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뉴시스]
인도 [뉴시스]

 

[일요서울] 국립외교원 외교사연구센터에서 ‘외교’라는 렌즈를 통해 우리 현대사를 조명하기 위해 오럴히스토리사업 ‘한국 외교와 외교관’ 도서 출판을 진행해 왔다. 지금까지 총 17권의 책이 발간됐다. 일요서울은 그중 공로명 전 외교부장관의 이야기가 담긴 책의 내용 중 일부를 지면으로 옮겼다.

김영삼 대통령 인도 방문 

오스트리아 러시아 방문

- 1996년 1월에 한국 국가원수로는 처음으로 김영삼 대통령이 인도를 방문했다. 한·인도 관계의 이정표가 되는 사건이라고 본다. 추진 과정에서 어려움은 없었나. 
▲ 라오 수상이 문호를 개방한 후에 외국 자본이 많이 들어오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때까지 실질적으로 들어온 외국 자본은 45억 달러라고 했다. 인가 기준으로는 120억 달러인데 실제로 들어온 것은 45억 달러, 1995년 전에만 해도 20억 달러 신규 투자가 있었다고 했다. 시장이 막 열려서 가능했다. 그때 우리의 대인도 투자는 2억 5,000만 달러인데, 세제·관세·인허가 등의 투자 환경이 좋아지면 우리 측의 계산으로도 투자가 훨씬 늘어날 것이라고 했다. 당시 마침 인도가 동남아시아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서남아·EU·영국 쪽에서부터, 그전에는 구소련과 관계가 깊었는데, 동북아시아에 눈을 뜨기 시작해서 아세안과의 대화 멤버가 됐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그러한 사실을 상당히 의식해서 말했다. 또 APEC 회원국이 되고 싶다고 이야기했었는데 아직까지도 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안 됐나? 

- 제가 잘 모르겠다. 확인해보겠다. 
▲ 안 된 것으로 안다. 인도는 남서아시아 강국이다. 그래서 지역 내에서의 협력이 향상되고 있으며, 무역 특혜 제도도 발동되고 있고 남아시아 자유무역지대도 형성된다는 이야기를 했다. ARF도 참가하기를 희망을 했다. 이후 인도가 ARF에 가입했다. 1996년 당시 제가 1997년 7월에 ARF 제3차 각료회의가 있고 이때 회원국들과 확대 문제가 논의될 테니, 인도의 가입이 승인되지 않겠느냐는 이야기를 했는데 그렇게 됐다. 그다음에 외상회담에서 주로 화제가 된 것은, 외상회담의 특성상 지역정세를 논하는데 인접 국가와의 관계에 대해 브리핑을 해주었다. 가령 네팔과는 1991년 1월에 수상 간 내담이 있어서 관계가 상당히 호전되고 있다고 이야기를 하고, 스리랑카와는 타밀 인종 분규 사태와 관련해서 찬드리카 쿠마라퉁가 대통령의 평화적 해결 노력을 지지한다는 이야기를 했다. 타밀 문제는 인도와 관련이 있었다. 방글라데시에 대해서는 아직 민주주의가 뿌리를 제대로 박지 못하고 약한데, 민주화로 확실히 이행하고 있다면서 군정에서 민정으로 이행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파키스탄과의 관계를 역시 제일 말했다. 1972년 심라 협정에 따라 무력충돌은 협약 테두리 안에서 대화로써 해결하기로 되어 있는데 파키스탄이 이 문제를 국제사회에 회부하려 한다는 불편한 심정을 이야기했다. 그런데 최근 베나지르 부토 수상이 언론과의 대화에서 인도와의 대화를 재개하겠다는 의향을 표명했기 때문에 희망을 걸고 있는데, 아직 공식 제의는 없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1997~1998년 인도가 UN 안보리 비상임이사국에 출마하겠다고 우리의 지지를 요청하는데, 공교롭게도 일본하고 경합이 됐다. 그때 인도 측의 이야기가 일본은 과거 7번이나 했고, 인도는 6번 했다고 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자신들이 할 차례가 아닌가 했다. 그런데 투표 결과 일본이 됐다. 그래서 인도는 2011~2012년에 하게 됐다. 인도가 자신들을 지지하라고 할 때 저는 “인도나 일본이나 우리 우방인데 어느 한 나라를 지지하는 것이 참 어렵지 않겠느냐. 아시아그룹 내에서 컨센서스가 이루어졌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사회간접자본에 대한 우리의 투자를 라오 수상이 김영삼 대통령에게 간절하게 이야기를 했고, 대통령이 통상장관 회담에서 논의되어서 잘 되지 않겠는가 하는 식으로 이야기를 했다. 양국의 과학자 간의 협력 등에 대해서도 라오 수상이 관심을 표명했다. 과학 교류에 인도가 강점이 있었다. 한국의 OECD 가입에 대해서도 관심을 표명하면서, 한국이 가입하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했다. 그래서 우리가 가입하면 선진국과 개도국 간의 교량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교역을 확대해가자는 이야기를 했다. 라오 수상은 신경제정책이라고 이야기했다. 1991년에 경제성장률이 1%였다고 했다. 그런데 1995년 한 해에 6,2%로 상당히 올랐다. 그리고 1991년 외국인 투자가 9억 달러이고 1994년에는 50억 달러가 되어 25배가 증가했다고 했다. 한국 투자가 얼마인가 궁금해서 오기 전에 조사를 부탁했더니, 2015년에 3억 달러라고 했다. 좀 더 될 텐데 말이다. 

