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승사자’가 된 4.29 재보선 ‘형님이 죽거나…정세균이 죽거나…’

이상득 · 정세균

4.29재보선의 공식선거가 시작된 가운데 정치권이 박연차발 쓰나미로 초토화되고 있다. 민주당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수사대상에 오르자 자칫 MB 정권 심판론이 참여정부 심판론으로 흐를 공산이 높아졌다고 안절부절이다. 설사가상으로 민주당 대선후보였던 정동영 전 장관이 민주당을 탈당, 무소속 출마를 선언함으로써 내우외환에 빠졌다. 아이러니하게도 민주당 참패는 당 지도부의 몰락과 더불어 정동영 전 장관의 당권 접수 시나리오가 조기 가동될 공산을 높게 만들었다. 한나라당 역시 박 회장 수사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추부길 전 청와대홍보기획비서관이 박 회장 구명 로비를 집권 여당 실세인 ‘형님’에게 부탁했다는 얘기부터 2008년 박 회장 소유의 태광 세무조사 무마를 위해 ‘형님’을 비롯해 집권 여당 핵심실세 복수 인사들에게 대한 로비설이 확산되고 있다. 이미 친이 친박 대결로 계파전 양상을 띄고 있는 경주 재선거에서 친박 후보에 대한 ‘형님 사퇴 의혹’ 사건으로 경주 재선거가 낙관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에 정치권에서는 닮은 듯 다른 양당의 처지를 보면서 ‘정세균 대표가 죽거나 형님이 죽거나’라는 말이 그럴듯하게 퍼지고 있다. 당장 10일 앞으로 다가온 4.29 재보선 결과와 검찰 수사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배경이다.

박연차 회장에 대한 검찰 수사가 정점을 치닫고 있다. 검은돈과 무관할 듯 보였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철창신세’를 질 수 있다는 관측마저 나오고 있다. 친노 386 역시 예외가 아니다. 구속된 이광재 의원은 의원직 사퇴 선언을 했고 서갑원 의원, 안희정 최고위원 등 친노 핵심 인사들의 줄소환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4.29재보선을 앞두고 있는 정세균 당 대표는 사면초가에 빠졌다. 친노 386 의원들과 전략적 제휴를 맺고 당권을 잡았지만 박연차 리스트로 영 ‘령(令)’이 서지 않게 됐다. 당 지도부를 구성하고 있는 386 출신 김민석, 안희정 최고 위원은 이미 감옥에 갔다 왔고 서갑원 수석부대표는 박연차 리스트에 올라 검찰 소환을 받은 바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민주당 대선 후보였던 정동영 전 장관이 ‘무소속 출마’를 단행함으로써 정치적 위기에 처했다. 전주 덕진 재선거에 무소속 출마를 선언한 정 전 장관은 10일 기자회견을 통해 “잠시 민주당의 옷을 벗지만 다시 함께 할 것이며 반드시 돌아와 민주당을 살리겠다”라며 “저를 따르고 지지하는 의원과 당원은 탈당하지 말고 당을 지켜달라”고 당부해 ‘나홀로 탈당’을 결정했다.


정동영 ‘무소속 출마=당권 장악’ 시나리오

민주당 중진들이 나서 정동영-정세균 막판 대타협을 유도했지만 실패한 이후 두 인사는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넌 셈이 됐다. 민주당 일각에서는 ‘두 사람 모두 정치적으로 치유될 수 없는 치명타를 입게 됐다’고 차기 대선 후보군에서 멀어졌다는 평까지 나왔다.

정 전 장관에게 ‘개혁공천’이라며 공천을 주지 않은 당 지도부는 ‘정동영 공천 배제가 공천을 주는 것보다 4월 재보선에 긍정적이다’는 해명을 내놓았다. 하지만 대권을 꿈꾸고 있는 정 대표의 ‘조기 정적 제거’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실제로 DY 진영에서는 개혁공천 관련 불만을 터트렸다. 한 친DY 인사는 “정 대표는 지난 대선에서 정동영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선대위원장직을 맡아 후보자를 위해 전면에 나섰는데 개혁공천 칼날을 내세워 공천을 주지 않은 것은 모순 아니냐”면서 “만약 전주 완산갑에 한광옥 전 의원이 공천될 경우 ‘올드 맨중에 올드맨’인 그가 개혁 공천이냐”고 반문했다.

또한 선당 후사를 내세워 DY 백의종군을 기대한 정 대표를 겨냥해 “참여정부 시절 원내대표와 당 의장을 겸직하면서 당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뛰쳐나가 장관행을 선택한 것이 선당후사냐?”면서 뼈아픈 일침을 가했다.

정 대표에 대한 당내 역풍이 일자 정 대표는 ‘19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동반 불출마를 제안했다. 그러나 정 전 장관은 정 대표의 ‘맞불 작전’에 일절 대응하지 않고 무소속 출마를 단행했다. 특히 당안팎으로 공천을 받지 못한 그에 대한 동정론이 확산되면서 조기 당권 장악 시나리오도 나오고 있다.

현재 4.29 재보선은 전북 2곳을 비롯해 울산북구, 경주, 인천부평을 등 5곳에서 실시된다. 민주당이 전북에서 1석을 건지고 나머지 지역에서 전패할 경우 정 대표의 ‘조기 사퇴론’은 불보듯 훤하다. 당 대표직이 내년 7월 중순으로 1년이상 남아 있어 2순위 송영길 최고위원이 승계가 아닌 조기 전당대회를 개최해야 한다.


