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연합 지부에서 시작해 진보정당 주류까지 장악한 역사

[일요서울 l 이하은 기자] 대선 정국에 들어서며 정치권이 온통 소란스러운 가운데,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둘러싸고 과거 통진당을 이끌었던 정치조직 ‘경기동부연합’과의 연관성을 의심하는 시각이 일각에서 나타나고 있다. 이 후보의 캠프 등 주변의 경기동부연합 출신 인사들을 두고 과거 성남시장 시절 경기동부연합과의 연대가 이어져 왔을 가능성을 제기하는 목소리에, 경기동부연합이라는 세력에 대해서도 덩달아 관심이 모아지는 형국이다.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 [뉴시스]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 [뉴시스]

- 폐쇄적·극단적 성향…‘내란음모죄’ 위헌정당 판결로 와해
- 민노당 시절 이재명 후보와 인연 화제…연대설 ‘솔솔’


경기동부연합은 NL(민족해방, National Liberation) 계열 운동권 전국조직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전국연합)의 지역 조직에서 세를 넓혀 민주노동당·통합진보당 등을 장악하며 제도권 정당 정치에 참여하기도 했던 세력이다.

재건 민족민주혁명당(민혁당) 출신 인사와 경기 동남부지역 학생운동 인사, 성남 재야 인사 등으로 구성된 조직은 1980년대 후반 한국외대 용인캠퍼스의 총학생회를 중심으로 경기 성남·용인지역에서 활동하던 학생운동권 세력이 뿌리로 꼽힌다. 

1991년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등 13개 단체들이 모여 구성한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전국연합)에서 경기동부연합은

인천연합, 울산연합, 광주전남연합을 비롯한 8개 지역연합 지부 중 한 곳인 ‘성남연합’이었다. 성남연합은 이후 경기 용인, 광주 등과 함께 경기동부연합으로 거듭나며 세를 불렸다.

이들은 2001년 NL계열 세력이 충북 괴산군 군자산에 모여 민족민주정당 건설?자주적 민주정부 수립 등을 결의한 이른바 ‘군자산의 약속’을 계기로 현실 정치에 뛰어들었다. 구성원들이 진보당의 전신이자 당시 신생 정당이었던 민주노동당(민노당)에 대거 입당해 세력을 키우며 당의 주도권을 잡았다.

전국연합 산하조직…제도권 정치 진출까지

2004년 총선으로 민노당이 원내정당으로 거듭난 이후에는 경기동부연합을 필두로 광주전남연합, 울산연합, 인천연합 등으로 구성된 NL계열 자주파가 PD(민중민주)계열 세력인 평등파와 주도권 다툼을 벌여 2008년 심상정·노회찬 당시 의원 등이 탈당해 진보신당을 창당하는 분당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그렇게 민노당을 장악한 경기동부연합은 이후 2011년 유시민 등 국민참여당과 심상정?노회찬 등 진보신당 탈당파와의 통합으로 통합진보당(통진당)을 출범시킨다.

이전까지는 운동권 내부에서만 이름이 돌고, 구성원들도 존재를 부정했던 경기동부연합은 2012년 총선 당시 통진당과 민주통합당의 야권 후보 단일화 경선에서 이정희 통진당 공동대표 측의 여론조사 조작 사건으로 그 실체가 본격적으로 드러난다.

당시 여론 조작 사실이 드러나면서 불거진 이 대표의 사퇴 문제를 놓고 배후에 당권파인 경기동부연합이 있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당시 심상정 공동대표는 한 방송사와의 인터뷰에서 경기동부로 불리는 당권파의 존재와 세력이 가지고 있는 당내 파워에 대해 인정하기도 했다.

총선 이후 당내 경선에서까지 부정선거 사실이 드러나면서, 배후로 지목된 경기동부연합은 더욱 주목받게 된다. 당권을 장악한 이들 계파에 의해 부정 경선의 당사자인 이석기·김재연 당시 의원들의 제명안이 부결되면서, 심상정·노회찬·강동원 당시 의원과 유시민 전 대표 등 국민참여당계와 진보신당계의 이탈로 통진당은 분당 수순을 밟는다.

