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문, ‘이원집정부제’ 개헌론 제기…대선 판도 반전 카드 노림수

박병석 국회의장 [뉴시스]
박병석 국회의장 [뉴시스]

[일요서울 l 정두현 기자] 최근 여의도에서 ‘개헌론’이 수면 위로 급부상하고 있다. 4.7 재보궐선거 참패로 위기의식을 느낀 집권여당이 정권 재창출을 위한, 혹은 이에 실패할 경우를 대비해 궁여지책으로 개헌을 돌파구로 삼으려 한다는 게 정치권 정설이다. 국정지지율 30%대 미만으로 콘크리트 지지선도 무너지며 레임덕이 본격화된 청와대와 재집권 시나리오가 마땅찮은 여당에겐 새로운 활로 모색이 절실한 상황이다. 여기에 민주당 내에선 현재 친문계 적통 대권주자의 부재로 고심을 거듭하는 가운데, 단기필마로 압도적 지지를 얻고 있는 이재명 경기지사에 대한 당권파의 견제 심리가 ‘개헌론 군불 때기’로 이어지는 모양새다. 이에 문 정권 말기 개헌 국면으로의 전환이 예측되는 현 정치 판도가 차기 대선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 모아진다. 일요서울이 민주당발(發) 개헌론을 심층 분석해 봤다.

- 민주당 당권파 ‘민주주의4.0’에서 대통령 권력 분산 의도 구상도
- 친문계 대권주자 부재에 따른 이재명 독주 체제 견제 심리 작용
- 김종민 의원 국회토론서 ‘대통령 중임제 개헌 필요성’ 강력 주장


“헌법 체계가 대통령에게 너무 많은 권한과 짐을 부여하고 과도한 책임을 묻는다. 분권형인, 여야가 공존하고 협력하는 체제로의 변화가 필요하지 않나 생각한다.” 지난 6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박재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개헌 필요성을 묻는 질의에 답한 김부겸 국무총리 후보의 일언이다. 청와대의 복중 대선 카드로도 지목된 김 후보자의 이런 반응은 분권형 개헌 즉, ‘이원집정부제’를 주장하는 민주당 당권파의 개헌론 부각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실제로 여당 일각에선 대통령 권한 분산을 골자로 한 헌법 개정을 추진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이는 이해찬 민주당 전 대표의 ‘개헌 함구령’과 민주당발 개헌 추진설을 부인해 왔던 당청의 입장과도 배치된 행보로, 여당이 현 열세 국면을 타개할 정략적 노림수로 지목된다.  

‘180석’ 화력 업은 與 개헌론 카드, 대선 판도 반전 노림수

4·15총선 압승 직후 개헌론을 거론한 민주당은 최근 당내 친문계 의원들과 당 지도부를 중심으로 ‘2차 개헌론 군불 때기’에 들어가는 분위기다.

여기에 박병석 국회의장도 헌법 개정에 목소리를 내고 있다. 역대 국회의장들이 출신 정당과 무관하게 개헌론에 찬성했지만 1987년 이후 헌법 개정이 실현된 바 없다. 박 국회의장은 차치하더라도, 국회에서 범여권 포함 189석이라는 압도적 의석수를 보유한 민주당이 적극 나설 경우 언제라도 개헌 국면은 급물살을 탈 수 있는 상황이다. 문 정권 말기 여당발 개헌 추진 여부에 이목이 더욱 집중되는 이유다.

다만 헌법 개정 절차 규정에 따르면 헌법 개정은 국회재적의원 과반수 또는 대통령의 발의로 제안되고, 국회 의결 정족수는 재적의원의 2/3 이상 즉, 200석 이상 찬성을 얻어야 하는 등 개헌 절차나 사회적 합의 가능성에서 결코 간단하지 않다.

