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니지에서 시작된 현실+PK(플레이어 킬)···안전장치 시급

게임. [뉴시스]
게임. [뉴시스]

[일요서울 | 조택영 기자] 지난해 10월 게임 길드 내에서 갈등을 빚던 유저들이 실제로 만나 몸싸움을 하는 장면이 그대로 유튜브에 생중계된 사건과 지난 3월 온라인 게임 내 채팅으로 말다툼을 하던 남성 두 명이 오프라인에서 만나 실제로 싸움을 벌여 한 명이 숨진 사건 등은 공통점이 있다. 바로 게임에서부터 싸움이 시작됐다는 점이다. 이처럼 온라인 게임에서 시작된 시비가 폭행, 더 나아가 살인으로까지 번지는 일명 ‘현피(현실+PK 합성어)’ 사건이 잇따르고 있어 안전장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메이플스토리서든어택나이트 온라인리니지 등 현피 사건 속출

지난해 10월 넥슨의 대표 게임으로 분류되는 ‘메이플스토리’ 길드 내에서 갈등을 빚던 두 남성이 실제로 만나 몸싸움을 하는 장면이 유튜브에 생중계돼 논란이 일었다.

일명 ‘현피’ 사건이다. 현피란 게임 내 다른 유저를 공격하는 PK(플레이어 킬의 줄임말)가 실제 사회에서 벌어지는 것을 뜻한다.

이 두 남성의 현피 영상은 정제되지 않은 채 온라인 이곳저곳에 나돌게 됐다. 이들은 온라인 게임 ‘메이플스토리’의 유저이자 온라인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 메이플스토리 갤러리 회원들이었는데, 사전에 미리 만나 현피를 하기로 약속을 한 뒤 실행에 옮겼다.

지난 2018년에는 ‘선릉역 칼부림’이라고 불리는 희대의 사건이 발생했는데, 이 또한 넥슨의 대표 게임으로 분류되는 ‘서든어택’ 상에서 알게 된 두 여성 중 한 명이 선릉역에서 말다툼 끝에 다른 여성에게 흉기를 휘둘렀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에도 게임에서 시작된 사건이 또다시 발생했다. 엠게임의 ‘나이트 온라인’이라는 게임 내에서 말다툼을 하던 남성 두 명이 현피를 벌이다가 한 명이 흉기에 찔려 숨진 것.

일요서울 취재 결과, 이들은 게임 내에서 그룹을 지어 사냥을 하다가 말다툼을 시작, 현피로 번져 30대 남성이 흉기를 휘두른 것으로 파악됐다. 흉기에 찔린 20대 남성은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끝내 숨졌다.

경찰 관계자는 일요서울에 “두 남성은 게임 내에서 사냥을 적극적으로 했느냐 안 했느냐, 이런 단순한 문제로 말을 주고받다가 시비로 번진 것”이라며 “서든어택 같은 게임을 할 때 보면 ‘야 숙여’, ‘저쪽으로 가’ 등의 말을 했는데 안 가면 ‘너 때문에 죽었잖아’ 이런 식으로 흘러가는 것처럼, 간단한 한두 마디로 시작해 현피 살인까지 가게 된 사건이다. 물론 여러 차례 같은 상황(말싸움)이 있었다고 한다”고 말했다.

- 게임 흥행 요소가 폭력으로

그렇다면 현피는 언제, 어디서부터 시작됐을까. 지난 20여 년간 한국 대표 게임으로 꼽히는 ‘리니지’로부터 시작된 것으로 알려진다. 리니지는 NC소프트의 대표작이다. 현질(게임아이템을 돈으로 사는 것)과 현피 등은 사실상 리니지에서 시작됐다.

지난 2010년에는 리니지를 인터넷 방송으로 중계하던 진행자가 상대 길드 회원들로부터 방송 도중 집단 구타를 당하는 현피 사건이 발생했다. 이용자 8명이 수도권, 전라도 지역에서 대구까지 이동해 조직을 결성, PC방에 있던 방송 진행자를 덮친 것.

해외에서도 지난 2007년 리니지와 관련한 현피 사건이 발생했다. ‘리니지2’를 즐기던 한 러시아의 유저가 적대 관계에 있던 유저와 시비가 붙어 살인으로 이어진 사건이다.

게임 도중 상대 유저를 죽이는 이른바 PK는 리니지에서 처음 도입, 리니지의 흥행을 만든 핵심 요소였다. 그러나 이 요소가 발전돼 폭력성이 짙은 온라인 게임에 중독된 일부 이용자가 현실과 가상을 구분하지 못해 현실로까지 폭력을 이어가는 현상으로 번져 현피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NC소프트의 리니지 IP(지적재산권)를 가지고 만든 넷마블의 ‘리니지2 레볼루션’에서도 현피가 잇따른 것으로 보인다.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는 리니지2 레볼루션 게임 내에서 시비가 붙은 유저들끼리 현피를 했다는 글이 한둘이 아니다. 현피를 하자며 유저 아이디, 날짜, 시간, 장소까지 기입한 글도 적잖게 볼 수 있다.

- ‘게임 중독’ 왜 무섭나

의료계 일각에서는 ‘게임중독(게임 이용 장애)’을 현피의 주요 원인으로 보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도 내년부터 게임 이용 장애를 공식적으로 ‘질병’으로 분류하기로 결정했다. 국내에서는 게임 이용 장애 질병코드 도입 여부를 두고 연구용역을 진행 중이다.

WHO가 발표한 게임 이용 장애 진단 기준은 3가지다. ▲게임을 스스로 멈출 수 없을 만큼 조절력을 상실했다 ▲다른 일상 활동보다 게임에 우선순위를 부여한다 ▲부정적 문제가 발생해도 게임에 과몰입한다 등이다.

개인과 가족, 직업적 능력, 일상생활, 대인관계 등에 장애를 초래할 정도로 심각하고 같은 패턴이 최소 12개월 이상 지속되거나 반복적으로 나타나면 게임 이용 장애를 의심해 볼 수 있다. 핵심은 게임에 몰입하는 시간이 많고 적음이 아니라 통제 능력의 상실 여부다.

지난 2018년 벌어진 일명 ‘강서구 PC방 살인 사건’에서도 하루 5시간 이상 게임에 빠졌던 범인이 게임에 방해받는 것을 참지 못해 벌어진 일이란 분석이 있다.

한편 전문가들은 현피 등을 대처하기 위한 교육, 법의 현실화, 게입업계 차원의 안전장치 등이 필요하다고 조언하고 있다. 게임 유저 간 혐오와 차별부터 멈춰야 한다는 견해도 잇따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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