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립편집위원
이경립편집위원

지난 7일 치러진 서울시장, 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대패했다. 서울의 박영선 후보는 국민의힘 오세훈 후보에게 18.3%p, 89만여 표 차로 패했고, 부산의 김영춘 후보는 국민의힘 박형준 후보에게 28.3%p, 43만여 표 차로 패했다.
대통령선거를 1년도 채 남겨두지 않은 시점에서 치러진 대한민국 수도와 제2의 도시 시장선거에서 패한 더불어민주당은 정작 이번 보궐선거의 패배가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지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이번 보궐선거 투표율은 서울이 58.2%, 부산이 52.7%로, 과거 보궐선거 투표율과 비교하더라도 결코 낮지 않은 투표율이었다. 가장 최근의 전국선거였던 21대 총선 투표율이 서울 68.1%, 부산 67.7%였는데, 이번 보궐선거 투표율을 작년 총선 투표율로 가정하고, 투표장에 가지 않은 유권자(서울 9.9% 84만여 명, 부산 15% 44만여 명)를 모두 더불어민주당을 지지하는 샤이진보로 간주하더라도 서울은 5만여 표 차이로 패배, 부산은 박빙의 선거전이 전개되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즉, 21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을 지지했던 스윙보터(swing voter)들이 완전히 붕괴된 것을 의미하는 것이며, 범야권 지지유권자의 수가 범여권 지지유권자의 수보다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 대통령선거를 실시하면 여당이 패한다는 심각한 상황인데, 그들의 안이한 현실인식에 그저 감탄할 따름이다.

선거를 진두지휘했던 이낙연 상임선대위원장은 선거 다음날인 8일 SNS를 통해 “국민 여러분의 결정을 무겁게 받아들인다. 4·7재보선으로 표현된 민심을 겸허하게 수용한다”, “저는 성찰의 시간을 갖겠다. 대한민국과 민주당의 미래를 차분히 생각하며, 낮은 곳에서 국민을 뵙겠다”며, 기대했던 대로 책임론을 교묘하게 회피했다.

김태년 당대표 권한대행을 비롯한 당 지도부는 선거 다음날 총사퇴했다. 총사퇴하기 전에 비상대책위원회를 발족시켰는데, 도종환 의원을 위원장으로 5인의 국회의원과 구청장 1인이 위원으로 선임됐다. 4월 16일 원내대표 선거, 5월 2일 당대표 선거 등 일사불란(一絲不亂)하게 일사천리(一瀉千里)로 선거패배 수습책도 마련했다. 신속한 당 체제 정비를 선거패배 수습책으로 판단한 듯하다. 유권자의 시그널을 잘 못 읽은 책임은 오롯이 그들의 몫이다.

한편, 오랜만에 승리를 맛본 국민의힘은 과거의 버릇대로 발길질로 승리를 자축했다. 손끝이 근질근질했던 대구 나리는 서울특별시민이라고 자수(自手)했다. 승리에 도취해 망각의 병이 도지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 11개월 동안 제1야당의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이번 보궐선거를 승리로 이끈 김종인은 선거 다음날 퇴임 기자회견을 갖고 국민의힘에 마지막 당부를 전했다. 그는 이번 보궐선거 결과에 대해 “국민의 승리로 겸허히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들이 승리한 것이라 착각하면서 개혁의 고삐를 늦추면, 당은 다시 사분오열하고 정권교체와 민생회복을 이룩할 천재일우의 기회는 소멸할 것”이라 경고했다.

언제나 정체성에 대해 의구심을 갖게 하는 그이지만, 그의 마지막 당부는 노회한 정치인의 솔직한 애정의 표현이다. 박수칠 때 떠나며 마지막으로 당부한 그의 한마디를 그들이 곧 망각할 것이라는 확신이 드니 아찔하지 않을 수 없다.

대의민주주의에서 선거는 국민들이 자신들의 의사를 표시하는 가장 유효한 수단이다. 그런데 어느 정당은 착각도 자유여서 유권자의 뜻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어느 정당은 닭보다 못한 기억력으로 망각의 늪에 빠져 모른 체할 것을 생각하니 오호통재(嗚呼痛哉)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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