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제공]
[사진=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제공]

[일요서울ㅣ김혜진 기자] 4.7 보궐선거를 하루 앞둔 지난 6일 오전 8시.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 장애인 단체는 서울 종로구 ‘종로1가 버스정류장’ 앞에서 시내버스 두 대를 점거했다. 이형숙 서울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회장(55)은 ‘저상버스를 도입하라’는 플래카드와 함께 온몸을 쇠사슬로 묶고 ‘5분 버스타기 캠페인’을 진행했다. 그는 “서울시내 버스 중 절반이 ‘차별버스(계단버스)’”라며 “서울시가 2025년까지 ‘100% 저상버스 도입’을 약속함에 따라 오세훈 서울시장은 이를 지켜야 한다고 강력하게 요구하는 것”이라고 했다. 일요서울은 지난 14일 ‘이동권은 곧 생존권’이라고 외치는 이 회장과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장애인 이동권은 곧 생존권’… 사회 배제 안 되도록 교통 이용 편리해야

-간단한 소개 부탁드린다. 

▲3살 때 소아마비로 경추와 요추가 마비돼 장애인 복지법상 지체 장애 1급 판정을 받았다. 2019년에 장애등급제가 폐지되며 지금은 ‘심한 장애’ 유형에 속하게 됐다. 중증은 아니어서 혼자 밥을 먹거나 외출을 할 수는 있다. 2006~2007년에 장애인 생활보호센터에서 운영위원, 소장 등으로 활동하다가 2008년부터 본격적으로 장애인 관련 단체 활동을 시작했다. 

-최근 출근길에 버스를 점거하고 ‘5분 버스타기 캠페인’을 진행한 모습이 인상 깊다. 강성 느낌이 들던데. 

▲시민들의 불평을 많이 듣기도 했지만 이동권 보장을 위해서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했다. 따가운 시선을 받는 것보다 간절한 마음이 컸다. 10여 년 전에도 교통약자가 대중교통을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촉구하는 캠페인을 진행하고 이후에도 몇 차례 했지만 반짝 이슈만 될 뿐 달라지는 건 없었다. 서울시내 버스 중 절반은 여전히 저상버스가 아닌 계단이 있는 ‘차별버스’다. 장애인뿐 아니라 노약자, 어린이 등 누구나 편리하고 안전하게 탈 수 있는 버스를 도입하자고 외쳐왔지만 소용없던 셈이다. 서울시는 2025년까지 모든 버스를 저상버스로 도입하겠다고 약속했음에도 이를 지키지 않고 있어 (약속을) 지키라고 강하게 요구하고 있는 거다. 

-교통약자 관련 법안이 있는 걸로 안다. 시행이 제대로 안 되고 있는 이유는 뭔가. 

▲2005년에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법’이 만들어졌다. 법안 시행규칙에 5개년 계획이 있는데 올해가 3개년 차 계획이 시행되는 해다. 법안이 만들어질 때만 해도 법과 시행규칙만 있으면 적어도 15년 후에는 모든 버스가 저상버스로 돼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20년이 지났는데도 서울은 50% 정도 도입됐고, 전국적으로 따지면 30%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법안이 만들어지기 전에는 ‘법이 없어서 어렵다’ ‘예산이 없어서 안 된다’는 이야길 들었는데 지금은 모든 게 갖춰졌음에도 저상버스 100% 도입이 어려운 상황이다.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법에 따르면 각 지방자치단체가 그 지방의 실정에 맞게 특별교통수단의 운영과 관련한 세부사항 등을 결정할 수 있다. 이에 서울시는 2015년에 ‘장애인 이동권 선언’을 발표하며 2025년까지 서울 시내에 저상버스를 100%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2017년에는 ‘제3차 서울시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계획(2017~2021)’을 통해 단계적으로 실천해 나가겠다고 했다. 계획대로라면 올해 서울 시내버스의 75%가 저상버스로 바뀌어야 하는데 지난해 기준 서울시 저상버스 도입률은 58%다. 내년까지 100%를 만들겠다고 해 놓고 목표치를 달성하기 위한 예산은 전혀 책정돼 있지 않은 상태다.

-캠페인을 진행하는 동안 몇 차례 벌금형을 선고 받고, 벌금을 낼 수 없어 노역까지 했다고 들었다. 억울하진 않았나. 

▲저상버스를 도입하라며 버스를 점거하고 장애인 복지 예산 확대를 요구하며 도로 행진을 하다 벌금형을 세 번 선고 받았다. 벌금을 낼 수 없기도 했고 내고 싶지도 않아 노역을 했다. 납득이 안 되고 때론 억울하기까지 했다. 2015년에 처음 갈 때는 수원역 로터리를 막아 집시법(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일반 도로교통법 위반으로 갔다. 2017년에는 경기도 2층 버스가 작은 휠체어만 탑승 가능하도록 돼 있어 이에 대한 개선 약속을 요구했는데 결국 지켜지지 않아 버스를 점거했고 또 집시법 위반으로 들어갔다.

