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립편집위원
이경립편집위원

30대 중반에 국회의원으로 정치를 시작하여 5선 국회의원에 인천광역시장, 당 최고위원 등으로 커리어를 쌓아온 송영길 후보는 친문적자로 분류되는 홍영표 후보와 민평련계 우원식 후보를 따돌리고 지난 일요일 더불어민주당 당대표로 선출되었다.

다른 두 후보에 비해 월등한 정치적 이력을 자랑하는 그가 당대표로 선출된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듯 보이지만, 그가 얻은 35.60%의 득표율로 알 수 있듯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선거는 박빙의 승부였다. 2위인 홍영표 후보와의 격차는 0.59%p에 불과했다. 자칫 망신을 넘어 정치인으로서의 최대 위기를 자초할 수도 있었다는 점에서 그에게는 천만다행이 아닐 수 없다.

송영길 대표의 당대표 도전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2005년 열린우리당 당의장 선거에서 예열을 마친 그는 2008년 통합민주당 지도부선거에서 최고위원 경선에 출마하여 1위를 차지한 후, 체급을 올려 2016년과 2018년에 당대표 선거에 연이어 출마했다. 2016년은 예선탈락, 2018년은 이해찬 대표에 이어 2위를 했지만 크게 의미 있는 결과는 아니었다.

작년 국회의원선거후 치러진 당대표 선거에서는 지역적 배경이 같은 이낙연 의원이 출마를 결심하자, “정권재창출을 위한 중요후보를 낙선시키고 당대표가 되어서 정권재창출에 앞장서겠다고 당원들에게 호소하는 것은 액셀레이터와 브레이크를 동시에 밟는 형용모순이 된다”며 출마를 포기하였다. 이낙연을 대통령으로 만들겠다는 명분으로 기권패를 택한 것이다.

기권패는 패배로 카운트 되지 않기에 그는 공식적으로 이번 당대표 선거가 4수였으며, 4수만에 집권 여당의 당대표가 된 것이다. 4수만에 대통령이 된 사람은 있었지만, 4수만에 당대표가 된 사람은 아마도 그가 처음이 아닌가 싶다.

정치인으로서 걸어 온 송영길 당대표의 길은 화려한 것 같지만, 그가 4수만에 당대표에 당선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그의 당내 기반은 취약하기 그지없으며 당의 주류와는 상당한 거리감을 가지고 있다. 그가 촉망받는 정치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문재인 대통령 하에서 그 흔한 장관 한 번 하지 못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는 이번 당대표 경선기간 중에도 “민주당의 이름만 빼고 다 바꾸자”며 ‘쇄신론’을 꺼냈지만, 경쟁자였던 우원식 후보로부터는 “문재인 정부의 국정철학과 맞지 않는다”거나, 홍영표 후보로부터는 “문 대통령 지지율이 떨어지니 ‘반문’이 됐냐”며 공격받기도 했다. 당대표가 되기는 했지만 그의 앞길이 결코 순탄치 않음을 그의 경쟁자들이 경선과정에서부터 경고한 것이다.

당대표가 된 그는 다음날 현충원을 참배하면서 전직대통령 묘역을 차례로 참배했다. 이승만 전 대통령 묘소 방명록에는 “3·1 독립운동,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1948년 대한민국 정부수립에 기여한 대통령님의 애국독립정신을 기억합니다”라고 썼으며, 박정희 전 대통령 묘소 방명록에는 “자주국방, 공업입국, 국가발전을 위한 대통령님 헌신을 기억합니다”라고 썼다.

극성 문빠들은 그의 첫 행보에 게거품을 물며 비난했지만, 필자는 그의 첫행보가 반은 옳았고 반은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정치적 반대편에 있었던 두 전직대통령 묘소를 찾은 것은 옳았지만, 방명록에 쓴 글귀는 지나친 관용(寬容)이며 후한 평가였기 때문이다.
송영길 대표는 86그룹 중에서 가장 앞서가는 정치인임에는 틀림없지만, 이미 그보다 어린 이재명 경기지사가 당내 차기대권 주자 1위임을 감안하면 그에게 주어진 시간도 많지 않다.

이제 스스로 자신의 길을 개척해야 한다. 작년 당대표 선거에서 공개적으로 지지를 표명한 이낙연 의원, 그가 최고위원 시절 당대표였던 정세균 전 총리, 그리고 이재명 경기지사가 겨루는 당내경선을 잘 치러내면서 그의 전략적 목표도 달성해야 한다. 그가 1년 동안 어떠한 능력을 보여주느냐, 어떠한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자신의 정치적 미래가 담보된다. 그의 선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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