검찰 딜레마, ‘복심’ 천신일 ‘형님’ 이상득 중 택1

이럴 경우 친노 386 의원들의 몰락과 정세균 당권파의 위축으로 인해 정 전 장관의 당 복귀와 함께 당권을 접수할 공산이 높다는 관측이다. 정 대표가 관심 갖는 지역이 바로 인천부평을이다. 호남 인구비율이 높고 GM 대우가 위치해 민주당 우호 지역을 여당에게 뺏긴다면 그로서는 깊은 수렁에 빠질 수밖에 없다.

DY 진영에서는 정 대표가 친노 386 강경파 세력의 인의 장막에 갇혀 중진 의원들마저 물 먹이고 자신의 정치적 생명이 끝날 수 있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고 한탄하는 이유다. 민주당 김성순 의원은 “김연아가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1위를 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어머니, 코치 그리고 아사다마오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면서 “정치도 스포츠와 마찬가지로 경쟁자가 있어야 꿈을 이룰 수 있다”고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민주당의 내홍을 지켜보는 집권여당인 한나라당 역시 마음이 편칠 못하다. 박연차 회장을 겨냥한 검찰 수사가 최근 들어 MB 정권 핵심을 겨냥하는 모양새이기 때문이다.

2008년 박 회장의 태광실업에 대한 국세청 세무조사를 벌일 당시 박 회장으로부터 세무조사 무마조로 2억원을 수수한 혐의로 추 전 비서관이 구속된 상황이다. 그런 추 전 비서관이 대통령의 형님인 이상득 의원을 비롯해 친이 핵심인 정두언, 차명진 의원 등 국세청 세무조사가 벌어지는 와중에 접촉한 사실이 드러났다.

무엇보다 이 의원의 선거를 도왔던 추 전 비서관이고 이런 인연으로 이명박 대선 캠프 대운하추진본부 부본부장을 집권 후에는 청와대 비서관을 지낼 수 있었다. 호남 출신의 추 전 비서관은 이후 박 회장에 대한 정관계 로비가 속속 밝혀지자 박 회장 구명로비를 위해 이 의원과 MB 정권 실세 의원들을 접촉했다는 말마저 나오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검찰은 천신일 세중나모회장을 출국금지 시켰다. 천 회장은 지난해 7월 국세청이 박 회장에 대해 세무조사에 착수하자 ‘구명 로비’를 벌였다는 의혹을 받아온 인물이다. 천 회장과 이종찬 전 청와대 민정수석 등이 모여 대책회의를 가졌다는 주장이 대두하기도 했다. 또한 박 회장한테서 수천만원을 받은 혐의로 조사를 받은 박진 한나라당 의원을 박 회장과 연결해 준 사람도 그였다.

천 회장이 주목받는 이유는 이명박 대통령의 최측근이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과 고려대 61학번 동기로, 50년 가까이 인연을 맺어온 ‘친구’로 알려져 있다. ‘MB의 복심’으로 불릴 정도로 현 정권의 숨은 실세로 이름이 오르내린다.

그러나 박 회장에 대한 추부길-천신일 ‘구명로비 의혹’이 살아 있는 권력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점에서 검찰 수사가 ‘유야무야’될 것이라는 전망이 높다. 검찰 역시 ‘출국금지’ 시킨 이후 이렇다 할 추가 조사를 하고 있지 않다. 특히 천 회장은 평소 지인들에게 “날 건드리면 가만 안 있는다”고 말하고 다닐 정도로 ‘세’를 과시했다. 실제로 청와대에서도 ‘박연차 게이트’가 ‘천신일 게이트’로 번질 경우 정국 운영에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천신일, “날 건드리면 가만 안 있는다” 엄포

그러나 대통령의 친형인 이 의원은 천 회장과 처한 상황과는 다르다. 추 전 비서관의 ‘박연차 구명로비 의혹’의 핵심 실세로 거론된 데 이어 일부 언론에서 2007년 대선 직전 노 전 대통령 형님 노건평씨와 비밀 회동을 통해 ‘BBK 사건 청와대 불개입-집권 후 대통령의 일가 보호’를 보장하는 ‘밀약설’까지 제기됐다. 또한 이 의원은 이미 경주 재선거에 친박 후보 ‘사퇴 압력 의혹’을 받아 박근혜 전 대표로부토 ‘우리 정치의 수치’라고 직격탄을 맞았다.

이로 인해 한나라당이 경주에서 친박 후보에게 패하고 울산 북구와 인천부평을에서 패할 경우 이상득 책임론을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설령 친이 정종복 후보가 당선되고 친박 정수성 후보가 패할 경우에도 안심할 수 없는 분위기다. 친박 진영에서는 분패한 정 후보가 ‘재보선전에 이명규 의원을 통해 장관직을 제안했다’고 폭로할 경우 이 의원의 정치 생명은 풍전등화로 치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청와대 역시 ‘경주 선거 개입 의혹’이후 사그러든 ‘형님 책임론’이 재보선 이후 재차 제기될 공산이 있다고 내다보고 있다.

그러나 이 의원을 비롯해 핵심인사들은 이런 모든 의혹에 대해 ‘청탁전화가 왔지만 거절했다’,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어수룩한 사람이 아니다’며 부분적으로 시인하고 민감한 부분은 회피했다.

결국 4.29재보선은 민주당의 MB 정권 심판론과 한나라당의 참여정부 도덕성 심판론 등 공중전이 벌어지겠지만 내부적으로 칼날은 정세균 당 대표와 이상득 의원을 정조준하고 있다는 점에서 여야가 그 결과에 이목을 집중 할 수밖에 없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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