⓵주총 반대 맥 못 추고 ⓶정치권 휘둘리고 ⓷개미주주와도 마찰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 관계자들이 3월4일 전북혁신도시에 있는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 앞에서 '국내주식 과매도 규탄'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뉴시스]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 관계자들이 3월4일 전북혁신도시에 있는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 앞에서 '국내주식 과매도 규탄'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뉴시스]

[일요서울 ㅣ이범희 기자] 국민연금이 안팎으로 시끄럽다. 하는 일마다 구설에 올랐다. 가장 최근에는 올해 상장기업 정기 주주총회에서 보여 준 모습에 질타가 이어졌다. 국민연금은 올해도 주주총회에서 일부 기업 안건에 반대표를 던졌다. 하지만 여타 투자자의 표심을 유의미하게 설득하지는 못했다. 또한 국민연금 규모가 커지고 책임투자에 대한 요구가 거세지는 상황에서도 정치권에 휩쓸리는 모습을 보여 논란을 부추겼다. 계속된 증시 매도로 개미주주들과 마찰을 빚기도 했다.

 반대표 던진 안건 주총서 무사 통과...정치권 입김에 중립 의견
 3월에 새로 쓸어 담은 9개 종목 개미와 마찰...본사 앞 항의도


국민연금이 공개한 '수탁자 책임활동 내역'에 따르면 올해에는 총 327건의 임시 및 정기주주총회에서 의결권을 행사했다. 대주주로서 기업 경영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굵직한 안건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다.

대표적인 게 대한항공의 유상증자와 조원태 회장 재선임을 반대했다. 유상증자를 실시할 경우 주가가 하락해 기존 주주들의 가치를 훼손할 수 있고 조 회장은 아시아나 인수를 위한 실사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재선임을 반대했다.

우리금융지주 사외이사 선임도 반대했다. 수탁자책임 전문위원회는 “해외금리연계집합투자증권(DLF) 불완전판매 관련 기업가치 훼손과 주주권익 침해 행위에 대한 감시의무에 소홀했다”는 사유로 사내이사 후보를 제외한 대부분 안건에 반대를 결정했다.

- 갈팡질팡 의결권 행사 논란

이처럼 국민연금이 현직 경영진에 대해 상당히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며 공격적으로 경영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기준에는 '의문'이 남는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다.

대한항공 유상증자와 사내이사 재선임 건과 관련해 시민단체 등이 격렬하게 반발하자 모두 반대하는 등 의결권 행사에 명확한 기준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 기금운용위원회도 최근 회의에서 기금운용본부의 삼성전자 사외이사 재선임 찬성 의결 결정 과정에 '미흡한 부분'이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우리금융도 원안대로 통과됐다.

그동안 국민연금이 반대표를 던지고, 안건을 부결시킨 사례는 극히 낮다. 최근 3년간 반대표를 행사한 경우는 평균 500건이 넘지만 부결까지 이어진 건 고작 3% 내외다.

최대주주 지분율이 높아 국민연금이 제대로 힘을 못 쓰고, 캐스팅보트 역할만 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민연금은 금호석유화학과 한국타이어그룹(현 한국타이어테크놀로지)의 경영권 분쟁에도 참여, 현직 경영진의 손을 들어줬다.

이런 가운데 국민연금이 책임투자를 강화해야 한다는 압박은 강해졌다. 정치권은 특정 기업을 콕 집어 국민연금이 이들을 상대로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에 나서야 한다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한 지 3년이 지났음에도 영향력을 행사하기는커녕 정치권 입김에 휘둘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 독립성 강화 위한 제반 장치  필요

개미 투자자들과의 마찰도 빚고 있다. 국민연금은 지난달 31일 국내주식 투자비중이 지난해 말(21.2%)보다 0.2%p 줄어든 21%라고 공시했다. 비록 수치는 줄어들었으나, 국민연금이 지난해 12월24일부터 지난 3월까지 무려 48거래일 연속 순매도를 이어오며 14조 원에 육박한 주식을 매도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미미한 수치의 하락이라고 볼 수 있다.

국민연금의 연이은 매도 폭격에 개인투자자를 상징하는 ‘동학개미’는 국민연금이 주가 하락을 부추겼다며 집단 반발에 나섰다.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는 지난달 4일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 앞에서 ‘동학개미가 살린 주식 국민연금이 말아먹네’, ‘주가 하락 재밌냐, 기금운용본부 해체’ 등의 피켓을 들고 시위에 나선 바 있다.

한편 국민연금이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내기 위해선 찬·반을 결정하는 수탁자 책임전문위원회의 독립성 강화를 위한 제반 장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국민연금이 이해 관계자가 많다 보니 의결권 행사 과정에서 수익률과 주주가치 외에도 다양한 요소가 끼어든다”며 “거버넌스 독립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