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정치 벗어나 지역민을 위한 스킨십 정치 실험

이 전 최고위원이 자신의 옛 지역구 사무실 인근 주민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있다. photolbh@dailysun.co.kr

이재오 한나라당 전 최고위원에게 언론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한나라당 내홍이 격화될수록 친이계에서는 이 전 최고위원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 전 최고위원은 당분간 현실 정치에서 한발 물러나 지역구 탐방과 집필활동에 매진하겠다는 뜻을 거듭 밝혔다. 하지만 정계는 이 전 위원의 일거수일투족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예의 주시하고 있다. <일요서울>은 매일 자전거를 타고 민심탐방에 나선 이 전 위원의 하루 동안의 생활을 밀착 취재하면서 향후 정치일정에 대해 알아 봤다.

지난 7일 새벽, <일요서울>은 정치권의 최고 이슈메이커인 이재오 전 최고위원을 취재하기 위해 자택이 있는 서울 은평구 구산동을 찾아갔다.

지역 주민의 도움(?)으로 이 전 최고위원의 자택은 손쉽게 찾을 수 있었다. 오랫동안 이곳에 산 탓에 지역 주민들 중에서 그의 자택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그의 집은 이웃집들과 다른 점을 전혀 찾아 볼 수 없는 평범한 단층 주택었이다. 여권실세 중에 실세인 그의 집이라고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소박했다. 그의 서민적인 성품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6시 45분경. 대문이 열렸다. 파란색 야구 국가 대표팀 모자와 파란 점퍼 차림의 이 전 최고위원이 자전거를 끌고 나왔다. 그는 <일요서울>취재팀을 발견하고 반갑게 맞아줬다.


매일 자전거와 도보로 스킨십 정치

이 전 최고위원은 “언제 왔나. 일찍 왔으면 벨을 누르지 그랬나. 다음부터는 시간에 관계 없이 벨을 눌러라”고 말했다.

그는 국회에서 보여줬던 강한 정치인 이미지와 달리 소시민다운 소탈한 모습을 보여줬다. 마치 이웃집 아저씨와 같은 느낌이다.

그는 일정을 묻자 “오늘은 지역구 멀리 까지 가는 날이다. 연신내 시장으로 해서 은평 뉴타운까지 간다. 점심은 그곳에서 먹고, 사무실에는 2~3시쯤 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나라당은 내홍을 겪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을 지지하는 친이계와 박근혜 전 대표를 지지한 친박계의 갈등이다. 수면아래 잠들어있던 계파간 갈등은 4.29재보선 공천과정을 시작으로 불거지기 시작해 당협위원장 선출을 앞두고 꼭짓점을 이룰 전망이다.

이와 같은 정치 현안과 관련된 질문에 대해 “(국회)밖에 있는 내가 정치에 대해 얘기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며 대답을 피했다.

그런후 자전거에 올라탄 이 전 최고위원은 이내 골목길을 빠져 나갔다. 그는 거리에서 만나는 시민들과 가벼운 인사를 나누었다.

이 전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10개월간의 외유를 끝내고 귀국한 다음날부터 매일 아침 6시 30분이면 자전거와 도보로 지역구 여기저기를 누비며 주민들과 만나 현안문제를 듣고 있다. 여의도 정치에서 못했던 지역민을 중심으로 한 스킨십 정치실험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 그의 모습을 처음 본 기자는 당혹스럽다. 그의 정치 인생에서 느낄 수 없던 다른 이미지 때문일 것이다. 그는 정치를 하는 동안 줄 곳 투사였다. 그의 별명은 ‘검투사’‘인파이터’이다. 야당시절 강력한 정치인 이미지가 그를 대변했다. 지난 대선에서 이명박 대통령 후보를 지지해 대통령에 당선시켰고 MB정부 1등 공신임에 틀림없다.


지역주민 반응

민심탐방에 나선 이 전 최고위원의 뒤를 쫓아 지역 주민들을 만나 민심을 들어봤다.

지역 주민들은 경기 침체로 인해 정부에 대한 불신과 더불어 이 전 최고위원의 귀국에 대해 여러 가지 의견을 내놨다.

김모(60대,여성)씨는 “이 전 최고위원이 귀국해서 너무 좋다. 지역구 발전에 많은 힘을 보내 줄 것 같아서다. 지난 총선에서 아깝게 낙선했는데 다음에 다시 나온다면 승산이 있다고 생각한다”며 이 전 최고위원의 귀국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회사원 전 모(39, 남)씨는 “이 전 최고위원은 누가 뭐라고 해도 지역구 발전에 많은 역할을 했다. 지난 총선에서 어부지리로 문국현 의원이 당선된 것”이라고 말했다.

