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두 번 째 자살

서울의 서북쪽 관문에 위치한 자하문장. 그 조그만 장급 여관 에서 두번째의 살인사건이 일어났다. 종업원 박철호는 귀 밑에 단 한 번의 칼질을 맞아 죽은 시체로 발견되었다. 자하문장의 자기 방에서였다.

전날에야 연행에서 돌아온 박철호가 고단할 것이라고 생각하여 깨우지 않고 기다리던 뚱뚱보 여주인이 참다 못해 12시쯤에 깨우러 가 보자 잠자듯이 죽어 있었던 것이다.
“이젠 망했군. 1주일도 안 돼서 둘씩이나 죽어 나가다니. 이눔의 여관에 무슨 귀신이 쓰였을꼬?”

뚱뚱보 여주인은 완전히 넋이 나가 버렸다.
“이제 흉가라고 내놔도 안 팔릴 거고.  이 일을 어떻게  해야 한담?”
경리 미스 조에게 하소연조로 물었다. 말이 경리지 여관에서 일어날 수 있는 치사한 경우를 다 몸소 겪은 아이였다. 처음 시골서 올라와 이 여관에 들었을 때만 해도 순진하던 그녀는 차차 돈 맛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밤낮없이 그 곳을 드나드는 남녀가 하는 짓이 무엇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지나다니는 남자들이 슬쩍슬쩍 엉덩이를 만지기도 하고 젖가슴을 더듬기도 했다.

처음에는 기겁을 했으나 잘 대응만 해주면 괜찮은 일이 생긴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마침내 그녀는 급할 때 멀리서 불려 오는 언니들 대용품 노릇도 했다.
별로 힘들이지 않고 옷만 한 번 잘 벗으면 꽤 큰돈을 만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런 세계를 알게 된 그녀는 좀 더 물 좋은 곳을 찾아 가려고 눈치만 보고 있었다는 것을 뚜뚱보 주인 아줌마도 눈치 채고 있었다. 경찰에 살인사건을 신고하고 난 그녀의 대답이 여주인을 더 낙담하게 했다.
“저, 오늘로 그만둘래요.”

“그래, 내가 뭐 붙잡을 형편이나 되냐. 알았다, 알았어. 뒈질 놈은 다 뒈지고 갈 년은 다 가거라.”
경찰이 도착하기에 앞서 강 형사가 먼저 여관에 들어왔다. 그는 살인사건을 모르고 들른 것이었다.

종로서에 연락해 본 결과 박철호를 풀어 줬다는 통보를 받고 여관으로 찾아온 것이었다.
“미스터 박 있습니까?”
강 형사를 본 여주인의 눈은 곱지 못했다. 그가 올 때마다 사람이 하나씩 죽었기 때문이다.

“또 죽었소.”
여주인은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예?”
강 형사가 자기 귀를 의심했다.
“자살했어요. 다 당신네들이 죽인 거요. 그 착한 애를 얼마나 들볶았으면 자살을 다⋯”
여주인은 말을 다 하지 못하고 울먹거렸다. 그녀가 쿨적거릴 때마다 배가 출렁거렸다.

“어디 있습니까?”
강형사의 질문에 미스 조가 방을 안내하였다.
“자살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았습니까?”
“유서가 있어요.”
미스 조가 간단하게 답했다. 그녀가 방을 가리키기가 무섭게 강형사는 돌아서서 뛰어갔다.

문을 열자 피비린내가 확 풍겨왔다. 강 형사의 훈련 받은 눈이 조심스레 사체와 방을 훑었다.

머리를 문 쪽으로 두고 쓰러져 있었다. 방이 좁아 발은 바로 창 밑에 놓여 있었다. 이불 위로 쓰러져 있었다. 서서 목의 동맥을 끊은 모양이다. 그것을 증명하듯 발치에 안전면도기에 넣어서 쓰는 면도날이 놓여 있었다. 햇빛을 받아 날카로운 양날이 섬뜩하게 번쩍거렸다.