- 3억 달러요? 훨씬 더 될 텐데 말입니다. 포스코, LG 등 많이 들어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글쎄 말이다. 기업 수는 288개나 된다. 상당히 많은데, 균형이 안 맞는다. 

- 일본 기업들이 위험 있는 곳에는 잘 진출하지 않는데, 우리 기업들은 위험 부담을 안고도 진출했기 때문에 인도에 먼저 진출한 것으로 알고 있다.
▲ 그래서 그때 현대가 인도에 들어가서 처음에 10만 대 생산능력을 가지고 공장을 지었다. 그런데 그해에 벌써 6만 대를 만들었고, 작년에는 68만 대를 만든다. 공장이 지금 최대 역량으로 생산하고 있다. 고용 인원도 1996년 당시 1,500명이었는데 2016년에는 7,600명이나 됐다. 대단하지 않나? 숫자가 이상하다. 현대만 해도 23억 달러를 투자했다. 

- 포스코도 지금 제철소 짓는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 
▲ 협력사가 투자한 것만 해도 23억 달러 가운데 11억 달러다. 반 가까운 금액을 협력사들이 가서 투자를 했는데, 0이 하나 빠졌던지 한 것 같다. 이때 한 가지 의미가 있는 내용이 있는데, 뭄바이총영사관을 설치하기로 한 것이다. 뭄바이총영사관은 1996년 9월에 개관을 했다. 바로 그해 가을에 개관을 했고 오늘날까지 존재하고 있다. 이때 가서 투자보장협정 체결을 했고, 다음에 한·인도 공동위원회를 개설했다. 이는 계속 양국 사이에서 이어지고 있고, 아마 차관이 참석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 1996년 5월에 오스트리아 비엔나를 방문하셔서 오스트리아 외무장관과의 회담이 있었다. 어떤 내용이 오고 갔나?
▲ 3월 초 ASEM 정상회담 끝나고 돌아온 후에 얼마 안 되어서 4월26일에 다시 출국했다. 지금 말씀하신 남아프리카공화국 미드란드에서 열리는 제9차 UNCTAD 총회에 참석하기 위해서 갔고, 거기서 비엔나·오스트리아와 러시아를 방문하게 됐다. UNCTAD 총회는 지난 과거 8번 총회 중에서 6번을 외무부장관이 수석대표로 참석을 했다. 77그룹에 대한 중요성 때문에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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