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권력지형 변화 조짐

한나라당 권력지형의 변화 조짐이 감지되고 있다.‘만사형통’,‘상왕정치’ 등 한나라당의 권력 핵심에 있던 이상득 전 부의장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는데 따른 것이다. 최근 경주 친박계 정수성 후보 사퇴종용 의혹과 박연차 리스트로 구속된 추부길 전 비서관이 이 전 부의장에게 박연차 회장의 구명운동을 부탁했다는 주장이 나오면서부터다. 이 같은 변화엔 이재오 전 최고위원의 귀국도 일조하고 있다. 이 전 최고위원 본인은 현실정치와 담을 쌓고 있다고 하지만 그를 따르는 한나라당 친이재오계 의원들의 생각은 다르다. 이번 기회에 이 전 부의장을 넘어 당 권력을 잡아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는 4.29재보궐 선거 결과와 5월에 있을 원내대표 선출 문제를 놓고 친이계내의 소계파간 대립으로 이어질 공산도 있어 이상득계와 이재오계의 격돌이 임박한 상황으로 분석된다.

이 전 부의장은 최근 4.29재보궐 최대 이슈 지역인 경주에서 친박을 자처하는 정수성 후보에게 사퇴를 종용했다는 의혹에 휩싸였다.

이는 친박계와의 연대를 모색했던 그동안의 행보와는 정반대의 모습이다. 이에 대해 친박계는 “앞에서는 MB정권을 성공시키기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한다고 하고 뒤로는 자신의 측근을 당선시키기 위해 사퇴를 종용하는 등 정도에 어긋난 행동이다. 그동안의 화해모드가 거짓임에 밝혀졌다”며 불쾌해했다. 이에 대해 이 전 부의장은 “정 후보에게 사퇴를 종용한 적이 없다”며 일축했지만 파장은 잦아들지 않았다.


향후 정치 일정에 따른 대립 가능성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이 전 부의장의 당내 입지는 상상을 초월한다. 권력이 이 전 부의장에게 집중되자 불만을 품었던 계파는 바로 이재오계 의원들이다. 지난 총선 이후 이 전 최고위원의 외유로 인해 구심점을 잃었던 이재오계 인사들은 이 전 최고위원의 귀국과 때마침 이 전 부의장의 잇단 구설수가 맞물려 최상의 시나리오를 그릴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이 전 부의장은 연초만 해도 MB정권 집권 2기를 맞아 광폭행보를 하며 정권의 성공에 모든 것을 건 모습이었다. 친박계는 물론 친이재오계로 분류되는 ‘함께 내일로’ 모임에도 참석하며 범친이계의 결속을 다졌다.

그러나 이 전 최고위원의 귀국과 사정정국은 이를 한꺼번에 날려 버렸다. 이 전 최고위원측에서는 이런 호재를 기회로 삼아 당권 장악에 힘을 얻는 모양새다.

친이재오계로 분류되는 ‘함께 내일로’ 모임에는 공성진 의원을 필두로 김용태, 심재철, 이군현, 진수희, 차명진 의원 등 약 40여명의 의원들이 포진해 있다.

이들 중 가장 선두에 나선 것은 공 의원이다. 공 의원은 이 전 최고위원과 비슷한 성향을 보여 왔다. 한마디로 투사형 인사인 것이다.

각종 현안과 관련해서 거침없는 발언으로 이 전 최고위원이 없는 상황에서 친이재오계를 선두에서 이끌었다. 여기에 진수희 의원은 이 전 최고위원의 복심으로 외국에 나와 있는 이 전 의원과의 메신저 역할을 충실히 해왔다.

이들은 이 전 최고위원의 귀국을 앞둔 시점에서 물밑작업에 착수했다. 친박측에서는 연일 이 전 최고위원의 귀국은 ‘전쟁’을 의미한다며 반대여론을 형성했지만 친이재오계는 말도 안된다며 이 전 최고위원의 귀국을 기정사실화 했다.

