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은행, 가상화폐 위험 부담 떠안고 “독박 쓸 수는 없다”

은행연합회가 자금세탁방지법(AML)에 따른 참고자료를 배포해 시중은행들이 가상화폐 거래소 ‘검증 방안’을 마련할 예정이다. 이에 가상화폐 거래소들이 거래를 위한 실명계좌 인증을 받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창환 기자]
은행연합회가 자금세탁방지법(AML)에 따른 참고자료를 배포해 시중은행들이 가상화폐 거래소 ‘검증 방안’을 마련할 예정이다. 이에 가상화폐 거래소들이 거래를 위한 실명계좌 인증을 받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창환 기자]

[일요서울 | 이창환 기자] 최근 은행연합회가 자금세탁방지법(AML)에 따른 위험평가 방법론 참고자료를 배포했다. 이를 토대로 시중은행들은 가상화폐 거래소와의 연계계좌 개설 등 제휴를 위한 자체적인 ‘검증 방안’을 마련할 예정이다. 은행별 ‘가이드라인’이 구성되면 국내에 있는 가상화폐 거래소의 씨가 마를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오는 상황. 가상화폐의 위험 부담을 안고 은행이 거래를 진행한 이후 발생되는 사고에 대해서는 은행이 100%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부동산과 주식을 떠나 가상화폐를 찾은 개미들의 재이동이 일어날지 금융권으로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금융권, 새 바람 예고 ‘특금법’에 ‘가상화폐 거래소’ 단속 나서
은행연, 자금세탁방지법 ‘참고자료’ 배포… 4대 거래소 어쩌나

7일 금융권에서는 올여름을 기점으로 국내에서는 가상화폐거래소가 사라질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그간 국내에서 나름 이름을 알린 가상화폐 거래소들의 재계약 시점이 대부분 7월로 여름에 집중된다. 재계약 시기가 다가오자 가상화폐 업계에서는 ‘상당수 거래소가 문 닫을 위기에 처했다’며 금융권이 가상화폐 거래소에 대한 철저한 단속에 나설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날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특정금융거래정보법(특금법)에 의해 국내 암호화폐 거래소는 거래 은행의 실명 확인 계좌를 입출금 계좌로 연결해 금융당국에 신고를 해야 한다. 하지만 이에 앞서 은행이 자체적 실명계좌 인증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거래 계약을 하게 되는 거래소의 자금세탁방지법 위반에 대한 위험성 평가를 비롯해 안전성과 건전성까지 직접 확인해야 한다.

금융당국은 은행의 자율에 맡긴 것처럼 보일 수 있으나, 정작 각 은행들은 기준을 스스로 정해 특금법에 저촉되지 않는지 이를 관리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에 은행연을 중심으로 시중은행들이 협업을 통해 자체적인 최소의 가이드라인을 만든 셈이다. 이를 각자 은행의 사정에 맞게 조절하고 적용하면 된다. 

은행연 참고자료 토대 가이드라인 확보

은행연 관계자는 일요서울 취재진에게 “일부 언론에서는 가이드라인 배포라고 보도됐으나, 실제로는 참고자료라고 보는 것이 맞다”며 “가이드라인은 규제에 해당되지만 이는 은행들이 참고해 각자 사정에 맞는 내부 규정을 만들 수 있도록 사례집 같은 개념으로 안내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토대로 시중은행들은 위험평가 방안 또는 위험평가 모델을 가상화폐 거래소와의 계약 전에 만들 수 있다. 참고자료가 구성된 것도 각자 사정에 맞는 은행들의 의견이 반영이 된 것이라는 설명이다. 다만 금융위나 금감원 등 금융규제 당국의 기준이 적용되는 것과 달리 전적으로 은행 쪽에 책임이 발생한다고 봐야 한다. 

다만 은행연에서 이런 참고자료를 제공함으로써 가상화폐 거래소들이 제재를 받게 되는 것으로 은행들은 받아들일 수 있다는 의미다. 향후 가상화폐 거래소와의 관계를 어떻게 전개해 나갈지에 대해서는 ‘조심해야 할 부분이 있겠구나’ 하고 느낄 수 있는 점이다. 

금융권에서는 당국이 가상화폐 거래소를 바라보는 시선이 부정적인 쪽으로 무게가 실리므로  시중은행들이 보수적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다는 풀이를 내놨다. 가상자산 또는 가상거래 사업소 등이 은행에 실명인증을 받게 되는데 은행들이 은행연의 참고자료를 상황에 맞게 적용하고 허용 여부를 판단하게 된다. 책임을 떠맡게 되는 이유다.

이와 관련 시중은행 한 관계자는 “국내에 자리잡은 가상화폐 거래소가 문 닫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며 “가상화폐 거래소에 대한 철저한 점검이나 인증을 위한 근거 마련 과정에서 절차를 통과하지 못하면 영업을 이어갈 수 없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은행들이 절차 간소화나 인증을 쉽게 허용해 줄 수는 없다. 앞서 관계자는 “만에 하나 실명계좌를 인증하고 거래를 허용한 가상화폐 거래소에서 각종 위반 요소나 문제가 발생하게 되면 해당 은행이 독박을 쓰게 된다”며 “은행들이 무리해서 이들과의 거래를 유지할 필요가 없다”고 덧붙였다. 

현재 국내에서 은행과의 거래를 유지하고 있는 가상화폐 거래소는 총 4곳으로 빗썸, 업비트, 코인원, 코빗 등이며 신한은행, 농협, K뱅크 등으로부터 실명계좌를 연동하고 있다. 다만 최근 은행연으로부터 나온 참고자료에 따라 시중은행들의 철저한 인증 심사가 예고된 만큼 이들도 바짝 긴장하고 있다. 

은행권, 위험 감수하며 거래소 인증 못 해

더욱이 새롭게 가상화폐 거래소 인증을 통해 신규 진입을 시도하는 업체들은 명함도 내밀지 못하고 있다. 은행권이 가상화폐를 안정 자산으로 보고 있지 않아서다. 또 최근 불거진 라임이나 옵티머스 등 펀드사태 이후 만에 하나라도 발생할지 모르는 위험 상황을 감수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개미로 불리는 개인투자자들의 가상화폐 거래소 대이동이 있을지 모른다는 예측도 나왔다. 다만 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는 힘들다. 국내에서 가상화폐 거래소가 정상 운영되지 못할 경우 외국계 거래소나 비인증 암호화폐 거래소 등으로 이동할 수도 있어 향후 발생할지 모르는 위험 상황에 대비하기가 어렵게 된다. 

일각에서는 현재 유지하고 있는 가상화폐 거래소의 경우 오는 7월 재계약 시점에서 안정성, 건정성 등을 제대로 검증받기 위한 준비를 철저하게 하면 충분히 퉁과할 수 있을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혹시라도 이를 통과하지 못하더라도 약 6개월의 유예기간이 주어지므로 기존 금융권과의 협력을 통해 방법을 찾을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AML 지침에 따른 ISMS(정보보호관리체계 인증), 특금법 의무 이행을 위한 내부 통제 체계 및 규정과 인력 적정성, 가상자산 사업자 대주주 인력 구성, 자산(코인 등)의 안전성, 가상자산 사업자 재무적 안정성 등이 핵심 점검 사항으로 명시돼 있어 이를 통과하기까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은행권의 해석이 나온다. 

지금까지 알려진 것으로만 100여 곳을 넘어서는 국내 가상화폐 거래소가 대부분 이를 통과하지 못할 것이라는 판단이 지배적이다. 가상화폐에 투자한 개미들의 불안감이 현실로 나타날 날이 불과 2개월여 앞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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