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엘 법무법인 차현정 변호사]
[로엘 법무법인 차현정 변호사]

우리나라 국민 중에 보이스피싱이라는 단어를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보이스피싱 범죄를 제대로 아는 사람은 드물다. 보이스피싱을 설명해보라고 하면, 본인이 당황해놓고 도리어 “고객님 당황하셨어요?”를 연발하는 개그콘서트의 보이스피싱 범죄자 개그를 말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보이스피싱 범죄는 날로 달로 진화하고 피해자들을 거침없이 양산하며 그로 인한 피해 책임의 폭탄 돌리기 또한 여전히 호황이다. 가장 큰 책임을 져야하는 보이스피싱 범죄조직의 수괴는 이 거대한 폭탄 돌리기판에서 엑스트라로도 등장하지 않는다. 주연은 바로 보이스피싱 피해자와 피라미 현금수거책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피라미 현금수거책의 가족들이다.

책임의 폭탄 돌리기판은 보통 이렇게 돌아간다. 보이스피싱 현금수거책 피라미 한 마리가 체포되면 경찰서 유치장에 가두었다가 곧바로 구속을 시켜버린다. 현금수거책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으나 경험에 비추어 봤을 때 20대 초반의 남성들이 다수 포진되어 있다. 멀쩡히 아침밥 먹고 나간 아들이 저녁 즈음 경찰서 유치장에 있다고 하니 황망한 부모들은 부랴부랴 변호사를 찾는다. 그럼 변호사는 말한다.

“보이스피싱은 구속수사, 실형선고가 원칙이니 하루라도 빨리 피해자들과 합의하고 집행유예 받아서 아들 빼오십시다.”

변호사는 수사관들로부터 피해자들의 연락처를 수집해 한명 한명 전화를 돌린다. 피해자들은 전액 변제를 요구한다. 그러나 변호사는 전액을 주면서까지 합의할 생각이 없다. 전액 변제를 요구하는 피해자는 일단 젖혀 놓는다. 합의금 밀당을 통해 적절한 선에서 합의에 응하는 피해자가 있으면 곧바로 합의금을 이체해주고 민형사 합의를 해버린다. 이거라도 받고 합의하라는 태도다. 만약 피해자가 피해금의 절반을 받고 합의했다면 보이스피싱 범죄 피해의 폭탄은 피해자와 피라미의 부모가 절반씩 떠안은 셈이다.

끝까지 전액 변제를 요구하며 합의에 응하지 않은 피해자의 끝은... 안타깝지만 폭탄을 본인이 전부 떠안은 셈이다. 피라미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걸 수 있지만 피해자 본인의 과실상계를 하고 나면 배상금은 반드시 줄어드는 데다가 20대 초반의 남성은 당장에 수천만 원을 갚을 능력이 없다. 민사소송이 마무리될 때쯤 피라미는 이미 풀려나 자유롭게 거리를 활보하고 있을 것이며, 부모님 카드를 들고 다니면서 큰 불편함 없이 살아갈 것이다. 그렇게 10여 년이 지나면 피해자가 별도의 소멸시효 중단조치를 취하지 않는 한 판결금 채권의 소멸시효는 완료될 것이다. 결국 피해금은 고스란히 피해자의 피해로 남는다. 피해만 남는 줄 아는가? 민사소송에 들어간 추가 변호사비용은 어쩔 셈인가?

하이에나 같은 변호사들은 이러한 체계의 허점을 노려 피해자들을 교묘히 어르고 협박한다. 피해자와 피라미의 부모가 책임을 반씩 나눠지게 만들고 피해자와 합의가 되었다는 사실을 재판부에 강력히 호소하며 피라미를 집행유예 혹은 1년 이하의 단기징역형으로 석방시킨 뒤 자랑스레 보이스피싱 범죄 성공사례를 작성하는 것이다.

해피엔딩? 돈 받고 사건도 수임하고 성공사례까지 얻어가는 변호사의 입장에서야 해피엔딩이겠지만 보이스피싱 범죄는 범죄조직의 수괴가 잡히지 않는 한 그 어떠한 결과가 나온들 영원히 새드엔딩이다.

보이스피싱 범죄조직의 최말단 그러니까 피라미 현금수거책들 중엔 자기가 하는 일이 보이스피싱 범죄와 관련되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이들이 많다. 그들은 남들보다 주의력이 다소 떨어지고 원체 조심성도 없는 사람들이다. 보통 사람이라면 이상하다고 의심해야 하는 특수한 상황에서도 ‘뭐 별일이야 있겠어?’라는 안일한 대응으로 결국엔 범죄자가 되고 마는 사람들이다.

