을 것이다. 그가 삼류(三流) 정치인이라면 선거구도상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선거였다고 핑계를 댈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일류도 삼류도 아닌 이류(異類) 정치인인 것 같다.

지난 31일 이낙연 상임선대위원장은 대국민 호소 기자회견을 가졌다. 최근 LH사태 이후 정부여당에 완전히 등 돌린 민심을 어떻게든 보듬어 보겠다는 야심찬 기자회견이었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국민 여러분의 분노가 LH 사태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정부여당은 주거의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했고, 정책을 세밀히 만들지 못했습니다. 무한책임을 느끼며 사죄드립니다”라며, 현실을 직시하는 듯하였다. ‘내로남불’에 익숙해있던 종족들이 쓰는 말들은 아니었다. 그런 점에서 그는 이류(異類) 정치인이다.

“저의 사죄와 다짐으로 국민 여러분의 분노가 풀릴 수 없다는 것을 잘 압니다. 여러분의 화가 풀릴 때까지 저희는 반성하고 혁신하겠습니다”라며, 기자회견은 클라이맥스를 향해가고 있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는 이류(異類) 정치인이었다.

“저희가 부족했습니다. 그러나 잘못을 모두 드러내면서 그것을 뿌리 뽑아 개혁할 수 있는 정당은 외람되지만 민주당이라고 저희들은 감히 말씀드립니다”라며, 그의 기자회견은 반전을 맞이한다. ‘내로남불’에서 ‘독야청청(獨也靑靑)’으로 노선 전환이다.

마무리는 “대한민국의 내일을 지켜주십시오. 국민 여러분의 현명한 선택을 간곡히 부탁드립니다”라며, 대국민 호소 기자회견을 끝맺는다. 사과가 분노를 부르는 순간이다. 오랜 기자생활로 기승전결(起承轉結)의 글쓰기가 몸에 밴 그였기에 마지막에 확실하게 분노를 일으키는 문장으로 끝을 맺을 수 있었다.

그런데 대부분의 언론은 이낙연 상임선대위원장이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을 했다고 보도하고 있다. 기자회견의 본질이 왜곡된 것이다. 이낙연 상임선대위원장은 ‘대국민 호소 기자회견’을 한 것이고, 기자회견 제목 또한 그렇다. 그가 사과를 한 것이라면 사과는 사과로 끝나야 하는데, 그는 조건을 붙었다. 그것도 협박조의 조건이다. 자신들을 선택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라고 규정한 것이 그 근거다.

그렇다면 그는 왜 그러한 기자회견을 했을까? 그는 정치의 생리에 대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선거결과를 바꿀 수는 없지만 선거결과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만들 수는 있다. 두자리수로 지는 선거를 한자리수로 좁힐 수 있다면 자신의 능력으로 치환할 수 있다. 그러면 자신의 정치생명은 연장될 수 있다. 그러한 판단이 그를 기자회견장에 서게 하였던 것이다. 대국민 협박성 기자회견은 그래서 나온 것이다. 그는 그저 이류(二流) 정치인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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