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장 네 개의 벽면 중 한쪽 빽빽하게 그림이 걸린 한가운데 한 곳이 뚫려 흰 벽이 드러났다. 6호 정도의 작은 그림이 걸릴 만한 자리였다. 아니 걸렸던 그림이 없어진 것이 틀림없다. 하얀 빈자리 밑에 ‘누드-물음표’라는 그림 제목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웬일일까?
경매는 그림 전시가 끝나는 오후 여섯 시부터 시작될 예정인데 누가 먼저 사갔을 리도 없다.

추상화의 대가 오당 변하진의 전시장에서 정말 불가사의한 일이 일어났다.
“이거야말로 귀신이 곡할 노릇이네.”

누가 전화를 했는지 종로 경찰서의 곽정 형사가 들어오자 화랑 겸 미술품 옥션 매장 주인인 염혁중이 탄식을 했다.
“어딥니까?”

곽정 형사가 안면이 있는 염 관장을 보고 턱을 쓱 내밀며 말했다.
화랑과 골동품 거래가 많은 인사동을 포함한 종로 관내의 문화재 관련 일을 많이 수사해 온 깍쟁이 곽정 형사, 웬만한 사람이면 다 안다. 깍쟁이란 곽정이라는 그의 이름 때문에 붙은 별명이지만 실제로도 인색하기로 유명한 형사였다.
염 관장이 그림이 걸렸던 벽으로 곽 형사를 데리고 가서 보여 주었다.
“여기 누가 손대지 않았지요?”

곽정 형사가 사람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그때 전시장 내에 있던 사람은 열한 사람이었는데 모두 그 자리에 있었다.
“감식반이 지문이나 DNA를 채취해야 할지 모르니 손대지 못하게 하세요.”
곽정 형사가 염 관장을 보고 당부했다.

벽에 걸린 그림은 없어졌지만 그림을 넣었던 액자는 부서진 채 그대로 바닥에 남아 있었다.

“없어진 그림은 얼마나 합니까? 내정가가 있을 텐데…….”
염 관장이 내정가가 적힌 장부를 들고 와서 보여 주었다.
그림과 함께 밑에 85,000,000이라고 적혀 있었다.

“이렇게 작은 게 그렇게 비싸요? 이게 무슨 누드로 보여요?”
곽정은 실망한 표정으로 말했다.
‘누드-물음표’라는 제목 때문에 섹시한 젊은 여자의 나체를 상상했으나 전혀 달랐다.

노란색과 주황색, 그리고 검정색이 뭉개져 구름인지 물결인지 솜뭉치인지 모를 이상한 형체만 보였다.
“크기가 얼마나 되나요?”

“좀 작습니다. 보통 6호짜리라고 부르죠. 이 그림의 절반도 안 됩니다.”
염 관장은 옆에 있는 ‘누드-2005’라는 그림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 그림도 제목이 누드 어쩌구라고 되어 있지만 곽정 형사의 눈에는 도무지 여자의 누드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림이 커야 값이 비싸지요?”
“꼭 그런 건 아닙니다. 작아도 값이 나가는 그림이 있습니다. ‘누드-물음표’는 여기 ‘누드-2005’의 절반도 안 되지만 값은 세 배 정도 나갑니다.”

“그런데 이런 게 왜 그렇게 비쌉니까? 도무지 무언지 알 수도 없는데…….”
곽정 형사가 일부러 어깃장을 놓아 보았다.
“추상화란 원래 이해하는 사람만 이해하는 것입니다.”
염 관장이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대꾸했다.

“노래 못하는 사람은 음치라고 하는데 그림 못 알아보는 사람은 ‘미치’라고 하나요?”
“ㅋㅋㅋ, 형사님도……. 그림이니까 ‘그치’가 맞겠죠?”
“명화를 못 알아봤으니 ‘명치’라고 하지.”
“그래도 격은 높이고 싶은 모양이죠? ㅎㅎㅎ”

웃고는 있으나 염 관장은 속이 타서 죽을 지경이었다. 보험에도 들지 않은 그림이 전시장에서 분실되었으니 책임이 따르기 때문이다.

