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 테러’ 20년 만에 아프간에서 미군·나토연합군 철수한다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국경에 배치된 미군들(2008년) [월스트리트저널]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국경에 배치된 미군들(2008년) [월스트리트저널]

- 바이든 “9.11 철군 미국이 극단주의 위협에서 해방된 상징성 내포” 
- 트럼프 정부의 5.1 철군 계획 폐기…탈레반 준동 재발 리스크 여전
- 일각에선 “미군 철수, ‘이슬람 극단주의 확산’ 방조하는 조치” 비판  
 

[일요서울 l 정두현 기자] 2001년 ‘뉴욕 9‧11 테러’ 참사 후 20년 만에 아프가니스탄(이하 아프간) 내전에 참전했던 미군이 현지에서 전면 철수한다.

지난 14일(현지시간)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바이든 대통령이 아프간 주둔군을 거둬들이기로 결정했다며, 오는 9월11일까지 단계적으로 이뤄질 미군 철수는 사실상 아프간 전쟁 종식을 의미한다고 보도했다. 

바이든, 트럼프表 철군 계획 폐기…상징성 담아 ‘9.11 철군’ 추진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아프간 주둔군 철수 계획을 공식화했다.

미국 역사상 최장기전으로 기록된 아프간 내전에 대한 미군 개입 중단 계획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재임 기간에 처음 추진됐다. 트럼프 행정부와 탈레반은 지난해 2월 무력 도발 행위 축소를 골자로 한 평화 합의서에 서명했다. 이에 트럼프 전 대통령은 올해 5월1일까지 아프간 분쟁 지역에 주둔하고 있는 병력 대부분을 타 지역으로 재배치한다는 방침을 세운 한편, 철군 세부 계획 수립에 나섰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2001년 알카에다 테러 참사일로부터 정확히 20년째를 맞는 올해 9월11일을 철군 기한으로 변경, 전임 정부와 궤를 달리했다.

미 정부 한 고위 관료는 “올해 9월11일을 미군 철수 기한으로 지정한 것은 미국이 극단주의 무장집단의 위협으로부터 해방된다는 상징적 의미를 갖는다”며 “타국 전쟁에 국방비 수조 달러를 지출하는 시대도 끝났다”고 밝혔다. 또 이 관료는 “아프간 주둔군 철수는 목표일보다 이른 올 여름까지 마무리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 연설에서 아프가니스탄 철군 계획을 밝히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 연설에서 아프가니스탄 철군 계획을 밝히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

바이든 정부 ‘9.11 철군’ 결정에 美 의회는 갑론을박  

이에 대해 미국 국회에선 바이든의 아프간 철군 방침에 대해 찬반 의견이 첨예하게 갈리는 분위기다.

제임스 인호프 공화당 상원의원은 “현 정부의 아프간 철수 계획은 병력 운영에 직결되는 현실적 요소가 아닌 철저한 정치적 셈법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팀 케인 민주당 상원의원은 “미군이 지난 2011년 알카에다 리더인 오사마 빈 라덴을 사살한 지 10년이 지났다”면서 “아프간에 대한 인도주의적 외교 지원을 유지하면서 국가 안보 정책에 집중해야 할 때”라고 현 정부의 계획을 지지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달 첫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아프간의 무력 충돌 긴장감을 고려하면 전임 정부가 계획한 5월1일까지 미군을 전면 철수시키는 것은 무리가 있다”며 “미군 철수 일정을 몇 달 늦췄음에도 극단주의 무력 집단이 아프간 정부 안정화와 여성 인권 신장에 큰 위협이 되고 있는 것은 여전하다”라고 강조했다.

아프간은 탈레반 집권 전까지는 다른 이슬람 국가들에 비해 여성의 사회 활동이 활발한 수준이었던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탈레반 치하에서 여성의 사회활동을 금지하고 부르카 착용을 의무화하는 등의 조치가 이뤄지면서, 여성 인권은 급격히 추락한 것으로 알려졌다. 

탈레반 ‘공격 재개’ 위협 속 미군 아시아 전역 재배치 

바이든 정부가 들어서면서 전임 정부 시절 체결된 평화 합의 조약에 대한 전면 재검토가 이뤄지자 탈레반은 ‘5.1 철군’을 이행할 것을 촉구해왔다. 탈레반은 최근 성명을 통해 5월1일까지 미군이 철군하지 않을 경우 주둔군에 대한 공격을 재개하겠다고 수차례 경고해왔다.