피가 오른쪽 귀 밑에서 흘러내리고 있었다. 귀 뒤의 경동맥이 잘린 것이 틀림없었다. 그 옆에 종이가 놓여 있었다. 피에 반쯤 젖어 있었다.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 저세상에서는 보다 좋은 것이 기다리고 있기를 바란다.”

글씨는 상당히 떨려 있었다. 서명은 없었다. 피가 굳었고 사반이 형성되기 시작한 것으로 보아 죽은 지 12시간이 넘은 것 같았다.
강 형사는 피를 피해 창가로 다가가 창을 열어보았다. 창 밖은 여관의 뜰이었다. 창을 열자 쇠로 만들어진 방충망이 강 형사를 가로막았다. 강형사는 다시 돌아서서 사체를 바라보았다.

작은 장이 강 형사의 눈에 띄었다. 다가가 서랍을 열어보자 온갖 잡동사니들이 쏟아져 나왔다. 손톱깎이, 이쑤시개, 볼펜, 명함, 압정이니 바늘 따위들이 보였고 심지어는 콘돔도 있었다. 면도칼 통도 있었다. 아직 뜯지도 않은 새것이었다. 면도기는 방구석에 놓여 있었다. 요즘 유행하는 한 날만 쓰는 면도기였다.
겉으로 보기에는 자살임이 틀림없었다. 그러나 강형사는 석연찮은 생각이 자꾸 들었다.

“여관에 손님이 있습니까?”
“있을 턱이 없잖아요. 그런 사건이 있었는데⋯”
미스 조가 시무룩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럼 무서워서 청소도 못했겠군요.”

“그렇지요, 뭐. 또 그 방은 아예 치우지도 말라던데요.”
강 형사는 다시 머리를 갸웃거렸다.
“누군가 들어온 것이 틀림없는데, 어제 다녀간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까? 손님이 아니더라도 말입니다.”
“없어요, 없어.”

여주인이 팔을 내저었다.
“그럼 어젯밤 미스터 박 방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는 것도 듣지 못했습니까?”
“우린 밤귀가 밝은데 어제는 아무 소리도 못 들었어요.”
여주인이 여전히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 글씨는 미스터 박의 글씨가 맞나요?”

“맞는 것 같이 보였어요.”
미스 조가 대답했다.
“어제 문은 언제 잠갔습니까?"
“여관에 손님이 안 차면 문이야 안 잠그지요. 그냥 닫아둘 뿐인데, 종이 달려 있어서 누구든지 들어오면 금방 알 수 있어요.”

강 형사는 현관으로 돌아가 문에 종이 달려 있나를 살펴보았다. 그는 조용히 문을 열어 보려고 여러번 노력하였지만 실패하였다. 도저히 소리를 내지 않고는 문을 열 수가 없었다.
현관 외에 들어올 곳이 없다는 것은 이미 지난번에 확인한  바 있다.
“두 분은 함께 계셨습니까?”
“그래요”

뚱뚱보 여주인은 그 질문이 어쩐지 자기를 의심하는 것 같아 갑자기 불안감이 엄습하여 오는 것을 느꼈다.
부검 결과가 나와 봐야 어떻게 된 영문인지 알겠구나 하고 생각한 강형사는 최 경감을 만날 것인가 잠깐 고민하였다. 그때 싸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또 만났군.”

최 경감이 무뚝뚝한 소리로 강 형사에게 인사했다. 감식반원들이 뒤를 따라 들어왔다.
“안녕하셨습니까?”
“음, 이번에도 특수한 임무로 누군가를 미행하고 있었나?”
“아닙니다. 이번에는 박철호를 지난번 사건 건으로 만나려고 했었습니다.”
“그래?"

최 경감은 더 강 형사에게 관심을 두지 않고 능숙한 솜씨로 사건을 지휘하였다. 강 형사도 조사 과정을 조용히 지켜보았다.
“박철호는 정필대 사건 심문에서 뭘 얘기 했습니까?”
조사가 끝나자 강 형사가 물었다.

