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 “환갑까지 신념 안바뀌면 벽창호”... 정계 복귀설 ‘솔솔’

유시민 이사장 [뉴시스]
유시민 이사장 [뉴시스]

 

[일요서울ㅣ정재호 기자] 정치권 일각에서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내년 대선 출마 가능성이 흘러나오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의 4.7 재보선 참패 이후 당내 최대 계파인 친문진영이 유 이사장을 자신들의 구원투수로 주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전부터 정치권에선 유 이사장의 정계복귀 가능성이 거론됐다. 그러나 최근 유 이사장이 출판기념회에서 “환갑이 지난 때까지 신념을 그대로 갖고 있으면 벽창호”라는 발언이 정계복귀를 암시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며 많은 언론의 관심이 집중됐다. 일요서울은 유 이사장의 정계복귀 가능성을 알아봤다. 

-전문가 “재보선 완패로 여권 위축돼 복귀 가능성 더 높아져”

4.7 재보선 참패로 인해 더불어민주당 지도부가 지난 8일 총사퇴하며 당내 주도권과 내년 대선을 놓고 친문진영과 비문진영의 갈등이 격화되고 있는 모양새다. 초선의원들부터 친문과 당내 개혁을 위해 포문을 열었다. 

민주당 초선 및 청년의원들은 지난 9일 공동 입장문을 발표하고 “더불어민주당의 당헌·당규에 의하면 이번 보궐 선거에서 민주당은 후보 공천을 하지 않았어야 한다”며 “진심 없는 사과, 주어 목적어 없는 사과, 행동 없는 사과로 일관한 점, 깊이 반성한다”고 고개를 숙였다. 이들은 “어느새 민주당은 ‘기득권 정당’이 되어 있었다”면서 “우리의 과거를 내세워 모든 비판을 차단하고 나만이 정의라고 고집하는 오만함이 민주당의 모습을 그렇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국민과 제대로 소통하지 않고 현장을 도외시한 채 일방적으로 정책 우선순위를 정했고, 민생과 개혁 모든 면에서 청사진과 로드맵을 치밀하게 제시하지 못했다”며 “우리 안의 투명함, 우리 안의 민주성, 우리 안의 유능함을 확보하지 못했다. 청년 유권자들을 가르치려 들었다”며 사죄했다. 민주당 지도부 총사퇴 후 구성된 비상대책위원회가 또 다시 친문일색이라는 비판에 대해서도 “당 지도부 구성의 변화를 위해서 적극 나서겠다”고 다짐했다. 이들은 “정책 전반과 당의 운영방식, 업무 관행, 태도 등에 대해 철저하게 점검하고, 쇄신안을 마련하겠다”며 “초선 의원총회를 수시로 개최하고, 성역 없이 끝까지 토론하겠다”고 강조했다.

앞서 민주당은 재보선 패배의 책임을 지고 당 지도부가 총사퇴하자 ‘친문’ 핵심 인물로 분류되는 도종환 의원을 당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선임했다. 이에 당내 비문 인사로 분류되는 노웅래 민주당 의원 등은 “개혁과 쇄신을 하자면서 비대위원장을 뽑는데 그조차도 국민의 눈높이가 아닌, 당내 특정 세력의 눈높이로 뽑는다면 진정성이 생길 수 있겠느냐”고 비판했다.

민주당 청년 의원들도 공동 성명을 통해 이번 선거 참패 원인으로 당의 ‘오만함’을 지적하며 자성의 목소리를 냈다. 민주당 오영환·이소영·장경태·장철민·전용기 의원은 “이번 재보선을 치르게 된 원인이 우리 당 공직자의 성 비위 문제였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당은 당헌 당규를 개정해 후보를 내고 피해자에 대한 제대로 된 사죄도 없었으며 당내 2차 가해를 적극적으로 막는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어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검찰개혁의 대명사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검찰의 부당한 압박에 밀리면 안 된다고 판단했다”며 “하지만 그 과정상에서 수많은 국민들이 분노하고 분열되며 오히려 검찰개혁의 당위성과 동력을 잃은 것은 아닌가 뒤돌아보고 반성한다”고 했다.