내 의뢰인 중에는 배우 박서준이 출연했던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를 보고 큰 감명을 받아 “이것도 사업의 일환”이라는 유인책들의 말에 속아서 ‘이제 곧 나에게도 박새로이처럼 새로운 인생이 펼쳐지겠구나.’라는 황당한 공상 끝에 범죄인 줄도 모르고 보이스피싱 판에 투신한 친구가 있다. 그 친구 역시 결국 구속된 후 반성문에다가 “저는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의 박새로이처럼 열심히 일하고 사업도 배워 성공할 생각에 그 일이 이상한 일이라는 의심을 전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라는 내용을 쓰기도 했다. 그 친구는 그 일을 정말로 열심히 했고 그래서 피해금도 우후죽순 늘어나 1억 원이 훌쩍 넘었었다.

그 친구의 아버지는 아들의 결백을 믿었기에 나와 그 친구와 그 가족들은 항소심까지 무죄를 주장하며 패기 있게 싸웠으나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무죄를 주장하는 사건이었기에 합의할 생각이 없었으므로 피해자들에게 피해금을 단 한 푼도 변제하지 않았다. 따라서 이 사건에서의 피해 폭탄은 피해자들이 오롯이 떠안았으며 그 친구는 판결 확정 후 몇 개월 뒤 가석방으로 나와 대학교에 복학하여 아무 일 없이 잘 다니고 있다. 나는 아직도 그 친구의 결백을 믿는다. 물론 변호사의 눈으로 사건을 검토하며 ‘어떻게 이걸 몰라?’라는 의심이 들기도 하였으나 너무나도 억울해하며 통곡하는 그 친구의 모습이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아 나라도 이 순진무구한 의뢰인을 믿어야 한다는 알량한 의리 같은 게 남아있다.  

수임료로 먹고 사는 변호사로서 보이스피싱 범죄의 판이 커지는 것을 내심 환영한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피라미 몇 마리 잡아놓고 구속수사니 실형선고 원칙이니 해싸는 작금의 폭탄 돌리기 작태가 우습기도 하다. 그 우스운 한 편의 드라마 속에 비중 있는 조연으로 출연해 수임료를 받아 챙기는 위치에 있으니 변호사 역할하길 잘했다는 생각도 든다. 다짜고짜 구속부터 시키고 보는 보이스피싱 범죄의 수사원칙은 변호사들에게 짭짤한 수익을 담보한다.

하지만 구속된 피라미 현금수거책의 가족들에게 아들을 하루라도 빨리 감방에서 꺼내고 싶으면 어떻게든 합의금을 만들어오라 윽박지르고 적당한 선에서 합의하지 않으면 영원히 피해 회복은 어려울 것이란 말로 교묘히 피해자들을 협박하는, 이 고통의 사슬을 이제는 끊고 싶다. 아니 끊어야 한다.

그러려면 보이스피싱 범죄의 수괴를 잡아야 한다. 보이스피싱 범죄의 피해는 가장 큰 이익을 보는 범죄조직의 수괴가 전부 책임져야 한다. 단 한 번이라도 보이스피싱 범죄의 수괴를 붙잡아 엄벌에 엄벌에 엄벌에 처하고 조직을 일망타진해야 한다. 대한민국 국민을 상대로 보이스피싱 범죄를 저지르는 조직의 수괴는, 잡힐 경우 목숨을 내놓아야 할 수도 있다는 저명한 본보기를 실현해야 이 처절한 폭탄 돌리기를 끝낼 수 있다.

며칠 전에도 보이스피싱 범죄의 현금수거책 아들을 둔 부모가 눈물바람하며 찾아왔다. 나는 또다시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인정하고 피해자들과 합의하여 집행유예로 나올 것인지, 이판사판 끝까지 싸워 열에 하나 나올까말까한 무죄 혹은 된통 괘씸죄를 받을 것인지. 이번 의뢰인은 현명하게도 모든 범죄사실을 인정한 후 피해자들과 빠르게 합의하는 방법을 택했다. 그런데 참으로 문제다. 언제부터 이상하다는 점을 인지했냐는 수사관의 질문에 대한 답변이 일관성이 없다. 피해자 1번을 만났을 때부터인지 3번을 만났을 때부터인지 오락가락한다. 왜냐하면 이 친구 역시 그 개꿀 알바가 보이스피싱 범죄라는 사실을 전혀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범죄자 본인도 제대로 모르는 범죄사실을 덮어놓고 인정한단다. 향숙이가 떠오르는 블랙코메디가 따로 없다.

<차현정 변호사 ▲ 세종대학교 졸업 ▲ 사법시험 합격 ▲ 사법연수원 수료 ▲수원지방검찰청 성폭력전담팀 검사직무대리 ▲성남수정경찰서 집회시위자문위원회 위원 ▲성남수정경찰서 경미범죄심사위원회 위원 ▲대전지체장애인협회 중구,유성구 고문변호사 ▲대한변호사협회등록 이혼전문변호사>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