“끝까지 도망친 것은 여자였다고  우기다가 우리가 증거를 들이대자 사색이 되더구만.”
최 경감은 강 형사가 왜 남의 사건에 뛰어드는지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묻지 않고 선선히 대답을 해 주었다.
“그러더니 자네 핑계를 대더구만. 그 남자가 돈을 쥐여주며 자기 얘기를 하지 말아 달라고 신신당부 했다는 거야. 그런데 자네가 없어진 여자가 있다고 자꾸 그래서 얼른 그렇게 꾸며댔다는 거지.”

강 형사는 추 경감의 질책이 들려오는 것 같아 고개를 움츠렸다.
“그리고는 끝내 그 남자는 처음 본 남자라고 우기더구만. 하지만 그건 말이 안 되잖아.”
“그런데 왜 구속을 하지 않았습니까?”

강 형사가 최 경감을 쳐다보고 물었다. 이만하면 숨기지 말고 다 털어 놓치요, 하는 표정이었다.
“구속하려고 했지. 하지만 그 친구가 범인이 아니라는 것은 너무나 확실했거든. 그 때문에 도주, 증거 인멸의 위험이 없다고 영장이 기각 되었어. 제기랄 거, 왜 알잖아⋯”

최 경감은 짜증스런 얼굴로 말하고 있었다.
“이번 사건을 어떻게 보십니까? 자살 같습니까?”
“아니. 내가 취조하면서 느낀 것은 박철호 만큼 생에 애착이 강한 놈도 없을 것이라는 점이었어. 절대로 자살할 엄두를 못 낼 위인일세. 거 참 이상한 일이야.”
“그렇다면 살인이란 말입니까?”

“글쎄 객관적으로 보기에는 확실히 자살이야. 지난번 사건과 같아 보이지 않나?”
“제 생각도 최 경감님 생각과 동일합니다.”
강 형사가 동감을 표시했다.

“하지만 범인이 같다고는 여겨지지 않는군요.”
초동수사를 끝낸 뒤 시체는 대학병원으로 옮겨졌다.
“내 차로 같이 가겠나?”
최 경감이 그때까지 남아 있던 강 형사에게 호의를 보였다.
“아닙니다. 저는 좀더 살펴보겠습니다.”

강형사는 최경감의 제의를 사양하였다. 그는 아무래도 석연찮은 점을 풀어헤쳐야 할 것 같았다. 박철호는 타살되었다는 육감에서 그는 헤어날 수가 없었다.
“저, 드릴 말씀이⋯”
최 경감 일행이 일단 경비 순경만 남기고 철수하자 미스 조가 강 형사에게 말을 걸었다.

“응? 무슨 일입니까?”
강 형사는 멍한 생각에 빠져 여관 마당을 거닐다가 놀라 그녀를 돌아보았다. 키가 작고 못생긴 여자였다.

“형사님이 자꾸 이상하다고 하니까 저도  이상한 생각이 들었어요.”
못생긴 얼굴이지만 진하게 그림을 그리듯이 한 화장이 본래의 모습을 조금은 감추고 있었다. 그러나 몸매 하나만은 썩 잘 빠졌다고 강형사는 생각했다.
“그게 뭐지요?”

“저는 잠이 들면 꼭 밤에 한 번 소변을 보러 가기 때문에 잠을 깨는데 어제는 그런 일이 없었어요”
“언제나 그렇단 말입니까?”

그녀는 일부러 몸을 꼬았다. 그녀의 커다란 유방이 강 형사의 눈을 괴롭혔다. 그녀는 그것을 눈치챈 듯 가슴을 강 형사 앞에 드밀었다.
“물론 아주 피곤하면 그렇지 않아요.“
“아주 피곤하다니요?”