이에 지난 11일부터 민주당 온라인 권리당원게시판에는 당내 초선 의원들을 비판하는 게시글들이 쏟아졌다. 특히 지난 9일 초선 의원 54명과는 별도로 성명을 낸 이소영·전용기·장철민·장경태·오영환 의원 등 5명에게 비판이 집중됐다. 강성 친문 지지층들은 이들을 ‘초선5적’, ‘초선족’이라고 부르며 “제 정신이 아니다”, “누구 덕에 당선됐는데 주제를 모른다”, “정치권에서 매장해야 한다” 등으로 원색적 비난을 쏟아냈다. 한 강성 친문 권리당원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무슨 불법을 저질렀느냐”며 “어디 감히 조 전 장관을 입에 올리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문자 폭탄’도 이어졌다. 일부 강성 친문 지지층이 친여 성향 커뮤니티와 일부 SNS를 중심으로 초선 의원 5명의 연락처를 공개하며 해당 의원들에게 문자폭탄을 날린 것이다. 일부 강성 친문 권리당원들은 앞서 발표된 초선 의원들의 입장문에 대한 성명서를 통해 “초선 의원의 난이다. 패배 이유를 청와대와 조국 전 법무부 장관 탓으로 돌리는 왜곡과 오류로 점철된 쓰레기 성명서를 내며 배은망덕한 행태를 보였다”며 평가 절하했다.

이어 “초선 의원들의 그릇된 망언에 동조하는 민주당 의원들의 행태는 당원은 물론 일반 시민에게도 개혁 불능의 당, 도로 열린우리당의 모습으로 비친다는 것을 직시해야 한다”고 공세하며 초선 의원들의 사과를 촉구했다.

김해영 전 의원은 14일 강성 친문 지지자들의 문자폭탄에 대해 “유튜브 등을 통해 특정 정치인 전화번호를 찍어 조직적으로 하루에 수천통씩 문자폭탄을 보내는 수준에 이른다면 이것은 정치적 의사 표시의 선을 넘은 것”이라며 비판했다. 그는 이어 “지도자 반열에 있는 분들이 단호하게 자제를 촉구해야 한다”며 “당 차원에서 대책도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초선의원들이 용기내어 당 쇄신 불길을 지폈는데, (당에서) 구체성있는 반성 쇄신안이 나오고 있지 않다”며 “불과 며칠만에 불길이 매우 빠르게 식고 있다”고 했다. 김 전 의원은 “민주당이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잃고 있다”며 “이 상태로 가면 대선, 총선, 지선 (승패의) 문제가 아니라 당의 존립 자체가 상당히 위태로울 수 있다”고 평가했다. 

김 전 의원은 또 조국 사태와 관련해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는 “조국 사태만으로 (민주당이 선거에서) 패배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여러 패배 원인 중에 하나인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며 “민주당은 국민의힘에 비해 상대적으로 ‘공정’을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정당이라는 믿음이 있었는데, 그 믿음이 결정적으로 흔들리게된 시발점이 조국 사태”라고 했다. 그는 “진정성이 있으려면 구체성을 갖고 사과를 해야 한다”며 “민주당이 일반 국민으로부터 신뢰가 무너지게 된 흐름에 대해 철저히 분석한 뒤 당이 이런 오판을 하지 않도록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했다. 

