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김준석 언론인] 이명박·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의 사면 문제가 수면위로 떠오르고 있다. 전직 대통령 사면 문제는 정치권의 금기어였다. 워낙 인화성이 큰 이슈라서 사면론의 불씨가 어디로 튈지 예측불허이기 때문이다. 또 두 전직 대통령 사면 문제에 대한 국민여론이 아직 부정적인 것도 걸림돌이다. 다만 국민통합을 화두로 잊을 만하면 전직 대통령 사면론이 터져나오고 있다. 여야가 따로 없었다. 여권에서는 올초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사면론 건의를 꺼낸 것이 대표적이다. 4.7재보궐선거 압승을 거둔 야권은 보다 적극적이다. 부산시장을 지낸 친박계 5선 중진인 서병수 의원이 4월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전직 대통령 사면을 공론화했다. 오세훈 서울시장과 박형준 부산시장도 최근 문재인 대통령과의 청와대 오찬에서 사면을 건의한 바 있다여의도 정치권의 가장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전직 대통령 사면 문제를 집중 들여다봤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와 밀접 접촉해 병원 격리됐던 박근혜 전 대통령이 9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성모병원에서 나와 서울구치소로 향하는 차량으로 이동하고 있다. 2021.02.09 뉴시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와 밀접 접촉해 병원 격리됐던 박근혜 전 대통령이 서울 서초구 서울성모병원에서 나와 서울구치소로 향하는 차량으로 이동하고 있다. 2021.02.09 뉴시스

국민의힘, 재보선 승리 이후 공세적 사면론 제기
- 홍준표·서병수 이어 오세훈·박형준 공개 건의
대선국면 가면 힘들다대통령 결자해지론 부상

여야가 여론의 역풍을 고심하면서도 전직 대통령 사면문제를 꺼내는 것은 차기 대선을 앞둔 전략적 고려다. 고령인 두 전직 대통령의 건강 문제는 국민통합 차원에서 피해갈 수 없는 사안이다. 특히 과거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의 사면과의 형평성 차원에서도 여야 모두 전직 대통령 사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대선경쟁에 나서기에는 정치적 부담이 너무 크다. 문재인 대통령 역시 임기를 마무리짓기 전에 결자해지 차원에서 어떻게든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이 때문에 여의도 정치권을 중심으로 이명박·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사면을 오는 8월 광복절에 단행할 것이라는 예측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내년 3월 차기 대선 일정을 역산하면 하반기에는 여야간 대권경쟁이 본격화한다는 점에서 사실상 마지노선이다.

홍준표·서병수이어 오세훈·박형준 사면론 가세

전직 대통령 사면 논의에 보다 적극적인 건 아무래도 국민의힘이다. 특히 4.7 재보궐선거 승리 이후 보다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동안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 사면 문제는 친이계나 친박계 소속 의원들이 전직 대통령의 건강 문제나 국민통합을 이유로 제기해왔다. 다만 부정적인 여론과 여권의 반발 탓에 곧바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다만 최근에는 대정부질문이나 청와대 오찬 등 보다 공식적인 자리에서 과거보다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상황이다. 차기 대선을 앞두고 전통적 지지층 결집은 물론 탄핵 찬반을 둘러싼 반목과 후유증을 털어내야 한다는 정치적 이유다. 한마디로 탄핵의 강을 손잡고 건너야 한다는 것이다.

무소속 홍준표 의원은 최근 문재인 대통령의 결단을 촉구하며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 사면 론을 쏘아올렸다. 구체적인 시점도 석가탄신일로 못박았다. 홍 의원은 온누리에 부처님의 가피가 펼쳐지는 초파일이 다가온다“(문재인 대통령이) 자신의 업보로 될 두 전직 대통령도 이젠 사면하고 화해와 화합의 국정을 펼치시길 기대한다고 촉구했다. 부산시장을 지낸 친박계 중진 서병수 의원은 한걸음 더 나아갔다. 서 의원은 4월 임시국회 경제분야 대정부질문에서 전직 대통령 사면 건의에 이어 저를 포함해 많은 국민들이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 잘못됐다고 믿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될 만큼 위법한 짓을 저질렀는지 보통 상식을 가진 저로서는 이해하기 힘들다고 주장했다.