이 사건으로 인천연합·울산연합 등 경기동부연합과 함께 범당권파로 분류되던 세력도 등을 돌리고,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 도 통진당에 대한 지지를 전면 철회하는 등 통진당의 부정선거 사건은 경기동부연합이 주변 세력들과 척을 지고 고립되는 계기가 된다.

경기동부연합이 ‘얼굴’로 내세운 이정희 대표에 가려져 있던 핵심 인물 이석기의 존재도 이 때 드러나게 된다. 비례대표 후보 등록 이전에는 당원들 사이에서도 잘 알려지지 않았던 그는 비례대표 경선에서 27.6%의 득표율로 1위를 차지하면서 주목을 받았다. 경선 당시에도 경기동부연합이 조직적 투표로 지원에 나섰을 것이라는 추측이 지배적이었던 가운데, 부정 선거 사실이 드러난 이후에도 제명안이 부결되는 등 경기동부 당권파가 절대 사수에 들어가면서 세력의 핵심 인물일 것이라는 관측에 힘이 실렸다.

한국외대 용인캠퍼스 출신인 그는 NL 계열 조직 자주민주통일운동그룹(자민통)에서 활동했고, 이적단체로 판정된 민혁당의 경기남부위원장으로 활동한 이력이 있다. 민혁당 사건으로 10여년의 수배와 수감생활을 거치고 석방 이후 광고기획사 ‘CNP전략그룹’의 대표, 사회동향연구소 대표, 진보 매체 ‘민중의 소리’ 이사 등을 역임하며 경기동부연합이 주도하는 것으로 알려진 핵심적인 사업들을 맡았다. CNP전략그룹이 당은 물론 노동조합, 대학 총학생회 등의 광고와 홍보물을 도맡고, 여기서의 수익이 조직 비용에 활용된 것으로 전해지면서, 이석기는 경기동부연합의 브레인이자 자금책으로 통하기도 했다.

함께했던 모든 세력들과 등을 지며 강성 NL성향의 경기동부연합 인사들만이 남아 고립의 길을 걷던 통진당은 2013년 당 구성원들이 지하조직 RO(Revolutionary Organization)의 내란음모 혐의에 연루되며 헌정 사상 첫 정당해산 심판청구의 대상이 된다.

이석기가 주도하는 산하 지하조직 RO의 회의록에서 유사시 총기 등 무기 준비 및 통신·유류시설 파괴 등 무력으로 국가 체제를 전복할 계획을 세운 흔적이 발견되고, 당의 국회의원과 당직자 등 주요 인사들 다수가 조직에 연관된 점이 드러나면서, 통합진보당은 헌법재판소에서위헌정당 판결을 받으며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학맥 이어진 폐쇄세력…강성 NL 성향 고립 자초

NL계열의 강력한 ‘신념’과 외대용인 학맥으로 얽힌 경기동부연합은 정치세력 계파 중에서도 유달리 조직과 내부 결속을 중시하고 조직 내 이견을 허용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식적으로 조직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는 비밀주의를 유지하며 점 조직 형태로 이어져 조직의 수장이나 관계도 등도 명확히 드러나지 않는 폐쇄적 성향도 특징이다. 관계가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상황에서도 학맥으로 이어진 네트워크는 강한 결속력을 띠고 있다고 알려진다.

이런 조직의 성향은 경기동부연합이 2008년 전국연합의 해산과 함께 공식적으로는 해산 절차를 밟은 이후에도 조직을 유지해 온 원동력인 동시에 특유의 폐쇄성과 강성 성향으로 연일 타 계파와의 반목하며 고립의 길을 갈 수밖에 없었던 근본적인 원인이기도 하다.

민노당 시절 북한의 지령을 받아 국가 기밀정보를 넘긴 간첩단 ‘일심회’에 당의 인사들이 연루된 사실이 드러나면서 당내 PD계열 인사들이 청산을 요구했을 때, 경기동부연합은 당권파로서 이를 거부하며 당이 분열되는 원인을 제공했다. 통진당 시기에는 부정 경선으로 분당 위기를 맞은 상황에서도 부정선거 당사자들의 제명을 막으며 조직 지키기에 나서 폐쇄적이고 일방적인 조직 성향을 드러냈다.