지난 4일 여당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에 따르면 개헌론은 현재 민주당 내에서 ‘부엉이 모임’이 확대, 재편된 ‘민주주의 4.0’을 주축으로 논의가 이뤄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주의 4.0은 현 정권이 임기 말로 접어들면서 급부상한 친문 그룹으로 분류된다. 윤호중 민주당 원내대표를 포함한 정태호·홍영표 의원 등이 주축이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일요서울과 담화에서 “청와대 비서실 중심으로 돌아가는 지금의 대통령제를 국무위원과 정당 중심의 대통령제로 개헌하는 것에 대한 논의가 민주주의 4.0 멤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라며 “민주당에서 개헌론이 최근 다시 논의됨에 따라 김종민 의원의 중임제 전환론과 더불어 제2의 재집권 시나리오로 재구성되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또 이 관계자는 “친문계의 이번 개헌론 구상은 현 헌법상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을 선출한다’는 조항은 유지하면서 국무총리 이하 부총리를 분야별로 세분화하는 것이 핵심”이라면서 “표면상 ‘분권형 대통령제’로 비춰질 수 있지만 사실상 ‘이원집정부제’에 가까운 개헌안이라 볼 수 있다”고 부연했다.

이는 국무총리 이하 정당 기반의 부총리를 최대 6명까지 둬 국회 인준을 받게 하자는 구상이다. 의원내각제 등 대대적인 권력구조 개편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현 대통령제를 민주적으로 운영하는 데 초점을 맞춘 방안이다.

이를 두고 정치권 일각에선 민주당 주류 계파에서 제기되고 있는 현 개헌안은 문재인 대통령 퇴임 후 안위 보장과 친문 권력 유지를 염두에 둔 정략적 셈법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이재명 경기지사 [뉴시스]
이재명 경기지사 [뉴시스]

비주류 이재명의 존재감 부상에 친문은 ‘좌불안석’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 이 지사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40%대)에 이어 30% 중후반대의 대선 후보 지지율을 보이고 있다. ‘마의 박스권’이라 불리는 30% 지지율을 뚫고 윤 전 총장의 뒤를 바짝 쫓으면서 단기필마로 독보적 존재감을 과시하는 모양새다. 이는 기존 콘크리트 지지층에 중도 확장성까지 갖추며 당내 비주류의 한계를 어느 정도 극복했다는 평가다.

친문발 개헌론은 이렇듯 여당에서 ‘비문(非文)’으로 통하는 이재명 경기지사의 독주 체제가 이어지면서 이에 대한 견제 심리가 크게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지난 3일 본지 취재에 응한 여당 한 관계자는 “대외적으론 친문‧비문을 가르는 흑백논리를 견제하는 분위기지만 차기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사실상 친문과 이재명을 지지하는 세력이 대치하는 구도인 것은 맞다”면서 “이 지사가 당내 경선을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라 해도 당내 ‘흑묘백묘론’에도 무게가 실리는 만큼 이를 의식한 행보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친문으로선 현재 실력과 파급력을 갖춘 적통 후보가 마땅치 않은 상황에서 이 지사의 대선 존재감 수직상승은 존폐 위기에 버금가는 정치적 부담이다. 여기에 이해찬 전 민주당 대표,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이 당내 조직력이 취약한 이 지사의 약점을 보완할 ‘킹메이커’로 등판할 가능성도 제기되면서 친문의 대선 시계는 촌각을 다투게 됐다.

지난 대선 당시 문재인 대통령 후보를 집중 타격하며 대립각을 세운 뒤, 현 정부 집권 이후에도 당청과 주요 정책 현안을 두고 이견을 보이며 줄곧 대치해 왔던 이 지사다. 친문 측에서도 당내 경선 연기론 제시와 이 지사의 ‘기본 시리즈’ 정책 비판 등을 통해 견제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 지사는 회유책으로 문 대통령과 친문 세력에 한때 화해의 제스처를 보내기도 했으나, 4.7 재보선 이후 청와대와 친문을 향한 기류가 급속도로 식었다. 민주당 ‘초선 5적’ 사태로 촉발된 강성 당원들의 문자 폭탄 등 집단 행위에 대해 “1000명쯤 차단하면 조용해진다”고 했던 이 지사의 말에서 단초를 찾을 수 있다.

