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명숙 전 총리는 2007년 건설업자로부터 9억 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2015년 대법원에 의해 유죄 확정판결을 받고 2년 복역했다. 건설업자가 한 전 총리에게 건넨 9억 원 중 1억 원 수표는 여동생 전세자금으로 쓰였고 2억 원은 건설업자에게 되돌려준 사실이 입증되었다.

한명숙에 대한 유죄 판결은 증거가 확실해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그런데도 대법원 판결 당시 문재인 대통령은 “역사와 양심의 법정에서 무죄임을 확신 한다”며 대법원 판결 승복을 거부했다. 그가 법을 다루는 변호사 출신인지 의심케 했다.

추미애 법무부장관은 한 전 총리의 “무죄를 확신한다“는 문 대통령의 주장을 받들려는 듯 한명숙이 검찰의 강압수사와 사법농단의 피해자라며 유죄 판결을 뒤집으려 했다. 사기·횡령죄로 복역 중이던 사람의 믿을 수 없는 증언을 내세운 뒤집기였으나 실패했다.

그러자 추미애 후임인 박범계 법무장관도 검찰이 증인에게 위증을 강요한 탓에 한명숙이 유죄를 받게 되었다며 검찰에 “재심의”를 요구했다. 그러나 박 장관의 요구 또한 일선 고검장과 검사장급 14명으로 구성된 회의체에 의해 지난 3월19일 거부되었다.

문 정권 법무장관들이 대를 이어 대법원 판결마저 뒤집으려 기도한 데는 필시 까닭이 있다. 문 권력이 전 정권에 상처를 내고 자기 세력은 깨끗한 걸로 세탁하기 위한 데 있다.

문 정부의 전 정권에 대한 상처 내기는 세월호 참사에 대한 반복된 진상규명 요구에서도 드러났다. 세월호는 2014년 4월 제주도로 수학여행 가는 학생들을 싣고 항해하던 중 침몰되었다.

세월호 침몰 원인과 인명구조에 대한 조사는 국가기관 7곳에서 8차례나 반복되었다. 2019년 11월 출범한 세월호참사특별수사단(특수단)은 박근혜 정부 법무부와 청와대의 수사·감사 방해 외압, 국정원과 기무사의 유가족 도청·감청 및 불법사찰 의혹 등이 모두 사실이 아니거나 사법처리 대상이 아니라고 올 1월 결정했다.

세월호에 대한 조사가 귀찮도록 반복되는 데 실망한 임관혁 특수단장은 “유족이 실망하겠지만 되지 않는 사건을 억지로 만들 순 없다”고 하소연하기에 이르렀다. 없는 죄를 억지로 만들어 낼 순 없다는 항변이었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은 작년 말 또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특검법을 일방적으로 통과시켰다. 이 특검법에 따라 세월호 수사는 이제 9번째 되풀이 하게 되었다. 문 권력이 세월호 참사에 대해 수사를 반복해서 요구하는 건 박근혜 정권 때 발생한 불행한 사태에 대한 국민의 분노와 의구심을 반복해서 재탕 삼탕 들춰내 박 정권에 상처를 주기 위한 정략으로 보인다.

문 정부의 전 정권에 대한 상처내기는 5.18 광주민주화운동 진상규명에서도 드러났다. 1980년 5.18 사태에 대한 진상조사도 지난 40년 동안 세월호처럼 여러 차례 반복되었다.

그런데도 문 대통령은 작년 5.18 사태 40주년 기념식에서 “발포 명령자 규명과 계엄군이 자행한 민간인 학살, 헬기 사격과 은폐·조작 의혹과 같은 국가 폭력의 진상은 반드시 밝혀내야 할 것들”이라며 앞으로도 계속 조사되어야 할 과제로 새삼 부각시켰다.

하지만 5.18 참사 조사는 40여 년간 여러 차례 반복되었고 할 만큼 했다. 대통령이 나서서 “학살” 운운하며 진상 규명을 강조할 시기는 지났다. 임관혁 세월호 특수단장의 지적대로 “되지 않는 사건을 억지로 만들 순 없다”는 데서 그렇다. 의문점이 제기되면 개별적으로 전문가들이 파고들면 된다.

문 정권의 반복되는 5.18 진상 규명 요구는 국민들에게 아물어 가는 상처를 다시 여는 고통을 안겨준다. 반복되는 국가적 반복 조사는 국력 소모다. 또 아픈 상처 들춰내기는 국민들 간의 갈등과 피로를 증폭시킨다. 5.18은 특정 정권을 위한 궐기가 아니었고 민주주의를 위한 시위였다. 5.18 사태나 세월호 비극은 정략적으로 이용되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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