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화당, 리즈 체니 의원총회 의장 축출…다시 불붙는 ‘트럼피즘’

리즈 체니 전 하원 의원총회 의장 [뉴시스]
리즈 체니 전 하원 의원총회 의장 [뉴시스]

- 체니 “트럼프 거짓 주장 묵인한 당원들 민주주의 좀먹어” 저항
- 트럼프계 충성파 엘리스 스테파닉 의원, 차기 의장으로 지목돼 

[일요서울 l 정두현 기자] 미국 공화당이 결국 대표적 반(反)트럼프 인사인 리즈 체니 하원 의원총회 의장을 축출했다. 공화당 내 ‘트럼피즘(Trumpism)’ 불씨는 여전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선을 도둑맞았다’는 거짓 주장을 묵인하고 있는 공화당원들이 민주주의를 잠공(潛攻)하고 있다”며 맞불을 놓았던 정통 보수파인 체니 전 의장의 저항이 무색할 정도라는 평가다. 지난 12일(현지시각) CNBC는 미 공화당 하원 비공개 회의에서 압도적 표 차이로 체니 의장의 퇴임이 의결됐다고 보도했다. 체니 전 의장은 이날 기자들에게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다시는 오벌 오피스 근처에도 못 가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며 “전직 대통령의 극도로 위험한 거짓말에 끌려 가선 안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오늘 이후로 우리 당과 국가를 보수적 원칙으로 복원하고, 공화당이 링컨의 정당 가치를 수복할 수 있도록 투쟁을 주도할 것”이라고 당내 투쟁을 다짐했다. 

축출 직전 체니 “트럼프 십자군 동참 세력, 좌시하지 않을 것” 

그간 공화당 친(親)트럼프 의원들과 체니 의장은 지난 1월 6일 국회의사당 폭동과 트럼프의 당내 역할론을 두고 대치 국면을 이어왔다. 이에 공화당은 체니 의장에 대한 해임 작업을 강행했다. 당 지도부는 트럼프를 주축으로 한 결속을 강조한 반면, 체니 의장은 공화당이 전 대통령과의 유대를 끊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앞서 지난 11일(현지시각) 체니 의장은 하원 비공개 회의에서 본인에 대한 축출 투표가 공론화되자 “계속해 침묵하고 (트럼프 전 대통령의) 거짓말을 묵과하는 것은 거짓말쟁이를 더 부추기는 꼴”이라고 항변했다. 그러면서 그는 “나는 이런 행태에 동참할 수 없다”며 “당이 트럼프 십자군 행렬에 동참하는 것을 결코 좌시하지 않겠다”고 엄포했다.

이는 본인 축출에 동의한 케빈 매카시 공화당 원내대표와 서열 2위 스티버 매컬리스 원내총무 등을 의식한 발언으로 해석된다.

앞서 매카시 원내대표는 지난 4일(현지시각)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내년 중간선거에서) 다수당을 차지하려면 지도부 단합은 필수”라며 체니 의장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스컬리스 원내총무는 공개 성명을 통해 체니 의장의 후임으로 엘리스 스테파닉 의원을 지목하며 체니 의장에 대한 축출 의지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여기에 공화당 하원 주류 계파를 이끌고 있는 짐 뱅크스 의원도 “공화당은 바이든 행정부의 급진적이고 위험한 정책 어젠다를 견제하는 시대적 사명으로 완전체적 통합을 이뤄가고 있다”며 “여기에 부합하지 않는 지도부라면 당장이라도 교체돼야 한다”며 체니 의장 퇴진론에 힘을 실었다.

트럼프 ‘대선 조작설’ 집착에 체니 “美 전대미문의 위협 직면” 

올 초 국회의사당 폭동과 관련해 하원에선 ‘내란 선동’ 혐의로 트럼프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으나, 상원에서 부결되면서 트럼프 탄핵은 좌초됐다. 당시 트럼프는 대선을 도둑맞았다고 주장했고, 바이든 정부 집권 후에도 이런 근거 없는 주장은 계속됐다. 트럼프는 지난 11일(현지시각) 지난 대선이 “조작됐고, 도둑맞았다”는 공식 성명을 내기도 했다.

결국 트럼프가 이같이 주장한 ‘2020 대선 조작설’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됐다. 트럼프 대선 패배 후 당시 미 법무부는 ‘선거가 조작됐다고 볼 만한 증거가 부족하다’는 입장을 내놨다. 실제로 대선 직후 미 연방대법원은 펜실베니아, 조지아, 위스콘신, 미시간 등 당시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이 이긴 4개 주 대선 결과를 무효화 해달라는 트럼프 측 소송을 기각했다. 이미 수십 건의 하급심 소송들이 무위로 돌아간 가운데, 대법원마저 기각 판정을 내리면서 트럼프의 마지막 희망도 사라졌다.

탄핵소추안에 동의한 10명의 공화당 의원 중 한명인 체니 의장은 지난 11일 저녁 “트럼프 대통령이 계속해 위험을 야기시키고 있다”면서 “미국은 지금 전직 대통령이 무분별한 대선 조작설로 국회의사당 폭동을 부추기는 전대미문의 위협에 노출돼 있다”고 비판을 쏟아냈다. 이어 그는 “트럼프는 더욱 심각한 폭력을 선동하려 하고 있다”며 “선거는 끝났고, 그게 법의 룰이다. 이를 수용하지 않는 것은 국가 헌법 정신을 전면 부정하는 것으로 간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체니 전 의장의 이날 돌발 연설은 거의 텅 빈 의사당에서 약 4분 동안 이어졌다. 

共 트럼프계 복중 카드는 충성파 ‘엘리스 스테파닉’

지난 2월 트럼프 탄핵 정국에서 일부 공화당 의원들이 탄핵소추안에 동의한 체니 의장을 문제 삼으면서 축출 투표로 이어졌지만 결국 하원에서 부결됐다. 이후에도 당내 트럼프 강성 지지층은 체니 전 의장이 트럼프 전 대통령의 선거 조작설에 공개적으로 반기를 들며 당 지도부 갈등과 분열에 쐐기를 박았다고 쏘아붙이며 공세를 이어갔다.

리즈 체니의 퇴진으로 하원 의원총회 의장 직은 늦어도 내주 초 친트럼프 인사이자 체니 의장의 유력 경쟁자인 엘리스 스테파닉 의원으로 교체될 것으로 보인다. 체니 의장 사퇴를 주도했던 트럼프계 의원들은 탄핵 정국 당시 트럼프를 지지했던 충성파 스테파닉 의원을 체니의 후임으로 지목했다.

이 과정에서 스테파닉 의원은 당내 경합 상대가 아무도 없었을 정도로 트럼프 전 대통령과 하원 공화당 지도부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었다. 스테파닉 의원은 장기적으로 의장 직을 유지할 계획이 없으며, 내년 이후 교육노동위원회 또는 정보위원회 최고위직에 출마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편, 딕 체니 전 부통령의 딸인 체니 전 의장은 트럼프 정부 시절 기업 감세 등 주요 국정 현안에서 트럼프 어젠다와 궤를 같이하며 정통 보수 지지층 사이에서 큰 인기를 얻었다. 그러나 국정의사당 폭거로 트럼프 전 대통령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지지하면서 트럼프계와 대척점에 섰다. 이후 트럼프 전 대통령이 2020 대선을 ‘대사기극(The Big Lie)’이라며 공개 반박에 나선 지난 3일을 기점으로 당 지도부는 체니 전 의장에 대한 축출 작업에 본격 착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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