그런 그가 차기 대선에서 여권 리더로서 승리를 거머쥐게 될 경우 민주당 기득권층의 도태 가능성이 점쳐진다. 결국 민주당 기존 권력 구도 승계를 위해서라도 친문의 이번 개헌론 카드는 필수적이라는 게 정치권의 주된 인식이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이재명 지사가 차기 대권을 잡게 되면 문 대통령과 민주당 친문 세력의 쇠락은 뻔한 이치”라며 “결국 민주주의 4.0에선 이 지사를 향한 최후의 견제구로 개헌론이 답이라는 결론을 내린 것 같다”고 진단했다.                            

김종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뉴시스]
김종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뉴시스]

국회에서도 개헌 움직임…김종민 ‘대통령 중임제’ 주장

박병석 국회의장과 김종민 등 민주당 중진 국회의원들을 중심으로 한 헌법 개정 논의도 급물살을 타고 있다. 특히 민주당 주류인 친문 일각에서 권력구조 개편 필요성을 개진했던 상황과 맞물려 귀추가 주목되는 상황이다. 21대 국회가 들어선 이후 사실상 이렇다 할 동력을 받지 못했던 개헌 논의는 내년 3월 대선을 앞둔 현 시점에 재조명되고 있다.

국회의장과 여당 일각에서 제기된 권력 구조 개편론은 5년 단임제를 채택하고 있는 우리나라 헌법상 권력 집중에 대한 문제의식에 공감대가 있는 만큼, 대통령 중임제 또는 의원내각제를 통해 이러한 문제들을 해소시킨다는 논리다.

이에 지난달 21일 국회의장 직속 국회 국민통합위원회 토론회에서는 여당 발제자로 나선 민주당 김종민 의원이 ‘총리와 내각 중심 정부로의 전환’을 화두로 던지며 장기적으로 대통령 중임제 필요성을 주장했다.

줄곧 ‘대통령 중임제’ 개헌을 주창해 온 친문계 인사인 김 의원은 “중장기 국정 계획을 위해서는 대통령제를 중임제로 바꾸는 게 필요하다”며 “지금의 단임제에서는 기본적으로 중장기 국정 계획이 구조적으로 어렵다”고 중임제 전환을 강조했다. 김 의원은 청와대 비서실 중심의 정부 체계를 총리와 내각이 중심이 되는 ‘내각 중심제’ 정부로 전환해야 한다는 제안도 덧붙였다.

국회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일요서울과 통화에서 “정책 단절의 고리를 끊기 위해선 대통령 중임제 도입이 필수라는 게 김종민 의원의 지론”이라며 “이미 오래전부터 김 의원은 중장기 국정 계획의 연속성을 강조해 왔고 여기에 공감하는 당내 의원들도 적지 않다”고 밝혔다.

박병석 국회의장도 올해가 헌법 개정의 적기라고 보는 개헌론자다. 그는 지난해 제헌절 경축사를 통해 “국민통합의 제도적 완성은 결국 개헌”이라며 “국민 대다수가 필요성에 공감하는데도 끝없이 쳇바퀴만 돌고 있다. 더 이상 개헌을 미루지 말고 이제 매듭을 지어야 한다. 34년 된 낡은 옷을 갈아입을 때가 됐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이와 관련, 국회 관계자는 “현 권력구도로는 국민 통합을 이뤄 내기 힘든 한계성이 분명하기 때문에 권력 분산을 핵심으로 하는 개헌이 필요하다는 것이 박 의장의 기본 취지”라고 설명했다.

정계에 따르면 지난 2일 전당대회를 마치고 새 지도부가 취임한 민주당의 주도로 헌법 개정안이 공론화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은 국가비전위원회를 꾸리고 개헌 제시 및 야당과의 개헌 합의 방법론에 대해 집중 논의한다는 방침이다. 제1야당도 아직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정계 진출 및 국민의힘 합류 가능성이 미지수인 상황에서 내년 3월 대선 이전에 여야 개헌 논의가 이뤄질 수 있다.