“아이 형사님도 눈치가 그렇게 없어서야....왜 멋진 남자 만나면 잠잘 시간이 있겠어요?”
“음⋯ 그 얘기군요.”
“아저씨도 잠자리 솜씨는 괜찮겠는데요.”

숫제 자기를 가지고 놀려고 한다고 그는 생각했다.
“하지만 어제는 그런 피곤한 일도 없었걸랑요. 게다가 요새는 무서워서 깼다가도 그냥 참고 자 버리거든요. 그런데 이상하게 어제는⋯”
“어제 뭘 마셨지요?”

“특별한 것은 없어요. 가게에서 콜라 한 병 사다가 마신 것밖에 없어요.”
강 형사의 머리를 스치는 것이 있었다.
“빈 병은 어디 있지요?”
“벌써 내다 버렸지요.”

암담 해지는 강 형사의 눈치를 모른 채 미스 조는 태연하게 말했다.
“그걸 사 오면서 무슨 일이 없었어요? 가령⋯”
“아니, 전혀요.”
“잠깐!”
강형사의 머리에 번개 같은 영감이 다시 떠올랐다.
“콜라를 사러 갔던 때는 언제였지요?”

“박군이 돌아오기 전이었어요. 5시쯤⋯”
미스 조는 강 형사의 어깨를 슬쩍 건드리면서 말했다.
“가게까지는 2~3분 정도밖에 안 걸리지요?”
“예, 그래요.”

강 형사는 여관으로 다시 들어갔다.
“미스 조가 콜라를 사러 갔을 때 어디 계셨죠?”
“방에 있었어요.”
여주인은 갑작스런 강형사의 질문에 놀라 몸을 사리며 대답 했다.
“무슨 일이 있었을 겁니다. 잘 생각해 보세요.”

“아하, 그러고 보니 일이 있었어요.”
한참 무엇인가를 생각하던 여주인의 눈빛이 반짝였다.
“101호실 쪽에서 무슨 소리가 나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그리로 갔었지요.”
101호실이라면 현관에서 가장 먼 방이다.

“그렇다면 내가 101호실로 가보지요.  101호실에 들어갔었나요?”
“아니요. 거기까지 갔다가 그냥 돌아왔어요.”
“좋습니다. 101호실 앞에 제가 있을 테니까 현관을 열어 보세요?”
강 형사는 101호실 앞에서 귀를 기울였다.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소리가 들리는군요. 그때 종소리를 못 들었습니까?”
“잘 모르겠어요.”

여주인은 애매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쪽으로만 신경을 써서.”
“그렇다. 범인은 여관의 구조를 잘 아는 사람일 것이다. 그 짧은 순간에 범행은 이루어졌던 것이다. 범인은 이 근처에서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미스 조가 나가는 것을 보자  기회를 잡았다고 생각했던 것이고 여관 구석 쪽으로 돌을 던져 유인한 뒤 들어와서 주전자에 약을 탔을 것이다. 그다음에는 박철호의 방에서 유유히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 뒤에 박철호가 들어오자 위협하여 유서를 쓰게 했다? 이 부분이 좀 이상하군. 박철호에게도 약을 먹였을 가능성이 있군.” [계속]

 

[작가소개] 60여 년간 편집기자와 경영인으로 일한 언론인 겸 추리 소설가다. 한국일보, 서울신문, 국민일보, 파이낸셜뉴스 등 13개 언론사에서 편집국장, 대표이사 등으로 일했고, 스포츠서울, 스포츠투데이, 굿데이를 창간했다.

오랜 경험과 기록을 바탕으로  역대 정권의 언론 탄압과 견제, 정계의 비화를 다룬 저서와 소설이 4백여 편에 이른다. 특히 추리와 정치를 깊이다룬  소설가로 유명하다. 대한민국 문화포장, 한국추리문학 대상 등을 받았다. <신의불꽃>, <역사에 없는 나라>, <악녀두번 살다> <세종대왕 이도> 등 베스트 셀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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