 

- 與 ‘친문 대 비주류’... 대선 겨냥 주도권 다툼

민주당 내 주도권 경쟁도 더 뜨거워지고 있다. 원내대표 경선부터 출발해, 내달 초 전당대회 지도부 선출까지 있기 때문이다. 친문진영에서는 최고위원 선출방식 변경에 이어 전당대회 방식도 권리당원 비중을 강화하는 쪽으로 바꿔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당대표·최고위원 선출에서 권리당원의 비중을 높이자는 주장이다. 앞서 친문진영의 김용민 이재정 의원도 “대의원·권리당원 투표가치 비율이 60대 1”이라며 “대의원의 의사가 과다 대표되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청래 의원은 자신의 SNS에 당대표 후보가 4명 이상, 최고위원 후보가 9명 이상일 경우 중앙위 투표로 실시되는 예비경선(컷오프) 방식에 대해 “권리당원 참여를 보장하자”고 제안했다. 이런 주장들은 친문이 포진한 권리당원의 비중을 높여 차기 지도부 구성에서도 영향력을 유지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민주당 내 친문 2선 퇴진론이 제기되는 상황에 오히려 친문 진영이 결집해 당내 주도권을 쥐고 가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한 친문 의원은 “쇄신을 안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질서 있는 쇄신’을 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비주류 진영은 강하게 반발했다. 4월 재보선 참패로 민심이 돌아선 걸 확인했음에도 다시 친문이 당을 주도한다면 인적·정책적 쇄신이 이뤄지기 어려울 것이란 우려도 나왔다. 

이상민 의원은 한 라디오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당의 의사결정에서 주요한 위치에 있었거나 영향을 입혔던 사람들은 책임을 지고 좀 비켜 있고, 그렇지 않았던 새로운 사람들이 직책을 맡아 당을 이끌도록 하는 것이 책임정치”라고 말했다. 

당내 주도권을 주고 계파간의 갈등이 고조되는 가운데 친문진영에선 내년 대선을 앞두고 친문을 대표할 대선 주자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는 모양새다. 친문진영은 당장에는 당내 주도권을 뺏기지 않는 것이 중요한 과제일수 있지만 당권과 함께 차기 대선에서 친문을 대표할 마땅한 대선 주자를 내세우지 못한다면 결국 모든 주도권을 비문에 빼앗길 수 있기 때문이다. 

 

- ‘4.7 재보선 완패’ 책임론 친문, 유시민에 ‘기대감’

4.7 재보선에서 민주당의 참패 이후 강성 친문들 사이에서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에 대한 언급이 부쩍 늘었다. 내년 치러질 대선에서 정권재창출에 대한 위기감이 높아진 가운데 친문을 대표할 후보 부재론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친문진영의 지지를 받았던 이낙연 어민주당 전 대표가 선거 패배로 정치적 직격탄을 받은 것도 원인이다. 여기에 유 이사장의 최근 발언이 기대감을 불렀다. 

유 이사장이 지난달 31일 교보문고의 유튜브 채널에서 “신념은 변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한 것 때문이다. 유 이사장은 ‘신념을 무조건 잘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냐’는 독자의 질문에 “한결같은 것을 높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는데 구체적인 생각을 안 바꾸고 환갑이 지난 때까지 그대로 갖고 있으면 일관성이 있는 게 아니고 벽창호”라고 답했다. 그는 “신념에도 층위가 있는데 구체적인 생각들은 정보, 경험, 세상의 조건이 바뀌고, 관계 맺는 사람들이 달라지면 일정 부분 변경이 불가피하다”면서 “달라지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 발언은 정치적 의도와는 상관없이 이뤄졌지만 유 이사장이 2018년 노무현재단 이사장을 맡으면서 “임명직 공무원이 되거나 공직 선거에 출마하는 일은 제 인생에 다시는 없을 것”이라고 밝혔던 신념에 대한 변화 가능성으로 해석되며 정계복귀 가능성에 대한 기대감을 친문진영에 주었다. 유 이사장은 진보정의당(현 정의당) 소속이던 2013년에도 SNS에 “너무 늦어버리기 전에, 내가 원하는 삶을 찾고 싶어서 ‘직업으로서의 정치’를 떠납니다”라며 정계 은퇴를 선언한 바 있다.