이에 이 전 부의장도 귀국 자체에 대해선 환영의 뜻을 내비쳤지만 모처럼 친박과의 화해무드가 깨질까 내심 걱정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 전 최고위원의 귀국과 박연차 리스트로 인해 친박은 물론 이 전 부의장의 입지가 좁아지면서 상황은 급변하고 있다.

친이재오계 의원들은 박연차리스트로 인한 사정정국에서 무탈하게 지나가면 여권의 권력재편 과정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수 있게 된다.

한나라당 관계자는 “친이재오계에서는 향후 정치일정에 따른 세대결에 대비해 중립성향 의원들을 물밑에서 접촉하며 영입하고 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앞으로 다가올 각종 당직 선출과 관련해 SD(이상득)계와의 일전을 조심스레 준비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향후 정치일정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5월에 있을 당협위원장과 원내대표 선출, 이 전 최고위원의 복귀가 유력시 되는 10월 재보궐, 내년 지방선거 지분까지 확보한다면 확실한 당권을 장악할 수 있다.

당협위원장 선출과 관련해서 이 전 부의장은 친박측 의견을 경청하면서 현역 의원의 당협위원장 선출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친이재오계는 다르다. 원외당협위원장 대부분이 친이재오계와 연관이 있는 상황에서 경선을 통해 친박과의 일전을 치를 태세를 갖추고 있는 상태다.

여기에 그동안 이 전 부의장이 당과 청와대를 연결하는 연결고리 역할에 당내에서는 불만이 쌓여왔던 것도 친이재오계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이유다.

한나라당 관계자는 “이 전 부의장이 당을 좌지우지 하면서 불만세력들이 많아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MB정권을 창출하는데 일조한 인사들이 한쪽으로 권력의 쏠림현상이 생기면서 더욱 그랬다”고 말했다.


수도권파와 영남파로 양분

친이재오계는 ‘함께 내일로’ 소속 의원들이 주축인 수도권파로 분류된다. 여기에 일부 중립성향 의원들도 이 전 부의장이 그동안 독점하다시피한 권력에 반대하며 친이재오계의 손을 잡아줄 가능성도 있다.

영남지역을 중심으로 한 SD계 인사들은 당 지도부인 박희태 대표와 임태희 정책위의장, 주호영, 이병석, 강석호 의원 등 소수로 이뤄져 있다. 당내에서는 SD계 의원들은 그 실체가 모호하다고 주장한다. 특히 이 전 부의장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로 다방면에 걸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보면 친이계 중 이재오계를 빼면 모두 SD계라고 지칭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확인되지 않는 가설이다. 이런 면에서 현역 의원들 중 SD계라고 지칭할 만한 인사들은 손에 꼽히는 정도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SD계는 눈에 띄지 않는 특성을 갖고 있다. SD계라고 딱히 지적할 만한 당내 현역의원은 극소수지만 힘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으며 SD의 말 한마디에 움직이는 중립성향 의원도 다수다. 그렇기 때문에 정확한 SD계 의원들을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보궐 결과에 따른 조기 전당대회 가능성과 원내대표 선출, 당협위원장 선출을 앞두고애매모호한 SD계 인사들이나 중립성향 인사들도 한쪽 줄을 잡기 위해 한쪽 줄을 놔야 하는 선택의 기로에 설 수밖에 없다.

5월 원내대표 선거는 이런 의미에서 매우 중요하다. 당권을 장악하기 위해 SD계와 친이재오계의 대립 구도가 형성될 소지가 충분하기 때문이다.

정치권의 한 소식통은 “권력을 잡기 위한 전초전의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양 계파간 피 튀는 혈전을 벌일 가능성이 충분하다. 당권 장악을 통해 내년 지방선거도 유리하게 끌고 갈 수 있는 교두보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제 한나라당의 친이계 분열은 4.29재보궐 선거 결과와 당협위원장, 원내대표 선출로 이어지면서 계파간 대립각을 벌일 것으로 관측된다. 이에 따라 한나라당의 내홍도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여 향후 정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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