화룡점정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박형준 부산시장이었다. 지난 21일 문재인 대통령 초청으로 청와대 상춘재에서 가진 오찬회동에서 전직 대통령 사면을 선제적으로 건의했다. 박형준 시장은 전직 대통령은 최고시민이라고 할 수 있는데, 마음이 아프다. 큰 통합을 재고해 달라며 국민통합 차원에서 사면 필요성을 제기했다. 오 시장 역시 오찬 이후 서울시청에서 가진 브리핑에서 두 분 전직 대통령의 사면 문제를 언급했다마음속으로 이 주제에 대해 생각하고 식사 자리에 임했는데, 박형준 부산시장께서 먼저 말씀하셨다고 밝혔다.

, 역풍 우려에 사면설 제기..‘승리의 저주?

동부구치소 수감 도중 기저질환 치료를 위해 50여일 간 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에서 퇴원하고 있다. 2021.02.10. 뉴시스
동부구치소 수감 도중 기저질환 치료를 위해 50여일 간 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에서 퇴원하고 있다. 2021.02.10. 뉴시스

 

전직 대통령 사면문제가 핫이슈로 부상하면서 국민의힘 안팎은 시끌벅적하다.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 체제에서 중도와 혁신을 내세워 재보선에서 승리했는데 과거로 회귀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김종인 전 위원장은 특히 두 전직 대통령 과오에 대해 역사와 국민 앞에 큰 죄를 저질렀다. 용서를 구한다며 대국민 사과에 나선 바 있다. 이 때문에 사면 논란이 거셀수록 도로 한국당논란도 거세질 전망이다.

사면 필요성을 제기하는 쪽은 전직 대통령의 건강 문제와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과의 형평성을 들고 있다. 주호영 당 대표 권한대행은 전직 대통령들이 오랫동안 영어 생활하는 것에 많은 국민이 걱정하고 있다고 우회적으로 사면을 촉구했다. 김태흠 의원은 과거 군사쿠데타를 일으켰던 전직 대통령도 이렇게 오래 감옥에 있지 않았다통합적 차원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결단했으면 좋겠다고 가세했다. 당권주자인 조해진 의원은 정권이 바뀌어서 새 정권에서 사면하는 것보다, 임기 끝나기 전에 문재인 대통령과 정권의 결정으로 (사면을) 해주는 것이 순리라고 밝혔다.

반면 전직 대통령 사면론 제기는 시기상조라는 반론도 적지 않다. 특히 김종인 비대위를 거치며 중도층 외연확대에 일정 부분 성공했는데 사면논의를 주도할 경우 도로 한국당논란에 시달리면서 국민적 신뢰를 다시 잃을 수 있다는 우려다. 이는 김종인 비대위 체제 당시 우군이었던 소장파 비대위원과 초재선 그룹을 중심으로 흘러나오고 있다. 조수진 의원은 대통령이 탄핵을 받아 물러난 것은 역사와 국민에 큰 죄를 저지른 것이라며 그런 대통령을 배출한 정당은 반성하고 성찰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재섭 비대위원 역시 당이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해 사과를 한 지 고작 5개월이 지났다고 아쉬워했다. 사면을 둘러싼 당 안팎의 논란이 확산되면서 주호영 대표 권한대행은 사면은 대통령이 결단할 사안이고 우리 당이 공식적으로 사면을 요구하진 않을 것이며 선긋기에 나섰다.

이낙연 트라우마, 속내는 불가피론 솔솔

여권은 재보선 이후 야권의 자중지란을 즐기는 모양새다. 다만 사면론을 둘러싼 속내는 보다 복잡하다. 올초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가 전직 대통령 사면론을 공개적으로 언급했다가 엄청난 후폭풍에 휩싸인 트라우마가 있기 때문이다. 이낙연 전 대표는 이후 차기 지지율이 폭락하면서 친문 강성당원들의 탈당 촉구에 시달릴 정도로 홍역을 앓았다. 이후 정치적으로 몰락한 것은 물론 4.7재보선 참패 책임으로 차기 레이스에서 완전히 탈락할 위기 상황이다. 여권 내부에서 전직 대통령 사면론은 그만큼 예민한 문제다. 이재명 경기지사를 비롯한 여권 유력 차기주자들도 사면은 대통령 고유권한이라면서 별도 언급을 꺼릴 정도다.

표면적으로는 강경론이 우세하다.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리는 시대착오적 인식이라는 비판이다. 특히 이명박·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의 사과는 물론 국민적 공감대 형성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당권주자인 우원식 의원은 과거에 권력을 가졌던 분이라고 해서 아무런 절차나 과정 없이, 또 본인들의 반성 없이 사면하는 것은 국민 정서에 맞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신동근 의원은 사면 주장을 넘어 탄핵을 부정하는 것은 국민의힘이 수구 퇴행으로 가려 한다는 신호라고 꼬집었다. 안민석 의원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박형준 부산시장은 당선증의 잉크도 채 마르기 전에 통합은커녕 분열을 초래할 사면 카드를 불쑥 꺼냈다고 비판했다.

