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그램·디스코드 등 플랫폼 운영자들, 디지털 성범죄 심각성 인식·협조해야”

전문가 “불법 합성물 수요자 여전… ‘집단 괴롭힘’ 도구로 악용도”

[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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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서울ㅣ김혜진 기자] 유명 배우나 일반인의 얼굴 사진을 음란 영상물에 합성해 돈벌이 수단으로 삼는 신종 디지털 성범죄인 ‘딥페이크’는 꾸준히 지적돼 왔다. 그 양상은 날이 갈수록 심각해져 연예인뿐 아니라 일반인 피해자들도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이에 지난해 6월 ‘딥페이크 처벌법(성폭력처벌법개정안 14조2)’이 시행됐지만 수요자들에 대한 처벌을 기대하긴 어렵다는 한계를 지닌다. 법이 엄연히 존재함에도 올 초 ‘딥페이크 영상 제작·유포자를 강력히 처벌해 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은 30만 명 이상 동의를 얻었다. 이에 대한 근절은 여전히 어려운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수사 기관의 노력뿐 아니라 딥페이크 성 착취물이 공유되는 텔레그램 등의 플랫폼 운영 기업들이 이를 성범죄라고 인식하고 수사에 적극 협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난 2일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는 최근 5개월간 딥페이크 불법 합성물을 제작하고 유포한 혐의로 94명을 검거해 10명을 구속했다고 밝혔다. 94명 중 65명은 10대로 전체의 69.1%다. 20대는 17명(18.1%)으로 뒤를 이었다. 이 외에도 지난 1월 일반인 9명의 얼굴을 합성한 딥페이크 사진 11장을 해외 SNS를 통해 판매한 10대가 불구속 입건되고, 연예인 14명의 얼굴을 합성한 딥페이크 사진 163장과 성 착취물 379개를 보유하고 판매한 또 다른 10대도 경찰에 적발됐다.

딥페이크 불법 영상물의 노출이 늘고 제작 방식 또한 쉬워지면서 상대적으로 접근도가 높은 젊은 연령층에서 딥페이크 방식을 이용한 불법 영상물을 제작·유포해 처벌되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당장 휴대전화를 통해 손쉽게 내려 받을 수 있는 딥페이크 앱만 해도 상당수로 파악됐다. 

딥페이크 처벌법 시행
공급·유포자만 처벌… ‘한계’

지난해 6월 신설된 딥페이크 처벌 조항에 따르면, 딥페이크와 같은 허위 영상물을 만들거나 유포하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성폭력처벌법 제14조의2). 미수범도 처벌 대상이다(제15조). 돈을 목적으로 딥페이크 성 착취물을 퍼뜨리면 형이 가중돼 7년 이하의 징역에 처해진다. 하지만 법 조항에 딥페이크 영상물을 구매 및 소유, 시청한 사람들에 대한 처벌 규정은 존재하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딥페이크 활용 불법 영상물의 수요는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지만 이에 대한 적절한 처벌이 부족하다고 분석했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일요서울과의 통화에서 “불법 합성 영상물을 찾는 수요자가 없으면 포르노도 n번방도 설 자리가 없었을 것”이라며 “이들에 대한 처벌이 부족한 게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어 “자기 과시를 보여 주는 이 같은 범죄는 대면 관계가 아닌 익명성 뒤에 숨기 때문에 죄의식, 범죄 의식이 없는 것도 연관이 있다”고 말했다.  

서승희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대표는 “불법 합성 촬영물을 보려는 수요자들은 여전히 많고 이제는 수요자가 생산자가 되기도 쉬워졌다”며 “수요자와 공급자가 혼재돼 확장하면서 범죄가 꾸준히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피해자의 셀카나 일상 사진만 갖고 있으면 누구든 소비·유포·제작할 수 있다는 게 불법 합성물을 이용한 디지털 성폭력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딥페이크 처벌법이 시행 중이지만 가해자 특정이 어려워 사건이 진행되지 않거나 더 큰 문제는 피해 당사자가 사건 피해에 대한 인지를 못하고 있는 사건도 많다”며 “사이버 익명성 악용한 것이기도 하고 대면 상황이 아닌 곳에서 발생하는 특성이 있어 법이 정비돼도 실효성을 갖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또한 서 대표는 일부 청소년 등은 딥페이크 불법 합성물을 집단 괴롭힘의 도구로 악용하기도 한다고 했다. 그는 “불법 합성물 범죄의 특징 중 하나는 가해자와 피해자들의 연령대가 아동·청소년인 점”이라며 “같은 반, 같은 학원 학생들의 사진을 갖고 모욕적인 허위 사실을 게시하고 활발하게 공유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성폭력 전문 신진희 변호사는 “딥페이크 불법 영상물 제작 및 유포 등은 지난해 처음 만들어졌다. 이전까지는 비슷한 법안으로 ‘카메라 등 이용촬영죄’가 있었는데 7년 이하 징역 5000만 원 이하의 벌금으로 형량이 올랐다”며 “실제 사람을 찍어서 편집하지 않고 제3자에게 공유할 때 처벌(카메라 등 이용촬영죄)하는 것과 두 사람 이상 한 사람의 영상물, 사진을 다르게 변조·가공하는 행위를 처벌(딥페이크 처벌법)하는 법안은 별반 다르지 않은데 두 법안의 형량이 왜 다른지 모르겠다”고 했다. 

플랫폼 운영 기업들
경찰 수사 협조해야

전문가들은 수사 기관의 노력뿐 아니라 딥페이크 성 착취물이 공유되는 텔레그램, 디스코드 등의 플랫폼 기업들이 이를 심각한 성범죄라고 인식하고 경찰 수사에 협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윤호 교수는 “텔레그램 같은 해외 플랫폼은 치외법권이니 경찰의 수사력이 안 닿으면 처벌하기도 어렵지 않나”라며 “처벌이 어렵고 처벌되더라도 생각보다 가벼운 처벌을 받게 될 경우 그것보다 얻는 이익이 더 클 때 범죄자들이 범죄 행위를 선택하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포털 기업 등의 사회적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 수요자나 공급자들이 이용하는 플랫폼 기업들이 적극 나서 공조해야 처벌의 무서움을 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승희 대표도 “수사 기관이 사이버 수사력을 키우는 것과 별개로 영상물이 공유되는 텔레그램, 디스코드, 각종 메신저 등 온라인 플랫폼 사업자들이 본인들의 운영 플랫폼에서 발생한 사건에 대해 책임 의식을 갖고 적극 협조하는 것이 당연한 사회적 상식이 되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며 “수사 협조가 어려운 건 해외에 본사를 두는 곳들이 한국 수사 기관에 응답을 안 하기 때문이다. 이들이 협조하지 않으면 수사에 한계가 생긴다. 이를 연결해 법안을 통해 처벌을 내릴 수 있도록 알리는 목소리를 내는 것 역시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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