문제가 생긴 것은 작품을 관람하는 중간에 잠깐 정전이 된 데 원인이 있었다.
염혁중 옥션 갤러리에서는 언제나 전람회의 마지막 날 그림 경매가 이루어지는데에  그날도 그 스케줄에 따라 오당 선생의 작품이 경매를 앞두고 있었다.
그런데 관람 도중 갑자기 전기가 나가 완벽하게 실내가 깜깜해졌다.
다시 전기가 들어왔을 때 벽에 걸려 있던 ‘누드-물음표’ 작품 , 딱 한 점이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었다.

 “전기가 나간 것이 언제였습니까?”
곽정이 난감한 얼굴로 입만 벌리고 있는 염 관장한테 물었다.
“세 시 반경 갑자기 조명이 모두 꺼졌습니다. 한 번도 그런 일이 없었거든요.”
“조명이 다시 켜질 때까지 걸린 시간이 얼마나 됩니까?”
염 관장은 잠깐 생각하더니 대답했다.

“5분 아니면 6분…….”
“그때 상황을 다시 한 번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곽정 형사가 수첩을 꺼내 들고 말했다.

“저는 밑의 1층에 있다가 전기가 나가는 바람에 황급히 전시장으로 올라왔습니다. 값비싼 작품이 수십 점이나 있는 곳이니까요. 여기는 전시장이라 창문이 없기 때문에 조명이 꺼지면 완벽한 암흑세계가 됩니다.”
“그래서요?”

“깜깜한 계단을 뛰어 올라오느라 여러 번 넘어지고 부딪쳐 좀 늦게 도착했지요. 저는 실내에 들어서자마자 모두 움직이지 말고 그 자리 있으라는 부탁부터 했지요. 그래서 실제로 조명이 들어올 때까지 아무도 여기서 나간 사람이 없습니다.”

곽정 형사는 이야기를 듣다가 고개를 갸웃했다.
“전기는 저절로 다시 들어왔습니까?”
“그런 일은 한 번도 없었는데……. 전시장 알바를 하는 정찬이보고 빨리 한전에 전화를 하라고 했지요.”

“그래서 전화를 했나요?”
“아뇨, 두꺼비집에 이상이 있었습니다.”
 
“그걸 어떻게 알았나요?”
“글쎄요? 정찬아 이리 와 봐.”
부지런히 도록을 챙기고 있는 알바 학생을 불렀다.

“그때 왜 한전에 전화하지 않고 두꺼비집에 갔지?”
얼굴이 갸름하고 눈이 큰 훈남형 알바생 정찬이 대답했다.
“다른 집에는 전기가 나가지 않았어요. 그래서 두꺼비집 이상이라고 생각하고 핸드폰 플래시를 켜고 가봤지요.”
“그래서?”

곽정 형사가 대답을 재촉했다.
“그랬더니 두꺼비집 전원 스위치가 내려져 있더라고요. 그래서 제자리로 올려 불을 켰지요. 누전 같은 쇼크가 있으면 두꺼비집이 자체적으로 전원을 차단시키잖아요.”

“대학생이랬지? 전공이 뭐야?”
곽정 형사가 물었다.

[작가소개]

권경희는 한국 여류 추리작가이다. 1990년 장편소설 '저린 손끝'으로 제1회 김내성 추리문학상을 수상하고 문단에 등단했다. 주요 작품으로 장편 추리소설 '거울 없는 방', '물비늘', 실화소설 '트라이 앵글', 단편으로 '검사는 무엇으로 사는가' 등 수십 편이 있다. 수필집 '요설록', '흔들리는 삶을 위한 힌트'등이 있다. 중견 소설가이면서 상담심리 전문가로 <착한벗 심리상담 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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