민혁당 사건 이후 이석기를 중심으로 경기남부위원회 출신들을 끌어들여 지하조직 RO를 만들어 운영, 무력 행동까지 염두에 두고 활동했던 행적도 조직의 극단적인 성향과 폐쇄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시대를 따라가지 못하고 극적 성향과 고립주의를 고수했던 이런 행보는 결국 이들 세력의 중심인 통진당이 해체되는 원인이 됐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뉴시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뉴시스]

통진당 해산 後 구심점 잃어..노조 꿰차며 부활 움직임

통진당의 해산 이후 지위를 잃은 경기동부연합 인사들은 2016년 총선을 앞두고 창당된 민중연합당에 김재연 등 일부가 참여하기도 했다. 울산연합이 출범시킨 새민중정당과 합당해 민중당을 탄생시키며  김미희, 김재연, 홍성규 등 인사들이 2020년 총선에 출마하기도 했으나 낙선이라는 결과를 받아들었다.

정당이라는 기반을 잃은 경기동부연합은 표면적으로는 동력을 상실하며 주류 사회와 정치권에서 멀어진 듯 보였다. 그러나 최근 이들이 다시 노조 등을 장악하며 다시금 재기를 노린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 같은 경기동부연합의 근황에 대한 이야기는 지난 9월 플랫폼 ‘통합과 전환’ 준비위원회가 개최한 경기동부연합의 성격과 역사, 변화 양상 등을 논의하는 토론회에서 나왔다. 

민노총 출범을 주도했던 김준용 국민노조 사무총장은 이 자리에서 민노총의 양경수 위원장이 경기동부연합 출신이라는 것과 택배노조 진경호 위원장과 김태완 부위원장의 경기동부연합 활동 이력이 있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김 사무총장은 이들이 대기업 노조가 기득권을 누리며 안주하던 사이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고 지적했다.

경기동부연합 세력과 이재명 후보와의 연관성을 시사하는 주장도 제기됐다. 이적 단체인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남측본부 사무총장을 지낸 민경우 미래대안행동 공동대표는 2010년 성남시장 선거에서 이 후보와 경기동부연합 사이의 연대가 형성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 연대가 지지기반이 부족했던 이 후보와 이 후보를 징검다리로 세력을 확장할 기회를 얻은 경기동부연합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이 후보는 2010년 선거에서 당시 민노당 후보로 나선 경기동부연합 인사 김미희 후보와 단일화를 이루며 성남시장에 당선됐다. 단일화가 성사되면서 경기동부연합은 공동선대위 구성을 통해 이 후보를 지원했고, 당선 이후에는 소속 인사들이 성남시장직 인수위원회에 합류하기도 했다.

이후 경기동부연합 인사들이 운영하는 청소 용역업체 ‘나눔환경’이 성남시의 청소대행 용역업체로 선정되면서 특혜 논란이 일었다. 나눔환경의 대표이사 한용진 전 경기동부연합 공동의장은 성남시 시장직 인수위원회에도 참여하기도 했던 인사였다.

사업자 선정 공고 9일 전에 법인 등기를 마친 점, 실적이 전무한 신생 기업임에도 0년 이상 청소 대행을 한 다른 업체들을 제치고 사업자로 선정된 점 등으로 인해 의혹이 제기되면서 당시 민노총에서도 “시민주주를 내세워 사회적 기업으로 포장한 신종 비정규직 민영화”라는 비판이 나왔다.

이후 경기동부연합이 장악한 통진당이 내란음모 사건에 연루되면서, 나눔환경의 사업자 선정 과정에서의 특혜 의혹이 수사 대상이 되기도 했다.

와해된 듯했던 경기동부연합이 출신 인사들이 노조 등을 장악하고, 여당의 대선 후보와의 연대설까지 제기되며 호시탐탐 재기의 기회를 노리는 가운데, 차기 권력의 향방에 따라 이들 세력이 다시 세를 잡아 활개를 칠 것이라는 우려가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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