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실패’, 노르웨이는 ‘성공’···배워야 할 점은?

코로나 검사를 받고 있는 군인들. [뉴시스]
코로나 검사를 받고 있는 군인들. [뉴시스]

[일요서울 | 조택영 기자] ‘여성 징병제’를 둘러싼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의 제안을 계기로 여성 징병제 도입이 관심사로 떠오른 모양새다. 지난 19일부터 시작된 ‘여성도 징병 대상에 포함시켜 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은 나흘 만에 20만 명의 동의를 얻으면서 정부의 답변을 받을 수 있는 조건을 충족한 상태다. 과연 해외에서는 여성 징병제에 대해 어떤 논의가 오갔는지 추적해 봤다.

정부 관료·의원 등 국가행위자들이 중요한 역할 수행해야

이번 국내에서 일고 있는 ‘여성 징병제 도입’ 움직임은 20대 남성 표심에 놀란 집권 여당의 임시변통이라는 비판이 있다. 그러나 여성 징병제는 군사, 젠더, 사회 등 다양한 측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인구 절벽 시대에서 군 병력 부족, 군 역량 강화를 위한 방안이면서 성 평등을 강화하기 위한 유용한 수단으로 평가된다.

- ‘여성 징병제’ 희박한 미국

박진수 덕성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가 발표한 ‘한국, 미국, 노르웨이의 여성 징병제 논의와 사회적 갈등 연구: 행위자, 쟁점, 갈등 표출과 해소를 중심으로’ 논문에 따르면 유럽에서는 노르웨이가 지난 2013년 6월 여성 징병제 도입을 결정, 2016년 7월부터 여성 징병제를 시행했다.

스웨덴은 여성 포함 보편적 징병제를 2018년 1월부터 시행했다. 네덜란드는 2018년 10월 법을 개정, 여성을 징병 대상에 포함시켰다. 스위스, 오스트리아, 덴마크, 핀란드, 독일 등 다른 유럽 국가들도 2017년 이후 여성 징병제 도입을 위한 논의를 시작했다.

그렇다면 세계 최강 군대를 보유한 미국은 어떠할까. 미국은 여성 징병제 도입에 실패했다. 여성 징병제에 대한 논의는 있었지만, 미국 사회는 최종적인 합의를 이끌어 내지 못했다.

현재 미국은 모병제를 운용하고 있다. 징병제는 1973년에 폐지됐다. 대신 만 18세 이상 남성은 군 의무병역시스템(MSSS)에 등록해 유사시 징병에 응해야 한다. 미국 내 여성 징병제 논의는 이 같은 배경 하에서 진행됐다.

여성 징병제 논의는 미국에서 대통령, 국회의원 등 정치적 행위자와 남성 인권 운동가에 의해 제기되면서 시작됐다. 이들 대부분은 남성이었다.

미국 대통령 중 최초로 여성 징병제를 제안한 인물은 F. D. 루즈벨트다. 그는 2차 세계 대전 기간 동안 부족한 간호병을 충당하기 위해 의무병역법을 수정해 달라고 의회에 요청한 것.

미국이 1973년 모병제로 전환함에 따라 의무병역시스템 역시 중단됐으나, 1979년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자 당시 지미 카터 대통령은 의무병역시스템을 부활시키라고 의회에 요청했다. 카터 대통령은 동시에 의무병역시스템에 남성뿐 아니라 여성들도 비전투 요원으로 등록하라고 요구했다.

2000년대 들어 여성 징병제 이슈는 남성인 찰스 랭글 민주당 하원의원이 발의한 보편적 병역법에 의해 주도됐다. 랭글 의원은 이라크 전쟁이 임박한 2003년, 다른 민주당 의원들과 함께 남성과 여성 모두 군대나 사회복무에 징병할 수 있게 하자는 보편적 병역법을 발의했다. 랭글 의원은 이후에도 비슷한 의도로 2006년, 2007년, 2010년, 2013년에 해당 법안을 제출했다. 온라인상에서 관심이 모였던 2007년 발의안을 제외하고는 나머지 법안은 사회적으로 주목을 받지 못했다. 또 번번이 하원 문턱을 넘지 못했다.