반면 개헌론에 대해 여야 간 이해관계가 엇갈리고 있고, 각 당 내부에서조차 이견이 돌출되고 있어 합의안 도출이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실제로 매 정권마다 이원집정부제 개헌 추진 논의는 있었지만 진행 동력 부족으로 좌초됐다.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 2018년 대통령 임기와 연임 여부와 관련된 개헌론을 언급하기도 했으나, 결국 여야 합의를 보지 못하고 무산됐다. 이렇듯 여야 과반수를 훌쩍 넘는 높은 의결 정족수와 복잡한 개헌 절차 등으로 개헌 동력 마련이 쉽지 않다.

무엇보다 현 대통령제에 익숙한 국민들의 공감대를 얻는 일이 난제다. 때문에 국민투표까지 넘어서야 하는 헌법 개정으로 이어지기는 쉽지 않다는 게 정치권 중론이다.

이와 관련, 민주당 내에서 대표적 합리파로 통하는 정세균 전 총리는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여당발 개헌론과 관련해 “대한민국의 미래가 있기 위해선 분권이 절실하고, 이는 개헌과 관련이 있다”며 “생각은 항상 다듬고 있지만 지금은 개헌의 시간이 아닌 것 같다”며 신중한 입장을 내비쳤다.

민주당發 ‘이원집정부제’ 개헌론, 그 이면에는

민주당 친문 진영이 이원집정부제 개헌론을 적극 추진하는 배경에도 관심이 쏠린다.

민주주의 4.0 등에서 주장하는 “대통령의 제왕적 권력을 분산시키고 국가 운영의 균형을 맞추기 위함”이라는 기본 취지와 달리 개헌론의 이면에는 다른 논리가 깔려 있다는 의견도 개진된다. 이원집정제를 정착시킴으로써 ‘국회의원으로서 지분을 나눠 갖겠다’는 계산이 깔린 정략적 의제라는 것이다.

이원집정부제는 ‘대통령제’와 ‘의원내각제’를 절충한 권력 구조 형태로, 국민이 뽑는 대통령은 외교·통일·국방 등 외치(外治)를 전담하고, 의회에서 선출된 총리가 내정을 총괄하는 국가 운영 체계다. 통상 이원집정부제를 채택한 국가에서 대통령은 조약 체결, 국방통수권, 국회 해산, 정당 해산 제소, 계엄 선포, 긴급명령 등의 권한이 부여된다. 총리는 행정부 통치, 법률안 제출권, 예산편성권, 행정입법권 등의 권한을 갖는다. 대통령에게 쏠린 권력을 총리, 부총리, 국회의원 등에도 분산시키자는 게 기본 취지다.

프랑스가 이원집정부제를 채용한 대표적 사례로, 대통력 권력 분산을 통해 효율적 국가 통치와 상호 감시가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단점도 뚜렷하다. 우선 대통령과 수상(또는 총리)의 업무 분담에서 혼선이 생길 수 있다. 대통령은 외치, 수상은 내치로 큰 틀에선 업무가 분리돼 있지만 세부적인 국정은 업무 구분이 모호한 사안이 많다. 이런 경우 대통령과 수상 간 업무 영역을 두고 갈등을 겪을 수 있다.

특히 대통령 소속 정당과 수상의 소속 정당이 다르면 국가 지도부의 균열 사태는 더욱 빈번하게 일어나 국정 혼란이 초래될 수 있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집권여당 주류에서 이원집정부제를 골자로 한 헌법 개정안을 낸다 해도 헌법 개정 절차나 국민 정서 등 현실적 요소들을 감안하면 개헌이 현실화되기 쉽지 않다”면서 “한 나라의 운영 체계를 바꾸는 일에 대승적 차원의 명분도 부족한 상황에서 권력 구조 유지를 위한 궁여지책으로 개헌을 추진한다고 해서 될 일은 아니라고 본다”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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