이렇듯 탈레반의 준동 재발 위협이 엄존한 가운데, 미국 현 정부는 9.11 철군의 일환으로 아프간 현지 주둔군 재배치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현재 아프가니스탄에는 3500명 이상의 미군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North Atlantic Treaty Organization) 연합군 6500여명과 함께 주둔하고 있다.

미군 한 고위 행정관은 “다음달부터 미군 사령관의 철군 지침에 따라 현지 주둔 부대의 재배치가 이뤄질 것”이라며 “군 당국이 아프간 분쟁 지역을 감시, 경계할 수 있는 정보수집 능력을 유지하는 가운데 주둔군을 아시아 전역으로 분산 배치함으로써 군사 충돌을 제로화시킬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또 이 행정관은 “일부 부대는 내년 이후에도 아프간 수도 카불에 있는 미국 대사관을 보호하기 위해 잔류하게 될 것”이라고 부연했다. 미 군 당국에 따르면 아프간 미 대사관 잔류 병력은 수백명 규모인 것으로 알려졌다.  

아프간 상황 차치하고 “무조건 손 떼겠다”는 바이든 정부

바이든 정부가 이번에 9월11일 철군을 결정한 것은 더 이상 알카에다와 그 하위 군부조직들이 미국에 큰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아프간 전문 협상가인 나데르 나데리는 이번 미국 정부의 철군 결정에 대해 “이번 주둔군 철수로 아프간이 자생력을 찾고, 특히 탈레반이 미국과도 평화적, 정치적 합의에 이를 수 있도록 단초를 제공할 것”이라며 “현지 사정을 지나치게 고려한 철군 신중론은 오히려 병력 피해만 더 늘리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임 정부와 달리 이번 행정부는 아프간 현지 여건에 따른 유동적 철군 계획을 채택하지 않고 오는 9월11일까지 반드시 철군을 완료한다는 강경책을 내놨다.

미 정부 고위 관계자는 “지난 20년간 그랬던 것처럼 현지 상황에 따라 주둔군을 운용하는 접근 방식으론 영원히 아프간에서 병력을 철수시킬 수 없다는 게 바이든 대통령의 판단”이라고 밝혔다.

9.11 철군 계획에 쏟아지는 비판 여론

일부 전문가와 정부 관계자들은 바이든 정부의 아프간 철군 강경책을 비판하고 나섰다.

민주주의 방위재단의 선임 연구원 토마스 조설린은 “뉴욕 테러 참사가 일어난 9월11일을 철군 종료일로 선택한 것은 매우 불행한 일”이라며 “이는 극단주의자들로 하여금 미국의 패배를 재각인시키는 역효과만 불러올 것”이라고 논평했다.

지난 2011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이라크 바드다드의 미국 대사관에만 수백명의 병력을 잔류시킨 채 이라크에서 전군을 철수시켰다. 잔류 병력은 대사관 보호 등 기타 임무는 주어졌지만 훈련이나 전투 작전은 수행하지 않았다.

공화당 의원들과 군사 전문가들은 당시 이라크 철군 결정은 이슬람 극단주의가 횡행하는 것을 방조했으며, 결국 미국이 이후 몇 년 동안 이라크로 재파병해야 했다고 비판했다.

이에 오바마 전 대통령의 측근들은 당시 이라크 정부의 상황 때문에 군대 철수는 불가피했다고 반박했다. 9.11 철군 비판론에 대해 미군 한 고위 관계자는 “아프간 철군에 따른 후속 조치를 구상하는 데 있어 10년 전 오바마 정부의 사례를 충분히 염두에 뒀다”고 밝혔다.

한편, 미국은 2001년 9월11일 알카에다의 뉴욕과 펜타곤 테러 공격에 대한 보복으로 2001년 10월 아프가니스탄으로 병력을 투입시켰다. 당시 알카에다는 탈레반 치하에 있는 아프간 공격을 앞두고 있었다.

탈레반을 격퇴한 후 미국은 이슬람 극단주의 단체의 무력 행위를 억제하는 한편, 미국에 협조적 태도를 보인 아프간 정부의 재건을 돕기 위해 현지 주둔군을 뒀다. 지난 20년 동안 아프간 분쟁에 투입된 미군은 총 14만명으로 2372명이 사망하고 부상병도 2만명 이상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으로 파병된 미군은 약 200만명에 이른다.

미국 정부의 지원으로 수립된 아프가니스탄 현 정부의 국가 장악력과 통치 체계는 현재까지도 불안정하며, 이슬람 국가를 포함한 극단주의 군부 세력들은 여전히 아프간 곳곳에 거점을 두고 미국 주둔군을 포함해 정부 관료, 민간인 공격을 자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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