유 이사장은 친문의 정계복귀 기대에 반응하듯 개인 유튜브 ‘알릴레오 북스’에서 “야당에서 지금 한국 정부를 ‘독재’, ‘민주주의 위기’라고 말하는데, 어떤 가치관과 판단기준을 가지고 이렇게 이야기하는지 저는 약간 이해가 됐다”라며 정치에 관한 발언도 시작했다.

 

- 홍영표 “유시민, 대권 기미 없지만 다시 물어볼 것” 여지 남겨

‘친문 핵심’으로 분류되는 당권 주자인 홍영표 민주당 의원은 지난 15일 유시민 이사장의 정계복귀에 대해 “그런 기미가 없다”며 선을 그었다. 다만 “물어는 보겠다”며 여지를 뒀다. 홍 의원은 이날 한 라디오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유 이사장의 대선 출마설에 대한 질문에 “제가 아는 한 유 이사장이 출마를 생각한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했다”며 “최근에도 전화를 한번 했는데 그런 기미가 없었다. (정치를 안 한다는 생각이) 유지되고 있다고 본다”고 답했다.

“통화에서 정계 복귀 의사를 물어봤는가”라는 진행자의 질문에는 “그런 이야기는 안 물어봤는데, (뜻이 있다면) 중대한 상황 변화일 것 아니냐”며 “변화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또 홍 의원은 노 전 대통령과 문 대통령 당선을 경험해봤다면서, “대통령은 시대와 역사적인 흐름 속에서 탄생하는 것이지, 몇몇 사람이 해서 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이에 진행자가 “유 이사장이 며칠 전 유튜브 방송에서 ‘환갑 지날 때까지 자신의 생각이 일관성이 아니라 벽창호다’라고 말을 해 대선 출마 쪽으로 마음 바꾼 것 아닌가 소문이 파다하다”고 하자 홍 의원은 “다시 물어보겠다”면서도 “인위적으로 어떤 상황을 만들어 가는 것은 힘들지 않은가”라고 설명했다.

유 이사장의 대권 출마 가능성은 친문진영의 유력 대권주자가 마땅히 없는 가운데 그가 여권 지지층을 결집시킬 수 있는 카드라는 관측에서다. 유 이사장 주변에선 그의 정계 복귀에 선을 긋고 있다. 하지만 민주당 일부 인사들은 그의 정계복귀 필요성을 공개 거론하며 가능성을 완전히 차단하지는 않아왔다. 여권 내 유 이사장이 갖고 있는 정치적 위상을 고려하면 언제든 친문진영에서 대선 주자로 부상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고 평가받아왔다.

다만 일각에선 유 이사장이 대선주자로 정치 일선에 복귀하기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여전히 적지 않다. 유 이사장은 지난 1월 과거 검찰이 본인의 계좌 조회 등 뒷조사를 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가 ‘충분한 사실의 근거를 갖추지 못한 의혹을 제기했다. 정치 현안에 대한 비평을 일절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자신의 발언을 뒤집어야 하는 부담이 있다. 그리고 한동훈 검사장으로부터 ‘가짜뉴스’ 유포에 의한 5억 원 규모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당한 상태로 정치적 행보가 상당 부분 제약될 수도 있다.

일요서울은 정계복귀에 대한 유 이사장의 의견을 묻기 위해 수차례 연락을 시도했지만 닿지 않았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학과 교수는 지난 14일 일요서울과의 통화에서 “이번 재보선과 무관하게 유 이사장의 정계복귀 가능성은 계속 거론돼 왔다”며 “재보선 결과로 여권이 위축된 상황이기 때문에 복귀 가능성이 더 높아졌다”고 분석했다. 

유 이사장의 정계복귀 가능성이 높아진 만큼 그가 친문의 대안으로 떠오를 수 있을지 주목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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