연신내 시장에서 만난 박모(71, 남)씨는 “이 전 최고위원이 돌아온 게 잘한 것인지 모르겠다. 은평구는 현안이 산재해 있어 힘있는 정치인이 필요하다. 이 전 최고위원이 꼭 당선돼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누구든지 서민 경제에 더욱 신경 쓰고 지역구에 관심이 있는 인물이 됐어야 했다”고 말했다.

반대 의견을 제시하는 주민들도 있다.

익명의 50대 한 남성은 “이 전 최고위원이 이곳(은평구)에 거주하는 게 맞나?”면서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이곳에는 운전사만 산다고 들었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지역에 거주하는 회사원 이모(40.남)씨는 “이 전 최고위원의 귀국이 너무 이른 감이 있다. 물론 돌아오는 것은 본인의 자유다. 귀국으로 인해 정치권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하다. 지금은 정쟁보다는 경제 살리는데 힘써야 할 때다”라며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이 전 최고위원 귀국이 아직은 시기 상조라는 시각을 보였다.

그러나 대부분의 지역 주민들은 대체적으로 이 전 최고위원의 귀국에 찬성하는 입장이었다. 여기엔 전제 조건이 붙었다. 경제 살리는데 앞장서 달라는 조건이었다.


현실정치와 거리 둬

오후 1시 50분. 이 전 최고위원의 옛 사무실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모두 이 전 최고위원의 귀국에 따른 인사차 방문이라고 측근은 밝혔다.

한 측근은 “귀국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지인들이 찾아오고 있다” 며 “현실 정치에 복귀하려는 움직임은 아니다. 특히 10월 재보궐 선거 관련, 출마설이 나돌고 있는데 아직 선거구가 확정되지도 않은 것을 두고 말이 많은 것 같다”고 말해 정계복귀에 대해 일축했다.

이 전 최고위원도 정계복귀에 대해 “정계 복귀는 아직 시기상조다. 그것에 대해 어떠한 계획도 세운 게 없다” 며 “오전에 지역을 돌고 오후엔 사무실에 나와 지인들을 만나거나 집필을 하는 게 전부”라고 말했다.

정두언 의원이 최근 대북특사와 관련 돼 자신을 거론한 것에 대해서 이 전 최고위원은 “그것은 그냥 하는 얘기일 뿐이다. 난 요즘 땅만 보고 걷는다. 구덩이가 있는지 물 웅덩이가 있는지 살펴볼 뿐이다. 조심스럽게 땅만 보고 다니면서 지역 주민들과 인사하는 게 전부”라며 현실정치 개입에 대해서 조심스런 입장을 밝혔다.

사무실에 있는 동안에도 각계각층의 인사들이 사무실을 찾았다. 평소 알고 지낸 지인들은 이 전 최고위원의 귀국에 상당히 고무된 상태였다.

이 전 최고위원은 현재 ‘나의 꿈, 나의 조국’이라는 제목의 책을 준비하고 있다. 책 내용은 한반도 평화 구상과 선진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어떻게 준비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 전 최고위원의 생각을 담고 있다고 한다. 이 책은 올 7월에 출간할 예정이라고 측근은 밝혔다.

이와 함께 5월에는 강연 계획도 잡아둔 상태여서 당분간 현실정치에 일절 관여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를 보는 정치권의 시각은 부정적이다. 특히 친이계와 친박계의 갈등이 증폭될 5월, 이 전 최고위원의 물밑 정치가 본격적으로 가동될 것이란 주장이다.

친박계 관계자는 “이 전 최고위원의 지인들이라고 해서 모두 정치권 밖의 사람은 아닐 것이다. 그런 사람들과 만나면서 현실정치에 대한 얘기가 나오지 않겠는가. 결국 시기를 조율하며 때를 기다리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여기에 그동안 권력 핵심에서 벗어나 있었던 친이재오계에서도 일대 반전을 노리며 이 전 최고위원을 구심점으로 모여드는 형국이다.

MB정권 1등 공신임에도 10개월 동안 외유를 하며 사실상 권력핵심에서 벗어나 있을 수밖에 없었던 친이재오계는 불만이 팽배한 상태다.

특히 이 전 최고위원이 없는 동안 당의 핵심권력은 이 대통령의 친형 이상득 전 부의장에게 쏠려 있었다.

그러나 최근 잇단 악재로 인해 이 전 부의장이 구설수에 오르면서 친이재오계는 친박 뿐만 아니라 이상득계를 향한 본격적인 일전을 준비하고 있는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이 전 최고위원이 현실정치와 거리를 두는 게 언제까지 가능할지 정치권은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여기에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는 “나는 정치인이다. 앞으로 쪼잔한 정치는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해 정계복귀는 시간문제라는 시각도 있다.

이 전 최고위원의 복귀는 한나라당 계파간 권력다툼으로 번질 촉진제 역할을 하기 충분하다.

향후 한나라당의 권력재편에 이 전 최고위원의 역할이 주목된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