다만 당안팎에서는 차기 대선을 앞두고 전략적 고려를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조심스럽게 흘러나오고 있다. 이명박·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이 정치적 영향력을 완전히 상실한 데다 사면결정이 늦어질수록 대선국면에서 오히려 더 부담이 될 수 있다는 논리다. 5선 중진인 설훈 의원이 공개적으로 나섰다. 설 의원은 최근 한 라디오에 출연, 사견임을 전제로 전직 대통령 두 사람이나 감옥에 있는 건 좋은 일이 절대 아니다면서 문재인 대통령도 부담이지만, 아마 대통령 임기 전에는 다음 대통령에게 짐을 안 주기 위해서 문 대통령이 임기 중 스스로 (사면을) 결정할 것 아닌가 생각한다고 밝혔다. 사면 단행의 전제 조건으로는 국민정서를 꼽았다. 설 의원은 사면이 대통령 고유 권한이니 대통령이 결정한다고 해도 국민들이 어떤 시각으로 보고 있느냐가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대통령 결자해지 나설까잠룡군 주판알 튕기기

문재인 대통령이 '2021 보아오포럼 개막식'에 영상으로 참석해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제공) 2021.04.20. 뉴시스
문재인 대통령이 '2021 보아오포럼 개막식'에 영상으로 참석해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제공) 2021.04.20. 뉴시스

결국 키는 청와대가 쥐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전직 대통령 사면 논의가 급물살을 탈 수도 있고 아니면 수면 아래로 가라앉을 수 있다. 문 대통령은 야권을 중심으로 한 정치권의 사면 건의에 원론적인 입장을 밝혀왔다.

문 대통령은 오세훈·박형준 시장과의 오찬에서 사면 건의를 받은 뒤 전직 대통령 두 분이 수감돼 있는 일은 가슴 아프다. 두 분 모두 고령이고 건강도 안 좋다고 해서 안타깝다국민 공감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고 국민통합에 도움이 되도록 작용돼야 한다. 이 두 가지를 함께 고려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 1월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가 사면를 건의했을 때 밝힌 것과 유사한 입장이다. 문 대통령 역시 전직 대통령 수감 상황에 대해 안타까운 심경을 밝혔다는 점에서 사면 가능성을 열어놓은 것이다. 다만 국민공감대 형성과 국민통합을 전제조건으로 제시했다는 점에서 시기상조라는 입장을 함께 내비치고 있다. 이는 뒤집어 해석하면 국민적 공감대가 모일 경우 사면 결단에 나설 수도 있다는 점을 시사한 것이다.

차기 대선이 본격화될수록 이명박·박근혜 전직 대통령 사면을 둘러싼 정치권의 주판알 튕기기는 본격화할 전망이다. 특히 여야 모두 재보선 이후 전당대회를 준비하면서 지도체제를 정비 중이다. 당권경쟁 국면에서 사면문제가 화두로 떠오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야권은 역풍을 우려하면서도 여권이 국민통합 차원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움직여주길 바라는 모양새다. 여권 역시 재보선 참패로 지지층이 이완된 상황에서 사면이슈가 몰고올 파장 탓에 극도로 신중한 모습이다.

다만 현 정부 임기를 마무리짓기 전에 어떤 식으로든 전직 대통령 사면 문제를 털어야 한다는 물밑 공감대는 없지 않다. 이르면 오는 5월 중순 석가탄신일 또는 815일 광복절, 늦어도 연말 크리스마스 사면 등이 거론된다. 다만 광복절을 넘기게 되면 차기 대선에 미치는 영향이 너무 큰데다 유력 주자들의 유불리가 첨예하게 엇갈리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쉽지 읺다는 관측이 나온다. 더구나 최근 경제계를 중심으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사면 요청이 줄을 잇고 있는 만큼 전직 대통령 사면문제을 방치하기보다는 패키지로 한꺼번에 처리해야 한다는 주장도 조심스럽게 흘러나오고 있다.

여야 사정에 정통한 한 정치권 관계자는 내년 3월 차기 대선이 일년도 채 남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여야의 대권경쟁이 본격화할수록 전직 대통령 사면문제는 화두로 떠오를 수밖에 없다차기 대선 스케줄을 역산하면 8월 광복절 사면이 제일 적절한 타이밍이다. 대선후보 경선 일정이 시작하기 전에 여야 모두 털고 가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