비슷한 시기, 미국 내 일부 반전주의자들과 남성 인권 운동가들도 여성 징병제에 도입을 주장했다. 남성을 위한 국민 연합은 2013년 2월, 남성만 의무병역시스템에 등록하도록 한 의무병역법이 남성에 대한 성차별이라고 주장하며 이 법이 헌법에 위배된다고 소송을 제기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2016년 12월1일 여성을 의무병역시스템에 등록하는 데 찬성 입장을 밝혔다. 다만 오바마 대통령은 약 1여 년 동안 중립적인 태도를 보이다가, 임기 마지막 주에 찬성 입장을 밝혔다. 실현 가능성보다는 상징성에 무게가 실린 것.

그러던 중 여성 징병제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던 공화당이 태도를 바꾸면서 국면이 바뀌었다. 2016년 미 하원 공화당 남성 의원인 던컨 헌터와 라이언 징크가 여성도 의무병역시스템에 등록하게 하는 ‘미국의 딸 징병 법안’을 발의함으로써 논란을 촉발시킨 것. 같은 해 6월 미국 상원이 의무병역시스템 등록 대상에 여성을 포함하는 국방예산안을 83대 15로 통과시킴에 따라 파장이 일었다.

곧 공화당은 한 발 물러섰다. 하원 의원들이 여성 의무병역시스템 등록 조항을 제외한 수정 법안을 발의했고, 이 법안이 찬성 217명, 반대 203명으로 통과됐다. 또 상원과 하원은 타협을 통해 2016년 11월 의무병역시스템에 여성을 포함하는 안을 폐기했고, 대신 의무병역시스템 여성 포함과 의무병역시스템 폐지 등을 연구할 위원회를 창설했다. 현재 11명으로 구성된 위원회가 활동하고 있으나 미국에서 여성 징병제가 도입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전망이 잇따르고 있는 실정이다.

- 노르웨이, 여성 정치인들이 나섰다

북유럽 국가 노르웨이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입국 최초로 여성 징병제 도입을 결정했고, 공식적으로 도입했다. 노르웨이도 처음에는 여성 징병제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컸지만, 국방부 등 정부 부처와 각 정당의 찬성론자들이 여성 징병제가 성 평등을 가져올 것이라고 주장하며 여성계를 설득하고, 사회적 합의를 주도했다.

이 국면을 주도한 이들은 여성 정치인들이었다. 2013년 당시 여성으로서 국방장관 직을 수행하고 있던 에릭센 쇠레이데는 여성과 남성이 권리와 의무를 공유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며 여성 징병제 도입을 주장했다. 쇠레이데 장관은 군대가 노르웨이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집단 중 하나이며, 그 힘이 남자에게만 허락된다면 노르웨이가 추구하는 평등이라는 기본적 원칙을 훼손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 결과, 노르웨이 의회는 성 중립적 징병제를 위한 결의안을 승인했고, 이후 노르웨이 의회는 2014년 10월 성 중립적 징병제를 반영할 수 있도록 병역법과 국토수호법을 수정했다. 여성 징병제는 2016년 시행됐다.

미국과 노르웨이 병역제도는 한국 현실과 큰 차이를 보인다. 그럼에도 양국의 경험은 향후 우리 사회의 여성 징병제 도입 논의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박진수 교수는 “미국과 노르웨이의 사례처럼 정부 관료와 의원 등 국가행위자들이 사회적 갈등의 표출과 해소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며 “정부, 의회, 정당이 여성 징병제를 둘러싼 시민 사회의 다양한 논의를 수용하고 논의 과정에서 나타난 시민 사회의 다양한 의견과 갈등을 수용해 제도권 내부에서 안정적 대화와 타협의 과정을 만들어 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한국에서 여성 징병제 논의가 단순하게 남성에 대한 역차별 해소인가 하는 문제에 집중돼 있는 반면, 미국과 노르웨이의 경우 여성 징병제 도입이 가져올 안보적 효과,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적용되는 젠더 평등의 효과 등이 종합적으로 검토되고 있다”면서 “안보적 차원, 여성의 평등권 향상 문제, 남성에 대한 역차별 문제,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병역제도 전반에 대한 검토와 함께 논의돼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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