법원에 가면 항상 판사가 ‘그렇게 해서 개선됐느냐’고 묻는다. 개선이 됐으면 더 이상 안 했을 거라고 이야기한다. 이에 대한 명백한 책임이 있는 지방자치단체장은 ‘예산 때문에 못 했다’고 면피해 버리면 그만인 게 현실이다. 헌법에 보장된 이동권을 보장해 달라며 싸우는 이유는 우리에게 ‘이동권은 곧 생존권’이기 때문이다. 이동을 하지 못하면 교육 받으러 가기 어렵고 제대로 된 노동을 할 수 없다. 사회에서 계속 배제될 수밖에 없는 거다. 법은 배제된 것에 대해 보지 않고 도로를 막았는지 안 막았는지만 물어 답답했다. 

[사진=비마이너 제공]
[사진=비마이너 제공]

-장애인들이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구체적으로 겪는 어려움은 무엇인가. 

▲버스의 경우 휠체어를 탄 장애인은 계단이 있으면 다니기가 매우 어렵다. 그래서 몇 시간을 기다렸다 저상버스를 간신히 타곤 하는데 대부분 타려는 엄두도 내지 못한다. 서울 시내버스는 그나마 반 정도라도 저상버스가 도입됐지만 아직 마을버스는 저상버스가 전혀 도입되지 않았다. 택시의 경우도 일반 택시는 휠체어를 실을 공간이 없어 거의 이용하지 못한다. 

그래서 생겨난 게 ‘장애인 콜택시’인데 이는 1·2급 장애인 150명당 한 대로 정해져 있다. 차 대수가 터무니없이 부족하다 보니 예약을 해도 기본 1~2시간, 길면 3~4시간을 기다려야 하고 오래 걸릴 것에 대비해 미리 전화를 해 놓으면 30분 만에 올 때도 있다. 취소하면 또 언제 타게 될지 모르니 모임을 하거나 수업을 듣다가도 미리 불러 놓은 택시가 오면 중간에 그냥 가 버리는 일이 부지기수다. 

장애인 콜택시의 또 다른 문제는 지역과 지역을 택시로 이동할 수 없고, 타 지역에서 콜택시를 이용하려면 미리 장애인증을 등록해 놔야 하는 점이다. 대중교통임에도 각 지자체에 등록해야만 해당 지역에서 콜택시를 이용할 수 있다. 이 또한 2년이 지나면 자료가 없어져 재신청을 해야 하는 수고스러움도 있다. 최근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법 개정안’에 수도권만이라도 통합콜로 운영되면 좋겠다는 내용이 담겼는데 개정 법안이 통과되길 기대하고 있다. 

-이번 4.7보궐선거기간 중에 오세훈 서울시장(당시 후보)을 만나 ‘11대 장애인 정책 요구안’을 전달한 것으로 안다. 정책 요구안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 있나. 

▲재난시대 장애인 지원체계 마련, 장애인 탈(脫) 시설 권리 보장, 최중증장애인 노동권 보장, 장애인 이동권 보장, 장애인 자립생활 권리 보장, 장애인 평생교육 권리 보장, 뇌병변 장애인 의사소통 권리 보장 및 종합지원 체계 마련, 장애인 문화예술 권리 보장, 발달장애인 권리 보장, 장애 여성 권리 보장, 장애인 건강권 보장 등이다. 오 시장 측에 정책 요구안을 30번 정도 보냈지만 아직까진 아무런 답변이 없다. 지난 9일 마지막으로 면담 요청을 했고 답변을 기다리는 중이다. 

-오 시장이 보궐선거 기간에 ‘안심보행 이동권’ 등 5대 정책 공약을 통해 장애인 이동권 문제를 강조했는데, 장애계에서는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본 듯하다. 이유가 뭔가.

▲보편적으로 누구나 이용가능한 대중교통이 도입돼야 한다. 오 시장은 이번에 ‘저상버스 조기 도입’이라는 애매한 공약을 내걸었는데 이는 2010년 6.2지방선거 때도 나왔었다. 구체적이지 않은 공약을 11년이 지나 또다시 들고 나온 거다. 이제는 구체적인 약속을 해야 한다. 교통약자들이 실질적으로 안전한 이동을 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게 중요하다. 오 시장 공약 중에 ‘장애인 버스요금 무료화’도 있었는데 이는 버스를 탈 수 있는 사람에 한해서만 무료가 아닌가. 탈수 없는 사람에게는 소용이 없다. 오 시장과 직접 만났을 때 앞으로 장애인 정책 관련해 단체들과 협의하겠다고 했으니 면담을 통해 잘 풀어나갈 수 있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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